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지난해 부산아시안게임에 이어 오는 21일 개최되는 대구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도 참가할 예정인 '북한 응원단'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발언을 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 대표, "북한선수단과 응원단 이례적으로 많이 와 신경써야"**
최 대표는 지난 8일 경부선 열차 추돌 부상자 위문차 대구지역을 방문한 뒤 다음달 대구에서 열리는 유니버시아드대회 조직위원회를 방문해, 대회 준비상황을 보고 받았다.
이 자리에서 최 대표는 현재 55%가량이 팔린 U대회 입장권 판매에 '당 차원의 협조'를 약속한 뒤 두가지 당부를 했다. 첫번째는 "대회기간동안 사고가 없도록, 특히 경기장이 분산돼 있으므로 교통사고가 없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최대 다수당 대표로서 당연한 당부였다. 문제는 두번째 당부였다.
최 대표는 "부산아시안게임 때 북한응원단은 생각있는 국민들을 눈살 찌푸리게 했다. 이번에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례적으로 많은 선수단과 응원단이 온 것 같다. 신경을 쓰시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고 황준동 한나라당 부대변인이 10일 전했다.
황 부대변인에 따르면, 최 대표는 또 다음날인 9일 대구지역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도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의장 자살후 공감대가 확산된 대북사업 지원과 관련, "어떤 이유로든 북한에 돈은 못준다"며 "달러를 줘서 핵을 만들지 않았나.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에 고폭실험 하는 것을 알면서도 10억달러이상 주지 않았나. 결국 이게 핵이 되지 않았나"고 그 이유를 밝혔다.
***최대표 발언의 두가지 문제점**
최 대표의 이같은 발언은 그가 정몽헌 의장 자살후 여론을 의식한듯 "한나라당이 통일반대정당이라는 수구적 이미지를 깨겠다"고 누차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냉전적 사고의 틀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이고 있는 반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 대표 발언은 두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첫번째는, 지난해 10월 부산아시안게임때 "북한응원단은 생각있는 국민들을 눈살 찌푸리게 했다"는 발언이다. 과연 그랬었나.
대다수 국민은 지난해 부산아시안게임에의 북한 참가를 분단이후 한국에서 열렸던 국제대회사상 최초로 이뤄진 뜻깊은 사건이었으며, 특히 2백80여명의 북한응원단은 경기장에서 한국응원단과 하나된 모습으로 가슴뭉클한 광경을 연출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 예로 지난해말 국내굴지의 인터넷 포털들이 네티즌들을 상대로 꼽은 '2002 10대 뉴스'에서도 북한응원단은 예외없이 10대뉴스중 하나로 꼽혔다.
또한 지난해 아시안게임중 조중동을 포함한 대다수 국내언론은 북한응원단의 일거수일투족을 상세히 보도했다. 이들 일부 언론은 북한응원단에 대해 '민족사적 의미'보다는 '외모 중심 보도'를 한다는 이유로 신랄한 비판을 받기까지 했을 정도로, 국내언론의 보도열기는 뜨거웠고 호의적이었다. 또한 안상영 부산시장을 비롯해 부산시 관계자들도 대회의 성공에 지대한 기여를 한 이들 북한응원단에 대해 극진한 예우를 다했다.
그렇다면 최대표가 말하는 '생각있는 국민'은 누구를 가리키며, 또한 반대로 '생각없는 국민'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북한응원단의 방한을 따듯한 동포의 감정으로 받아들였던 다수 국민은 과연 '생각없는 국민', 요즘 인터넷상의 표현을 빌면 '무뇌아'란 말인가.
최대표 발언의 두번째 문제점은 "이번에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례적으로 많은 선수단과 응원단이 온 것 같다. 신경을 쓰시는 것이 좋겠다"고 한 발언의 부적절성이다.
최대표의 이같은 발언은 대구 U대회에 참석차 오는 북한방문단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의 토로인 동시에, 경계심의 발로로 해석될 소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최대표가 말하는 '신경을 써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24시간 북한응원단의 뒤를 따르며, 남쪽을 선전선동하는 일이 없도록 장외공연 등을 사전에 차단하란 말인가.
최대표의 이같은 발언은 정몽헌 의장 자살직후 북한이 한나라당을 정의장을 죽음으로 내몬 주범으로 지목하며 연일 비판성명을 내고 있는 데 따른 신경질적 반응으로도 이해가능하다. 그러나 국회의석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제1당의 대표로서는 적절치 못한 발언이라는 게 일반적 지적이다.
