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15일 야당의 공격을 받고 있는 대선자금 논란과 관련, "차제에 여야 모두 지난 2002년 대선자금의 모금과 집행 내역을 국민 앞에 소상히 밝히고 여야가 합의하는 방식으로 철저히 검증받을 것을 제안한다"며 역공을 취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대선은 한국 정치사상 유래없이 깨끗하게 치러진 선거였다"면서 "따라서 작금의 대선자금을 둘러싼 논란은 정치발전에 도움이 안되고 국민에게 불편을 줄 뿐"이라며 이같은 제안을 했다고 이해성 청와대 홍보수석이 밝혔다. 노 대통령은 "단 이것이 경제에 주름살이 가도록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같은 제안에 대해 "민주당이 먼저 하라"며 수용을 거부했다.
***"정치권의 진솔한 고해성사가 필요하다"**
문희상 비서실장은 노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요점은 작금의 대선자금과 관련된 정치적, 사회적 논란에 대해 이제는 본인을 포함해 정치권 모두가 국민과 역사 앞에 진솔한 고해성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실장은 이날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고해성사'라는 단어를 계속적으로 강조했다.
문 실장은 "대통령은 시간 있을 때마다 정치개혁 소신을 피력했고 지역구도 타파와 정치자금의 투명화 두 가지를 가장 강조해왔다"면서 "그러나 이런 논란이 소모전으로 흘러 중요한 시간을 소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어차피 1백억이든, 2백억이든 여당의 대선자금이 노출됐고, 야당 대표로부터 직접 조사와 특검등의 말이 나온 이상 고해 형식으로 대선자금이 모두 공개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유인태 정무수석은 "선관위에 신고된 대선자금은 대선기간에 쓴 것에 국한된 것이지만 사실 그 이전에 대선운동 준비자금이 대선자금 이상으로 쓰일 수도 있다"면서 "고해성사 하자는 것은 대선전 준비자금까지 함께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실장은 또 '고해성사' 방법으로 "노 대통령은 양당이 합의한 기구나 위원회 등에 의해 검증돼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밝혔다. 또 사견임을 전제하면서 "여야 합의에 따라 특별법을 만들 수도 있다"면서 "이를 통해 면책을 한다든지 해서 법률적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해성 수석은 "검찰과 중앙선관위 조사가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여야가 합의한다면 어떤 방식이든 좋지 않냐"고 말했다.
***盧, 15일 아침 참모진 소집해 결정**
노 대통령의 이같은 입장은 '굿모닝게이트'과정에 정대철 민주당대표의 예기치 못한 발언으로 촉발된 대선자금 논란이 야당의 공세로 증폭되자 이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전날까지만 해도 "대선 자금 문제는 당에서 해명해야될 문제"라며 "노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일은 없을 것으로 안다"고 밝혔었다. 그렇지만 전날 이상수 총장이 "희망 돼지 저금통을 통해 모금한 돈은 4억5천만원"이라고 밝히면서 일부 언론에서 대선 자금 투명성 문제를 거론하고 나서자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선자금 문제는 대선직전 후보단일화를 통해 승기를 잡은 민주당보다 대선운동기간 내내 '대세론'을 주장하며 재계등지로부터 전폭적 지원을 받았던 한나라당에게 더 많은 약점이 있다"는 판단도 이같은 정면돌파의 주요 판단근거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날도 노 대통령이 대선자금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하기로 결정하고 오전 8시 20분께 문희상 비서실장, 문재인 민정수석, 유인태 정무수석 등을 관저로 불러 논의한 결과를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실장은 오전 9시 국무회의가 시작되기 직전 기자들을 만나 "대선 자금에 대한 노 대통령의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공개한 뒤 1시간 20여분 뒤 기자회견을 가졌다.
***한나라당, 예상대로 제안 거부**
문희상 비서실장은 '한나라당이 이같은 제안을 거부할 경우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이는 노 대통령의 제안일 뿐 수용 여부는 각 당에서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 수석은 '한나라당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어느정도라고 보고 있냐'는 질문엔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또 '한나라당이 거부할 경우 민주당이 먼저 공개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엔 "양쪽이 같이 공개해야 된다"면서 "한나라당이 더 썼지. 우리가 왜 먼저 공개하냐"고 말했다.
애당초 이같은 제안을 한나라당이 수용할 수 없을 것이란 판단에 기초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나라당은 예상대로"한마디로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라면서 "노 대통령이 먼저 진솔하게 대선 자금 전반에 대해 밝힌 뒤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여야가 함께 고백하자고 하는 것은 사태를 호도하려는 물귀신 작전"이라며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면책 대상 범위도 논란일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민주당에서 먼저 공개토록 지시할 경우 한나라당도 이를 따르지 않을 수 없어 노 대통령의 제안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럴 경우 현행 정치자금법에서 후원자의 뜻에 반해 후원자와 후원금의 규모를 밝힐 수 없게 돼 있다는 점에서 문 실장이 제기한 것처럼 여야 합의에 따른 특별법 제정 등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별법 제정시 기업 등 후원자에게 면책권을 주어지는 것은 별다른 이견이 없지만, 정치자금을 수수한 정치인들에게도 면책권을 줄 경우 논란이 예상된다.
문재인 민정수석은 이와 관련,"기업인들에 대해서는 처벌하는 식의 불이익은 일절 있어서는 안된다"면서 "그러나 불법적 정치자금 모금이 드러날 경우 정치인까지 면책을 전제할지는 국민 여론을 듣고 결정해야될 부분"이라고 말했다.
반면 유인태 수석은 '정치인들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말해 문수석과 다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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