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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소네 "1970년 극비리에 핵무장화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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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소네 "1970년 극비리에 핵무장화 추진"

"이토 히로부미 손자 시켜 추진" "앞으로 일본 핵무장화 필요"

일본 집권 자민당의 대부격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86) 전 일본총리가 자신이 방위청장관이던 1970년에 이토 히로부미의 손자를 시켜 극비리에 핵무장 연구를 지시했었던 사실을 밝히며 앞으로 일본도 유사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일본의 군사대국화 야욕이 얼마나 거대한가를 새삼 실감케 하고 있다.

특히 나카소네가 다름아닌 한국 강점의 주역인 이토 히로부미의 손자를 시켜 극비리에 핵무장화를 추진했다는 사실은 일본 극우가 장차 한국까지도 겨냥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이토 히로부미 손자가 핵무장에 가장 열심"**

나카소네 전 수상은 18일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은 사실을 공개하며“핵무장은 현실적 필요성이 떨어지는 계획으로 일본의 능력을 가늠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나카소네는 이같은 핵무장 비사(秘史)는 오는 25일 발매예정인 자서전 <자성록-역사법정(歷史法廷)의 피고인 자격으로>를 통해 상세히 밝힐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카소네는 이날 인터뷰에서“이토 히로부미의 손자가 방위청의 관리로 이 문제를 가장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그를 중심으로 전문가를 불러모아 핵무장에 필요한 비용이나 시간의 연구를 지시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당시 돈으로 2천억엔을 들이면 5년이내에 핵무장을 할 수 있었지만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는 판단을 했다”고 언급했다.

나카소네는 “일본은 핵무장에 대해 지금까지 일관되게 부정하고 있고 지금도 이런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면서도 “향후 미국이 일본의 핵방호를 그만두게 됐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 상황이 오면 일본도 핵무장을 포함해 여러가지 가능성을 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핵무장화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나카소네는 고이즈미의 배후세력**

나카소네는 2차 세계대전때 해군사관으로 참전했던 도쿄대 출신 관료로 패전후 정계에 투신, 47년 총선거에서 28세로 초선된 이후 연속 15회 중의원(하원) 의원에 당선된 일본의 거물정치인이다.

그는 그후 59년 과학기술처장관을 거쳐 운수장관·방위청장관·통산장관·행정관리청장관 및 자유민주당 총무회장·간사장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82년 11월 스즈키 젠코 총리 후임으로 제71대 총리가 돼 87년 11월 퇴임할 때까지 일본에서 세번째로 오래 총리직에 머물렀었다.

그는 총리재직시절 총리로선 최초로 야스쿠니신사를 공식참배하고 역대 내각이 터부시해 오던 방위비의 GNP 1% 한도제를 철폐함으로써 군사대국으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등 보수우경화를 주도하며 '일본 불침항모론'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총리 재임 중 리쿠르트사(社)로부터 받은 정치헌금과 88년의 미공개주식양도사건(리쿠르트 스캔들)에 연루된 일본의 대표적 부패정치인이기도 하다.

일본 자민당의 최대 원로인 나카소네는 현재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발탁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현재도 그는 고이즈미 총리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카소네는 현재 전두환 군부세력은 물론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과도 두터운 인맥을 형성하고 있으며, 월간조선 등과 여러 차례 장문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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