만약 북한이 최대표 발언을 문제삼아 U대회 보이콧이라도 한다면, 최대표는 그 파장을 어떻게 담당하려는 것일까.
***"민족도 하나, 영-호남도 하나"**
북한 응원단은 오는 18일 방한할 예정이다.
여대생이 대부분인 북한응원단은 지난해 부산아시아경기 때처럼 취주악대 1백20명, 단순응원단 1백50명, 기술 등 기타 지원인력 36명으로 구성. 선수단보다 하루 늦은 18일 도착해 팔공산 기슭에 있는 경북 칠곡군 동명면 대구은행 연수원을 숙소로 사용키로 했다.
대회 주최측은 관악기, 타악기로 구성된 일종의 브라스밴드인 취주악대와 율동을 곁들인 이색응원을 펼칠 응원단이 부산아시안게임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대회 분위기를 띄울 최고의 흥행요인으로 자못 기대가 크다. 이들 북한응원단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2∼3차례 야외공연도 가질 계획이다.
이번 대회에서 북한팀에 대한 응원은 전국대학총학생회와 55개 시민단체 회원들로 구성된 '통일 U대회 시민연대'가 주도키로 했으며, 시민연대는 지난 5월부터 시민,학생들을 대상으로 북한 선수단 응원단을 모집했고,지난달 19일 5천명 규모의 '아리랑 응원단' 발대식을 갖기에 이르렀다. "통일 조국 우리는 하나다"를 응원구호로 선정한 아리랑 응원단은 북한팀 응원뿐 아니라 남북 교류사업,통일사진전 등의 공동문화행사도 펼칠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영-호남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함께 발족한 '영-호남 통일응원단'도 북한 선수단 서포터스로 활동한다. 여기에는 통일U대회 시민연대 회원을 비롯해 부산·경남지역과 광주·전남북지역 2백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참가했으며, 이들은 "민족도 하나,영-호남도 하나"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북한팀 응원은 물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영호남 통일 한마당' 등 민족 화합과 동일성을 확인하는 각종 행사를 펼칠 계획이다.
대구 달성군 주민들이 결성한 '달성사랑모임'도 1천2백여명의 회원들로 북한 선수단 서포터스를 발족시켰다. 달성사랑모임 회원들은 북한 선수들의 경기장마다 2백∼3백명씩 응원단을 구성,응원을 펼칠 예정이다. 요즈음 달성군 현풍면 달성군민체육관에서 응원연습이 한창이다. 이들의 구호는 "우리는 배달민족,우리는 하나"이다.
***히딩크, "남북단일팀의 감독 맡고 싶다"**
우리 국민들은 1991년 지바세계탁구선수권에서 현정화(한국)와 이분희(북한)를 앞세운 남북 단일팀의 여자단체전 우승과 같은 해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이 8강에 올랐던 것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좋은 성적이 아니라 남북한 선수들이 스포츠를 통해 서로 힘을 합쳐 승패이상의 속뜻이 담겨있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때로 반목하고 있는 두 국가나 지역의 악감정을 자극하는 '파괴력'을 내재하고 있기도 하나, 반대로 극도의 긴장관계를 완화시킬 수 있는 엄청난 '친화력'을 지니고 있다. 스포츠에 내재된 두가지 상반된 '힘' 가운데 어느 쪽을 사용할지는 철저히 사람의 몫이다.
남북 스포츠교류는 긍정적 측면에서 체제와 이념을 허물고 자연스럽게 민족적 동질감을 찾을 수 있는 전초기지가 돼야 한다. '월드컵 4강의 영웅' 거스 히딩크 감독은 지난주말 일본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남북이 만약 단일축구팀을 만든다면 한국 단일팀의 감독을 꼭 맡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남북의 하나됨'에 기여하고 싶다는 한 외국 스포츠인의 절실한 바람이다.
물론 북한이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도 응원단을 보낸 이면에는 분명 '정치적 노림수'가 깔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아시안게임에서 보여주었듯, 우리 국민은 그 어떤 정치적 노림수도 녹여버릴 수 있을 정도로 '광대한 용광로'로 성장해 있다.
그런 면에서 최대표의 이번 발언은 우리 국민의 광대한 친화력을 현실정치인의 잣대에서 파괴력으로 격하시킨 우를 범했다 할 수 있다. "민족도 하나, 영-호남도 하나"라는 슬로건의 참뜻을, 최대표가 깊숙이 되새겨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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