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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누구를 향한 '똥침'인가

여야로 분열된 '개혁의원'들 방향을 잘 잡아라

이 글은 손호철 교수(서강대, 정치학)가 지난 9월 ‘화해와 전진 포럼’이 연 ‘한국정당의 정체성’ 주제의 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 등을 토대로 정리한 기고문이다. 손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정쟁으로 답보상태인 현 정치권, 이에 따른 극심한 민심 이반현상의 역사적 연원을 짚어내면서, 특히 개혁 성향 의원들을 질타했다.

'화해와 전진 포럼'은 지난 5월 정파적 이해관계를 넘어선 정치권의 개혁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민주당 김근태 정대철, 한나라당 김덕룡 이부영 의원 등 개혁성향의 여야 의원과 함세웅 신부 등 정치권외 각계의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모여 결성한 단체이다. 편집자

처음 '한국정당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을 때 한국정당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한국정당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승낙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자. 정체성이 그 '정체성(正體性)'이 아니라 ‘정체(停滯)되었다’는 정체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 다시 말해 한국정당의 아이덴티티가 아니라 한국정당의 스태그네이션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정당이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정당의 정체성이 바로 한국정당의 아이덴티티, 즉 정체성이다. 아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정체성이 한국정당의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정당의 현실을 미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국정당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다른 분야와 달리 발전하지 못한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정체화된 것도 아니고 오히려 후퇴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흔히 정당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정치학에서는 정당체제와 정당구조를 구별해 이야기한다. 정당체제란 보수양당제냐, 다당제냐 하는 정당간의 관계를 이야기한다면 정당구조는 간부정당이냐, 대중정당이냐 하는 정당의 내부구조를 의미한다. 이 두 측면에서 한국정당은 모두 후퇴했다. 우선 정당체제면에서 한국정치는 87년보다 후퇴했다. 87년 이전의 경우 그래도 정당이 민주대 반민주라는 정책적 차별성에 기초해 있었다면 이후 한국정당은 그 같은 차별성이 사실상 없어져 버리고 지역주의에 기반한 지역정당들이 경쟁하는 지역정당체제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당구조도 마찬가지다. 지역주의의 심화, 3김정치의 심화와 함께 한국정당은 사당화되어 과거보다 후퇴했다. 1970년대만 해도 야당 내에 당내 경선도 있었고 지더라도 승복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87년 이후는 완전히 당이 개인 소유화되고 말았다. 이 점에서 지금 생각해 보면, 사쿠라라고 비판을 받았지만 70년대초에 야당이었던 신민당을 이끌었던 유진산씨를 재평가하고 존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정당 오히려 후퇴**

즉 YS, DJ 등이 40대기수론을 들고 나왔을 때 YS, DJ가 당수였다면 이 같은 세대교체요구를 그대로 밟아버렸을 텐데 유진산씨는 이를 받아들여 역사적인 70년의 민주당 경선을 실시했던 것이다. 사당정치의 현실은 여러분이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세 가지만 지적하겠다. 우선 한국같은 사당정치는 아마도 북한을 빼 놓고 세계 어디에도 없는 가장 비민주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공산당도 당독재를 했지만 개인이 아니라 당이라는 제도가 권력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정당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는 우리보다는 백 배 민주적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상도 받고 했지만 87년 이후 당을 6번인가 만든 것 같더라. 한마디로 세계 기네스 북에 오를 일인데 이게 말이 되는 것인가. 정당이라는 것이 그저 개인의 소유물인 셈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최근의 재벌개혁, 언론개혁 이야기인데, 물론 이것들은 당연히 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족벌경영에 의한 기업과 언론의 사유화를 극복하자는 것인데 자신들은 사당정치를 하면서 재벌과 언론에게 사유화를 개혁하라고 윽박지르니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사당정치는 기본적으로 지역주의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지역주의가 있는 한 그 지역의 보스는 당을 새로 만들든, 무슨 짓을 하든 그 지역의 지분을 챙길 수 있으므로 사당정치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한국정당체제의 후퇴와 정당구조의 후퇴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1987년 양김의 분열이 너무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87년 양김의 분열은 그것이 끼친 역사적인 폐해에 있어서 한국전쟁, 80년 광주학살 만큼이나 큰 한국정치의 비극적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우리는 국민들의 정치적 허무주의, 지역주의를 욕하지만 그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즉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전국적으로 일어난 87년 6월항쟁이 보여주듯이 국민들은 허무주의적이지 않았고 지역주의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국민이 얻어준 민주화를 대통령 병에 의한 적전 분열로 노태우에게 선사한 양김을 보고 국민은 허무주의에 빠지고 지역주의에 빠진 것이다. 최근 주제넘게 소설을 하나 쓰고 있다. 제목은 ‘1987년’인데 1987년 양김이 분열하지 않은 것을 상정하여 그 이후 한국정치가 어떻게 잘 풀려 나갔겠는가를 그리는 일종의 한풀이식의 가상소설이다.

