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한달 가까이 이라크에 머무르면서 현지의 생생한 이라크 민심을 프레시안에 생중계해주었던 평화운동가 임영신, 김박태식씨가 3일 최근 방한한 재미 국제문제전문가 김민웅 박사와 함께 이라크 파병 문제를 놓고 의미있는 좌담을 가졌다.
임영신, 김박태식씨는 자신들이 직접 목격했던 이라크 현지의 분위기를, 김민웅 박사는 미국내 분위기를 전하며 이라크 파병의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이들은 이라크 내에서의 테러를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이라크 민중들의 저항에 대해 미국이 간과하고 이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면 이라크전은 베트남전과 마찬가지로 '출구 없는 전쟁'이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또 노무현 정부가 추가 파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적 원칙의 파괴가 있었다면서 파병이 가져올 심각한 악영향에 대해 우려를 함께 했다.
이날 좌담회는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박태견 편집국장의 사회로 1시간40여분에 걸쳐 진행됐다. 편집자주
***"한국에 대한 친근감이 적대감으로 바뀔 것"**
김민웅 : 이라크 현지에서 얼마나 있었나.
임영신 : 터키를 거쳐 라마단(금식월) 때 이라크에 들어가 20여일 있었다. 우리가 터키에 묵었던 숙소 근처에서 그후 대규모 폭탄테러가 있었다.
김민웅 : 지금 국내에서 이라크 문제를 가지고 논의를 할 때 제일 크게 쟁점으로 집약되는 문제가 무엇인가.
박태견 : 요즘 들어서는 '파병 철회'냐 '파병'이냐로 압축이 됐다. 전투병이다, 비전투병이다 이런 구분은 이미 물 건너갔고. 파병을 한다면 어차피 전투병으로 가게 되는 것이니까.
김민웅 : 혼성부대라는 말을 만들었데. 남자랑 여자랑 같이 가나보지? 그럼 혹 지원자가 많아질지도 모를 텐데...(웃음) 내가 보기에 가장 큰 문제는 파병에 대한 찬반이라는 단순논리로 얘기들을 하니까 논의가 진전이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전에, 이 전쟁의 성격이 뭐냐, 이 전쟁의 성격에 우리가 정말 동의하고 있는 것인가, 정작 전쟁에 참여하게 될 경우 그 과정에서 나타나게 될 일들이 뭐냐, 그 결과들을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느냐, 이런 여러 가지 구체적 논의를 해야 하는데 그같은 논의는 완전히 빠져 있다.
김박태식 : 파병 논란에 대해 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미국'이란 실체는 아주 피부에 와 닿는 반면, 아랍사회는 거리도 멀 뿐 아니라 추상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미국과는 어쨌든 동맹을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논리가 힘을 얻는 것 같다.
하지만 이라크에서는 한국이란 나라가 대단히 가까운 존재다. 집집마다 있는 TV가 LG, 삼성 제품이고 지나가는 차가 반 이상이 한국차다. 또 우리가 가서 들은 얘기는 "한국, 당신들은 제국주의와 싸워왔고 투쟁해서 얻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알고 있으니까 우리를 이해할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박태견 : 그렇다. 이라크에서 한국이란 나라는 우리의 막연한 생각이상으로 인지도가 높은 나라다. 가전제품을 통해서건, 과거에 중동에 진출했던 건설업체와 건설노동자들을 통해서였건, 한국이란 브랜드는 이라크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또한 그동안 한국 정부의 대(對)중동정책도 '친(親)중동정책'이었다. 그런데 이라크 추가파병을 통해 50년만에 최초로 중동과의 관계가 '적대적 관계'로 전환될지도 모를 위기를 맞고 있다. 50년간의 친근감이 일제히 배신감으로 바뀔 위험성이 있다.
