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15일 "임기를 마치는 그 날까지 저의 허물을 결코 잊지 않고 마음의 부담으로 안고 가겠다"며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으로 사실상 재신임 문제를 마무리 짓겠다는 뜻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복권 후 첫 공식적 입장 발표인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통해 "취임할 때보다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이날 당초 15분 가량 예정됐던 연설을 5분 가량 추가시키면서 경제 개혁을 역설해 주목된다. 노 대통령은 "우리 경제는 혁신 주도형 경제로 발전해야 한다"며 "이제는 경제라는데 나도 동의하지만 이 말 한마디가 장기적 발전의 개혁의 목소리를 저지하는 쪽으로 작용해선 안된다"고 재계를 겨냥해 강도 높은 경고성 메시지를 던졌다.
***재신임 문제 간접적 정리, 대선자금ㆍ측근비리 사과**
노 대통령은 우선 탄핵 사태와 관련, 국민과 헌법재판소, 그리고 고건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 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역량에 대해 다시 한번 굳은 믿음을 갖게 됐다"면서 "더욱이 총선거까지 질서 정연하게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것을 보면서 훌륭하다는 수준을 넘어서 감동적이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두 달여동안 얼마나 걱정이 많았냐"며 "모든 것이 제 부족함에서 비롯된 일"이라며 간접적으로 사과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비록 탄핵에 이르는 사유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정치적.도의적 책임까지 모두 벗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특히 대선자금과 제 주변 사람들이 저지른 과오는 분명한 제 허물이다.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께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는 그날까지 저의 허물을 결코 잊지 않고 마음의 부담으로 안고 가겠다"며 "항상 긴장된 자세로 더 열심히 노력해 국민 여러분께 진 빚을 갚아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해, 재신임 문제를 마무리 지겠다는 뜻을 밝혔다.
***"10년, 20년 앞 내다보고 화합과 상생의 정치 하겠다"**
정치와 관련, 노 대통령은 대결과 갈등의 정치를 끝내고 화합과 상생의 정치를 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해집단의 목소리나 갈등에 매몰되는 일 없이 국정 운영의 안정적 관리자로서 중심을 잡아나가도록 하겠다"면서 "당장의 성과에 급급하기 보다는 10년, 20년 앞을 내다보면서 국정의 올바른 방향을 잡아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또 "정치권도 상생의 정치를 약속하고 여야가 만나 결의도 다졌다"면서 "저도 이 자리에서 약속 드리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상생의 정치가 공허한 약속이 되지 않기 위해선 끊임없이 대화하고 절충하고 합의하되 부득이한 경우에는 공정한 절차에 따라 경쟁하고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며 "이런 문화가 만들어져야 상생의 정치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제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서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자"고 덧붙였다.
사전에 준비된 원고에는 "야당의 의견을 최대한 듣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타협이 가능한 것은 타협하겠다. 요구와 설득이 필요한 때는 국회와 정당을 찾아가 설명하고 협력을 구하겠다"며 직접 실천할 것을 강조했지만 노 대통령은 연설에선 이 부분을 읽지 않았다.
***"경제는 혁신 주도형 경제로 발전해야"**
노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담화의 절반 가량을 경제 문제와 관련된 입장 발표에 할애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이려 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사전에 준비된 원고에 없었던 "경제는 혁신 주도형 경제로 발전해야 한다"는 입장을 추가하는 등, '경제 개혁'에 대한 원칙적 입장을 견지할 것임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여러 어려움이 중첩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는 아니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라며 "우려되는 징후를 너무 과장되게 인식하고 과잉 반응하게 되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현 경제 불황에 대한 입장을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사전 원고에 없던 "순수한 우려도 있지만 의도적인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는 않은 것 같다"며 "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주장 관철의 수단으로 위기를 확대해 주장하고 국민들 불안을 조장하는 것은 없어야 한다"며 재계에 경고성 멘트를 던졌다.
노 대통령은 "이제는 경제라는데 나도 동의하지만 이 말 한마디가 장기적 발전의 개혁의 목소리를 저지하는 쪽으로 작용해선 안된다. 당장의 경제 문제가 모든 걸 덮어버려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또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어렵다는 이유로 무너뜨려선 안된다. 잘못돼 있는 제도는 바로 잡아야 한다. 당장 발등의 불을 꺼야 한다는 이유로 원칙을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경제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원칙을 지켜내지 못하면 우리 경제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지금도 경제고 미래도 경제다. 경제는 원칙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조리 말끔히 정리,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 토대 마련해야**
노 대통령은 이어 "우리 경제는 혁신 주도형 경제로 발전해야 한다"며 "정치, 행정 모든 부조리를 말끔히 정리하고 보다 더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의 토대를 마련해야 경제가 다시 살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노 대통령은 사전에 준비된 원고대로 "당면한 민생 경제의 어려움을 결코 방치하지 않겠다"면서 "실업과 비정규직, 신용불량자 문제 등이 서민들의 삶을 회복할 수 없는 고통에 빠뜨리거나 성장 잠재력을 갉아 먹는 일이 없도록 하나하나 풀어가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몸이 허약해진 사람에게 주사 몇대 놓는다고 곧바로 원기가 회복되지 않듯이, 여론에 쫓기고 인기를 좇아서 허겁지겁 내놓는 대책들이 경제를 살리는 것은 아니다"면서 "무리한 정책을 쓰다 몇년 뒤 오늘보다 더 큰 고통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섣부른 경기 부양책을 쓰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신뢰 회복해 나가겠다. 도와달라"**
노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지난 1년간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 앞으로 해야할 일을 준비해온 기간이었다. 이제 또박또박 실천하는 일만 남았다"면서 "시장개혁, 정부혁신, 지방화 동북아 경제중심 과제, 기술혁신과 인쟁양성 정책을 내실있게 추진해 나가겠다"며 안정적 국정운영을 약속했다.
그러나 최대 현안인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기회가 있을 때 차근차근 말씀드리겠다"며 구체적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뛰겠다"면서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국민 여러분의 신뢰를 회복해 나가도록 하겠다"며 국민들의 협조를 요청했다.
이날 노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 발표는 수석.보좌진 및 일부 국무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청와대 본관 앞에서 진행됐다. 고건 총리와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제주도에서 열리는 아시아개발은행 총회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으며, 대국민 담화문 발표는 TV로 생중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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