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4일부터 전면전으로 치달았던 이라크 상황은 계속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미군은 시아파 종교지도자 모크타다 알-사드르 체포를 위해 시아파 성지 나자프와 카르발라에 대한 공격임박설이 나도는 한편, 팔루자에서도 저항세력 소탕을 위해 공격은 계속 멈추지 않고 있다.
심지어 지난 주 16일(금)에는 바그다드 서부 도로 주변의 민가에 저항세력 무자헤딘이 배포한 것으로 보이는 전단지에 “곧 바그다드 내에서도 미군에 대한 공격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에 주민들은 대피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 다음날 17일(토)에는 미군측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언급해 전쟁양상이 바그다드 시내로 확전될 것인지 긴장감이 증폭되고 있다. 이라크 주둔 미군 대변인 키미드 준장은 그 지역 일대를 언급하며 “무장세력으로 오인되어 사살될 위험이 있으니 접근하지 마라”고 경고했다.
***"미군, 수백명 피난민 감금한 채 물도 안 줘"**
팔루자는 여전히 미군에 의해 봉쇄되어 있다. 시아파 명절인 아르비엔야를 기점으로 일시적으로 있었던 미군의 공격중단과 휴전협상은 12일 밤부터 깨졌다. 미군은 한편으론 협상을 하면서도 탱크와 F-16 전투기를 동원해 바그다드-팔루자 도로간 팔루자 시내 진입을 시도, 이 교전과정에서 인명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팔루자 시내에서 긴급구호 작업을 하고 있는 아흐메드 노와프(25세, 교사)가 16일(금)에 전화로 전한 증언에 의하면, 미군의 팔루자의 봉쇄는 여전하고 연일 교전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를 포함한 팔루자 난민들의 한결같은 증언은 "팔루자 공격이 시작된 지난 4일부터 미군의 탱크가 한번도 이 체크포인트를 넘어 직접적으로 진입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저항세력 무자헤딘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이 진입로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아흐메드 노와프는 지난 8일 팔루자에 있던 자신의 가족들을 데리고 바그다드로 대피시키는 데까지 함께 동행했고, 이후 한 명의 친구와 함께 팔루자 긴급구호를 위해 다시 알-니에니아 사막을 거쳐 13일 팔루자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그는 팔루자 인근에서 차를 버리고, 걸어서 팔루자 시내까지 들어갔다고 전했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사막을 건너는 동안 사막에서 미군들이 몇 백명의 피난민들을 인근 펩시콜라 공장에 가두고 외부출입을 통제해, 13일 현재 사흘째 물과 음식의 공급이 중단된 상태였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그대로라면 피난민들의 대부분이 여자와 어린아이들인 점을 감안,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와는 13일 팔루자 내부로 들어가 16일에 전화통화가 가능했다. 그를 거리에 있는 썪어가는 사체를 수거해 묻는 작업을 하느라 완전 탈진 상태였다. 그리고 함께 팔루자에 들어가 구호 작업을 하던 친구는 미군의 저격수에 의해 사살됐다고 전했다.
***"미군, 팔루자 옥상에서 움직이는 모든 물체 사살"**
미군들은 탱크를 동원 팔루자에 직접적으로 진입이 불가능하자 헬기를 이용해 저격수를 투하, 팔루자내 많은 건물들의 옥상에는 미군의 저격수가 배치되어 있다. 지난 8일 미군은 팔루자 주민들에게 “8시간 내로 팔루자를 떠나지 않으면 무장세력 무자헤딘으로 간주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현재까지 저격수들은 팔루자 거리에서 움직이는 모든 물체들은 사살시키고 있다.
저격수에 의해 사살된 아흐메트 노와프의 친구는 13일 팔루자 자신의 집에 도착한 즉시 사살됐고, 그의 아버지 또한 정원에서 이마가 명중되어 죽어가는 아들을 구하러 집 밖으로 뛰어나가다가 같은 자리에서 사살됐다. 이 모든 상황을 노와프가 목격했고, 전화로 증언했다. 지금은 그와도 전화 연락이 두절된 상태이다.
현재 팔루자에서는 무장세력 무자헤딘은 “목숨을 걸고 고향과 가족들을 지키겠다”고 항전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다. 팔루자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들이다. 그들은 끝까지 고향을 지키겠다고 팔루자를 떠나지 않고 있으며, 이들은 거리에 썩어가는 시체들을 보며 분노를 넘어 죽음으로 대항하고 있다.
미군은 팔루자 내에서 저항세력 완전소탕을 천명하고 있어서 상황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아마 전쟁이 끝나는 시점은 미군이 더 이상 쏟아부을 수 있는 걸 다 쏟아붓고 난 다음, 그렇지 않다면 무장세력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있는 화력이 떨어졌을 때 전쟁은 끝날 것이다. 죽고 죽이는 싸움의 연속이다.