김민웅 : 동의한다. 미국과 이라크간 전선 자체가 이슬람 전체로 확산될 수 있는 양상이라는 점에서 노무현 정권의 파병결정은 더욱 위험하다. 현재 이라크 문제는 이라크 내의 점령체제 종식과 관련한 독자적 반미저항의 움직임을 서서히 넘어서서 이슬람권의 반제투쟁의 용광로로 전환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런 흐름에서 볼 때 이같은 전쟁의 현실을 우리가 과연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박태견 : 우리가 중국 시장을 크다고 하는 게 13억 인구 때문이다. 무슬림도 13억이다. 또 중동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 공급원이다. 그런 면 때문에 13억의 무슬림을 적으로 돌리거나, 우리가 그쪽의 적이 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병론자들은 '석유패권' 때문에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한다고 한다. 이같은 주장의 전제는 "미국이 반드시 중동의 석유 패권을 장악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과연 중동의 석유시장을 미국이 이렇게 독식하는 것이 가능할지. 이라크전 과정에 표출된 미국과 유럽간 갈등도 본질적으로 석유패권에서 비롯된 것이고, 또 이라크 민중과 미국간 적대적 관계도 미국이 석유패권을 노려 전쟁을 벌였고 그러다보니 미국의 행위가 침략으로 인식되기 때문이 아닌가 해서다.
***"미국, 베트남전처럼 출구없는 전쟁 시작"**
김민웅 : 역사적 접근을 해보자. 한 예로 미국이 한국군의 대규모 파병을 요구하고 있는 이라크 북부 모술지역의 성격에 대해 정확히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모술지역의 석유 매장량은 전 세계 최대다. 이미 1920년대에 모술지역을 놓고 영국, 미국, 독일 등이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다. 중동에 대한 서방 제국주의 침략사가 고스란히 압축된 현장인 것이다.
서방이 중동의 석유 매장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되는 게 1910~20년대다. 그 이후에 오스만 투르크가 지배하던 지역을 서서히 장악해들어 갔다. 그 과정에서 특히 이 지역은 제국주의의 침략-점령정책을 철저히 경험하게 됐고, 반제투쟁이라는 역사적 경험이 매우 중요한 민족적, 민중적 의지로 살아 있다. 그런만큼 이런 민중들과 정면충돌하겠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미국도 보면 베트남에 그랬던 것처럼 출구 없는 전쟁을 시작한거라고 볼 수 있다. 제국의 무덤을 스스로 파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지금 큰 딜레머에 빠져 있다. 이라크의 내부에 분열적 요인이 자체적으로 존재하고 있는데, 바로 이들 즉 쿠르드족, 시아파, 수니파 등을 나름대로 정치적 통합력을 가지고 통치했던 게 후세인 세력이었다. 이게 무너지면서 시아파가 주도하는 양상이 됐다. 이렇게 된 순간부터 근본주의 세력이 주도하고 있는 이란과 이라크는 연대할 수 있다. 이란도 시아파 같은 근본주의자들이 중심이 된 가운데 1979년 미국의 지배를 와해시킨 이란혁명이 일어났던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후세인을 버리는 대신 새로운 상대를 물색하겠다고 나선 것인데, 더욱 큰 강적을 자신이 만들어가고 있는 양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란과 시아파가 주도하는 이라크가 서로 친화력을 가지게 되면 중동지역에서 거대한 근본주의 세력이 정치적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에게 있어서 엄청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후세인 체제가 나름대로 통합을 유지했던 질서가 사실은 미국으로서는 괜찮았던 질서였다. 이란과 이라크하고 8년 전쟁을 감행해서 기대했던 게 바로 근본주의를 압도하는 세력이었다. 사실 후세인은 근대화 세력으로 근본주의자들과 대립, 또는 통제하는 세력이었다. 이 구조가 외부의 힘으로 파괴되면서 미국은 자신의 구상으로 이라크의 복잡한 정치역학을 관리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는데, 침략자에 의한 새로운 정치질서에 이들 각 세력이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 부시정권의 견지에서도 사태는 악화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이라크 민중들의 요구는 하나는 선거일정을 보다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주권이양의 과정을 이라크 인들의 손에 맡기라는 주장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은 지금 '간접선거'를 하겠다는 것이고 이라크는 '직접선거'를 해야 한다는 거다. 미국은 직접선거의 어려움을 들면서 지금 치안 질서가 많이 흐트러졌다. 직접 선거하기는 힘들다, 이렇게 현실을 인식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 인들은 '왜 우리의 민주적 역량을 깔보냐. 직접 선거할 수 있다. 새로운 정치체제 형성은 우리의 소관이다'라고 치고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미국이 원하는 형태의 친미정권을 형성하는 게 굉장히 어려워진다.