***양김 분열로 지역주의, 정치적 허무주의 전면화**

이전에 다른 글을 통해 지적한 바 있듯이 87년 양김의 분열은 이후 한국정치에 다섯 가지 정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중 하나는 일반 국민들에게 정치적 허무주의를 가져다 준 것인데 그것은 이미 지적했으니 나머지 네 가지를 이야기하겠다. 우선 다 아는 이야기지만, 문민정부의 출범을 5년 지연시킨 것이다. 물론 요즈음 같이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5년 늦어진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늦은 것은 따라가면 된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양김의 분열이 가져다준 부작용 중 가장 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부작용은 지금도 건재한 채 ‘대망론’을 유포하고 있는 JP, 그리고 소위 국민의 정부하에서 총리직을 지내고 있는 이한동이 상징하듯이 한국정치의 캐스팅보트를 군사독재세력, 즉 유신과 5공 잔당들이 쥐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양김이 손을 잡고 민주화세력을 단결시켜 군사독재의 잔재를 쳐 나갔으면 한국의 민주화 수준은 현재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진했을 것이다. 그러나 양김이 분열해 서로 반목하면서 이후 한국정치는 3당통합, DJP연합처럼 양김 중 한 명이 군사독재세력과 손을 잡고 다른 한 김을 죽이려는 양상으로 전개되었고, 그 결과 유신과 5공 잔당들이 한국정치의 캐스팅보트를 쥐어 온 것이다.

세 번째 부작용은 한국정당의 후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역주의의 전면화다. 물론 지역주의의 원흉은 박정희 정권이고 지역주의에 대한 양김의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박정희 정권에 면죄부를 주는 효과를 주고 싶지 않다. 그러나 분명히 87년 이전에는 지역주의가 전면화되지 않았고 그 양상도 87년 이전과 달랐다.

이와 관련, 굉장히 위험한 것이 70년대 이후 한국정치를 호남 대 영남의 갈등으로 그리는, 광범위하게 유포된 잘못된 통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정치가 호남 대 영남의 대결이 된 것은 91년 3당통합을 통해서이지, 그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 단적인 예가 79년 부마항쟁이다. 한국정치가 호남 대 영남의 대결이었다면 영남정권인 박정희 정권을 같은 영남인 부산과 마산이 들고 일어나 무너뜨린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즉 TK와 PK는 다른 정치세력이고 70년대 이후 PK는 YS 때문에 기본적으로 야당 지지지역으로서 호남과 함께 TK의 패권에 저항하는 저항적 지역주의의 본거지였다. 그러나 87년 양김이 분열하면서 민주대 반민주의 구도와 함께 저항적 지역주의 연합도 깨어지고 “만지역에 의한 만지역의 투쟁”의 양상으로 나간 것이다.

그 결과 결국 TK가 승리하고 말았는데 문제는 그 이후 지역주의가 TK 대 호남, TK 대 PK로 그치지 않고 오히려 호남 대 PK의 양상으로까지 나아간 것이다. 다시 말해, 정작 이긴 것은 TK인데 호남은 YS 때문에, PK는 DJ 때문에 자신들이 졌다고 생각해 어떤 면에서는 TK보다도 서로를 더 미워하게 된 것이다.

***포럼 중심으로 수구 대신 진정한 보수정당을**

마지막으로 민주화진영 전체의 분열과 적대화이다. 사실 ‘화해와 전진 포럼’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우리의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원래 당연히 같이 가야 하는 정치세력들인데 양김으로 나뉘어져 싸워왔기 때문에 ‘이제라도 모여서 내일을 생각하자’는 것이 이 포럼의 뜻 아닌가. 한 마디로 양김의 분열이 없었다면 이 포럼 자체가 필요 없었을 것이다.

