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선거악습' 재연한 13일간의 선거운동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선거악습' 재연한 13일간의 선거운동

[각당 선거운동 결산] 지역주의-감성정치속 후유증 예고

17대 총선거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2일부터 시작한 '열전 13일'은 마감됐으나, 이번 총선에서도 우리의 고질적 선거풍토의 병폐는 극복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대표적인 비판은 지역주의의 재연이다. 이벤트-감성 정치라는 새로운 악습도 등장했다. 중앙당의 감성작전-고공전에 휘말려 정책선거는 실종됐다. 공명선거 약속으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법 위반 사례는 예년 수치의 2배에 달해 무더기 재선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벌써부터 선거 후유증을 걱정하는 말들이 나온다.

***지역주의 재연**

지난 12일 한겨레신문은 자체여론조사 결과 "총선을 앞두고 국민 10명 가운데 4명 정도가 각 정당이나 후보들이 지역정서에 호소하는 내용을 보고 들은 경험이 있다"고 보도했다. '지역정서에 호소하면 그쪽으로 마음이 가느냐'는 물음에도 25.8%가 '그렇다'고 답했다.

지역주의는 이번 총선에서도 여지없이 부활, 특정정당의 특정지역 '싹쓸이'가 예견되고 있다. 여론조사와 각당의 판세분석을 종합하면 "남은 건 15일 방송사 개표방송에서 '동청서황(東靑西黃)'으로 양분된 전국 지도를 지켜보는 일 뿐이다"는 말이 농담만은 아닐 듯 보인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거리유세에서 "여러분은 지역주의 때문에 여기 모였느냐"고 반문한 뒤 "불안한 정권과 여당에 대한 심판", "안정을 희구하는 세력의 열망" 때문이라고 답하곤 한다. 그렇더라도 지역주의 부활의 진원이자 최대 수혜자가 한나라당이라는 점에 대해 한나라당 빼고는 이견이 없다. 탄핵 역풍을 성공적으로 잠재우고 원내 1당 수성까지 바라보게 된 추동력이 다름아닌 지역주의이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4월1일 취임 후 첫 대구 방문에서 "한나라당이 대구의 사랑에 보답하지 못해 죄송하다. 여기서 끝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선거전의 일성을 터뜨렸다. 전날 TV 연설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고 온 터였다. '우리가 남이가'를 대놓고 외치던 과거와는 분명 구분된다. 하지만 이후 박 대표의 대구경북 방문에는 '대한민국의 딸, 대구의 딸'이라는 팻말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표가 오셨다"는 선거운동원들의 여론몰이가 등장했다.

은근한 감성자극 방식은 '박정희 향수'가 짙게 밴 대구경북에서 시작해 부산경남으로 '박근혜 효과'를 순식간에 전염시켰다. 선거전 마지막 날인 14일, 여론조사기관과 정치권에선 부산경남권 몇석을 제외한 한나라당의 '영남 싹쓸이'를 점치기에 이르렀다.

한나라당만큼 수혜를 보진 못할 듯 하지만, 지역주의에 편승하기는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조순형 대표의 대구 출마선언 때만해도 기세등등하게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던 목소리는 선거전 내내 들어볼 수 없었다.

추미애 선대위원장은 "몸 던진 심청이 심정이었다"는 광주에서의 삼보일배를 비롯해 선거전 내내 호남에 살다시피 했다. 광주에서 그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사퇴직후 "열린우리당이 호남민주세력을 버리기 시작했다. 영남표 얻는 데 호남을 장애물로 보고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들러리가 돼선 안된다"고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에 호소했다.

영남의 '박정희 향수'에 필적할만한 호남의 'DJ 향수' 끌어내기에도 열심이었다. 추 위원장은 "DJ가 삼보일배 후 내 건강을 걱정했다. DJ는 무엇보다 민주당이 민주세력을 지켜낼 것인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리기까지 했다.

추 위원장의 호남 공들이기가 만족할만한 효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자체적으론 호남 20석 이상을 장담하지만, 여론조사전문가들은 쓴웃음만 짓는다. 하지만 완전몰살 단계에서 벗어난 것만은 사실이다.

지역기반이 취약한 열린우리당은 애당초 지역주의에 기댈 여지가 많지않았다. 전국정당화라는 지상명제도 지역정서에 기댄 호소를 내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냈다. 적어도 중앙당에선 그랬다.

그러나 야당과 굳이 구분하자면 '국지적 지역주의'가 영남에서 나타났다. 영남권에선 노 대통령을 배출한 지역임을 강조하며 "힘있는 여당을 만들어야 지역발전 예산을 많이 따올 수 있다"고 파고들었다.

신기남 선대본부장이 선거전 초반 "호남에서 우리당에 표쏠림 현상이 나타날 경우 반대로 영남에서 역풍이 불 수 있다"고 말한 대목도 지역주의에 대한 기계적 접근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민주당이 호남에서 일정부분 선전을 해줘야 우리당의 영남권 공략이 수월해진다는 분석이었다. 선거전략 상의 발언이기는 했으나, 이 같은 셈법은 '지역주의 타파'라는 슬로건과는 달리 또 다른 지역감정에 자극하고 있다는 비판의 근거가 됐다.

한나라당의 영남 지역주의와 이에 대한 우리당의 기계적 접근의 오류가 복합돼 우리당은 이번 선거에서도 최소한의 영남권 교두보 마련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대결 양상과 더불어 정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을 계기로 등장한 세대간 대결양상도 이번 선거에서 극복되지 못했다. 그 결과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선거전 마지막날까지 세대별 투표율에 명운을 걸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찬탄이냐 반탄이냐' '친노냐 반노냐' '민주냐 반민주냐'는 구도가 총선 성격을 대부분 규정했다. 선거전 와중에 등장한 이라크 파병 같은 국가적 현안에 대한 관심사는 정치권이나 언론, 다수 시민사회단체들의 관심밖 문제로 밀려났다.

