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송금 특검에 대해 그동안 침묵해온 김대중 전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은 그 자체가 하지 않았어야 했던 것"이라며 최초로 현 정부의 특검 수용을 비판했다.
15일 노무현 대통령과의 만남을 앞둔 시점에 나온 김 전대통령의 이같은 비판은 김 전대통령과의 관계 개선 및 현재 추진중인 남북정상회담에서의 DJ 역할을 희망해온 노대통령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대북송금 특검, 이건 참 민족적 비극"**
김 전대통령은 주말인 지난 12일 6.15 공동선언 4주년을 맞아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MBC 'PD수첩' 제작진과 가진 인터뷰에서 "나라를 이끌어 가려면 여러가지 밖으로 알릴 수 없는 문제들이 있는데 일일이 특검을 해서 문제를 삼으면 나라 일을 하기가 어려워진다"며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고 'PD수첩' 측이 전했다.
김 전대통령은 "'저 나라는 믿을 수 없다'고 해서 안 하겠다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결국 하고 있다는 것은 참 민족적 비극이라고 생각한다"고도 말해, 노대통령의 특검 수용으로 북한이 남한정부에 대한 불신감을 갖게 됐음을 우회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김 전대통령은 "대북 송금하고 정상회담하고 관계지은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정몽헌씨의 증언과 특검 수사 결과에서도 드러났듯이 정부가 1억달러를 정상회담의 대가로 지불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해, 특검이 대북송금과 남북정상회담을 연계시킨 데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 전대통령은 "1억 달러 주는 것을 '잘사는 형님이 가난한 동생 찾아가는 데 맨손으로 갈 수는 없지 않느냐'며 정부 예산에서 정식으로 내고 국민한테 알리고 하려고 했으나 실정법의 어려움이 있어서 정부 차원에서는 못 줬다"며 "현대가 통신에 대한 권리를 북으로부터 받는 대가로 지불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내가 특사 하는 것보다 김정일 위원장 답방해야"**
김 전대통령은 또한 최근 문희상-김근태 의원 등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는 '대북특사설'과 관련, 김 전대통령은 "내가 특사를 하는 것보다 김정일 위원장이 여기 오셔야 한다"며 우회적으로 수용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기도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문제에 대해 김 전대통령은 "그건 김정일 위원장이 안고 있는 책임"이라면서 "그 약속은 공동선언에까지 들어있고 또 공동선언을 지키기로 남북이 현 정부 노무현 정권하에서도 서로 다짐한 그런 처지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늦어졌지만, 지켜져야 하고, 지켜질 것"이라고 말했다.
***"주한미군 감축협상, 일방적으로 뒤통수치듯 해서야"**
김 전대통령은 북한에 대해서도 "핵무기를 갖건 무슨 무기를 갖건 무기로 백성을 먹여 살릴 수는 없다. 북한은 이대로 가선 안 된다"며 "북한이 지금 사는 길은 미국하고 관계 개선해서 북한의 안전을 보장받고 경제적으로 국제사회에서 지원 받는 길을 미국이 열어주도록 하는 것"이라며 북핵 문제 해법을 제시했다.
주한미군 감축 및 재배치와 관련해 김 전대통령은 "안보의 부분적인 공백, 국방비 증액 등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많을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김 전대통령은 이어 "주한미군이 감축하냐 안하냐도 중요하지만 양국간 긴밀한 협의와 이해 속에서 협상을 해야 한다"며 "요즘처럼 일방적으로 그렇게 뒤통수치듯이 하는 것은 철군 이상의 여러 가지 부정적 의미가 있다"며, 미국측의 일방주의적 협상 태도와 이같은 결과를 낳은 노무현정부의 외교방식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향후 계획과 관련, 김 전대통령은 "국내 정치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되, 민족의 평화적 통일과 세계 평화 이 두 가지를 위해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의 책임으로서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고 밝혔다.
이 인터뷰는 15일 밤 11시 MBC 'PD 수첩'을 통해 녹화 방영된다.
***청와대-우리당 당혹**
이같은 김 전대통령의 인터뷰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동교동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해온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측은 상당히 당혹해 하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얼마 전 석탄일때 임동원 전 특보 등 대북송금 관련자 6인에 대해 사면복권을 한 데 이어, 임동원 전 특보를 평통자문회의 부의장으로 영입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는 등 동교동과의 관계 개선에 노력해왔다.
열린우리당도 총선전 김근태 당시 원내대표의 'DJ 대북특사' 제안에 이어, 최근에는 문희상 의원이 또다시 DJ 대북특사 카드를 내세우면서 "김 전대통령도 수용할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까지 했다.
이런 마당에 나온 김 전대통령의 대북송금 비판과 북한특사 제안 거부는 정부여권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15일 연세대에서 6.15 남북정상회담 4주년을 맞아 북측인사가 대거 참석하는 기념 국제토론회 자리에 노대통령도 직접 참석하기로 했으며, 여권 일각에서 '연내 남북정상회담' 추진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이번 발언은 당연히 정부여권을 당혹케 만들기에 충분하다.
여권 일각에서는 "DJ의 이번 발언은 북측을 대화로 끌어들이기 위한 고도의 플레이가 아니냐"고 의미를 달리 해석하고 있기도 하나, 그다지 설득력이 높아보이지는 않고 있다. 특히 최근 김 전대통령이 12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박지원 전 비서실장을 면회하며 '눈물의 회동'을 한 뒤 나온 이번 발언은 박 전실장에 대한 노무현정부의 미온적 대처에 대한 강한 불만을 포함한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김 전대통령측에서 나온 이같은 공식적 비판에 대해 앞으로 노무현대통령이 어떻게 대처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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