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자진출두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검찰의 조사를 받고 출두 8시간여만인 지난 15일 저녁 7시 15분경 귀가한 가운데 이 전 총재에 대한 사법처리가 당장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이 전 총재의 ‘감옥론’이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사진> 귀가하는 이회창 전 총재
***이회창 전 총재 조사 8시간 만에 귀가**
이 전 총재가 “불법대선자금 모금은 내가 시킨일이다. 모든 짐을 짊어지고 감옥에 가겠다”라며 전격적으로 검찰에 자진 출두해 조사를 받았지만 검찰은 일단 더 조사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전 총재가 너무나 갑작스럽게 검찰에 출두하는 바람에 검찰이 이 전 총재의 범죄를 입증할 만한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검찰은 이 전 총재가 불법대선자금 모금을 사전에 지시하는 등 깊숙이 개입했다는 뚜렷한 증거 및 진술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이 전 총재 사건 전모 잘 모르는 듯한 인상”**
아직 이 전 총재의 진술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대검 문효남 수사기획관은 이와 관련 “이 전 총재가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진술하고 있다”라면서도, 그러나 “진상에 대해 잘 모르는 듯한 인상으로 법적으로 의미 있는 진술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요컨대 이 전 총재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과 마찬가지로 ‘최고 책임자로서 책임을 지겠다’는 도의적 자세는 있으나 이 전 총재가 세부적인 모금 지시 여부와 경위, 규모 등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검찰 일각에서는 법에 밝은 이 전총재가 법적 구속력이 약한 '사후 보고' 선에서 불법대선자금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선에서 진술, 법적 책임을 벗어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어린 시선을 던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전총재가 처음 대선에 출마한 것도 아닌만큼 첫번째 대선의 경험을 통해 불법대선자금의 존재와 필요성을 사전인지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게다가 검찰 주변에서는 이 전 총재가 기자회견에서 불법대선자금 규모를 ‘5백억’으로 한정시켜 발언한 것도 이미 밝혀진 액수만 언급한 것일 뿐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전 총재의 발언을 진정한 ‘고해성사’로 받아들이기도 힘들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요컨대 이 전총재가 자신이 '도의적 책임'을 지는 선에서 검찰의 수사를 조기에 종결시켜 위기의 한나라당을 방어하는 한편, 역으로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불법대선자금 규모와 상관없이 책임질 것을 압박하기 위한 ‘정치적 카드’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한나라당이 이날 이 전총재 출두와 관련, "노대통령이 불법대선자금 규모를 한나라당의 10분의 1이라고 말하며 이회창 전총재에게만 모든 짐을 씌우려 하지만, 설령 노대통령 말대로 10분의 1이라 할지라도 이는 한나라당에 비해 적용될 형량이 10분의 1만 적용될 수 있다는 의미지 불법행위 자체가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라며 노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를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에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검찰, “원칙과 정도 지켜 수사할 것”**
검찰은 그러나 청와대와 한나라당간의 ‘수 싸움’에 말려들지 않고 수사 계획에 따라 원칙과 정도에 따라 수사한다는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의 ‘불법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이면 정계은퇴하겠다’는 발언이나 이 전 총재의 ‘책임지고 감옥에 가겠다’는 등 연이어 터지는 정계의 폭탄 선언에 휘둘리면 다시 ‘정치검사’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전 총재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와 수위는 전체 불법 대선자금 규모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결국 이 전 총재 사법처리 여부는 수사의 마지막 절차일 가능성이 크다. 검찰로서는 현재 이 전 총재에 대한 사법처리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
노무현 후보 캠프측의 불법 대선자금 및 측근비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특검이 시작되기 전 최대한 진상을 밝혀내 국민들이 신뢰할 만한 수준의 수사결과를 발표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검찰측은 노대통령의 '10분의 1 발언'과 관련, "노대통령 캠프쪽은 아직 수사가 진행중이어서 수사기법상 밝히지 못할 뿐이지, 결코 지금까지 드러난 것이 모두는 아니다"라고 말해 앞으로 수사결과에 따라 불법대선자금 규모가 당초 예상보다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회창 전총재의 기습 출두로 허를 찔린 검찰은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16일 최돈웅 한나라당 의원을 소환해 조사하는 데 이어, 이미 구속된 서정우 변호사 및 이재현 전 한나라당 재정국장과 재정국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불법대선자금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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