***"미군이 철수하는 날까지 죽음 불사한 저항 계속될 것"**
이것은 비단 대학살이 진행된 팔루자에만 국한되는 상황이 아니다. 팔루자를 포함한 수니 지역을 포함하여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까지 저항세력들은 “미군이 철수하는 그날까지 죽음을 불사한 저항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제 이 전쟁에서 이유는 없다. 양쪽은 모두 죽이고 죽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됐을가? 그리고 미군이 말하는 것처럼 과연 모크타다 알 사드르가 범죄자, 혹은 과격 시아 저항세력의 우두머리이기만 한 인물로서 체포되거나 사살되어 마땅한 인물인가? 그리고 왜 팔루자 사람들을 비롯하여 수니지역과 시아 지역에서 동시에 무장봉기가 이어지게 되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지난 4일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번 전쟁으로 먼저 가장 큰 인명피해가 났던 팔루자를 비롯한 수니 지역은 전쟁 이후, 미군의 저항세력 소탕작전이라는 명분으로 1년동안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었다. 또한 저항세력들에 의한 폭탄테러 또한 끊이지 않았다.
미군 입장에서 보면 수니삼각지대는 후세인 정권 하에 활동했던 핵심세력들이 잔존하고 있는 지역이고, 모든 무장봉기의 진앙지로 파악됐다. 이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작전은 1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고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지난 3월 31일에 있었던 미국인들 사체 훼손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은 그 당시 팔루자의 민심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미군정의 점령이 시작된 지 1여년동안 이라크는 극심한 실업난과 사회혼란이 계속됐고, 특히 팔루자에서는 가장들이 아이들에게 줄 우유 한병, 펩시콜라 한병 살 돈이 없다고 얘기되어질 정도로 실업문제가 심각했다.
또한 미군의 저항세력 소탕작전이 밤과 새벽을 가리지 않고, 민가에 난입하여 총기 소지 여부를 확인하고, 집안에 총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을 무조건 잡아들인다는 피해보고가 계속됐다. 이 과정이 1년 동안 계속됐고, 주민들의 반발과 저항감이 폭발한 게 지난 3월 31일 미 경호요원 4명의 죽음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미 경호요원들이 말이 민간인이었지, 그들은 미군에 협조하여 이라크에 대한 정보수집을 하던 임무이다 보니 결코 저항세력 소탕작전과 무관한 민간인이 아니었던 까닭에, 팔루자 주민들의 화가 그들에게 미친 것이다.
또 한편으로 미군정에 우호적이었던 시아파가 갑자기 무장봉기로 이어진 것도 이와 비슷한 시기이다. 그동안 미군정은 이라크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아파 종교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애를 써왔다. 또, 시아파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 또한 온건노선을 견지하며, 미군정에 우호적인 태도를 줄곧 유지해왔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태도를 보이던 거의 모든 시아파 신자들이 지금은 미군들에 등을 돌리며 총을 들고 있는가?
발단은 지난 3월 28일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 임시행정처(CPA)가 시아파 종교소식지인 알-하우자에 60일간 정간조치를 내렸다. 알-하우자는 매주 목요일 8-12쪽씩, 1만에서 1만 2천부가 발행되는 유가지였다. 이 주간지는 발행되는 그날 즉시 매진될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미군정이 소식에 정간조치를 내린 이유는 젊은 시아파 지도자였던 모크타다 알-사드르의 금요 설교를 매번 게재하는 등 미군정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알-사드르는 3월 8일 과도헌법이 통과된 후, 이 과도헌법에 대한 비판 및 미군정의 점령정책을 비난의 강도를 높여와 미군정으로 봐서는 가장 기피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미군정은 알-하우자에 대한 정간조치에 그치지 않고, 곧이어 알-사드르에 대한 체포영장까지 발부하면서 시아파와의 관계를 급속도로 악화시켰다. 체포영장에 대한 명분은 알-사드르가 지난해 4월 발생했던 알-시스타니 측인 압둘 마지드 알-호에이 피살사건과 같은 해 8월에 일어났던 알-하킴 폭사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었다.
이에 대해 시아파 신자들은 바그다드를 포함해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와 카르빌라에서 알-하우자 정간조치와 알-사드르 체포영장에 반대하는 농성을 연일 했다.
그러던 4월 4일, 나자프 모스크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던 시위대를 향해 연합군이 발포해 21명 사망, 200여명의 사람이 다쳤다. 이날을 기점으로 농성과 시위를 벌이던 시위양상이 무장항쟁으로 바뀌었으며, 미군의 공세가 강화되자 무장봉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지난 4일부터 미군이 수니지역과 시아 성지에 대규모 공격을 감행한 이후로부터 현재까지는 시아-수니 연합전선을 구축해 미군에 대항하고 있다.
***16일 바그다서 5만~6만명 모여 수니-시아 연합예배**
아리비엔야 후 첫 금요일을 맞았던 지난 16일(금)에는 바그다드에서는 수니-연합 세력을 과시하려는 듯 수니-시아 연합예배로 치뤄졌다. 바그다드 내 시아파 밀집지역인 알-사드르시티엔 이날 최소한 5,6만 명의 시민들이 모스크로 운집했다.
“시아파 명절이지만 오늘 예배는 수니와 시아가 함께 치루는 것이다”라며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몸수색과 총기소지 여부를 확인하던 민병대 마흐메트(36세)가 말했다. 그의 말은 지금의 이라크 사태가 단지 시아파 무크타다 알-사드르 추종세력의 일부와 수니지역의 일부 무장세력이 봉기한 것이 아니라 미군은 전 이라크 국민을 상대로 하는 전쟁이라는 설명이다.
이날도 예배 곳곳에서 모크타다 알-사드르의 사진이 내걸리고, 그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지지가 여전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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