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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축' 발언, 昌의 입장은?

미국과 국내 반대여론 사이 힘겨운 '균형잡기'

부시 미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이 한나라당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 발언을 둘러싸고 정치권, 언론, 시민단체가 찬반양론의 대치상황을 보이는 가운데 명확한 입장을 선택하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회창 총재 방미 직후 미국정부의 대북강경책이 나온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따르자 한나라당과 이 총재의 곤혹스러움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회창 총재 방미 당시 딕 체니 부통령, 콜린 파월 국무장관 등 미 행정부 고위관리들이 극히 이례적으로 대선주자의 하나인 이 총재를 직접 면담했다. 이를 두고 미국이 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비판하고, 대신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새 파트너로 삼아 대북강경책을 마련한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다.

***‘악의 축’ 발언에 대한 입장표명 없어**

따라서 한나라당으로서는 이 총재 방미 당시 부시의 ‘악의 축’ 발언에 대한 사전조율이 있었는지 여부, 또한 사전조율이 없었다면 한나라당은 부시 발언에 찬성하는지 여부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7일 장광근 수석부대변인 명의의 공식 논평과 두 가지 보도자료를 한꺼번에 쏟아내면서 적극 대응했다.

하지만 ‘악의 축’ 발언에 대한 명확한 입장표명은 없었다.

이 총재 방미 일정을 주관하고 현장에서 통역을 담당했던 박진 특보는 이 총재와 미국 측의 면담에서 ‘악의 축’이란 표현이 나왔는지를 묻자 “그런 얘기가 어떻게 나오느냐”며 전혀 사전조율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미국 측과 나눈 대화내용은 양쪽이 프라이비트(private)하게 하기로 했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면서 “일반적인 한미관계와 북한문제를 얘기했다”고만 밝혔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그 표현이 적절했다고 보느냐”며 찬반 의견을 밝혀줄 것을 요구하자, “그런 질문을 하지 말라”며 노 코멘트로 일관했다.

장광근 수석부대변인 역시 “‘악의 축’이란 표현은 미국 측이 선택한 수사(修辭)이기 때문에 평가하기 적절치 않다. 미국 측의 정확한 진의를 파악할 수 없어 그 표현이 적절했는지 여부를 언급할 입장에 있지 않다”며 답변을 피했다.

***정정보도 요구하며 ‘사전조율 없었음’ 강조**

반면 ‘악의 축’ 발언이 미국과 이 총재가 사전조율한 것은 아니라며 적극 해명에 나섰다.

7일 한나라당 대변인실이 내놓은 두 가지 보도자료는 6일 본지와 KBS의 보도, 7일 문화일보 보도에 대한 반박이었다.

본지는 지난 6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즈 4일자 기사를 인용해 ‘미, 이회창과 대북정책 사전조율?’이란 기사를 보도한 바 있고, KBS 역시 유사한 보도를 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부시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에서 ‘악의 축’ 발언을 한 것이 이회창 총재가 미국정부 측과 ‘사전조율’한 결과 나온 것처럼 보도된 것은 사실무근”이라며 본지와 KBS 측에 항의했다.

또한 문화일보는 7일 이 총재가 미국 방문중 “한반도에서도 전쟁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있다. 오히려 미국에서의 테러 가능성보다 높다고 본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별도의 보도자료를 통해 “9.11테러와 관련해서 느끼는 미국인의 테러위협보다는 전쟁을 겪었던 우리 한국인들이 현재 느끼고 있는 전쟁에 대한 위압감이 보다 더 크고 현실적이라는 발언이었다”며 문화일보에 대해 정식으로 정정보도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장광근 수석대변인 명의의 공식 논평에서도 “미국의 대북강경기조가 야당 총재의 부추김에 의한 것이라는 망언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며 “외교정책 실패의 책임을 야당총재에게 떠밀려는 정권의 ‘마녀사냥식 행태’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미국, 현 정부 모두 문제**

이처럼 한나라당은 이른바 ‘사전조율설’에 대해서는 적극 반박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 발언에 대한 찬반의 명확한 입장표명은 유보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장광근 수석부대변인은 “부시 발언 반대운동이 고조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동의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즉 ‘반대’는 분명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시 발언을 ‘찬성’ 내지 ‘적절했다’고 할 수도 없는 애매한 입장이다. 바로 이 지점이 현재 한나라당이 처한 곤혹스러움이라 할 수 있다.

이회창 총재는 4일 국회 대표연설에서 “북한 대량살상무기 문제의 해결은 한반도 평화와 안전에 필수적”이라며 “북한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 수용과 미사일 문제에 대한 북미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고, 동시에 “미국정부에 대해서도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7일 논평에서는 “현정권은 지금이라도 '퍼주기식 대북정책' '우왕좌왕식 대미정책'에 대한 문제점검에 나서라”며 정부의 대북.대미정책 실패를 성토했다.

북한도 문제, ‘군사적 조치’ 운운하는 미국도 문제, 현 정부도 문제라는 것이다.

***군사적 긴장고조 반대하지만 미 측 강경 전환엔 충분한 정황 있다**

또한 미국의 강경자세 전환에 대해서 장 부대변인은 “군사적 긴장고조에 반대하지만 미 측의 강경자세 전환에는 충분한 정황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되며 평화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의 기본 원칙”이라며 미국의 강경 전환이 군사적 긴장고조로 가지 않기를 촉구하는 한편, “양성철 주미대사마저 '북의 지속적인 대량살상무기 판매상황이 포착된 것으로 안다'고 인정했다”며 북한 측이 미국의 강경자세 전환의 요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처럼 현재 한나라당은 작금의 북미긴장과 한미 외교 갈등 양상에 대해 지극히 중간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북한은 원인제공자로서 문제이며, 미국은 지나치게 군사적 긴장고조로 가지 말아야 하고, 이런 모든 상황이 벌어지게 만든 책임은 현 정부의 정책 실패 때문이라는 자세다.

대선을 앞두고 미국 측의 정책전환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고, 그렇다고 부시 발언 이후 고조되고 있는 국내의 반대여론도 무시할 수 없는 한나라당의 곤혹스러움이 드러난다.

부시 방한을 고비로 점차 고조되어 갈 북미-한미 논란의 와중에서 한나라당이 앞으로도 지금의 중간적 입장을 성공적으로 유지해 갈 수 있을지, 그 ‘힘겨운 균형잡기’의 추이를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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