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 "수사 목적 달성에 필요한 수준에서 그치고 기업인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로 바로 진행되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해, 검찰의 수용 여부가 주목된다.
노 대통령은 14일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과 취임 1주년 특별대담을 가진 자리에서 "정치권 문제를 정리하고 넘어가는 데도 우리 모두가 벅차고 힘든데 기업인들에게까지 과거를 다 묻는 방식으로 가는 것은 국민에게도 부담스럽고 경제에도 부담이 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기업인들에게 또다른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노 대통령은 이어 "기업인들에게 또다른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며 "기업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정부 정책이 준비됙 실천돼 나가고 있기 때문에 그 점에선 맡겨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재임 중 적절한 시기에 만델라식의 대사면을 단행할 용의가 없느냐'는 질문에 "나도 모든 과거에 대해 완벽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부패가 없는 새로운 미래를 국민이 분명히 믿을 수 있도록 약속하고 이를 통해 국민의 동의를 얻고 그 다음에 과거를 사면하는 것은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고 가능성을 시사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문제는 나도 피고석에 있다는 점이며 그 때문에 그 문제를 현재 가타부타 하기엔 내 처지가 옹색하다"고 덧붙였다.
***"친노동자 정권이라는 규정 동의 못해"**
노 대통령은 "나는 대통령이 되고 난 뒤 '친노(親勞)정권'이라는 한마디로 재단되어 버렸다"며 "나를 친노로 규정하는 데 동의할 수도 없지만, 설혹 친노라 하더라도 그간 과연 내가 기업에 대해 배타적인 정책을 편 적이 있냐"고 반문했다.
노 대통령은 "기업인 모임이 있을 때마다 찾아가 시장경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끊임없이 얘기했다. 노동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많은 정책을 제시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아직 의심을 풀지 않고 있다. 그런 의심은 정책 한두개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큰 구조가 바뀌면 그런 문제가 풀릴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4월 총선에서 지역 구도가 깨지고 내 임기 동안 경제가 좀 편안해지면 나의 정책을 알게 될 것"이라며 "(기업이) 정치자금을 그렇게 차별적으로 줬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전혀 (기업을) 차별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그것을 포용적 정책이라고 할지 모르겠다"고 강조했다.
***"실용적이고 시장친화적 정책 우선할 것"**
노 대통령은 또 인기영합주의의 위험성을 언급하며 노태우 정권 시절 만들어진 토지초과이득세법 등과 같이 "선진국에 없는 법은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좋은 말"이라고 동의했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 안정대책 중 아파트 원가 공개정책과 관련, "지난번 보고받으면서 나는 '시장에서 상품 원가를 공개하라는 것이 시장 원리에 맞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했다. 가격이 수요공급을 결정하기도 하지만 수요공급이 궁극적으로 가격을 결정하는 것 아닌가. 그 질서를 존중하면서 정책을 펴라고 지시해 토론 과제로 넘겨 놨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나는 원칙주의자고 동시에 실용주의자다. 실용적일 뿐 아니라 정부의 정책 수단도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정책과 시장친화적 정책, 규제도 시장친화적 규제를 항상 우선해 쓰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또 "나는 5년 뒤, 10년 뒤에도 책임질 수 있는 정책이 아니면 안 되며 시스템을 흔드는 정책도 안 된다고 늘 말한다. 경기부양책도, 신용불량자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언론에 감정적 대응은 하지 않겠다"**
언론과의 관계에 대해 노 대통령은 "일반적인 견해,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 등이 뒤엉켜 때론 감정적 발언으로 표현되고 불안한 이미지를 국민에게 남긴 게 사실"이라며 "취임 1년이 지나면서 대통령으로서 감정적 대응은 절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개인과 인간의 권리라고 해도 대통령은 그 권리를 다 행사하며 살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게 됐다"며 "소송같은 개인적 대응은 명확하게 악의적인 공격에 한해 차분하게 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언론 정책에 대해 "여러가지 산적한 문제도 있는데 중요한 사회적 기능과 세력을 갖고 있는 언론에 대해 본격적으로 정책을 펼치는 것은 나에게 버거운 일이고 적절하지도 않다"며 "정부정책이 왜곡되지 않고 정확하게 국민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대응하는 것과 통로를 확보하는 수준에서 최소한 정책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의 나라 군대 방패막이로 세우겠다는 생각 버려야"**
노 대통령은 주한미군 주둔과 관련,"장기적으로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존재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 관계가 안정될수록 주한미군의 대북 억지력 역할은 약화되겠지만 동북아의 세력 균형을 유지해 나가는 포괄적 전쟁 억지력이 필요하다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 용산기지의 주한미군 이전에 대해 노 대통령은 "미군사령부가 평택에 있건 서울에 있건 유사시에 작전 수행을 위해 주둔하게 되는 시설은 서울 근교에 있다"며 "실제적 안보 효과에서 주한미군 재배치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남의 나라 군대를 인계철선이라는 방패막이로 세우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용산기지의 향후 활용 방안에 대해 "녹지로 유지하되 옛날 청국.일본군의 식민지 역사를 씻어내고 동북아 질서를 주도할 새 국가의 비전과 상징을 담을 신개념 도시로 만들겠다"며 제시하기도 했다.
***盧, 홍석현 회장과 3시간30여분간 대담**
한편 노 대통령과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과 대담은 특히 현 정권과 대립각을 세워왔던 조선.중앙.동아일보 중 처음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4월 총선이라는 민감한 시점에서 취임 1년을 맞아 중앙일보에 보내는 화해의 메시지 아니냐는 점에서다.
이날 대담은 이례적으로 이날 낮 12시부터 3시간35분 동안 장시간 진행됐다. 노 대통령은 홍 회장, 김수길 편집국장, 이연홍 정치부장 등 중앙일보 일행들과 함께 청와대 본관 백악실에서 1시간20분 동안 오찬을 함께 하고, 이후 청와대 경내 상춘재로 옮겨 2시간15분 동안 공식 특별대담을 했다. 이날 대담에 청와대에서 김우식 비서실장.박봉흠 정책실장.이병완 홍보수석 등이 배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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