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부터 시작된 이라크에서 대명절인 아르비엔야를 기점으로 전면전으로 치닫던 전쟁은 팔루자를 비롯하여 일시적으로 휴전에 들어갔다. 그러나 한편으론, 12일 이라크 주둔 존 애비제이드 미군 중부사령관은 미 국방부에 1만명 추가파병을 요청했고, 미군은 알 사드르 시티를 비롯한 이라크 저항세력은 완전소탕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어, 언제 또다시 미군의 2차 공격이 있을지 예상할 수 없는 상태이다.
***환자 후송하는 엠블런스도 미군에 의해 습격**
이런 일시적인 휴전상태를 깨고, 미군은 13일 팔루자로 진격을 시도하기도 했다. 또 12일까지도 협상이 진행되는 중에도 교전은 곳곳에서 발생했다. 미군은 일시적인 휴전협상을 통해 추가파병을 결정하고 전세를 가다듬어 테러조직을 완전히 소탕하려는 의지를 여전히 가지고 있고, 이라크 저항세력들 또한 거듭 저항의지를 밝히고 있어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라크 국민들의 반미정서가 어느 때보다 강해 언제 어떻게 화약고가 폭발할지 모르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바그다드 도심에서 북쪽으로 30여분 떨어져있는 알 사드르의 시티의 경우 9일 미군이 철수했다. 알 사드르의 시티의 경우, 그동안의 전투로 총 46명의 이라크인이 죽고, 1백50여명이 다쳤다고, 알 사드르 병원측이 밝혔다. 현재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리아드 다이엘(36세)씨는 자동차로 이동하던 중 미군의 무차별 사격에 의해 몸에 세 곳에 총상을 입었다.
병원측은 의약품과 기자재가 부족한 실정이라서 병원에서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많은 환자들이 집으로 되돌려 보내졌고, 현재 자리를 옮길 수 없는 위독한 환자들이 병원에 남아있다고 전했다. 또, 병원측은 이 병원의 환자를 후송하는 엠블런스조차 미군에 의해 습격받았다고 전했다. 운전을 하던 기사의 경우, 다친 임산부를 후송 중 미군 저격병의 조준 사격으로 총알이 몸을 관통해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다. 미군이 팔루자에서 병원을 폭격하고, 병원차를 공격하기 위해 저격병이 병원차를 따라다닌다는 증언들이 알 사드르시티의 경우에도 마찬지였다.
미군이 철수한 다음날인 10일 알 사드르 시티를 방문했을 때, 미군의 테러조직 소탕이라는 명분은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도시 전체를 과녘으로 무차별 사격과 폭격을 가했음을 입증하는 증거가 병원측의 증언과 더불어 또 있었다.
***팔루자 민간인, 6백명 이상 사망하고 1천2백명 이상 부상**
자신의 이층집에 사는 일가족이 모조리 몰살당한 걸 목격한 한 주민은 "미군이 왜 이 가족들을 죽였는지 우리는 모른다. 이 사람들과 나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이다. 그가 저항세력이었는지 우리는 몰랐다. 그는 그저 우리와 똑같았다."
8일 새벽에 갑자기 미군이 박격포로 공격해 이층집에 살던 부부가 세 아이가 그 자리에서 죽었다. 전가족이 몰살당한 이 가정의 가장이 민병대 메흐디군의 일원이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미군은 아이들 세 명을 포함한 전가족을 몰살시켰다.
팔루자 또한 현재 미군의 공격이 멈춘 상태이다. 사상자는 애초 외신보도와는 달리 점점 그 숫자가 늘어나 6백여명의 이상의 팔루자 주민이 죽고, 1천2백여명 이상이 다쳤다. 10일부터 휴전에 들어가진 했지만, 12일까지 교전으로 계속 미군과 이라크 저항세력의 인명피해가 계속 나고 있다.
