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발발 후 1년 이라크. 그곳의 상황은 한국군의 대규모 추가파병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먼 곳의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오는 20일 미국의 이라크 침공 1주기를 앞두고 11일의 스페인 열차테러, 17일의 바그다드 자잘레바논 호텔 폭탄테러 등 초대형 테러가 잇따르고, 최근에는 미국을 돕고 있는 일본,호주 등 이른바 '미국의 하인'들에 대한 대대적 보복공세가 예고되고 있어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처럼 위험이 고조되자 노무현 정부는 파병 예정지인 이라크 북부의 키르쿠크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이라크 중남부 나자프 지역 등 다른 지역으로 파병지역을 변경하는 방안을 미측과 협의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 전역의 '전쟁지대화'한 현 시점에서 과연 이같은 조처로서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세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에 프레시안은 한국군 추가 파병을 앞두고 지난 14일 이라크 현지에 입국해 활동중인 윤정은(평화운동가. 비폭력평화물결 활동가)씨가 보내온 현지의 생생한 소식을 연재한다. 현재 바그다드에 머무르고 있는 윤정은씨는 한국군이 파병될 경우 곧 파병지로 이동해 한국군이 철수할 때까지 머물며 현지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해줄 계획이다. 편집자
***"누가 테러 저질렀냐고? 알카에다? 미국?"**
"저녁을 먹은 후 가족들과 함께 있는데, 지진이 일어난 줄 알았다."
이라크 현지 시각 18일(목) 오전 9시, 바그다드 시내 아라사트 거리에서 만나 라드(46세)씨의 말이다.
자잘레바논 호텔 폭탄테러 후 딱 12시간 지난 시각이다.
그러나 어젯밤 바그다드를 뒤흔든 충격에 비해 오늘 아침 바그다드의 풍경은 여느 때와 다름없어 보인다.
가게 문들을 열고 개점을 하는 상인들의 표정에서나, 길거리에 석유통을 내다놓고 석유를 팔고 있는 사람들의 거리를 가로 지르며 달리는 모습에서나, 거리를 바삐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움직임에서도 전날의 공포와 긴장감은 하루 사이에 사라진듯 보인다.
심지어 "누가 테러를 한 것 같냐"는 질문에 라드씨는 무표정하게 "알카에다"라고 답하고, 그 옆에 있던 한 상인은 "미국"이라고 답하고는 웃어버린다.
일상화된 전쟁과 테러가 낳은 '무감각'으로, 외지인으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조금만 상황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17일 자잘레바논 호텔 테러는 바그다드 시내 한복판에서 일어났다는 점과 인명 피해 규모가 커 충격을 더하지만, 최근 폭탄테러 사건들은 매일같이 다반사로 잇따르고 있었다.
앞서 이날 이탈리아 대사관 앞에서는 5천kg에 달하는 폭발물이 발견되어 경찰에 의해 제거됐다. 또 전날은 바그다드 서쪽 구트 지역의 초등학교를 비롯하여 인근지역에서 연쇄적으로 5건의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특히 17일 저녁 8시에 일어나 수십명이 죽은 자잘레바논 호텔 테러는 시기면에서나 규모면에서 이라크가 현재 겪고 있는 사회적 혼란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이번 폭탄테러는 이라크 전쟁 개전 1주년을 코앞에 앞둔 시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테러가 일어난 장소는 센트럴 비즈니스 거리이다. 이곳은 아랍인 회사들이 대거 모여있는 곳이고, 바그다드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다.
***"전쟁후 이라크인 모두가 갑자기 가난해졌다"**
이번 테러 사건을 이라크인들은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궁금했다.
거리에서 만난 하디르(32세)씨는 "분명히 대다수 이라크인들이 바라는 것과는 달리 자신들의 이해관계만을 생각하는 세력들의 짓"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지금의 혼란에 대해 "이제까지 이라크는 하나였다. 우리는 수니파, 시아파를 구분하지 않았다. 쿠르드도, 아랍인도 구분하지 않았다"며 이라크인들의 기대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대답은 하디르뿐 아니라 다수 이라크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답변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게 간단치 않았다. 전쟁 1년후 현재 이라크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겪고 있다. 그동안 전쟁 전부터 내재되어 있던 갈등과 분쟁들의 요소들이 서서히 분출되기 시작했다.
대다수 이라크인들이 전쟁 전의 통합된 시절에 대해 얘기하지만 한 사안을 두고 각 종교 지도자들은 각기 다른 의견과 성명을 내놓고 있으며, 최근에는 쿠르드족의 경우 자신의 자치를 인정받았다.
또한 현재 이라크는 무엇보다 치안문제와 실업 문제를 심각하게 겪고 있다.
현재 무직 상태인 하디르씨는 "전쟁이 끝나자 집값이 두배로 뛰고, 직장을 잃고, 이라크인 모두가 갑자기 가난해졌다"며 미국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미국이 이라크에 들어와서 좋아진 게 뭐냐는 불만이었다.
지난 저녁 조용하던 바그다드를 티그리스 강 건너편까지 뒤흔든 폭탄테러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지금에, 이미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벗어난 것 같다. 그만큼 테러는 이제 이라크인들의 일상사가 돼버린 것이다.
오늘 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분주함과 고단함으로 바그다드의 오후가 가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