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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과 이석기, '유신'시대와 '석기'시대의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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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과 이석기, '유신'시대와 '석기'시대의 조우

[이석기 사태, 그 후] 진보진영이 깨달아야 할 것들

이석기 의원 사건은 우리 사회에 다시금 이념 싸움을 부활시켰다. 하기야 생각해보면 다시라는 말을 하기가 어려울 만큼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때에 따라 격랑의 정도만 달랐을 뿐이었다.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좌우라는 구분이 무색해진 신자유주의의 전성시대(?)를 살고 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좌우 이념의 분열프레임에 매몰되어 좀처럼 헤어나지 못한다. 그 기저에는 남북이 갈라진 분단질서에서 자신의 기득권을 최대치로 확장시키려는 국내 지배세력이 존재하고, 냉전적 대결구조에서 이익을 최대치로 확장할 수 있는 강대국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석기 의원과 국정원은 시대착오의 전형으로 서로 거울이미지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이 말한 것처럼 "항일시대의 정서를 간직한 주사파와 유신의 감수성으로 무장한 국정원"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한쪽에선 전무후무한 3대 세습의 북한 1인독재체제를 추종하며 체제부정과 혁명을 부르짖는 사람들, 그 이름처럼 석기시대만큼이나 낡은 이념을 신봉한다. 다른 극단에서는 정부를 비판하면 빨갱이 딱지를 붙이고,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과 인물의 집권을 위해서는 국가의 공공기관이라도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신독재 시대의 세계관을 굳게 신봉하는 사람들이다. 이 두 극단의 집단이 충돌했다. 유신 시대와 석기시대의 조우인데, 그 사이에서 21세기 우리 한국사회가 또 흔들리고 있다.

▲ 내란음모 및 내란선동 혐의를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신상 발언을 하고 있다. 국회는 이날 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압도적 다수로 가결했다. ⓒ연합뉴스

사태를 목도하면서 수 년 전 인기를 끌었던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가 줄곧 떠올랐다. 밤이 되면 뉴욕 소재 자연사박물관(1편)과 워싱턴 소재 스미소니언박물관(2편)에 전시되어있던 동물들과 옛 인물들이 모두 되살아나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는 설정의 코미디물이었다. 그 코미디영화가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거꾸로 현실화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코미디영화처럼 웃어넘기기엔 그 함의와 파장이 너무 크다.

녹취록이 편집의 가능성이 남아있고, 또 사법적 최종판단이 나오기 전이라 조심스럽지만 자신의 음성으로 한 발언들만 놓고 판단해도(심지어 앞뒤 문맥을 편집 및 왜곡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세계관은 심각한 수준이다. 정말로 이런 식으로 북한을 추종하고, 또 남한을 이해하는 것일까? 장난감 총 개조나 인터넷을 찾아 만든 사제폭발물로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다고 진짜 믿는 것일까? 게다가 비밀결사단체가 저토록 공개모임과 다름없을 정도로 보안에 취약한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다 보니 농담 수준이었다는 이정희 대표의 변명이, 비록 큰 비난에 휩싸였지만 녹취록에 나오는 발언수준보다 더 수용하기는 쉽다. 어쨌든 이번 사건이 이 땅의 진보운동과 야권에 끼친 상처는 엄청날 듯하다. 진보논객 진중권의 말처럼 극우인사 조갑제 씨 100명이 하지 못한 일을 해냈는지도 모른다.

반대편에서 마주 보는 거울은 국정원이다. 체포 시점과 적용혐의는 오비이락(烏飛梨落)도 유분수지 타이밍 한번 기막히다. 녹취록을 공개함으로써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한 물타기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항변하지만 그런 조급한 행태가 오히려 의심을 부추긴다. 수사 중인 피의사실을 버젓이 공개하는 행위가 불법적인 것임에도 이제 아무 때나 마음대로 사용해버린다.

공개수사를 검찰이 아닌 국정원이 중계하듯 하고 있는 것도 낯선 풍경이다. 국정원 주장대로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가 정말 체제위협이었다면 오히려 3년 동안이나 방치해서 당권 장악은 물론이고 원내까지 진출하게 만든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될 수 있다. 3년을 끌어온 이유로 녹취록 한 가지는 너무 부족하다. 때문에 3년의 내사를 필요하게 만든 내란음모의 구체적인 증거들을 반드시 제시해야만 한다. 구체적 물증이 없다면 이 의원의 발언이 국민정서상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사상의 자유로 간주되어야 한다. 공권력이 개인 머릿속의 사상을 처벌할 수 없다. 범법행위인지, 아니면 머릿속의 사상인지 국정원이 명백하게 그리고 공정하게 입증할 의무가 있다. 구체적 피의사실로 입증하지 못한다면, 대선개입이 점차 실체를 드러내자 존폐위기를 느낀 국정원의 의도된 역공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언론의 반응은 더하다. 수 주일 동안 신문과 방송에서 24시간 도배를 하다시피 하는 취재 열기와 전파 낭비는 거의 광기 수준이다. 현역 국회의원이 이런 혐의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은 분명 충격적이다. 그런데 형법 87조에 규정된 내란음모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을 모의하는 무시무시한 사건임에도 언론들은 모두가 표정관리가 안 될 정도로 한 건 했다는 분위기가 넘친다. 종편 채널 아나운서들의 목소리는 흥분감에 떨리기까지 한다. '듣보잡' 전문가들은 하루 종일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며 팩트와 분석이 사라진 즉흥적이고 자의적이며, 성급한 결론들을 전문지식인 양 포장하며 내뱉는다. 좀 과격한 표현이지만 굶주린 하이에나 떼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권은 국정원 대선개입으로 밀리던 정국주도권을 되잡았다며 야권과 진보 세력을 거세게 몰아붙인다. 정권을 위해 수도 없이 그동안 벌였던 용공조작, 색깔론, 북풍공작들에 대한 국민들의 의심을 이번 일로 한 방에 털어버릴 수 있다고 환호한다. 주류언론과 함께 여당은 이번 사안을 야권과 진보 전체의 책임으로 몰아간다.