***감성정치 속에 정책선거 실종**

이번 선거가 낳은 또 하나의 신종 악습은 감성과 이벤트 정치다. 박근혜 대표, 추미애 위원장의 '눈물'로 시작해 108배, 삼보일배, 삭발, 단식 등을 거쳐 정동영 위원장의 '선대위원장-비례대표 사퇴'가 선거전 내내 등장한 이벤트의 대표적 사례다. "진정성을 믿어달라"는 각 당의 호소에도 유권자들은 "쇼"라는 냉랭한 반응으로 등을 돌렸다. 그럼에도 이 같은 이벤트는 '탄핵심판론', '거여견제론', '거야부활론', '정통야당 수호론' 등으로 수렴돼 총선 주요 이슈화 됐고, '탄풍' '박풍' '노풍'이 쓸고갈 때마다 지지율은 수직으로 요동쳤다.

당연히 정책선거는 이번에도 요란한 구호를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상황에 따른 졸속 정책이 대거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열린우리당은 정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 직후 경로연금대상 확대, 치매,중풍관련 요양시설 확충, 노인 철도요금 30%할인, 노인 일자리 30만개 창출 등을 골자로 한 노인복지정책을 내놓았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군사지역이 밀집한 강원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사병월급을 3만5천원에서 2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유독 군인관련 공약만 떼어내 강원도에서 발표한 이유가 무어냐는 눈총이 쏟아졌다. 민주당이 내놓은 현역병 복무기간을 6개월 단축한다는 공약도 비슷한 맥락에서 비판을 받았다.

'정책 베끼기'도 재연됐다. 일례로 열린우리당이 공공주택 분양원가 공개검토 방침을 내비치자 한나라당은 공공아파트 분양가 공개, 민주당은 민간-공공아파트 분양가 공개를 앞다퉈 내놓았다. 열린우리당에 대해선 상당부분 정부가 확정, 발표한 내용을 취합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각 당의 총선 공약을 비교분석한 경실련에 따르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공약 중 59%가 일치했고,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52%가 같았다. 차별화에 실패했다는 게 경실련이 내린 결론이다.

***공허한 '공명선거' 약속**

공식선거전 시작일인 지난 2일,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주최로 열린 '17대 총선 공명선거 서약식'에는 각 당 선대위 주요 인사들이 참여해 깨끗한 선거를 다짐했다. 일찌감치 각 당은 자체적으로도 '클린선거대책위원회' '깨끗한선거대책위원회' 등을 구성해 내부적인 단속의지도 밝혔었다.

"운신할 폭이 없다"는 후보자들의 불평이 나오기도 했지만 개정된 선거법도 깨끗한 선거를 위한 기초는 마련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금품과 세과시의 상징이던 정당 및 합동연설회 폐지, 후보자 선거비용의 일일 공개, 돈받은 유권자에 대한 50배 과태료 도입 등이 이를 뒷받침했다.

이렇게 시작한 선거운동의 성적표는 그럼에도 초라하다. 중앙선관위 발표에 따르면 13일까지 선거법 위반 적발 건수는 총 5천7백77건으로 지난 16대 총선 당시의 2배에 가까웠다. 16대 총선 당시 적발 건수는 3천17건이었다.

이중 사법처리 대상인 고발과 수사의뢰건은 6백79건에 육박한다는 것은 심각한 선거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후보자나 후보자의 배우자, 선거사무장 등 현행 선거법상 연좌제가 적용돼 당선되더라도 당선무효 가능성이 있는 후보는 60여명에 달한다. 여기에 선거 뒤 실시될 선거비용 회계보고 실사에서 법정선거비용 초과로 밝혀질 사례와 경찰과 검찰 자체 수사에서 입건된 사례까지 감안할 경우 당선무효 위험을 안고 있는 후보자는 훨씬 늘어난다. 선거전이 한창임에도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재보선이 허투른 농담이 아닌 이유다.

고질병적인 금품향응이나 비방-흑색선전은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으나, 선거전이 막판으로 치달으면서 비방흑색선전, 금품살포, 심지어 폭력 등과 같은 사례까지 무더기로 적발되고 있다. 선거전 막바지인 금주 들어 매일 3백건 이상의 선거법 위반 행위가 적발되는 등 총 위반건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중앙당까지 가세한 난타전은 선거운동 마지막날인 14일에도 아랑곳 없이 계속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서울 모 지역구의 아파트 단지에 한나라당을 매도하는 불법인쇄물이 뿌려졌고, 또다른 곳에는 노사모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시위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은 "부산 모 지역 한나라당 지지자들 60여명이 지난 13일 우리당 후보 사무소를 강제로 점거하고 난동을 벌였고, 경남의 모 지역에선 한나라당 선거운동원이 거액의 현금을 유권자들에게 살포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도 "전남의 모 지역 열린우리당 후보의 선거공보에 실린 사진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찍은 것처럼 위장한 합성사진이다"라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는 "4.15총선이 끝나도 선거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나돈다. 사법부의 강력한 선거법 척결의지가 현실로 관철될 경우 최소한 30~40건의 무더기 재보선이 빠르면 연말이나 늦어도 내년초에 치러질 게 분명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제1당 자리가 뒤바뀔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선거가 끝나더라도 정당간 갈등과 대립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정치의 불안정한 현주소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