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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기념사업에 '딴죽' 거는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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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기념사업에 '딴죽' 거는 서울시

<기자의 눈>"신기남 등 여당 추진위원 적극 나서야"

전태일. 우리 노동운동사에 남긴 족적을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는 그이지만, 아직 그를 기리는 기념관 하나 없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서울 종로구 창신 2동. 꼬불꼬불한 동대문 시장 골목을 따라 평생 그가 함께 했던 가장 밑바닥 노동자들이 지금도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고 있는 바로 그 곳, 한 귀퉁이에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실이 있을 뿐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 글을 쓰는 기자도 최근 전태일 열사 여동생인 전순옥씨를 인터뷰하기 위해 그 곳을 처음 찾았다. 지하철 동대문역에서 내려 한참을 헤매서야, 지난간 역사에 대한, 또 여전히 최저 생계비 근처에서 허덕이는 저소득층 노동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을 반영하는 듯 '방치'돼 있는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실을 찾을 수 있었다.

***전태일기념관 건립, 서울시 비협조적 태도로 난항**

이런 가운데 청계천 복원 공사와 맞물려 추진 중이던 전태일기념관 건립이 서울시의 비협조적 태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추진위)는 21일 "지난 11일 시 관계자들과 기념관 설립을 놓고 협의를 벌였지만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박원순 아름다운 재단 이사,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등 각계 인사들이 모여 지난해 7월 발족한 추진위는 청계6가인 서울 방산동 일대 1만3천평 규모의 미군 공병대 부대 터에 연건평 6백평 가량의 기념관을 짓는 계획을 세워 서울시에 협조를 요청해왔다. 또 청계천에 놓일 21개의 다리 중 청계6가에 놓일 다리를 '전태일 다리'로, 청계천로를 '전태일 거리'로 이름 붙일 것을 서울시에 요구했다.

그러나 서울시 측은 "공병단 터가 2007년께 철수하며 부지가 교육부 소유"라며 추진위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기념관 건립사업은 국가적 기념사업이므로 중앙정부에 요구하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서울시, '전태일로' '전태일 다리'도 거부**

서울시는 전태일기념사업에 줄곧 미온적 태도를 취해왔다. 기념사업회가 지난 1999년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청계천 평화시장 횡단보도 기념 동판을 만들 때도 서울시에 표석을 세워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시는 그나마 이 기념 동판을 청계천 복원 공사를 이유로 지난해 12월 철거했다.

또 작년 5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작성한 '청계천 복원에 따른 도심부 발전방안'에 포함돼 있던 '전태일기념관 및 추모공원 건립안'을 최종 계획에서는 삭제하기도 했다.

그러던 서울시가 지난 5월 2일 '전태일 열사 기념관 건립 홍보를 위한 시민 걷기 대회'가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 영화배우 문성근씨 등 각계 인사 및 시민 3백여명의 호응 속에 거행되자, 잠시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이춘식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행사 직후인 5월6일 전태일기념사업회를 직접 방문한 것이다. 이 부시장은 이날 청계천로와 청계6가에 놓일 다리 이름을 각각 '전태일 거리'와 '전태일 다리'로 해달라는 요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철거됐던 기념 동판을 제자리에 복원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기념관 건립에 대해서도 "계획서를 제출하라"는 등 긍정적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서울시는 약속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정인숙 기념사업회 이사는 "농락당한 기분"이라고 22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서울시의 이중적 태도에 대해 분개했다. 정 이사는 "다리 이름은 지난 15일 명칭위원회에서 '버들다리'로 결정됐고, 거리 이름도 '백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거리 이름으로 쓰지 못하게 돼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다른 도시 뿐아니라 서울의 경우도 '소월길' 등 1백년이 지나지 않은 인물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추진위 가입한 의원 24명, 적극 나서야**

서울시의 입장에 대해 추진위 측은 "청계천 복원 계획에서 공병터를 공원화하기로 해놓고 전태일기념관 건립을 거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교육부 터'라며 정부로 책임을 떠넘긴 것에 대해서도 "용산기지 터는 공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국방부에 반환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면서 변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가 이같은 태도를 보이자 추진위 측은 다음달 5일 노동·사회단체 등 시민단체 주요 인사를 포함한 연석회의를 연 뒤 대안을 마련해 시와 협상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추진위에는 민주노동당 단병호 노회찬 심상정 최순영 천영세 의원을 비롯해, 열린우리당 신기남 유인태 최재승 김원웅 이목희 민병두 이미경 문학진 김현미 한명숙 정청래 장영달 김영주 최규식 송영길, 한나라당 김문수 배일도 박계동 민주당 김홍일 의원 등 17대 의원 24명이 가입한 상태다. 또 서상섭 심재권 전 의원도 가입했다. 의례 많은 단체나 사업에 국회의원들이 후원금을 내거나 이름만 빌려주는 일이 허다하다지만 가입한 의원들의 면면을 볼때 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할 것 같다. 특히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 이미경 한명숙 중앙상임의원 등 여당 지도부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는 점도 기대를 갖게 한다.

지난 80년 <전태일 평전>이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란 제목으로 처음 출판될 때, 당시 엄혹한 시대 분위기에 따라 지은이를 고(故) 조영래 변호사로 밝히지 못하고 '전태일 기념관 건립위원회'라고 펴냈었다. 그게 무려 24년이나 지난 일이다. 그간 우리 사회의 성장을 비춰볼 때 기념관 건립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인권위원회' '의문사 진상위원회' 등을 통해 지난 역사에 대한 위상 정립 작업이 정부 차원에서 하나둘씩 진행되고 있지 않나.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추진위는 42억 가량 예상되는 기념관 건립 비용을 추진위원 1천9백70명에게 10만원씩 기부받고, 일반 시민에게 후원금을 모아 일부 충당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 3백여명만이 추진위원으로 참여해 좀더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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