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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젊은 정치인들 너무 계산이 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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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금 젊은 정치인들 너무 계산이 빨라”

[인터뷰] 우리당 박종태 고문 “파병 당연히 철회해야"

"국익 운운하는데 파병은 절대 안된다", "말로만 개혁 운운하지 말고 국가보안법부터 없애라."

지난 20일 열린우리당 고문단 회의. 신기남 의장의 면전에서 85세 노정객의 날선 질책이 쏟아졌다.

박종태 고문. 그의 고문단 회의에서의 '쓴소리'를 언론은 "소장파가 말하는 줄 알았다"는 등으로 표현하며 '뒷방 늙은이의 돌출발언' 쯤으로 치부됐다. 당에서도 그의 발언을 귀담아 듣는 이는 없는 듯 했다. 전화번호조차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던 그를 수소문, 지난 22일 일산 자택으로 찾아갔다.

***"요즘 후배정치인들, 다들 너무 계산이 빨라"**

"미국의 행위는 범죄행위에 가까워. 미국이 이런 행패를 부리는데, 우리가 미국 눈치보고 비겁하게 하는 걸 보니 기가 막혀. 우리가 깡패가 약자를 두드려 패는데 가담하겠다는 얘기야? 나는 미국을 깡패로 보고 부시를 깡패 두목정도로 봐. 거길 도우러 간다는데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야."

"전 세계가 미국의 부도덕한 행위를 비난하는데 우리는 밤낮 국익 타령만 해. 그런데 그 국익을 말하는 사람들한테 국익이란 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어. 분명히 말하지만 긴 장래를 볼 땐 파병을 하지 않는 것이 국익이야. 덮어놓고 무작정 약자를 응징하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는 것은 역사에 영원히 남아."

85세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에 힘이 있었고, 주장이 선명했다. 선명한 주장이 간과하기 쉬운 논리의 흐트러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파병 철회를 위한 국회 차원의 재검토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절차적으로 봐도 16대 국회가 결정한 것이니 17대 국회는 부당성을 얼마든지 재론할 수 있는 것 아니야. 상황 변화가 너무나 명확해. 미국에서는 민주당 케리 후보가 철군하겠다고 나왔잖아. 미국 자체에서 부당성을 평가하고 있고 미국 여론 과반수가 이라크전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얘기야. 전 세계가 다 알고 있는데 대한민국만 16대 국회의 부당한 결정에 대해 무조건 승복해야 하는거야? 얼마든지 재론할 수 있지."

그럼에도 이라크 파병 재검토 논의가 지지부진한 이유를 그는 후배 정치인들의 '무소신' 풍조에서 찾았다. "박정희 앞에서도 할말은 하고 살았다"는 그의 정치인생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지금 보면 다들 너무 계산이 빨라. 폐단이 생길 수 있는 말, 자기한테 불이익이 오는 말, 예민한 문제는 언급을 안 하려 하고 언급을 해도 적당히 하려고 해. 그게 아주 대한민국 정치의 병폐야. 용감하게 자기 소신 말해야 돼. 이게 자기가 살아있다는 뜻 아니냐. 매사 계산만 하고 어물어물하는 것은 아주 못마땅해."

***"국보법, 법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부끄럽다"**

이라크 파병철회와 더불어 박 고문이 또 하나의 당면 과제로 역설한 것은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였다.

"국가보안법이라는 미명아래 고문당한 사람, 끝내 사형까지 당한 사람, 경제 사회적인 불이익을 당한 사람이 그 수를 몇 만인지 몇 백만인지, 몇 천인지 헤아릴 수 없어. 법이라고도 할 수 없어. 창피한 것 아니야? 지구상에 이런 법을 갖고 있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어. …밉게 보인 놈은 빨갱이고 간첩으로 집어넣어서 박정희 정권 연장하려고 만들어 놓은 법이야. 악법이라는 것을 국민이 다 알고 있잖아. 법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부끄러워. 그런데 왜 아직까지도 폐기를 못해 질질 끌고 있는건지. 왜 아무도 폐기하자고 발설 안하려고 하는 건지…"