***"이라크인의 본격적 저항은 아직 시작도 안됐다"**
임영신 : 이라크에 가기 전에 일본의 피스보트를 타고 갔는데, 당시 한국과 일본 양국이 다 파병 논의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서 터키 평화단체들, 일본 피스보트, 그리고 우리가 만나서 파병에 관한 논의를 했다. 그때 일본 평화단체들은 '자위대 파병은 일본 평화헌법에 위배된다'며 반대했다. 터키 같은 경우도 터키가 과거 이라크를 점령, 지배했었던 경험이 있다. 이라크에게 터키는 한국이 일본에게 가지는 것과 똑같은 정서적 저항이 있는 사회다.
이처럼 파병 문제가 자국내 문제만이 아니라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각 나라들이 자기모순을 경험하면서 강제받고 억압받는 것, 또 그 나라들이 이라크와 관계 맺는 방식 자체가 왜곡되는 문제를 생각해봐야할 것 같다.
한국이나 미국 언론은 이라크 테러가 알 카에다와 같은 외부세력이 일으킨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가서 느낀 것 중 하나는 국경이 무방비 상대로 열려있는 동안 아랍 전체에 퍼져있던 반미세력들이 들어와 그런 사건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부분이 충분히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나 한국의 언론이나 정치세력들이 말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라크인들 전체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저항의식이다.
바그다드에서 시아파 지도자들을 만났는데 그 사람들은 '미국은 데드라인에 서 있다. 우리가 여기까지 기다려온 것은 미국에 대한 공조가 아니라 그들이 우리에게 주권을 이양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는지 안하는지 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마지막에 저희가 이라크인들을 대상으로한 설문조사를 가지고 바그다드에서 토론을 할 때 시아파 정치학자 중 한 사람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직도 저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1920년-30년대에 영국 제국주의에 대해 시아파 남부지역인 바스라, 나시리야 이런 지역에서 엄청난 조직적 저항이 일어나서 영국을 물리친 반제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지금 사람들이 바깥에서 얘기하고 있는 테러사건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어마어마한 저항을 미국이 이 상태로 계속한다면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이를 무시하고, 그리고 한국 등 또다른 국가들이 전쟁의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고 참여한다면 이라크 민중들이 훨씬 더 많이 죽을 뿐 아니라 세계 여러 사람들이 잘못된 점령으로 인해 다치게 되는 엄청난 유혈사태를 목격하게 될 것 같다.
***"베트남전때도 저항이 가장 격렬한 지역에 한국군이 배치됐고 민간인 학살이 뒤따랐다"**
김민웅 : 저항의 주체를 크게는 일단 후세인 잔당세력, 알카에다 등을 포함한 밖에서 유입된 아랍권의 저항세력, 그리고 이라크 민중들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후세인 잔당들의 저항이라고 하더라도 이게 단지 현재와 같이 그 의미가 폄하될 수 있냐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후세인 체제로 복귀하려는 반동적 몸부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저항에는 침략자에 대한 민족적 의지가 작동하고 있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에 외부 저항세력의 유입은 아랍인들이 이라크의 문제를 아랍 전체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따라서 이들 세력의 존재는 다만 밖에서의 유입 문제로만 끝나는 게 아니고 거꾸로 보면 이슬람권 전체의 저항으로 이어지는, 확산의 통로가 되는 거다.
그 다음에 지금 보이는 테러라는 게 이라크 민중들의 저항이라고까지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얘기를 하는데,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되는 대목이 사건이 터지고 난 다음에 이라크 민중들이 보이고 있는 엄청난 환호다. 이 점이 중요하다. 실제로 총을 들고 싸우지는 못하지만 거기 대해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항세력과 민중들을 묶고 있는 공감대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점령체제가 끝나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뉴욕타임즈에 미국 펜타곤의 비밀 보고서 내용이 보도됐는데 현재 이라크 내에서 이른바 테러를 하는 세력들이 이라크 민중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내용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의 전략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당연히도 이런 적대감을 완화. 완충시킬 장치가 필요하게 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인데, 이 완충작용을 해줄 수 있는 이라크 내 친미세력들을 정치적으로 세우는 것과 이 적대감에 의한 공격목표의 실체를 미국이 아닌 다른 사람들로 내세우는 것이다.
베트남 때도 마찬가지였다. 베트남인들의 저항이 가장 격렬한 지역에 한국군이 투입되면, 한국군들이 그래서 희생당하고 그 다음에는 보복전쟁으로 진행되어 민간인 학살로 번지고 이것이 한국군에 대한 새로운 희생의 구도로 이어지고 민간인 학살은 그렇게 해서 정당화되고 하는 식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 죽음의 늪 속으로 우리가 이렇게 빨려 들어가야 하는가.
