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일부 소장파들이 들고 나선 이른바 '60세 이상 용퇴론'은 최병렬 대표의 경고조치와 대여공세로의 국면전환에 따라 표면적으로는 수습국면에 접어들었다. 29일 의원총회에서 소장파의 날이 선 반박이 즉각 튀어나오지 않은 정황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소장파의 발언 자제 배경에는 본격적인 '한판 승부'를 위한 전술적 후퇴의 의미가 크다. 내년 총선에서 앉아서 당하지 않으려면 한나라당도 바뀌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여전히 드높은 상황에서, '물갈이론'은 언제든 재등장할 수 있는 핵폭탄으로 잠복한 셈이다.
***4일 의원연찬회 격돌 예상**
일차적인 충돌 시점은 내달 4일로 예정된 의원연찬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최 대표가 당력 집중을 호소한 김두관 행자부장관 해임건의안 처리가 가부간 결정난 뒤이기 때문이다.
소장파 의원들이 주축인 '쇄신모임'은 1일 회동을 갖고 의원연찬회에서 쇄신 목소리를 강력하게 제기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들은 '60세 이상'이라는 나이에 따른 기준은 무리가 있다고 보고 있으나, 어떤 식으로건 세대교체를 위한 물갈이 기준을 제시키로 하고 의견을 모으고 있다.
여기에 대표 특보단장인 안상수 의원은 "연령 외에도 도덕성, 부패여부, 시대정신 등의 기준에 따라 나라와 당을 위해 용퇴하는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한나라당의 '재창당론'을 들고나선 상태다. 최소한 민주당이 하려는 '리모델링' 정도는 해야 내년 총선을 기약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9월 첫 주부터는 민주당 진로의 윤곽이 잡힐 당무회의(4일)와 신당추진기구의 출범(7일)이 몰려있어 한나라당을 제외한 정치권의 신당 바람이 거세게 시작되는 시기다. 상대적으로 그동안 '변화'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던 한나라당에 대한 소장파의 위기감 또한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정치권 신당 논의가 빠르게 전개될 경우, 한나라당 소장파의 '물갈이' 요구도 전면화할 가능성이 크다.
***재선의원 그룹, "헤게모니 놓칠 수 없다"**
홍준표 김문수 정형근 이재오 의원 등 강경성향의 재선의원들이 다수 참여한 '국익우선연대'는 소장파의 '물갈이' 주장을 반박하는 동시에,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를 비판의 타깃으로 삼고 있다. 이들은 당 개혁의 헤게모니를 소장파 의원들에게 빼앗길 수는 없다는 판단아래 양쪽을 공격하는 양상이다.
국익우선연대를 이끌고 있는 홍준표 의원은 "용퇴론은 세대갈등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는 만큼 바람직하지 않다"며 나이를 기준으로 한 용퇴론의 책임을 물어 일부 소장파와 당직자들의 교체를 요구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들은 또 3일 김두관 장관 해임건의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를 전면적으로 문제삼고 나설 공산이 크다. 가뜩이나 이 문제로 한달 여를 끌어온 마당에 그마저도 통과시키지 못할 경우, 홍사덕 총무의 탄핵 문제까지 거론하겠다고 지도부를 옥죄고 있다.
이들은 청와대 5자회동에 대해서도 "대표 선출 후 대통령과 처음 갖는 자리가 5자회동이 돼서야 되겠느냐"며 지도부의 대외적 위상에 대해서도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반면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된 중진의원들은 연찬회까지는 직접적인 발언을 자제하되, 소장파 등이 또다시 '물갈이론'을 쟁점화시킬 경우 정면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최병렬, 계보 끌어안기에 적극**
소장파, 재선그룹, 중진들사이의 대립 전선이 이처럼 복잡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당 안팎에 밀려오는 개혁요구를 막을 수도, 주도적으로 이끌 수도 없는 상황이 최 대표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행자부장관 해임건의안 처리까지는 시간을 벌어 놓은 최병렬 대표가 어떤 내분 수습카드를 제시하느냐가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단기적으로는 연찬회와 같은 날로 예정된 청와대 5자회동을 계기로 대여 강공 드라이브를 이어갈 공산이 크다.
한편 최 대표는 31일 박희태 서청원 전 대표와 함께 골프회동을 갖기로 한 것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대표실 관계자는 "전직 대표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통해 원활한 당 운영을 위한 조언을 구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의미부여를 경계했다.
그러나 지난 14일 회동에도 불구하고 앙금을 씻어내지 못한 서 전 대표와의 관계개선 차원에 무게가 실린다. 최 대표는 이에 앞서 지난 23일에는 김덕룡 의원을 만나 정국대응 방안 등을 논의하고 협조를 당부했었다.
이 같은 최 대표의 행보는 여전히 당내 각 세력을 분할점령하고 있는 계보 보스들을 끌어안기 위한 차원으로 읽힌다. 취약한 당내 기반은 대표 취임 후 지도력 누수의 한 원인으로 지목 돼 온 만큼 이들의 협조하에 장기적인 차원에서 리더십을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최근 홍인길 전 의원과 김현철씨 등에 대한 총선공천설이 오가는 등 YS와의 연합전선 가동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통합연대를 구성해 나간 '독수리 5형제'의 탈당사태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최병렬 체제의 향후 진로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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