박 고문이 후배 정치인들에게 이 같은 '강성 주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에 대한 강한 애정이 깔려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노 대통령이 무거운 짐을 지고 성벽을 기어 올라가려고 하는데, 그 성벽이 너무 높아서 못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아. 무거운 짐을 들고 신음만 하고 있는 것이지. 성벽을 올라가려고 하는데, 돌이 날아오고 오물이 날라 와. 보수의 담은 너무 높고 두껍거든. 대한민국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것이 그 세력이야. 조중동은 엄청난 세력이야. 그것과 싸우다 보니 지쳐서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소리도 나온 거야. 그 소리 잘했다고 결코 생각지는 않아. 하지만 오죽하면 대통령 입에서 그 소리가 나왔겠어. 그런 인간적인 동정은 가지."

하기에 집권 2기를 맞는 노대통령에 대한 그의 기대는 남다르다.

"노무현 칼라를 보여주는 게 내 소망이야. 이번에 힘이 좀 생겼으니 기대해 봐야지. 내가 노 대통령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게 아니니 잘은 모르지만, 틀림없이 이라크 파병의 부당성을 갖고 있고 국보법은 마땅히 폐기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을 거야."

박종태 고문은 6, 7대(공화당), 13대(평민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여당 의원으로 1965년 월남전 파병 동의안 처리를 반대했고, 69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3선개헌에 반대하는 모임을 주도했다. 1979년에는 재야의 신군부에 대한 첫 도전으로 기록되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대통령 보궐선거 저지를 위한 국민대회(속칭 YWCA 위장결혼사건)'를 주도, 1년6개월을 복역하기도 했다.

다음은 박종태 고문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전문.

***"깡패가 약자를 패는데 가담하겠다는 건가"**

프레시안 :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이유가 뭔지 들어보려 왔다.
박종태 : 지난번(열린우리당 고문단 회의)에 얘기했지만, 1965년이면 거의 40년 전 아냐. 그때 나는 월남 파병을 홀로 반대했어. 박정희랑 싸움 해 가면서. 그때는 내가 아주 역적취급 받았어. 그때는 역적소리 들어가면서 했는데 요새야 파병반대가 어려운 얘기도 아니잖아.

미국의 행위는 범죄행위 가까워. 약소국가에서 대량 살상무기 갖고 있다는게 침공 구실이잖아.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대량살상무기 갖고 있는 나라가 어디야? 미국이란 말이야. 그런 미국이 1천 분의 1도 안 갖고 있는 이라크를 침공할 수 있어? 미국이 이런 행패를 부리는데, 우리가 미국 눈치보고 비겁하게 하는 걸 보니 기가 막혀. 우리가 깡패가 약자를 두드려 패는데 가담하겠다는 얘기야? 나는 미국을 깡패로 보고 부시를 깡패 두목정도로 봐. 얼마나 부끄러운 얘기야. 거길 도우러 간다는데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야.

프레시안 : 정부의 파병 결정이 미국의 눈치를 본 판단이라는 뜻인가.
박종태 : 노무현 대통령은 굴복해서 파병한다는 거야. 저건 미국의 강압에 대한 굴복이야.

프레시안 : 한미관계를 고려할 때 파병은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박종태 : 한미동맹이 미국이 무슨 침략을 해도 동조하겠다는 조약은 아니잖아.

프레시안 : 파병을 철회하면 한미동맹에 이상이 생기지는 않을까하는 걱정도 있는데.
박종태 : 동맹에 이상을 줄 정도로 정당한 명분은 아니지. 요새 주한미군을 미끼로 압력을 가하는데, 주한미군이 영원히 있어야 하는 건가라고 생각 해보면,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미군은 언젠가는 철수해야 돼. 언제까지 미국 보호 하에서 이 나라를 무한정 이렇게 끌고 나갈 건가. 요새 미군 3천 몇백명 감군한다고 나오니까 그 다음날 조선일보에 9할이 그 기사더라. 다른 기사 하나도 없어. 천재지변이 나도 그렇게 보도는 안 할 거야.