미국 부시정권이 이라크 전선의 현실에 대한 기만적 태도도 주목해야 한다. 최근 한국인들이 희생당하고 일본인들이 희생당해서 문제가 됐던 사마라 지역에서 바로 얼마 전 게릴라 토벌 대접전이 있었고 일대 승리를 거두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난다음에 거짓말임이 드러나고 있다. 민간인들을 죽인 것이었다. 세계 언론의 눈이 그저 감겨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의 증언을 보면 자기 아들을 구하러 달려갔던 아버지가 총 맞아 죽는 것을 목격하고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자기도 총만 있으면 미군과 싸우겠다고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사태의 성격이 자연스럽게 민간인 학살과 이라크 인들의 반미 투쟁으로 가는 것인데, 이게 어디 보통 문제인가?
한국군이 파견됐을 경우에도 사태는 달라질 것이 없다. 게릴라전의 특징은 일반 민간인들과 게릴라들을 구분 못 한다는 거다. 그런 전선에 파병했을 경우 결과는 뻔한 것이다.
게다가, 베트남 전에서도 그랬었는데 미국에서 파병된 젊은 병사들이 현장에서 언제 어떤 식으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자살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본국으로 하루라도 빨리 복귀하기를 원하고 있고, 돌아와서 정신질환에 시달려 문제가 되고 있고, 정신질환을 겪는 과정에서 언제나 등장하는 게 마약문제로 미국 사회의 일부가 이로써 병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인들의 희생과 함께, 미국의 젊은이들도 이 전쟁의 과정에서 그런 식으로 인생이 난도질당하고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파병하게 된다면 우리 또한 겪게 될 일들이다.
***"미국은 현재 부대내에 고립돼 있다"**
박태견 : 미군이 외형적으로는 점령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기 방어에 급급한, 이라크 내에 고립된 모습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실제로 갔을 때 미군이 점령자로서 의기양양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인가, 아니면 자기 방어하기에 급급한 모습인가.
김박태식 : 유엔군이 주둔하고 있는 쿠르드 지역에서 미군을 만났는데 아주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물어보니까 이라크 내에서 복무를 하다가 휴가를 받아서 쉬고 있다고 했다. 그 얘기는 이라크 본토에서는 자기 부대 내에서 아주 긴장하면서 있고 바깥에 총기 사용이 금지된 지역에 가서 쉬어야 될 만큼 그 내부에서는 긴장하고 있는 것 같다. 이라크 내에서는 거의 돌아다닐 수가 없다. 미군에 대한 공격을 방어하는 측면에서 정보도 없고 자기편이 없기 때문에 그냥 민간인들을 불법으로 검거하고 잡아가고 살해하고 이런 문제도 발생한다.
박태견 : 미군들이 바그다드는 자기네들이 완전히 장악했고 안전지대라고 했는데 지금 보면 바그다드 한가운데서 연일 공격을 받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외부에서 볼 때는 미군이 완전히 고립된 것으로 비추고, 과연 미국이 이 상황을 돌파할 힘이 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미군이 지금 13만명을 집어넣고 더 이상 보낼 병력도 없고 빼와야할 상황인데 지금 국면을 반전시킬만한 역량을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김박태식 : 바그다드 내에서도 실제로 부대 내에 고립돼있는 상태다. 장갑차가 지나갈 때 두 대가 같이 지나가는데 한 사람은 앞을 경계하고 다른 사람은 뒤를 경계하면서 지나간다. 그 말은 뭐냐면 부대 밖을 나가면 언제든지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는 거다.
박태견 : 미국이 들어갈 때 석유패권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들어갔다. 그런데 지금 보면 자기들 안전 자체도 담보 못할 정도로 고립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미국이 석유패권을 장악할 수 있겠나. 이라크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던가.
임영신 : 제가 지난 4월에 갔을 때 보면 이라크 사람들은 미국이 석유를 가져가려고 온 것에 대해서 어린아이들도 다 알고 있었다. 이들은 '가져가려면 가져가라. 너희가 국제사회의 눈이 있으니까 10중에 9를 가져갈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열의 하나를 남겨도 순식간에 우리 국력을 회복할 수 있다. 12년간의 경제제재보단 그게 낫다. 또 우리의 주권을 회복할만한 정치적 공간에 대해서는 보장해줘라'고 말했다.
