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진보적인 일간신문은 입양특례법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취지가 담긴 기사를 내보냈다(<한겨레> 2013년 8월 4일, '높아진 입양 문턱 낮춰 주세요').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그 자신 입양부모임을 밝히면서 입양에 관련된 개인적인 소회도 더불어 기사에 녹여내었다. 자신은 입양부모인 바, 입양을 하고 나서 생활이 바뀌었는데 특히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하는 식의 삶을 청산했고, 일찍 귀가해서 입양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입양으로 말미암아 아내와의 관계까지도 더욱 원만해지게 되었다는 실로 아름다운 고백이 담긴 기사였다. 물론 개인적인 고백이 중심인 그런 기사는 아니었고, 입양특례법이 개정되어야 할 필요성을 다양한 통계와 인터뷰를 적절하게 배치해서 일견 매우 설득적으로 보이는 그런 기사였다.
그러나 그 기사는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종종 귀한 성찰과 깨우침을 주어온 한국 진보적인 언론을 대표하는 종이신문이 던질 만한 사회적 의제의 제기라고 보기에는 사실상 초라하기 그지없는 함량 미달의 기사였다. 입양 아동의 숫자가 감소하고 있는 것 자체를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성찰의 결핍, 가정법원의 허가제 도입의 실질적 배경에 대한 무지, 출생신고의무를 개정된 입양특례법의 문제점인 것처럼 적시하는 사실의 왜곡, 유기 아동의 증가를 개정된 입양특례법 탓만으로 돌리는 단견, 입양숙려제의 도입 배경에 대한 몰이해, 여론의 지평 왜곡을 가능케 하는 인터뷰 대상 선정의 협애성 혹은 편파성, 가정법원의 입양 판결 지연에 대한 지나치게 순진무구한 비판, 입양특례법이 개정된 후 국외 입양에 걸리는 시간이 5~8년에 이른다는 오보 등이 그것들이다.
필자가 어떤 점에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는지를 펼쳐보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인 바, 수회에 걸쳐 차근차근 말해보도록 하겠지만, 우선 먼저 미려한 필치로 고백하고 있는 입양 부모로서 사적인 삶에 대한 고백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조금 가리고 싶다. 왜냐하면 이 기사의 출발점은 바로 그런 사적 경험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아동 입양은 입양 부모의 인격 함양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한 사람의 인격이 가지런해지고 합당해지며 성숙하는 일, 그 자체는 너무나 소중한 일이고 비난을 받아야 할 여지가 없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당연히 이 세상의 어떤 부모든 특히 바깥일을 하는 아버지는 가정적인 삶에 있어서 자신의 모자람을 알아가고 더 가정적인 사람이 될수록 좋은 것이고 또 그렇게 되기를 꿈꾸는 것이 마땅한 일일 것이다. 일찍 퇴근하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이 땅 모든 아버지들의 로망이 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좋은 아버지가 되는 일만큼 어려운 일도 없거니와 또한 좋은 아버지가 되는 일만큼 고귀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입양이 그 수단이 될 수는 없다. 입양의 결과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입양의 감소를 걱정하면서 우리 사회가 아동을 더 입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자리에서 그 근거의 하나로 입양을 하고 났더니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은 좀 그렇다. 좋은 사람 혹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길이 아이를 입양하는 것이라고 말하기 전에, 이미 인격이 고매한 사람이 되고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 맞다. 아동 입양은 입양 부모의 삶을 완성해가는 수단이 아니다.
입양을 했더니 정말 행복하더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행복해지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이고, 모든 입양 가정이 다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무릎으로부터 시작해서 아랫배와 가슴골을 지나 입으로 솟아 나오는 기도 가운데서 바라는 바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 입양을 한다면 그것은 좀 아니다. 가정의 행복을 일구어 가기 위한 수단이 입양일 수는 없다. 한 인격적인 존재가 다른 인격적인 존재의 행복이나 의미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여서는 안 되겠기 때문이다.
한국의 입양문제를 총괄하는 준정부기관은 중앙입양원이다. 이 기관의 주요 설립 목적 중의 하나가 국내 입양을 활성화하는 일이다. 이 기관의 누리집에 나타나 있는 영문 슬로건은 'Adoption is Happiness(입양은 행복입니다)'이다. 입양을 권고하고 장려하는 문맥에서 '입양은 행복입니다'라고 했을 때, 그 말은 '입양을 하면 가정의 행복을 얻을 수 있으니 입양을 하십시오'라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입양한 아이의 필요를 진심으로 채워 나가는 것이 필시 행복일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행복은 결과적으로 따라오는 것일 뿐이어야 한다. 입양하면 행복하다는 표현은 그것이 무의식적 발화(發話)이든 의도를 가진 설파이든 결과적으로 한 인간을 다른 인간의 목적에 복무하는 도구로 전락시키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잠시 아동 입양이 다른 인간 혹은 국가의 목적 추구의 하위 수단으로 편제되어, 어린이들의 삶과 인권이 유린당해 온 역사의 그늘에 잠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이는 비록 거의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미세한 출발점의 차이가 얼마나 크고 다른 결과를 야기하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우리 가슴속에 경종이 울려 퍼지게 하기 위함이다.