대한민국이 망했어? 미군 3천명 나가면 이 나라 끝나나? 왜 그렇게 소신들이 없고 굴욕적이고 사대주의적인지 모르겠어. 도저히 조선일보 태도는 이해할 수 없어. 철저한 사대주의자들이야.

프레시안 : 정부나 여권 내에서 사대주의적인 면이 있다고 보나?
박종태 : 여권에도 사대주의가 있으니깐 추가 파병하겠다는 것 아닌가. 전 세계가 미국의 부도덕한 행위를 비난하는데 우리는 밤낮 국익 타령만 해. 그런데 그 국익을 말하는 사람들한테 국익이란 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어. 분명히 말하지만 긴 장래를 볼 땐 파병을 하지 않는 것이 국익이야. 덮어놓고 무작정 강압에 의해 약자를 응징하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는 것은 역사에 영원히 남아. 그래서 내가 월남파병 반대한 거야. 명분 없는 전쟁은 실패하는 거지. 월남 전쟁은 미국 자체에서도 명분 없다는 걸 결국 인정했잖아.

프레시안: 월남 파병안 처리 당시와 지금은 사회적 상황이 달라졌는데, 후배 의원들이 소극적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박종태: 월남전 파병 때, 박정희가 나를 청와대에 불러다 놓고 저녁 6시부터 식사를 하며 12시까지 얘기를 한 적이 있어. 그 때 내가 얘기를 했지. "나 한 사람 반대한다고 파병이 통과되지 않을 것 아니지 않나. 젊은 생명을 사지에 보내는데 후세에 대한민국 의원 중에 한 사람도 반대하지 않고 만장일치로 보낸다는 것은 수치 아니냐. 한 사람이라도 기록을 남겨야 하지 않겠냐"라고. 그 사람(박정희 전 대통령)이 바랐던 것은 만장일치야. 그런데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박 전대통령이) 어이가 없었던지 말을 못하더라.

지금은 미국 측이랑 연관되는 게 많잖아. 그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국익관으로는 경제적으로 미국과 연관되는 것이 많으니 불이익이 올까 해서 그러는 거 같아. 반미라는 것이 국가에 무조건 유해하다고 보는 사람들 아닌가. 파병을 반대하면 반미분자로 몰리는 거 아닌가. 쉽게 말하면 그렇겠지.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부당하다는 것을 다 알고 있을 것이야.

***"16대 국회의 부당한 결정에 승복해야 하나"**

프레시안 : 파병을 재검토하자는 쪽에서도 한미간에 약속했고, 정부가 결정했고, 국회가 의결한 사안이라 백지화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종태 : 절차적으로 봐도 16대 국회가 결정한 것이니 17대 국회는 부당성을 얼마든지 재론할 수 있는 것 아니야. 상황 변화가 너무나 명확해. 미국에서는 민주당 케리 후보가 철군하겠다고 나왔잖아. 미국 자체에서 부당성을 평가하고 있고 미국 여론 과반수가 이라크전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얘기야. 전 세계가 다 알고 있는데 대한민국만 16대 국회의 부당한 결정에 대해 무조건 승복해야 하는거야? 얼마든지 재론할 수 있지.

프레시안 : 결의안 통과 때와 상황과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말인가.
박종태 : 이라크 전에 대한 미국 자체의 인식이 달라졌어. 그때 인식아래서 이 결의안이 나온 것 아닌가.

프레시안 : 노 대통령이 복귀한 이후 파병 방침이 강해진 것 같다.
박종태 :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아. 개인적으로 유감이고 서운해. 왜 그렇게 까지 밖에 할 수 없는지. 물론 미국이 '철군한다, 경제적인 불이익 주겠다'는 등 여러 가지 협박을 눈에 보이게, 안보이게 할 수 있어. 내 상식으로는 그 사람(노무현 대통령)도 가슴 저 밑에는 파병하고 싶지 않은 생각 있을 꺼야. 내가 잘못 봤는지는 모르지만, 난 아직까지는 그렇게 믿고 있어.

