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1일 "대선자금 문제가 국민적 의혹으로 제기된 이상 여야 모두 투명하게 밝히고 가야 한다"면서 여야 모두에게 대선자금 전모를 밝힐 것을 촉구, '선(先) 자금공개'를 추진해온 민주당 방침에 제동을 걸었다.
민주당은 이에 이날 예정됐던 대선자금 공개 계획을 유보하는 등 당혹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노대통령, 민주당만의 先공개 반대**
노 대통령은 21일 오전 11시 청와대에서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대선자금에 관한 사회적 공방을 지켜보면서 안타깝고 착잡한 심경을 금할 수 없다"며 "역대 어느 선거보다 깨끗하게 치러졌다고 자부해온 지난 대선 과정이 새삼스럽게 국민들로부터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노 대통령은 "민주당의 책임있는 인사가 대선자금에 대해 한마디 실언한 것을 빌미로 야당은 정치공세를 펼치고 있다"며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지난 대선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 이룩한 소중한 성과마저 부인하는 상황에 이르러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여야의 대선 자금 공개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노 대통령이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내용은 지난 15일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제안한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문 실장이 이미 제안한 내용이 민주당 정대철 대표의 '실언'으로 촉발된 대선자금 논란에 있어 급한 불을 끄는 데는 주요했지만 또다른 정쟁으로 이어지자 이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노 대통령이 직접 기자회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공개는 여야 함께 해야"**
노 대통령의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특히 대선자금 공개 방법과 관련,한나라당이 청와대의 제안을 "민주당의 우선 공개"로 맞받아친 것에 민주당 이상수 총장 등이 21일 이를 공개키로 한 데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힌 대목이 주목된다.
노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여야가 함께 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거듭 밝힘으로써 민주당의 '선(先)공개' 방침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렇지 않으면 공개한 쪽만 매도되고 정치개혁에 아무런 실효를 거둘 수 없다"는 게 노 대통령이 '동시 공개'를 주장하는 이유다. 민주당이 우선 공개하고 이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될 경우 정권의 도덕성에 큰 흠집을 내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노 대통령은 이어 "공개만으로 그쳐서는 안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절차를 통해 철저하게 검증 받아야 한다"면서 "여야가 합의한다면 수사권이 있는 기관에서 조사하는 것을 전제로 특별검사라도 좋고 검찰도 좋다"고 주장했다.
***대선자금 공개범위 및 기부자 명단 공개 여부도 민주당과 차이**
노 대통령은 대선자금 공개 범위와 관련해서도, 대선후보 확정 이후부터 대선 잔여금까지 '전모'를 밝힐 것을 제안함으로써 9월 대선운동 개시후만 밝히려던 민주당 방침과 궤를 달리 했다.
노 대통령은 "선관위에 신고된 법정선거자금만이 아니라 각 당의 대선 후보가 공식 확정된 시점 이후, 사실상 대선에 쓰여진 정치자금과 정당의 활동자금 모두를 포함해야 한다"면서 "나아가 대선 잔여금이 얼마이며 그것을 어떻게 처리했는지까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지출뿐 아니라 수입금 내역도 공개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이를 공개했을 때 경제계가 정치자금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국제신인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만큼 재계가 자발적으로 공개하거나 이도 여의치 않을 경우 수사는 하되 자금을 제공한 기업이나 기업인은 철저히 비공개로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임으로써 기부자 이름을 '이니셜'로 처리하려던 민주당 방침에 반대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방식대로 기부 기업이름을 이니셜로 처리한다 할지라도, 결국 정치자금을 낸 주요 대기업들의 이름이 추정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노 대통령은 "정치개혁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면서 "낡은 정치의 악순환을 끊고 정치개혁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고자 하는 저의 충정에 정치권의 용기 있는 결단과 국민 여러분의 협력이 있으시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민주당 당혹**
노대통령의 이같은 대선자금 공개와 관련한 입장표명은 21일 먼저 민주당 대선자금을 공개하려던 민주당 지도부 방침과 다른 것이어서 적잖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노대통령의 회견 내용을 미리 인지한듯 이상수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확대간부회의에서 "오늘 당의 공식결의로 대선자금을 선공개하겠다는 입장을 준비했으나, 그저께 청와대측과 협의한 결과 오늘 대통령이 정치자금과 대선자금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는 것을 듣고 나서 입장을 정리해도 늦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유보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노대통령이 반대입장을 밝힌 만큼 민주당이 홀로 대선자금을 공개하기란 쉽지 않아 보이며, 그 결과 선(先)공개를 주장해온 조순형, 김근태 의원 등 당내 중도파 반발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아울러 여야 동시공개를 추진할 경우 한나라당의 반발도 예상되고 있다.
정가에서는 특히 이번 노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불신'을 표시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어, 정대철 대표 소환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민주당 지도부의 대대적 인사교체를 점치고 있기도 해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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