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가 오는 6월20일 미국 디펜스포럼 재단 초청으로 워싱턴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져, 황씨의 의회 증언 내용이 주목된다. 황장엽씨의 외국여행은 지난 97년 4월 망명후 6년여만에 처음 있는 일로, 그의 미국의회 증언후 미국내 매파의 대북 강경책이 한층 힘을 얻을 것이라는 관측을 낳고 있다.
***고건 총리, “본인이 희망하면 원칙적으로 방미 허용”**
재미 탈북인권 운동가인 남신우씨는 지난 17일 “디펜스포럼재단 윌리엄 미든도르프 이사장이 16일 워싱턴 의회에서 열린 디펜스포럼 회의에서 탈북자동지회 명예회장인 황장엽씨가 연사로 초청돼 다음달 정례회의에 참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면서 “다음 정례회의는 6월20일 낮 하원 건물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미든도르프 이사장은 “디펜스포럼 재단은 지난해에도 황씨를 초청했으나 당시 한국정부가 황씨의 방미를 허락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이번에 새로 출범한 한국정부는 황씨의 방미에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남씨가 전했다.
황씨의 방미를 적극 추진중인 디펜스포럼 재단은 지난 2월 황씨의 방미 초청장을 전달한 데 이어 3월에는 서울에서 황씨를 면담하고 황씨의 방미 의사를 직접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씨는 “황씨가 디펜스포럼측 초청장을 받은 즉시 외교통상부에 여권을 신청했다”면서 “그러나 아직까지 국가정보원의 신원조회 허가가 나오지 않아 5월초 현재까지 여권이 발급되지는 않은 상황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고건 총리도 19일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황씨의 방미허용 문제에 대해 "정부는 미국에서 초청하고, 본인이 방미를 희망한다면 원칙적으로 허용한다는 방침"이라면서 "다만 그가 고위급 망명인사이기 때문에 특별보호를 받아야 하며, 신변안전에 대해 양국간 긴밀한 협의가 있어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에 앞서 황씨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 리처드 루가 상원외교위원장, 헨리 하이드 하원 국제관계 위원장, 크리스토퍼 콕스 하원의원 등 미 행정부 및 의회 지도부에 서신을 보내 방미를 지원해주도록 요청했었고, 최근에는 라종일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과도 만나 방미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달초 황씨 방미요청과 관련 “새 정부는 투명성을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추진한다는 게 기본입장이며 황씨의 방미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말해 긍정적인 견해를 보인 바 있다.
황장엽씨 방미는 그러나 DJ정부 시절에는 남북관계 악화를 우려한 우리 정부의 반대로 사실상 성사되지 못했었다.
***황씨, 노무현정부 출범후 활발한 활동**
황씨의 방북외에도 황씨가 대표회장을 맡은 북한민주회협의회(북민협)가 지난 3일 발족하는 등 최근 황씨의 활발한 행보도 주목거리다.
5백여명의 회원을 가진 북민협은 발족 성명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한의 통일을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북한체제의 민주화가 촉진돼야 한다”며 “북한 체제문제와 인권문제를 같은 차원에 두고 북한 민주화 촉진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씨는 또 개인 연구소로 쓰일 건물이 지난달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완공돼 곧 연구활동을 시작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 건물은 황씨 남한 정착금과 10여 권에 달하는 원고료 등 자비로 지어졌으며 별도의 현판식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는 이곳에서 7월께부터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과 탈북 학자 4∼5명 등 10명 안팎이 주로 통일정책과 북한 실상 및 인권유린 실태 등을 연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초청자 디펜스포럼 재단, 럼즈펠드가 후원**
황씨의 방미 및 그의 증언내용 못지않게 관심을 끄는 대목은 황씨의 방미를 초청한 디펜스포럼 재단의 목적에 있다.
이 단체는 헤리티지 재단이나 허드슨 연구소 등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우익단체들에 비하면 영향력이 크지 않으나, 의회와의 긴밀한 유대를 바탕으로 우익의 정책 이슈를 의회에 설명하고 여론화하는 보수 단체로 알려졌다. 미정부내 최대 강경파인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도 1990년 이래 이 단체의 후원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디펜스포럼 재단은 1997년과 1999년에도 황씨에 대한 방미 초청장을 보낸 바 있으며, 1997년엔 탈북자인 최주활씨와 고영환씨, 1998년엔 이순옥씨와 강철환씨 등을 초청해 강연회를 열고 미국 의회관련 청문회에도 출석시킨 바 있다.
이에 따라 황씨의 증언을 통해 미국의 대북 강경노선을 강화시키는 것에 초청 목적이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북한에 대한 미 의회내 강경파들의 발언권을 강화시켜 미국의 대북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황씨는 그간 각종 강연회와 저술활동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과 북한 인권 현실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해 온 만큼, 이번 방미가 성사되더라도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디펜스포럼 재단이 최근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 문제에 대한 여론 환기작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어, 황씨의 방미를 계기로 북핵문제에다가 북한인권문제까지 연계돼 한층 문제가 복잡해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기도 하다.
여러 모로 한미정상회담을 전후해 국내외 보수세력들의 발언권이 강화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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