프레시안 : 그런 조건 때문에, 여권에선 이를테면 '제3의 길'이라는 게 나온 것 같다. 대내외적 조건 때문에 파병은 하되 부대성격이나 시기 등을 재검토하자는.
박종태 : 내 마음속은 파병 자체를 부당하다 생각하니 부대 성격을 논하기 전에 원천적으로 철회해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니까 파병 부대의 성격을 완전히 대민 지원으로 바꿔서 이라크 사람들을 도우는 것으로 함으로써 대미관계를 조금 완화하겠다면, 그 정도는 굳이 반대할 순 없겠지. 하지만 나는 원천적으로 반대야.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미국이 부당한 침략 전쟁을 하는데 무슨 명분과 이유로 가담하나. 이라크가 우리에게 위협을 주나? 이라크가 우리 동맹국에게 위협을 줬나.

프레시안 : 이번 총선 지나고 여당이 과반을 차지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여당의 역할이 있다면 무엇이겠나.
박종태 :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월남파병을 추진할 때 박정희로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어. 파병 후에 미국이 박정희에 대한 대우가 달라졌잖아. 그 전까지 박정희는 혁명하고 몇 년 안돼서 불안해했거든. 그런 상황에서 박정희가 파병하겠다고 나오니까 국회의원들이 모두 반대를 못했어. 자기에게 불이익이 많이 오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지야. 그 사람이(노 대통령) 본심이든 아니든 결정을 내린 것 아닌가. 그런데 여기에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라고. 자기 마음은 결코 그렇지 않아도 파병반대는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 너무 이해타산적이야. 계산 있는 것이지. 현실 정치에 순응한다고 할까. 나쁜 말로 하면 야합이야.

***"국보법, 그게 대한민국 수호신이야?"**

프레시안 : 국보법 폐지도 주장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가.
박종태 : 우리나라 사람들 건망증이 심해. 국가보안법이라는 미명아래 고문당한 사람, 끝내 사형까지 당한 사람, 경제 사회적인 불이익을 당한 사람이 그 수를 몇 만인지 몇 백만인지, 몇 천인지 헤아릴 수 없어. 법이라고도 할 수 없어. 창피한 것 아니야? 고무, 찬양이라는 것이 어떤 게 고무, 찬양이라는 규정도 분명하지 않아. 그렇다면 김정일 만나서 끌어안고 만세 불렀으니 김대중(전 대통령)부터 잡아넣어 야지. 사람 골라서 약하고 밉보인 사람은 집어넣고 강한 사람은 봐 주는 게 법이야?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그런 말들을 해놓고 이런 법이 있을 수 있어? 지구상에 이런 법을 갖고 있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어.

프레시안 : 가장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박종태 : 시급하고 부끄러운 일이지. 김대중이 정권을 쥐었을 때 해결해야하는데 껄끄러우니 그냥 넘어간 것 아닌가. 정치인들이 다 그렇지.

프레시안 : 마찰이 있으니 당장은 독소조항을 개정하고 그 뒤에 폐지로 가자는 점진적인 접근이 다수인데.
박종태 : 부끄러운 법이니 폐지해야지. 이 법 아니라 형법만 갖고도 충분히 할 수 있어. 지구상에 이런 법 갖고 있는 나라 또 있어? 나는 YW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2년형을 살았는데, 그때 내 옆방에 인혁당 사건으로 15년 징역살고 있는 사람이 있었어. 병신이 돼 일어서지도 못하고 숨만 붙어 있더라구. 사형만 안 당했지, 사형보다 더 고통 받은 사람이야. 간첩이 뭐고, 좌익이 뭔지도 모르는 멀쩡한 사람 잡아다가 천하에 부끄러운 일을 백주 대명천지에 한 거야. 이게 다 국가보안법 이름 하에 일어난 일이지. 하나의 예를 든 데 불과해. 이런 일은 부지기수야. 밉게 보인 놈은 다 빨갱이고 간첩으로 집어넣어서 박정희 정권 연장하려고 만들어 놓은 법이야. 악법이라는 것을 국민이 다 알고 있잖아. 법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부끄러워. 그런데 왜 아직까지도 폐기를 못해 질질 끌고 있는건지. 왜 아무도 폐기하자고 발설 안하려고 하는 건지.