청와대의 반응도 놀랍다. 국정원이 3년이나 내사한 사건이라는데 청와대는 언론을 통해 인지했다고 말했다. 참 어설픈 대답이다. 정치적인 의도가 없고,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다가, 내란음모라는 중차대한 사건을 3년 동안이나 보고받지 못했다는 고백(?)을 하게 된 것이다. 국정원은 청와대 직속기관, 대통령의 직접적인 지휘 아래 있는 기관이다. 국정원 댓글사건과 NLL 대화록의 임의공개에서도 몰랐다는 태도였는데 이는 거짓말이어도 사실이어도 모두 심각한 문제다. 청와대의 '빌라도의 손 씻기' 같은 행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


이번 일을 통해 우리 국민들이 진보세력에 대한 이 정도의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마녀사냥에 가까운 광기 서린 보수의 공세에 대해 대중들이 이 정도로 공감하고 있다는 것은 충격이다. 마치 수십 년 깊고도 깊은 원한이 쌓여 복수심에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 같다. 무얼 그리도 잘못했던지 진보로선 억울할 만하다. 물론 녹취록에 대한 대중의 반감은 충분히 이해된다. 북한독재체제에 대한 거부감이나 반복되는 도발에 대한 염증에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번 일에 좀 더 공정해야 하며,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눈으로 봐야 한다. 북한에 대한 미움과 반대가 곧 한국사회의 부정의와 불평등에 대한 눈 감기는 아니어야 하지 않는가? 한국사회와 지배세력에 대한 반감과 불만이 자동적으로 친북으로 인식되는 그런 매카시즘은 배격되어야 마땅하다. 이석기 의원 사건보다 국정원 대선개입이 훨씬 더 큰 체제 위협적이다. 그들은 힘이 있고, 그들의 행위는 사상과 이념을 조작하고 검열하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정원은 이전에도 수차례 북한과 정치적으로 무관한 단체들을 용공 조작해서 탄압한 전례가 있다. 그러므로 유신 시대와 석기시대의 두 극단에 대한 비판은 합당하지만 균형적 양비론은 배격해야 한다.

진정한 보수는 가치로써 승부해야 한다. 보수라는 용어 자체가 바로 현 체제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지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박물관에나 있어야 할 가치들을 되살려 이용하는 방식으로, 또는 반대세력을 공권력으로 억압하고 멸절하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그 가치가 현재와 미래의 대안으로서의 다수의 공감을 받을 때 생명력이 유지되는 법이다.

그러나 현재의 보수가 지지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은 6,70년대 산업화와 성장주의에서 단 한발 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말하지만 한국사회의 불평등과 빈곤문제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환경은 파괴되어도 돈만 되면 상관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승자독식은 한국의 천민자본주의와 의기투합하면서 투기와 불법이 난무한다. 나라 바깥으로는 신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이로 인해 강대국의 세력경쟁이 본격화되는데, 우리는 내부 이익투쟁을 위해 분단구조를 오히려 확대하면서 권력유지에 골몰한다. 평화는 친북이고, 안보는 애국이 되는 이상한 이분법이 통용된다.

한 방향으로 곧게만 진보하는 역사는 없으며, 늘 지그재그로 진퇴를 반복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또 삶의 진정한 성공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그래서 속도의 더딤에 대한 답답함은 웬만큼 참을 만하게 되었는데, 작금의 상황은 방향마저 역주행은 아닌지 우려하게 만든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인사로서 진보후보를 지지하며 명연설을 했던 윤여준 씨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진보가 악마에게 진 것은 아니니 너무 절망하지 말라고 위로한 적이 있다.

과거 총칼로 정권을 탈취하고 갖은 폭력으로 국민을 탄압했던 독재시대가 아니라 합법적 과정에 의해 선거로 뽑힌 사람에게 진 것이니 악마에게 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제 갓 시작한 정부에게 시간과 기회를 더 줘야 한다는 말도 맞다. 하지만 선거결과는 그렇더라도 이후 5년의 정치가 악마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 역시 없다. 얼마든지 5년 간 악마가 될 수 있음을 지난 정권에서 경험했으며, 과거의 온갖 망령들이 고개를 들고 있는 지금 다시 두려워진다.

이탈리아 혁명가 그람시는 옛것이 죽고 새것이 태어나지 못하면 그 빈 자리에 괴물들이 태어난다고 말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으로 최악의 빈곤에서 고도성장을 이루었고, 피와 희생으로 민주화의 가시밭길을 지나왔지만 민주화와 성장 이후의 제대로 된 대안은 마련하지 못했다. 그것은 진보도 보수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이석기도 국정원도,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갈 제대로 된 대안적 가치와 비전을 마련되지 못하는 틈을 비집고 박물관에서 되살아나온 괴물이다. 다시 박물관으로 돌려보내고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어냄으로써 미래를 위한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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