또한 미국은 지금 테러 세력이 외부에서 유입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라크 민중들의 동의 내지 묵인이 없이는 그렇게 많은 테러가 일어날 수 없다. 저항을 표출하지 못하는 이라크 민중들이 암묵적 동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한미동맹이 아니라 盧-부시 동맹"**
김민웅 : 그전에는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에 무기력하게 있었던 민중들도 날이 갈수록 자기 같은 사람들의 희생이 많아지면 결국 선택은 총을 드는 과정으로 갈 수 밖에 없게 된다. 미국으로서는 매우 근본적인 모순에 직면하게 되는데, 미국이 자기가 원하는 전쟁 정책을 구사하면 할수록 미국은 위험에 더욱 깊이 처하게 된다는 점이다. 미국이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방식의 군사주의 노선을 강화하면 할수록 미국의 안정은 그만큼 보장받는 게 아니라 거꾸로 날이 갈수록 위협받는, 역설적 상황에 처해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가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을 찬성하면서 파병을 선택하면 우리가 당할 일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겠는가.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 사회는 부시 정권과 미국을 동일시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파병 문제를 결정하면서 동맹관계를 얘기하는데 이는 정상적 의미의 한미동맹관계가 아니고 노무현 정권과 부시정권의, 각자의 이해를 계산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정치적 동맹관계일 뿐이다.
지금 미국사회에서는 이번 전쟁을, 파병한 군인들의 부모까지 나서서 반대하고 있다. 이들 미국 일반시민들과 우리의 연대가 진정한 차원의 한미 동맹으로 부각될 필요가 있다. 부시정권이 공식적으로 종전을 선언한 이후에 미군 희생자가 더 많아졌다. 그러면서 미국 내에서 이라크 전쟁에 대해 가장 강력한 지지 세력이었던 파병군인들의 부모들이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이게 부시로서는 엄청난 딜레마다. 정치적으로 재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부시로서는 미군들을 빨리 복귀시킬 수밖에 없는 압박에 처하게 된다. 당연히 그 공백에 우리를 동원시키고 싶은 것이다. 부시정권의 재선전략에 우리가 동원되는 격이다. 노무현 정권은 그런 의미에서 부시의 재선에 협조하는 처지를 자청하고 있다 하겠다.
박태견 : 노무현 정권의 선택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미국인들에게 '아 고맙다' 이런 인식을 심어주는지. 미국내에도 이라크전이 장기화되면서 반전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가운데 끼어드는 것이 과연 미국인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고 있는지. 미국에서 한국의 추가파병 결정은 뉴스거리도 못된다던데...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던데...
김민웅 : 우리나라에서 파병과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을 미국인들은 거의 모른다. 반면에 일본이나 터키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은 안다. 우리에 대한 미국의 인식이라는 것이, 그 정도로 우습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 민간인들의 희생이 보도되면서 아주 간략하게 한국의 파병문제가 거론되었을 뿐이다. 미국인 전제로 볼 때 고맙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상태인 것이다.
김박태식 : 그것에 반해 이라크 사람들은 우리가 파병 결정을 한 것에 대해 다 알고 있다.
임영신 : 요르단이나 이라크 신문에 다 보도가 됐고, 심지어 저희가 활동하는 것에 대해서도 보도가 나갔다. 물론 한국 상표도 바그다드 시내에 가면 대우, 삼성 이런 광고로 도배가 돼 있다.
한국에서 건설한 아파트나 도로도 있고 그래서. 이라크는 지금 헌법개정 과정이나 새정권을 수립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바그다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International Occupation Watch라는 단체의 사무국장 이만씨를 만났는데, 지금 이라크에서 가장 위험한 것을 하나만 꼽으라고 하니까 '미국이 이라크 헌법을 만드는 과정을 아무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개방, 경제협력, 기업의 민영화, 이라크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모든 자원들을 미국의 이해에 맞게 만들어가는 과정을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게 가장 위험하다고 했다.
