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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뿐인 민관공동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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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허울뿐인 민관공동조사

박근형의 새만금 리포트 <19>

***허울뿐인 민관공동조사**

‘새만금 민관공동조사단’(약칭 조사단)은 1999년 5월 1일부터 활동에 들어갔다. 이 조사단은 해양생태, 수질보전, 경제성 3개 분과위원회로 나눠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으며, 2000년 4월까지 보고서를 완성하기로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보고서를 완성하지도 못했고, 조사단장을 맡았던 이상은 환경정책평가연구원장이 모든 의견을 종합한 뒤 개인 의견을 덧붙여 2000년 8월 16일 국무총리실 수질개선기획단에 제출하고 해산했다.

원래 계획했던 조사기간은 1999년 5월 1일부터 2000년 4월 30일까지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2000년 6월 30일까지 활동했고, 1달 반 동안 시간만 끌다 이상은 조사단장이 최종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종료했다.

이 조사단의 구성인원은 30명이다. 대학교수와 연구기관 연구원 등 민간전문가 20명과 농업기반공사 2명을 포함한 관계부처 담당 국장 9명, 그리고 이상은 조사단장이었다. 민간전문가 20명 중 10명은 농림부와 전라북도가 추천한 인사였고, 나머지 10명이 환경단체가 추천한 인사였다.

윗 문단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보자. 정부와 전라북도가 추천한 전문가가 10명이고, 환경단체가 추천한 전문가가 10명이다. 환경단체가 추천한 인사 중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은 나중에 ‘조건부 찬성’으로 돌아서 환경단체 욕을 잔뜩 먹었다.

정부 및 관계기관 국장급 인사 9명은 연구 활동과 사업 찬반에 참여하기 위해 조사단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행정과 자료지원을 하기 위해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공무원이 들어왔다. 이 9명에 농업기반공사 2명, 전라북도 1명, 농림부 1명이 들어 있다. 새만금사업 반대 입장을 갖고 있던 환경부와 해양수산부에서 각각 1명이고, 나머지는 건설교통부, 행정자치부, 기획예산처 각각 1명이다.

출발부터 사업을 강행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직한 냄새가 나고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진행했다.

3개 분과위원회 모두 말썽 많았지만, 특히 경제성 분과가 가장 심했다. 경제성 평가는 이 사업이 어떤 환경영향을 어느 정도로 미칠지, 또 수질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나빠질지 알아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장차 새만금사업에 들어갈 비용을 어떻게 산출하고, 이 사업으로 얻을 각종 편익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정할지 5명(2명 정부 추천, 1명 전라북도 추천, 2명 환경단체 추천)의 민간위원이 머리 싸매며 치열하게 토론해서 결정해야 한다.

이런 과정은 분과위원회 조사계획 수립과 전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것이 새만금 민관공동조사단 운영지침이다.

그러나 경제성 분과위원장이었던 임재환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분과위원회 위원들의 조사방법론에 대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국토확장가치, 신규갯벌창조가치, 담수호창출효과, 홍수피해방지효과, 인공어초효과 등 합의하지 않은 연구를 진행했다.

또 전체회의를 거치지 않고 조사계획을 마음대로 변경했으며, 경제성 분과위원회에서 합의하지도 않은 내용을 마치 공동의 합의내용인양 전체회의에서 발표해 지탄을 받기도 했다.

예를 들어 농지확보가 목적인 새만금간척사업을 진행해 생기는 토지의 가치를 도시용지(주택, 공장, 상업지역) 땅값으로 계산해 편익을 추정하는 등, 새만금사업의 애초 목적과 달라 인정할 수 없다는 분과위원과 전체회의 위원들의 지적사항을 무시하고 연구를 진행했다.

전체회의 위원들은 조사결과의 분야간 연계성을 확인하고 사업 타당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각 분과 조사결과를 토대로 토론과 검증을 거칠 것을 요구했고, 조사단장도 그렇게 할 것을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나 이상은 조사단장은 각 위원들이 맡은 분야의 조사가 끝난 뒤에도 그 결과에 대해 위원들 서로 간에 정보를 교류, 종합하고 토론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

새만금사업의 핵심 쟁점은 갯벌이 사라짐에 따라 벌어질 환경영향과 새만금호가 과연 썩지 않고 농업용수로 쓸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경제성이 있는 사업인가, 바로 이 3가지다. 이 중 한 가지라도 문제가 있는 것이 밝혀지면 모든 위원들은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결정하는 것이 순리다.