특히 미군이 10일 공격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직후, 또다시 팔루자에 대한 공습을 감행해, 또다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미군이 협상하겠다고 발표하기 바로 전 새벽에는 바그다드 서부지역에 위치한 이맘 아담 사원에 미군 20여명이 난입해 팔루자로 보내는 구호물자들을 훼손하고 사원 안에 들어가 천정에 총을 쏘는 등 기물을 파손시켰다. 이 사원은 그동안 구호물품을 보내던 중간 창고로 쓰였던 곳이다.
"미군들이 갑자기 들어와서 의약품에 불을 지르고, 그동안 분류해놓았던 식품들이 모두 뒤집고, 섞어놓았다. 긴급하게 팔루자로 보내는 데 얼마나 어려움이 많은지 모른다"며 새벽에 사원을 지키고 있었던 한 성직자가 밝혔다. 구호물품마저 보내는 것을 교활하게 방해하는 미군의 이런 행태로 인해 팔루자로 긴급히 보내던 구호물자들은 일시적으로 수송이 중단됐다.
***바그다드 시내조차 외국인들 신변 위협 느껴**
팔루자는 현재 외부 사람들이 전혀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팔루자-바그다드 도로를 통해 팔루자에 접근할 수 없을뿐 아니라, 팔루자 내부로 들어가더라도 민병대 무자헤딘들의 검문을 통과할 수 없다.
특히 외국인의 경우 팔루자에 접근했을 때, 외국인 본인 자신만은 물론 함께 동행한 안내인과 기사까지 사살당할 것이다. 이것은 12일, 미군이 테러조직을 완전 소탕 계획 발표와 함께 알 사드르 시티를 포함해서 팔루자의 부족장들의 회의 결과에 의해서 이런 강경한 방침이 발표됐다. 그래서 현재 어떤 외국인도, 외국 언론인도 팔루자에 접근하지 못하고, 바그다드에 완전 발이 묶인 상태이다. 저항세력들의 항전의지와 분노 또한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동안 바그다드 시내에서는 외국인들이 다니는 데 불편함이 없었는데, 최근부터는 아시아인들 또한 심각한 신변위협을 느끼고 있다. 특히, 자위대를 파견한 일본인으로 오인받는 경우에는 더욱이 그렇다. 가끔 길을 지나가면, 히잡을 착용하고 있는데도 아이들이 따라오면서 "일본인이다"라고 외치면 화들짝 놀라곤 한다. 현재 바그다드에서조차 외신 기자들을 포함하여 외국인들은 극도로 신변위협을 느끼며, 그와 동행하는 이라크 현지인들 또한 마찬가지로 두려움에 떨고 있다.
팔루자에서 이틀동안의 사선을 넘어 대피한 피난민들을 취재하러 가는 길도 순탄치 않았다. 복장은 온몸을 검은 천으로 덮는 히잡을 입고, 머리카락도 검은천으로 가리고 이곳 사람들의 차림새로 다니는데도, 통역원과 기사가 느끼는 불안감을 통해 지금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과 혐오감이 어느 정도인지 눈치챌 수 있다.
현재 함께 다니는 현지인들은 한국인과 함께 다닌다는 사실이 두려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인도네시아 무슬림 여성"이라고 소개하고 다니고 있다. 특히 아시아인 중에서 일본인과 한국인의 경우 국적을 속이고 다니지 않으면, 차안에 있는 것도 위험한 상황이다. 외국인이 테러의 표적이 있다.
***바그다드로 대피한 팔루자인의 증언 : "하늘에서 폭탄과 미사일이 쏟아져 내렸다"**
13일 오후, 팔루자 사람들이 바그다드 내에 대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들을 찾으러 전날 머물렀다고 알려져있는 모스크들을 수소문해서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안전을 염려한 모스크의 관계자들은 이미 이들을 민가로 대피시킨 상태였고, 어디로 갔는지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네다섯 군데의 모스크를 거쳤는데도 팔루자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기거하는 숙소를 찾을 수 없었다. 바그다드 시내를 몇 시간에 걸려 돌다가, 겨우 한 소식통으로부터 그들이 있는 장소를 알아냈다. 한 집에 70명의 팔루자 사람들이 은신하고 있는 장소에서, 그들을 만나 5일동안 팔루자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방이 두 개인 이 집에 현재 70명, 네 가족이 대피하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현재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의 증언 중 일부만을 대략적으로 싣는다.