***"현재 이라크에선 효순-미선이 사건이 매일 일어나고 있다"**
김민웅 : 미국은 지난 1898년 쿠바와 필리핀을 장악하면서 그런 식으로 미국의 구상으로 헌법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48년 미군정의 주도하에 헌법이 만들어졌지 않은가? 미국의 제3세계 지배점령의 역사에서는 그런 과정이 언제나 존재해왔다. 이라크에서도 헌법을 통해 이라크 인들의 자원과 자유와 권리와 생명을 마음껏 빨아 미국을 강하게 만드는 흡혈 빨대를 만드는 거다. 아니 미국이 아니라 미국의 일부의 독점 자본가들, 거기에 결탁한 정치세력들, 군사주의자들을 강하게 하는 빨대가 바로 이 헌법의 기본구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임영신 : 제가 이라크에 들어가기 전 피스보트를 탔을 때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하늘과 땅' 원작자인 랠리가 탔다. 그에게 한국 파병 문제에 대해 물었더니 자기가 베트남에 있을 때 미군은 베트남에 들어와서 여자와 아이는 죽이지 않았는데, 일본과 한국은 베트남에 들어와서 여자와 아이까지 몰살했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아까 말했던 미국의 이라크 헌법과 경제재편 문제가 미군에 의한 이라크 희생자가 처리되는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금 4천명 정도가 영장도 없이 구속된 채 실종자로 처리돼 있고 그 다음에 죽으면 받을 수 있는 돈이 고작 2천5백불이다. 5천불 이상 요구하면 뉴욕에 가서 청구해야 한다. 다친 사람은 미군이 운영하는 병원에 가야지만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거기에 가서 미군이 테러에 의한 것이라고 하면 병원에 가는 게 자신이 테러리스트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된다. 그러니까 아예 갈 생각을 못한다. 실제 효순이-미선이 사건 같은 일이 매일매일 일어나는데 그게 처리되는 법령 자체가 한미행정협정보다 훨씬 더 악랄한 형태다. 미군법정에 가서 이라크인이 입증을 해도 보상도 못 받고 더 이상 여기에 대해 문제제기하지 않겠다고 각서를 쓰고 끝낸다.
김민웅 : 이라크 침략을 정당화하는 논리 중 하나가 이라크 민중들에게 고통을 주는 후세인 체제를 무너뜨림으로써, 정권 교체한다는 거였다. 최근에는 이라크 문제 처리를 중심으로 중동전체의 민주화 전략까지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민주화론이 얼마나 허구인가는 이 증언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지금 얘기했던 것들은 이라크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인권 부재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권이 빠지는 민주주의는 성립할 수 없다. 이라크의 현실에서 인권의 부재를 미국이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화전략 운운은 근본적으로 기만이다.
아까 일본 평화운동가들이 자위대 파견이 일본 평화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헌법도 침략전쟁에 반대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가 이라크를 처음 침략했을 때 거기에 동조를 했다. 5월 정상회담에서도 이라크의 민주화에 대해 미국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동조했다. 전쟁의 성격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헌법의 기본정신을 위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파병은 반대로 결론이 이미 나야했고 일본의 자위대 파병을 문제 삼아 이것이 일본의 평화헌법 체제 파괴의 매우 중요한 단계이자 아시아 전체의 군사질서에 위협적 현실을 만들고 있음을 강력하게 제기해야 하는 것이다.
논의의 과정을 국내적 차원으로 돌려보면 이 정부가 참여정부인데 이와 관련된 과정을 보면 참여적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라크 현지 국회조사단들과 만난 자리에서 파병동의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면서 파병을 이미 전제한 방법론을 얘기하고 있다. 왜 파병을 해야 하는가, 파병을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미국의 요구에 대해 우리는 노를 할 수 없는 입장인가, 이런 문제에 대해선 설득력 있는 대답이 없다. 파병 반대에 대한 여론이 압도적인데 이 압도적 여론에 대한 대답을 마련해주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파병 쪽으로 몰고 가는 것은 우리사회의 민주주의의 파괴다. 또 그 결과가 우리한테 재앙적 현실로 다가온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파병, 오히려 경제에 악영향 미칠 것"**
임영신 : 파병을 안 하면 한국이 잃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김민웅 : 파병을 안 하면 한미관계에 균열을 느끼고 미국 자본가들이 돈을 빼 갈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건 허황된 인식이자 오산이다. 또 협박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경제적 역량이란 게 만만치 않다. 이라크 애기도 했지만 우리 기업들의 상표의 문제, 이건 기업들 상표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나름대로의 경제적 역량의 뿌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게 하루아침에 가는 게 아니다. 미국이 자신의 경제적 기득권이 우리 내부에 만만치 않게 존재하는데, 파병문제 하나 가지고 미국의 투자가 후퇴할 것이다? 가당치도 않고, 또 그렇게 해서 나가는 자본이 있다면 그것은 투기자본이라는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박태견 :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반응도 보면. 처음에는 전경련 등에서 파병을 지지했었다. 그러다 요즘 와서는 내심은 굉장히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대기업 같은 경우 브랜드로 먹고사는 건데, 거기서 적대적 이미지로 돌아서게 되면 순식간에 잃게 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또 중동지역은 거의 매일 우리나라 유조선이 들락날락하는 지역 아닌가. 정부에서도 그런 고민을 하던데...만에 하나 이라크 저항세력이 로켓포라도 쏴 유조건을 공격했다는 식의 뉴스만 나와도 한국 경제가 받게될 타격은 엄청날 것이다. 그걸 막겠다고 유조선마다 군을 배치할 수 없는 일이고. 조선일보 같은 경우는 항공기마다 미사일방어 시스템을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까지 하지만 말이다.