아마도 몇 가지 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중 당시 오스만 제국이었던 터키는 100만에 가까운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했고, 아르메니아인 거주지에 남겨진 수만 명의 고아들을 러시아와 그리스의 가정들에 입양 배치했다. 입양이 터키 동부지역의 아르메니아인 인종멸절(genocide)이라고 하는 오스만제국의 국가목표달성의 한 하위수단으로 악용되었던 예라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은 노르웨이를 비롯한 유럽 각국의 점령지에서 독일병사와 현지 여성 사이에 태어난 소위 게르만 혈통을 타고난 아동들을 독일인 가정들에 입양 배치했다. 아동들을 순수한 아리안 혈통적 정체성에 결합하고자 했던 일종 종족 번식의 수단으로 입양이 악용된 다른 예라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국제연합과 국제적십자사는 이 아동들을 모국의 친생모 가족 곁으로 돌려보냈지만, 적국의 언어를 사용하는 이 아동들은 모국에서 재차 이방인이 되어야 했고 전쟁 패배의 기억을 몸으로 담지하고 있는 수치와 자괴감의 상징이 되어야 했다. 결국 대부분의 아동들은 친생모 가족으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시설로 보내져 성장해야 했다.
또 지난 3월 호주 정부는 20세기 중후반에 자행된 미혼모 아기 강제 입양에 대해서 국가 차원에서 사과를 했다. 미혼모와 그녀들의 아동을 결별시켜 소위 정상 가족으로 배치한 일이 미혼모와 아동에 대한 폭력이자 정상 가족 규범을 관철하기 위한 가혹한 수단이었음을 인정한 것이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입양의 역사도 다르지 않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 약 10년에 걸쳐 혼혈 아동의 해외 입양이 실천되었고, 해외 입양이 시작된 그때부터 지금까지 해외 입양 아동 중 12만여 명, 국내 입양 아동 7만여 명이 미혼모의 아동이었다. 결국 우리는 우리 안의 인종주의 규범과 정상 가족 규범을 관철하는 수단으로 아동을 해외의 가정으로 혹은 국내의 정상 가족으로 입양 배치했다. 비록 이런 실천이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실제로 실현하는 수단이었을 수 있지만, 아동을 친생 가족의 품에서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일이고 또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점에서 비추어 볼 때, 거시적 담론의 층위에서는 입양이 우리 사회의 인종주의와 정상가족 규범을 위협하는 일탈적 존재들에 대한 일종의 사회정화(social purification) 조치의 하나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입양은 역사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언제나 아동의 최선의 이익보다는 아동이 타자의 이익의 수단이 되기 쉬운 제도라는 것은 이미 학계에서도 상당한 수준에서 합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입양한 아버지로서 소박한 생의 기쁨을 말한 기자의 미시적 차원의 행복한 고백을 빌미삼아 좀 더 크고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을 하자고 한 셈이다. 논의를 다소 침소봉대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가 있어 비행기가 날고 어둠이 있어야 비로소 별이 빛날 수 있듯, 담론은 언제나 상대방의 논의 전개로부터 시작될 수 있음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이런 방식으로 논의의 물꼬를 트는 일이 용인될 수도 있으리라.
사실 한국계 입양인 학자들은 종종 입양국과 입양 부모의 가치 추구의 규율 아래 놓였던 자신들의 삶에 대해서 입양국 다문화주의의 마스코트로 여김받았던 느낌을 회고한다. 심지어 어떤 입양인들은 자신들의 삶이 입양 부모들을 위한 이국적인 애완동물이나 관광 기념품처럼 여겨진 경험을 토로하기도 하며, 자선의 대상이나 박애주의의 개인적인 프로젝트로 간주되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말하기도 하다. 우리는 이와 같은 입양인들의 토로를 통해서 비록 입양 부모가 선의에 입각해서 입양을 했다고 하더라도, 입양이 입양 부모의 시선과 경험에서 해석되고 그들의 입양 부모들의 생의 성장과 행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에 입양인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용인되기 어려운 수준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난 세기 파리 근교에서 정신지체 장애인들과 공동생활을 하면서, 세계적 지평에서 정신지체 장애인 복리에 관한 새로운 담론을 이끌어 내었던 장 바니에(Jean Vanier)는 '나는 착한 일을 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지난 세기 북미와 남미 그리고 유럽을 오가며 서구 근대의 문명사적 일탈을 가장 날카롭게 지적했던 이반 일리치(Ivan Illich)는 캐나다 방송 CBC의 데이비드 케일리와 한 대담에서 '나는 가난하고 곤궁한 사람들을 보살피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얻어맞아 쓰러져 있는 유대인을 구해주는 사마리아 사람, 유대인을 구해주는 팔레스타인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예수 시대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차별하고 배척하며 억압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웨스트뱅크지역과 가자지역의 거대한 감옥에 가두고 억압과 파괴를 일삼고 있다.
이반 일리치가 하는 말의 뜻은 가난하고 곤궁한 사람을 구원하려 하기보다는 그들을 가난과 곤궁에 내몰리게 하는 악과 거짓에 빠져 있는 가해자들을 그 악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어 진정한 인간의 길을 걷도록 돕는 것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바로 그것이 그로 하여금 가난하고 곤궁한 사람들에 대한 온정주의적 접근을 강력하게 거절하면서, 대신 온정주의의 서식 환경 자체를 타파하는 일을 통해서 더 이상 온정주의가 필요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에 헌신하고 싶다는 말일 것처럼 보인다.
온정주의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의에 생의 의미를 부여하는 자리에만 머물러 있기 쉽다. 온정주의는 자신과 사회를 바꾸어 사람들이 더 이상 곤경에 처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그래서 더 이상 온정의 손길을 내밀 일이 없는 사회에 대한 열정과 전망을 품는 일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듯이 보인다.
입양 부모가 입양의 낭만에 젖어 있고, 부모됨의 기쁨과 성숙의 기회에 대한 찬사를 돌리고 있을 때, 그는 입양아동의 친생부모와 함께 살 원초적 필요가 충족되지 못한 일에 대한 공감과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타인의 필요가 충족되고 있지 못한 일에 대한 죄책감을 잊어버리기 쉬울지 모른다. 모르핀으로 잠시 통증을 잊은 사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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