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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정몽헌 공적, 남북이 모두 인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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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정몽헌 공적, 남북이 모두 인정해야”

<금강산 2박3일 육로 방문기> 육로로 넘은 군사분계선

‘남북경제협력 지속발전을 위한 제1차 금강산 방문단’과 함께 지난 5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금강산을 육로 방문하고 돌아왔다. 육로관광이 시작된 후로 일곱 번째이자, 지난 1일 육로방문이 재개된 후로는 두 번째 팀이라고 하니 선발주자 대열에 낀 셈이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없지 않았고, 그럼에도 미처 예상치 못한 감동은 특별한 경험이었음이 틀림없다. 보고 들은 바를 전한다.

***금강산 자락에서**

"기자 : 남에서 북으로 오는 육로길이 생각보다 멀지 않더군요.

임영준(북한측 금강산 안내원) : 정주영-정몽헌 회장 공적은 북이나 남이나 인정해 줘야합니다. 정말 고마운 분들입니다. 이런 현대 사업은 정말…. 얼마 전에 정몽헌 회장 소식 들었을 땐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방문 이튿날, 구룡연으로 향하는 금강산 등반길 초입에서 난생 처음 북한 사람과 해본 대화였다. 놀라웠다. 김일성 주석 초상이 그려진 배지를 가슴에 단 엄연한 북조선 인민이 남한 자본가를 이렇게 상찬해도 되는건가? 남북교류의 대의 앞에서 이데올로기는 왜소해지는 것인가? 아니면 남측의 투자확대라는 열매를 따먹기 위한 전략적 립서비스인가?

서둘러 머리를 정리했다. ‘북한 당국도 정몽헌 회장 사망에 공식적인 애도를 표했으니 이런 반응은 당연하지 않나.’

그리곤 “등반길이 얼마나 험하냐”, “눈 여겨 볼 명소가 어디냐”는 질문으로 무게를 덜어냈다. 관광 안내원의 말이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에 대한 북한 주민들 생각의 평균치인지도 불확실했을 뿐더러, 대화중에 무의식적으로 어떤 목적의식에 빠져든 것은 아닌가 하는 자각에서였다.

본격적인 금강산 관광은 그렇게 시작됐다. 듣던 대로 금강산은 수려했다. 정해진 코스는 등반로인 구룡연과 만물상, 바다를 낀 해금강과 인근의 호수 삼일포에 불과해 비로봉은 갈 수도, 먼발치에조차 볼 수도 없었지만, 바위산 특유의 정취가 설악산과는 또 달랐다.

<사진1>

***군사분계선을 넘으며**

그렇더라도 금강산 육로 관광의 백미는 금강산 등반이 아니었다.

버스를 타고 남측 CIQ(임시남북출입관리연락사무소)에서 북측 CIQ에 이르는 왕복 2시간. 분단의 살얼음판을 걷듯 시속 30Km나 될까하는 속도로 서행하는 버스를 타고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향하는 그 짧은 순간은 꼭 이산가족이 아니어도 '냉전의 그늘'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군사지역의 살벌함 때문일 것이라는 일반적인 상상을 훨씬 뛰어넘어 세상에서 가장 통과하기 힘든 국경을 넘는 만감이 교차했다.

방문단 통솔과 관광 가이드 역할을 하는 ‘조장’은 아랑곳없이 “이쪽에 보이는 게 매바위이고, 저쪽에 보이는 건 남강다리인데…”라며 설명에 열심이지만, 미안하게도 머릿속엔 차창 밖으로 방금 스쳐간 앳된 인민군의 경직된 표정이 잔영으로 남을 뿐이었다.

그나마 분위기를 누그러뜨린 건 버스가 이동하는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옆을 따라 길게 뻗은 동해북부선이었다. 정확히 군사분계선까지 설로가 놓인 북측 공사는 이미 끝나 지반공사가 한창인 남측의 설로를 마중하고 있었다.

이미 해로 관광을 마치고 육로로 돌아오는 선행 방문단 버스와 교차한 것도 묘한 상징으로 다가왔다. 금강산 임시도로가 생긴 이래 처음 있는 교차통행이라는 ‘조장’의 설명을 들어서인가?

‘해빙’의 감흥도 잠시, 북측 비무장지대를 벗어나는 구서통문에 이르자 역시 앳되고 경직된 표정의 인민군 2명이 검문을 위해 차에 올랐다. 일행은 반갑게, 혹은 어색하게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지만, 그는 눈 하나 까딱 않고 오른손만 사선으로 홱 내리그어 단박에 제지했다.