김민웅 : 과거의 전쟁은 미국이 장악하는 것은 뒤따라가면 우리 것도 된다는 식이었다. 주워 먹겠다는 것인데, 타당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가당치도 않다.
박태견 : 최근 한국 민간인 피살사건을 통해 볼 수 있듯 우리가 이라크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막노동판에나 일거리 좀 건지는 정도다. 그러나 이미 한국경제는 그런 것으로 먹고 사는 단계를 지났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정부가 왜 그렇게 쉽게 파병을 결정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노(NO)'라고 하더라도 특별히 한국이 찍힐 상황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거의 모든 나라들이, 미국과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더 종속적인 중남미의 국가들도 '노'라고 답했다.
김민웅 : 더 절박한 위치에 있는 파키스탄조차도 말이다.
***"중동의 저항 때문에 한반도 위기가 일정하게 저지됐다"**
박태견 : 그렇다. 그들은 생존의 문제가 걸려있는데도 '노'라고 대답했다. 바로 옆의 캐나다나 멕시코도 안 도와주고. 정부가 요즘 내세우는 파병논리가 북핵문제다. 우리의 평화를 위해 욕먹더라도 나가야 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북핵 부분이 우리가 파병을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우리가 DJ 정부 때처럼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을 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지. 지금은 북핵 문제에서 한국을 뒷전으로 제쳐진 채 모든 결정이 북.미. 중 3국간 협상에서 이뤄지는 양상이다.
과연 한국이 파병을 안 한다고 할 때 미국이 갑자기 북한을 강경 노선으로 몰아부칠 것인가. 그건 협상 과정을 몇 년 동안 지켜봤지만 아니다. 어떻게 보면 미국이 지금 이라크의 늪에 빠졌기 때문에 한반도에 그나마 숨통이 터질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 게 아닌가.
김민웅 : 그렇다. 지금 중동에서 엄청난 저항이 벌어졌기 때문에 한반도 위기가 일정하게 저지된 측면이 있다. 한반도 문제는 한반도 자신의 주체적 의지에 의한 돌파가 핵심이다. 이를 간과하고 미국의 협조 운운하는 것은 그와 같은 민족문제 해결의 주체적 의지가 없음을 의미할 뿐이다. 또 아까도 애기했지만 이라크 전쟁의 본질적 출발이 뭔가. 세계 지배전략에 따른 미국의 군사주의다. 한반도의 이른바 북핵 문제라는 것도 바로 이 적대적 군사주의의 소산이라는 측면이 존재한다. 파병은 이러한 미군의 군사주의적 대외정책에 동조하고 그러한 군사주의 노선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니까 한반도 문제를 푸는데 모순적 상황이 더욱 심화되어버리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상황을 어렵게 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노엄 촘스키가 <미국의 패권이냐 인류적 생존이냐(Hegemony or Survival)>이라는 책을 냈다. 미국의 세계제국 건설의 패권전략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시 정권은 인류적 차원에서도 대단히 위험한 권력이라는 진단을 내린 것이다. 이러한 권력에 동조하여 인류의 생존을 같이 위협하는 나라가 될 것인지, 아니면 인류의 생존과 평화를 위해 일익을 담당하는 나라로 성숙하는 매우 결정적 선택을 할 것인지의 기로에 우리는 서 있는 것이다. 미국 부시정권과의 죽음의 동맹이 아니라, 인류 전체와 생명과 사랑의 동맹을 결단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지금 주어진 최대의 숙제가 아니겠는가.
박태견: 오랜 시간, 귀한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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