폐기해서 안 될 이유가 뭐야. 이 법 자체가 독소조항 몇 개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부당한 거야. 이라크 파병과 마찬가지야. 왜 그렇게 사람들이 적당하게 넘어 가려는지 모르겠어. 부당하면 그만 둬야지. 앞뒤가 안 맞는 것 아닌가. 왜 폐기하면 안 되는 거야. 그게 대한민국 수호신이야?

***"노무현 칼라를 보여주는 게 내 소망"**

프레시안 : 노무현 대통령이 복귀했다. 집권 2기가 시작한다. 지난 1년간의 노무현 정부를 어떻게 봤나.
박종태 : 노 대통령을 평가 절하하고 모두 우습게 보는 풍조가 있는데, 그건 잘못됐다고 봐. 노 대통령이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 건 인정하지. 조중동을 앞세운 보수세력들은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강해. 특히 조선일보는 취임한 그날부터 깎아 내렸어.

나는 노 대통령이 무거운 짐을 지고 성벽을 기어 올라가려고 하는데, 그 성벽이 너무 높아서 못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아. 무거운 짐을 들고 신음만 하고 있는 것이지. 노 대통령을 불쌍한 사람이라고 보는 거야. 그 성벽을 올라가려고 하는데, 돌이 날아오고 오물이 날라 와. 보수의 담은 너무 높고 두껍거든. 대한민국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것이 그 세력이야. 조중동은 엄청난 세력이야. 그것과 싸우다 보니 지쳐서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소리가 나온 거야. 그 소리 잘했다고 결코 생각지는 않아. 하지만 오죽하면 대통령 입에서 그 소리가 나왔겠어. 그런 인간적인 동정은 가지.

노 대통령 집권 이후에 탄핵 소리가 국회에서 수백번 나왔어. 대통령 취임하고 며칠 후에 탄핵이라는 소리가 나왔어. 뭘 그리 잘못해서 밤낮 탄핵이야. 옛날에 정말로 못된 대통령들, 유신체제 박정희, 전두환은 흉악한 범죄자야. 그 대통령 때 누가 탄핵소리 했더라? 아무도 안했어.

예를 들어보자. 광주 의거가 일어났을 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분이 보장된 분은 김수환 추기경이었어. 누가 추기경한테 빨갱이라고 시비 걸겠어. 전두환 일당은 천인공노할 학살을 저지르면서 광주사람들을 '공비', '반역도당'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할 때 김수환 추기경 같은 권위 있고 절대적인 신분을 보장받은 사람이 한 마디라도 말씀을 한 적이 있었나?

그러다가 우리 나라가 민주화 됐다고 해서 '광주 의거'라는 용어가 나왔어. 그 후에야 김수환 추기경이 '광주 사건이 잘못됐다'고 한 마디 하더라. 그땐 자기가 그 말 안 해도 온 국민이 다 잘못했다고 할 때야. 난 불만스러워. 권위 있고 책임 있는 사람이 국가가 위기에 처해있을 때 약간의 불이익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싸워 줘야지. 권위 있는 사람이 사회에 얼마나 공헌했나는 것을 묻고 싶어. 다 잘된 다음에 더불어 적당한 소리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 모두 자기 위치에서 자기 안정만 도모하고 말야. 모두가 적당한 소리만 하는 거야. 자기가 위험할 때는 같이 폭도라고 외치는 거야. 그 때 조중동을 보면 (광주 시민들은) 다 폭도고 다 공비였어.

프레시안 : 13대 때 노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함께 한 인연도 있는데, 노 대통령 개인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박종태 : 속된 표현으로 준비된 대통령이 아니야. 김영삼, 김대중 전대통령처럼 수십 년간 준비했던 사람은 아니잖아. 당에서는 경선 후보로도 약자의 입장이었는데, 광주에서 뜻밖의 바람이 불어 경선에서 승리했잖아. 삼성 같은 재벌이 한나라당에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었잖아. 삼성이라는 집단은 엄청난 두뇌집단이야. 그런 명석한 두뇌를 갖고 세계 최고를 달리는 대기업이 이회창이 승리한다는 전제아래 수백억을 준거야. 진다고 보고 줬겠어? 노무현의 당선은 내다보기 어려웠던 거야. 그 때 노무현이 당선될 가능성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처럼 어려웠던 거야. 나는 노무현이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봐. 적당히 어물어물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 그런 것이 기본이 돼서 대통령 됐다고 보고 있어.