비무장지대를 벗어나 북측 CIQ에 이르는 길에도 띄엄띄엄 인민군 초병이 미동도 없이 서있는 모습을 봐야했다. 그 중엔 일행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하는 ‘대담한’ 병사도 있었다.

<사진2>

***고성읍을 지나며**

현역 국회의원이 여럿 동행한 덕인지 방문단은 일반 관광객들이 경험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진짜 관광’ 기회를 방문 이튿날 가질 수 있었다. 현대아산이 운영하고 북한 주민들이 채소를 재배하는 ‘금강산 영농장’을 둘러보기 위해 고성읍 번화가를 통과한 것이다.

관광 안내원 외에는 일반 주민들과의 접촉을 ‘원천봉쇄’ 당한 채, 숙소와 정해진 관광코스만 따라 움직여야 했던 방문단으로서는 대단한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동행했던 기자 왈, “처음으로 현대아산의 ‘가두리 양식장’을 벗어난 것 같다.”

이 역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길에 겉만 훑어본 것일 뿐이지만, 현대아산측 관계자가 “고성읍 개방을 대비해 비교적 잘 가꾸어 놓았다”고 귀뜸한대로 주민들 표정과 거리 분위기가 대체로 밝았다.

이발소, 청량음료점, 단고기 판매점 등은 이채로운 모양의 간판이 시선을 끌었고, 동해선이 개통되면 운영하게 될 ‘청년역사’의 아담한 모습도 눈에 담기 편했다. 소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학생들이 방과 후인지 입맞춰 노래부르며 줄지어 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활짝 웃으며 방문단을 향해 연신 손을 흔들어대는 모습에 방문단은 아주 ‘녹아났다.’

<사진3>

그 길을 통과해 3만평 규모로 지어지고 있는 영농장에 도착했다. 전 지역을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대개 비닐하우스 안에서 채소를 재배하고 있었다. 이 곳에서 재배된 채소는 ‘온정각’이라는 관광객들의 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 현대아산과 북한 주민에게 동시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윈-윈 사업’의 모델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관광은 관광으로 즐기자**

고성읍에서 북한 주민들을 보고 돌아온 방문단은 사실상 그때부터 맥이 좀 빠졌다. ‘사람’과 ‘생활’을 겪을 수 없는, 동물원 구경 같은 관광이 더욱 허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 전부터 금강산 관광의 몇 가지 허점에 대해선 많은 얘기가 오가던 터이기도 했다.

“출입국 절차가 너무 까다롭다”는 건 이구동성이었다. 버스 안에서는 물론이고 숙소 뒤편으로 트인 장전항의 풍경도 카메라에 담지 못할 정도로 “통제가 심하다”는 불만도 있었다. “관광 코스가 단조롭고 숙박시설이 부족하다. 골프장이나 스키장 등을 만들어서 일반 중산층나 외국인들이 정치적 목적이 아니더라도 순수한 레저를 위해 방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회성 관광이 아니라 제주도나 설악산처럼 쉽고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 돼야 한다는 적절한 지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될 때까지 현대아산이 혼자 버티기는 너무 힘들다. 정부와 국민들의 애정을 가진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도 만장일치였다. 그런 맥락에서 방문단은 ‘현대아산 주식갖기 운동’에 대한 본격적인 참여를 결의했다.

한편으론 “북한의 문을 제대로 열기 위해선 관광객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북한의 빈곤에 대한 동정심이나 거리 곳곳, 금강산 자락 여기저기에 큼지막하게 내걸린 혁명구호에 대한 관광객들의 낯선 시선과 선입견은 그들의 빗장을 더욱 걸어 잠그게 할 뿐이라는 이유에서다.

새삼 북한 관광 안내원 임영준씨와의 대화중에 잠시 들었던 혼란은 그의 말을 받아들이는 기자가 모종의 선입견을 완전히 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간단한 원리에 도달했다. 하기에 금강산 사업이 ‘산’과 ‘사람’과 ‘생활’을 접할 수 있는 진짜 관광이 되도록 하려면 그저 관광을 관광으로 즐길 수 있는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길에 오르기를 권유한다. 그것이 금강산 관광사업 활성화에 벽돌 한장 올리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만으로도 마음은 충분히 무거우니까.

<사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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