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박선숙 환경부 차관이 25일 청와대 앞에서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 터널을 반대하면 단식 농성을 진행중인 지율 스님을 찾았다. 단식 57일만의 일이다.
***문재인 수석, 지율 스님에게 단식 중단 요청**
문재인 수석 등은 오전 10시40분께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진 지율 스님을 찾아 "이제 하실 만큼 했다"며 단식을 중지할 것을 요청했다.
문 수석은 지율 스님에게 "제가 스님에게 해줄 수 있는 방안이 없어서 이제야 스님을 찾았다"며 "이제는 충분히 스님이 말씀하시는 바가 사회에 알려졌으니 그만 단식을 풀고 건강을 추슬러야 할 때"라고 단식 중단을 요청했다.
문 수석은 또 "지난번(2003년) 단식할 때도 뵈었는데, 그 때부터 외관상 보기에도 건강이 훨씬 안 좋아 보인다"며 "스님께서는 굳은 의지로 하시는 거지만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가슴이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그는 "스님께서 건강 때문에 스님과 함께하는 사람에게 걱정을 끼쳐야 되겠느냐"고 덧붙였다.
문 수석은 "재판부에서 항소심 판단을 내릴 때까지 공사를 중단하는 것에는 합의가 됐다"며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실시할 수는 없지만, 환경영향평가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는 게 지율 스님의 노력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만큼 청와대와 정부도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시 단식을 풀 것을 종용했다. 문 수석과의 면담에서 지율 스님은 계속 '묵언'으로 일관했다.
***문재인 수석, "지율 스님 죽음을 부추기지 말라"**
면담이 끝난 뒤 문재인 수석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재 노선 재검토가 된 상태여서 지율스님 주장에 동의할 수 없고, 단식 방식에도 동의할 수 없다"며 "그러나 개발을 위해 환경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스님의 환경 철학, 생명 존중의 사상에는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문 수석은 "지율 스님의 단식이 너무 오래돼서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에 처했다"며 "재판부가 항소심 판단을 내릴 때까지 재판 결과를 승복하기로 양측의 합의가 된 만큼 지율 스님과 함께하는 분들도 중재안을 따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 수석은 그러면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는 지적에 대해 "우리가 약속한 것은 공사를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노선을 재검토하겠다는 것이었다"며 "재검토는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문 수석은 '환경영향평가 재실시 등 지율 스님이 내건 요구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지율 스님과 함께하는 사람들도 지율 스님의 단식 중단에 나서야지, 단식을 부추기는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도리어 시민단체 등에 대해 훈수를 두기도 했다.
문 수석은 또 '50여일일동안 단식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번도 안 찾은 것'에 대해,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청와대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청와대 앞 단식은 더 관심을 가져달라는 일종의 시위 방법인데, 해법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청와대가 단식 57일만에 나선 것에 대해 "중재안이 마련됐고 상황이 극한 상태로 치달아 나선 것"이라며 "앞으로도 사안에 따라 청와대가 나설 일은 나서겠다"고 해 대조를 보였다.
이날 문재인 수석과 박선숙 차관은 119 구급차와 같이 왔고, 청와대 김만수 부대변인은 이날 오전 "지율 스님이 단식을 풀었다"고 밝혔으나 오후 1시반 현재 지율 스님은 아직 단식중이다.
***지율 스님과 함께하는 사람들, "스님 단식 중단하세요"**
한편 문정현 신부,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영남대 교수), 박병상 풀꽃세상 대표 등 지율 스님과 함께해온 시민사회단체 대표 및 관계자들은 25일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지율 스님이 저렇게 돌아가시게 할 수는 없다"며 "단식 중단을 요청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제 이 문제는 지율 스님만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문제가 됐다"며 "지율 스님의 단식을 계기로 만들어진 '도롱뇽 소송 시민행동'을 중심으로 국민과 함께 지율 스님의 뜻을 계속 알려가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율 스님을 기자회견 전 지율 스님에게 "단식을 풀어야 한다"며 "청와대가 보낸 경찰들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스님을 직접 모시겠다"고 스님에게 병원으로 갈 것을 권유했다. 스님은 '묵언'으로 이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듣기만 했다.
***지율 스님 단식은 중단될 듯, 공은 '정부로'**
25일 현재 지율 스님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몸 상태가 나빠져, 청와대 앞 단식 농성장에 누워 있는 상태다. 지율 스님과 함께하는 이들은 이번 주 중으로 단식을 중단시키고 병원에서 치료와 요양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할 예정이다.
녹색연합 서재철 자연생태국장은 "이제 공은 다시 환경부 등 관련 부처로 넘어갔다"며 "박선숙 차관이 환경영향평가 재실시는 못 하더라도, 지질 조사 등에 대한 공청회 등을 약속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확실한 검증을 실시해 여론을 계속 만들어나가겠다"고 이후 계획을 밝혔다.
문정현 신부는 기자를 보자마자 눈시울을 적시며, "눈물이 나고 슬퍼서 견딜 수가 없다"며 "지율 스님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해 지율 스님에게 뜻을 꺾으라고 권해야 하는 자신의 참담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지율 스님과 함께해 온 최성각 풀꽃평화연구소장도 지율 스님 면담 중 눈물을 참지 못하며, "지율 스님의 목소리를 '배부른 자들의 염불소리'라고 매도하고 모욕한 사람들, 끝까지 자기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청와대 사람들의 태도를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격앙된 목소리를 내놓았다.
녹색평론 김종철 교수는 "작년에 새만금 삼보일배 때도 그랬지만, 지율 스님의 단식으로도 문제가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다"며 "지율 스님의 일은 우리 사회가 그 뿌리부터 '미친 사회'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앞으로 '환경과 평화의 세기'를 만들지 않으면 우리 다음 세대는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을 것"이라며 "노무현 정부는 그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환경'과 '평화'에 있어서는 사실상 정부 역할을 방기하고 있는 게 아닌지, 더 안 좋은 방향으로 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 교수는 "도대체 목숨을 걸고 가치를 지키기로 작정한 한 비구니의 소식이 뉴스 가치가 없다면 뭐가 뉴스거리냐"며 "이 문제에 대한 일부 언론의 무관심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언론의 보도 태도를 질타했다. 김 교수는 "이제 늦게라도 사회적 의제로 떠오른 만큼 언론이 앞으로도 책임감을 가지고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한편 문재인 수석 일행과 같이온 119 구급대는 지율 스님의 요청에 의해 농성장을 떠났다. 25일 오후에는 곽결호 환경부장관이 지율 스님을 찾아 환경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곽결호 장관은 2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 등으로부터 이 문제와 관련해 호된 질책을 받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