언론의 반(反)노무현 자세가 있어서 정치를 제대로 펼 수가 없었던 점도 있어. 사사건건 부정적인 평만 내리니까. 사람이 신이 아닌데 완벽하게 할 수 없지. 중요한 힘을 갖고 있는 언론들이 현미경을 들이대고 잡아내려 결심하면 살아남을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어. 조선일보 같은 데선 사활을 걸고 있어.

프레시안 : 1년 동안 어려운 조건은 다수당이 돼 상당 부분 해소가 됐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이제 자신이 결정하고 집행한 부분에 대해선 명명백백한 책임도 져야 하는데.
박종태 : 이제부터는 모든 것이 자기 책임아래 있어. '야당의 발목잡기'라는 핑계는 못하게 됐지. 그러나 이제 닥친 문제는 경제야. 신문이나 방송을 보고 있으면 대한민국 경제가 곧 망할 것처럼 보도하고 절망적인 면만 부각해. 다른 각도에서 보면 수출은 잘 되고 있잖아. 이것은 희망적이고 밝은 면이야. 언론이 어두운 면만 부각시켜서 심리적인 공황을 만들고 모두를 불안에 빠지게 하는 것은 상당한 악의가 있다고 봐. 경제는 심리적 요소가 큰데, 모두가 절망적으로 보면 누가 투자를 하고 누가 건설적인 일을 하겠어. 이게 노무현 대통령이 극복해야 할 가장 첫 과제야.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좋은 정책을 펴기가 어렵다고 봐.

프레시안 : 대선 때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세력이 1년 동안 많이 이탈했다고 한다. 이제 탄핵이 마무리 됐고, 여당의 든든한 지지까지 얻었으면 확실한 노무현 칼라를 보일 수 있는 조건은 어느정도 마련된 것 아닌가.
박종태 : 노무현 칼라를 보여주는 게 내 소망이야.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이번에 힘이 좀 생겼으니 기대해 봐야지. 내가 노 대통령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게 아니니 잘은 모르지만, 틀림없이 이라크 파병의 부당성을 갖고 있고 국보법은 마땅히 폐기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을 거야.

프레시안 : 당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 달라. 커진 덩치만큼 역할도 무거워졌는데.
박종태 : 아직은 두고 봐야지. 지금 평하기에는 시기상조지. 한 마디로 과감하게 해 줬으면 해. 지금 보면 다들 너무 계산이 빨라. 폐단이 생길 수 있는 말, 자기한테 불이익이 오는 말, 예민한 문제는 언급을 안 하려 하고 언급을 해도 적당히 하려고 해. 그게 아주 대한민국 정치의 병폐야. 용감하게 자기 소신 말해야 돼. 이게 자기가 살아있다는 뜻 아니냐. 매사 계산만 하고 어물어물하는 것은 아주 못마땅해. 나는 내 생명이 있는 한 내가 하고 싶은 소리 할거야.

프레시안 : 그런 면에선 지도자급에 있는 분들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 요즘은 지도급 인사들이 자신의 소신을 드러내지 않는 게 미덕이 됐다. 당내 논의과정의 민주화 측면에선 분명히 긍정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다.
박종태 : 그 전에 이런 농담이 있어. 모 정치인 별명이 '대사(大蛇)'야. 큰 뱀이라는 뜻인데, 그 사람은 언제나 중요한 문제에 대해 말할 때 똑 부러지게 말 안하고, 애매모호하게 끄트머리를 적당히 남기고 해.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나도 너 같이 딱 잘라 말할 수 있는데, 그렇게 안 한다. 넌 바보야. 나처럼 애매모호하게 말해야 상황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다" 이렇게 말하더라. "너처럼 딱 잘라 말하면 자기 행동 제약받지 않냐" 이러는 거야. 이러면 안돼. 감투를 썼다고 소신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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