"미군은 4일부터 팔루자를 에워싸고 모든 길을 막았다. 그리고 하늘에서 폭탄과 미사일이 쏟아져 내렸다. 나는 무서워서 집안에만 있었다. 나는 지금 임신 중이다. 집은 다 파괴됐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다쳤다. 나만 멀쩡하다. 나는 살아야 했다. 그래서 팔루자를 도망쳐 나왔다."(여성, 무나 하렘, 26세)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죽어있는 걸 봤는지 기억할 수 없다. 내가 죽은 사람을 본 것만 해도 수십명이 넘은 것 같다. 사막을 지나서 이틀에 걸쳐 바그다드에 도착했다."(남성, 무하메드 자셈, 35세)
"도망쳐 나오는 과정에서 두 아이를 잃었다. 미군은 우리에게 대피하라고 해놓고 사막마저 봉쇄했다. 사막에 꼬박 하루 갇혀 있었다. 그러다가 사막에서 물을 마시지 못해 데리고 나온 우리 아이 두 명이 죽었다. 한 아이가 여섯 살이었고, 한 아이가 두 살이다. 우리뿐 아니라 도망쳐 나오다가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한 가족이 차안에 타고 있었는데, 미군이 차를 세워 총으로 가족을 몰살시키는 것을 보았다. 네 명이었다. 이건 학살이다. 모스크도 파괴됐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나는 과도통치위(Governing council)를 반대한다. 그들은 우리를 죽이는 미군을 반대하지 않는다." (여성, 하미드 제삼 54세)
"나는 언니 가족들과 함께 팔루자를 떠났다. 나는 교사이다. 미군이 5일 동안 매일 로켓트로 공격했다. 모든 게 다 파괴됐다."(여성, 지난 질르스, 24세)
"미군은 팔루자를 월요일(5일) 아침부터 공격했다. 아침이었다. 일요일 밤부터 우리는 포위됐다. 비행기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너무 무서웠다. 나는 신에게 기도했다. 나와 친한 친구 가족이 집안에 있다가 죽었다. 나는 점점 더 무서워져서 집안에 있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다쳐도 치료할 수가 없었다. 죽은 사람들이 집 안에 그대로 있었다. 남편과 삼촌이 죽었다. (잠시 흐느낌) 4일 동안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남편과 삼촌을 그대로 집 앞에 두고 팔루자를 떠났다. 그러나 우리가 사막에 도착했을 때, 사막조차도 포위됐다. 미군들은 우리를 바그다드로 가지 못하게 막았다. 그래서 집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던 중 자우바라는 지역 부족이 우리를 보호해주었다. 우리는 그들의 도움으로 다음날 바그다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온 가족이 온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딸을 찾을 수 없어 그냥 팔루자에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는 살아야만 했다." (여성, 지삼 알리, 20세)
미군은 공격의 막바지 무렵인 8일부터 주민들에게 팔루자를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만약 8시간 내에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사람의 경우는 앞으로 모두 무장세력으로 간주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들 증언에 의하면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모두 무장세력이라는 건 말이 안된다. 아이가 다쳐서 떠나지 못하는 사람, 가족을 땅에 묻지도 못해서 떠나지 못하는 사람, 자신이 이미 몸이 불편한 사람들. 8시간 안에 가족과 고향을 두고 떠나지 못하는 그들이 어떻게 다 무장세력이겠는가?
그리고 미군이 유일하게 주민들에게 대피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곳은 알 니에니야(Al-Nieniyah)라는 사막이었다. 그곳으로 주민들을 유도하고, 그리고 그 사막마저 봉쇄해, 주민들이 사막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물이 없어서, 두 아이를 잃었다는 어머니의 증언은 우리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제 팔루자지역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보면 미군은 5일 동안 팔루자에서 민간인에 대해 어떤 인도주의적인 접근이나 고려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고서도 처음에는 한 명의 민간인의 인명 피해가 없다고 발표했다. 이제 살아남은 자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더 많은 증언으로 팔루자 대학살의 실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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