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7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에 불법대선자금 사건에 연루됐던 이재정 전의원(60)을 내정했다. 또 장관급인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엔 자신의 탄핵심판 사건의 법률 대리인단에 참여했던 이용훈(62) 전 대법관을 내정했다.
이밖에 이상수 전의원, 이강철 열린우리당 국민참여본부장 중용설이 나도는 등 연말로 예상되는 정부 및 청와대 개편을 앞두고 노대통령 측근세력의 중용 움직임이 감지돼 귀추가 주목된다.
***임동원 고사로 이재정 '컴백'**
장관급 예우를 받는 민주통평 수석부의장은 지난 2월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이자 부산지역 후원회장이었던 신상우 전 부의장이 4월 총선거 지원을 이유로 사퇴한 이래 8개월 동안이나 '공석'이어서, 누가 후임자가 될 것인지를 놓고 정가의 관심이 쏠려 있었다.
민주평통의 사실상 책임자인 수석부의장 후임으로 가장 유력시되던 인물은, 김대중 정부의 통일부장관이었던 임동원씨. 노무현 정부는 김 전대통령과의 관계 개선 차원에서 임 전장관 기용을 적극 추진했으나, 임 전장관의 고사로 성사시키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강만길 상지대 총장, 조세형 전 주일대사, 국가인권위 박경서 상임위원 등이 하마평에 올랐으나, 노 대통령은 예상을 깨고 지난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캠프 유세본부장으로 불법대선자금을 당에 전달한 혐의로 구속돼 올 들어 벌금형을 선고받고 풀려난 이재정 전 의원을 내정했다.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은 27일 인선배경에 대해 "성공회대 총장,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 정책위의장 등을 역임한 신학자이자 정치인으로 판단력이 뛰어나고 국정전반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다"고 내정 이유를 밝혔다.
김 대변인은 또 "북한 식량난 지원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통일문제 및 민족문제에 대해 남다른 지식과 열정을 갖고 있으며 인권과 정의에 관해 소신이 확고하다"며 "다양한 경험과 성실하고 소탈한 성품 및 깔끔한 업무처리 능력을 바탕으로 남북문제 등 민족통일의 주요 현안 과제를 합리적이로 개혁적으로 잘 추진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 전의원은 불법대선자금 사건과 관련, 대선 직전 한화에서 10억원의 채권을 받아 당에 전달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구속기소된 뒤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으로 풀려난 바 있다. 이어 지난 7월 2심에서 벌금 3천만원으로 감형받아 항소를 포기, 벌금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당시 재판부는 이 전 의원에 대해 구금 일수 1일을 60만원으로 계산, 벌금형을 선고 이전 이 전 의원의 구금 일수 50일로 대신하며 사실상 한푼의 벌금도 안내게 해 '솜방망이 처벌'이 아니냐는 야당의 반발을 사기도 했었다.
***이재정 "스스로 무죄라 생각. 아무런 거리낌 없다"**
이재정 내정에 대해 야당은 벌써부터 "불법대선자금으로 형을 선고 받은지 석달밖에 안된 사람을 중용하는 것은 문제"라며, 이를 간과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이재정 내정자는 이와 관련, 이날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불법대선자금 연루 사실에 대해 "스스로 무죄라고 생각하고 있고 검찰에서도 나중에 너무 무리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며 "그 점에 대해서는 거리낌이 없다"고 복귀에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 내정자는 내정 사실에 대해 "헌법기구라 두렵고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소식을 들었다"며 "국민에게 민주, 평화, 통일을 두고 가장 중요한 역사적 방향을 제시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한다. 국민과 대통령 사이 다리를 놓는 역할도 해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향후 민주평통 운영 방안에 대해 "역사적 배경을 고려해 미래 지향적으로 기구를 운영해 나갈 여러 구상을 연구하겠다"며 "숫자가 많지만 지역별 조직이라 결코 비대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앞으로 어떻게 역할해 나갈 지 생산적인 운영 방안을 연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상수 컴백설 확산**
이재정 전의원이 장관급으로 화려하게 컴백하자, 정가에서는 이 전의원과 같은 날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이상수 전의원도 금명간 컴백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고법은 지난 7월8일 2002년 대선 당시 한화, 금호, SK, 현대차에서 모두 32억6천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모금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열린우리당 이상수 전 의원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해 석방했다. 당시 재판부는 "불법성이 인정된 26억원의 규모가 적지 않아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나 자금을 유용하지 않았고 3선 의원으로서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점을 인정해 형 집행을 유예한다"고 밝혔었다.
그후 이상수 전의원은 자숙하는 생활을 했으나, 이상수 전의원에 대한 노대통령의 부채감이 남달라 청와대 등 여권에서는 얼마 전부터 이상수 중용설이 조심스레 나돌아왔다. 이러던 차에 같은 날 벌금형을 받은 이재정 전의원이 평통 수석부의장에 내정되면서 이상수 컴백도 초읽기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게 여권의 지배적 관측이다.
***이강철 열린우리당 국민참여본부장 중용설도, 연말 대폭개편설도 나돌아**
이상수 전의원의 중용설과 함께 정가에 나돌고 있는 것이 노대통령의 TK핵심인 이강철 열린우리당 국민참여본부장의 중용설이다. 이씨는 지난번 대선과 올해 탄핵국면, 그리고 4.15총선에 이르기까지 불모지인 TK지역에서 고군분투한 노대통령의 핵심중 핵심이다.
이에 한때 공기업 사장 배려설 등이 나돌았으나, 본인이 이를 강력고사하고 노대통령 주변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이강철 열린우리당 국민참여본부장은 노정부의 지지기반이 상당부분 붕괴하고 흩어진 이유중 하나로 '인사 문제'를 꼽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과연 그가 인사관련 파트에 중용될 수 있을지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노대통령은 헌재의 위헌판결, 4대 법안 등으로 야권과 팽팽한 대치국면을 펴고 있는 상황인 만큼 당-정-청 개편의 가능성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부여권내에서는 정기국회가 끝나면 대대적 '국정쇄신' 차원에서 상당한 규모의 개편이 단행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대적 쇄신 없이 현 분위기로는 정국 주도권을 계속 쥐느냐 잃느냐를 판가름할 내년 4월 재보선을 치룰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벌써부터 여권 일각에서는 국정원장-대통령비서실장-경제각료 등 정부와 청와대의 핵심요직에 대한 개편설이 나돌며 자천타천으로 후보자 명단까지 거명되는 상황이어서, 과연 노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할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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