여러분들은 정치현장에서 지냈으니 더 생생하게 느꼈겠지만 양김의 분열로 운동권 진영이 비판적 지지, 후보단일화 등으로 나뉘어 투쟁하는 가운데서 완전히 갈갈이 찢겨져 원수지간이 되어 버렸다. 이부영, 김근태 의원 등 정치권에 들어간 분들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에 남아있는 민주화진영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 같은 분열이 그 역사성으로 인해 3김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여기 옆에 사회로 이부영 의원이 앉아 있지만 이 의원의 동지는 같이 고문을 받고 고생을 한 김근태 의원이 아니고 고문하는 입장에 있었던 정형근 의원이고, 마찬가지로 김근태 의원의 동지는 이부영 의원이 아니고 또 다른 안기부맨인 엄삼탁씨인 것이 현실 아닌가? 양김의 분열이 바로 이 엄청난 역사적 비극 아니 희극을 이부영 의원, 김근태 의원과 같은 민주화운동 출신 정치인들에게 강제한 것이다.

어쨌든 '화해와 전진 포럼’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라고 본다. 일종의 ‘신민주대연합론’인데 이 포럼을 중심으로 개혁적 세력들이 모여 진보적 자유주의정당, 즉 흔히 말하는 개혁정당, 그러나 그 개혁이 유럽적 사회민주주의 정도도 아니고 한국정치를 진정한 의미의 자유민주주의 수준까지 발전시키자는 소박한 것임을 생각할 때, 그것은 보수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진정한 보수정당을 의미하는데, 이 같은 개혁정당 내지 진정한 보수정당이 되어 그 정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여 중심에 서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는 수구세력을 어쩔 수 없으니 이들이 30% 정도의 지분을 갖고 수구정당을 하고 민주노동당이나 한국사회당과 같은 진보정당이 소수당으로 자리잡고, 시간이 지나며 수구정당은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진보정당이 커지는 양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 87년에 했어야 하는 시나리오인데 양김의 분열로 무산되었고 15년이 지난 지금 그것이 과연 가능한지는 나 역시 회의적이다. 즉 그간의 역사성이 너무 깊고 각각 당내에서 쌓아온 기득권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고 더 빨리 이 같이 노력할 것이지 3김 시대가 다 끝나가니까 어떻게 보면 다소 비겁하게 이제 와서 이것을 해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마디만 더 한다면, 이부영 의원, 김근태 의원을 비롯한 운동권 출신의 포럼 참여 정치인들의 정치적 행태를 보면 실망스러운 점이 많다. 386세대는 물론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정치는 현실이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양김을 욕할 것도 없다. 사실 차세대 지도자들, 그리고 특히 386 출신 정치인을 보면 나는 거꾸로 양김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 요즈음에는 과거와 달리 양김을 존경하자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즉 정치를 40년 이상하고도 저 정도밖에 타락하지 않은 것은 굉장하고 존경해야 한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갖는다. 사실 그간의 행태를 보자면, 대권이 걸렸다고 하면 차세대 지도자들은 양김의 10배 정도, 386세대 정치인들은 양김의 100배는 더 썩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차세대와 386세대, 양김보다 더 썩은 것 같아**

마지막으로 우스개 소리, 그러나 뼈 있는 우스개 소리를 하나 하겠다. 같은 과 교수들끼리 이야기를 하다가 한번 ‘화해와 전진 포럼’ 이야기가 나왔는데 우연히 이 포럼을 ‘똥침포럼’으로 부르게 되어 우리끼리는 그렇게 부르고 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화해’를 하려면 두 사람이 손을 내밀어 두 손을 모아야 하는데 그렇게 모은 손을 다시 ‘전진’시키면 ‘똥침’이 되는 것이니 ‘화해와 전진 포럼’은 그 의미가 ‘똥침 포럼’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지적한 문제와 관련해 그 똥침이 무엇을 위한, 누구를 향한 똥침이냐는 것이다. 물론 수구세력을 향한 똥침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3당통합의 YS에 대해, 그리고 DJP의 JP를 향해 똥침을 놓을 것이지 이제와 수구세력에 대해 똥침을 놓겠다면 글쎄 허공을 향한 똥침이 될지, 뭐가 될지 모를 일이다.

또 그 똥침의 구체적인 방향에 따라 모여진 두 손이 다시 떨어질 수도 있다. 어쨌든 무엇을 위한, 누구를 향한 똥침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이 포럼이 진정한 역사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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