그럼에도 이상은 조사단장은 서로 간에 정보를 교류하고 종합하는 토론기회를 마련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위원들은 사업 계속 시행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2000년 6월 29일 마지막 전체회의에서 사업진행 여부에 대한 결론 없이 모든 분과위원들의 의견을 보고서로 내기로 결정하고 조사단을 해산했다.

따라서 조사단장이 정부에 제출하는 최종보고서는 종합의견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은 조사단장은 1달 반 동안 시간을 끌다가 8월 16일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을 ‘종합의견’이라 하여 결론으로 실은 최종보고서를 수질개선기획단에 공식 제출했다. 위원들은 이 사실을 나중에 통보받았다.

이상은 조사단장이 제출한 보고서에 이렇게 나와 있다.

○분과별 민간위원(20명)의 사업계속 추진여부에 대한 의견을 분석한 결과 ‘계속시행’ 11명, ‘중단’ 9명으로 나왔으며, 정부위원(9명)의 의견은 6개 기관 7명(농림부, 건교부, 행자부, 기획예산처, 전라북도, 농업기반공사)의 경우 환경친화적으로 ‘계속 시행’, 2개 기관 2명(환경부, 해양수산부)은 사업에 대한 견해와 대책만 제시하고 ‘입장 유보’로 나왔다.

○수질보전분과에서는 ‘계속 시행’이 3명, ‘중단’이 4명이었다. 분석 결과 수질목표 달성 가능성이 사업추진의 중요한 관건이므로, 사업을 계속 추진하기 위해서는 조사단에서 제안한 환경피해 최소화 방안을 실천하고, ‘새만금유역수질보전대책위원회(가칭)’ 등을 구성해 수질개선대책의 이행과정을 확인․평가하면서 사업을 시행해야 한다.

○조사단장을 제외한 전체위원 29명 중 ‘계속 시행’이 17명, ‘조건부 찬성’이 1명, ‘중단’이 9명, ‘입장 유보’가 2명이다.

○새만금사업이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현 시점에서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합의는 이루지 못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이런 짓을 하고 있다. 민간위원들은 처음부터 찬반의 시각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위원들이 각각 반반씩 위촉됐다. 이 조사단은 조사내용의 객관적인 결과가 무엇이었나를 밝히는 것이 목적이었지 찬반 위원 수로 사업시행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참여한 위원들이 아니다. 또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합의를 이루지 못했지만, 사업을 계속 시행해야 한다는 합의도 이루지 못했다.

수질보전분과 위원이었던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정욱 교수와 경제성분과 위원이었던 이정전 교수는 2000년 8월 29일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새만금간척사업 민관공동조사단 최종보고서 내용시정 요청 기자회견’을 가졌다. 당시 김정욱 교수는 매우 흥분한 목소리로 분을 삭이지 못하며 기자회견을 이끌었다.

환경운동연합은 다음날 8월 30일 세종문화회관 분수대에서 이상은 단장을 상징하는 꼭두각시가 총리실과 농림부․농업기반공사에 의해 조정당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나는 8월 31일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정욱 교수실에서 김정욱 교수를 만나 30분간 이야기했다.

“혹시 협박도 받으셨습니까?”

“말도 못하게 받았어요.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편지와 전화로 계속 협박을 해서 내 손으로 개인 홈페이지도 폐쇄하고, 한동안 전화선도 끊어버렸어요. ‘엉터리 자료를 발표하지 말라’, ‘보고서 내용을 사전에 발표하지 말라’, ‘전라북도의 발전을 막지 말라’, ‘집을 불질러버리겠다’.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나는 이정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를 2002년 5월 22일 서울대 교수실에서 만났다. 같이 점심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이 때 당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민관공동조사단 활동을 하면서 싸운 기억 밖에 없어요. 또 경제성 분석이라는 것도 수질분석과 환경영향분야 결론이 나와야 정확한 계산을 해서 경제성이 있다 없다 말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합의도 안 된 상황에서 경제성 계산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임재환 교수는 다른 한 명과 경제적으로 타당하다는 보고서를 제출했어요.”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민관공동조사단의 조사라는 게 처음부터 사업을 강행하기로 작정하고 시작한 조사였어요. 나는 경제성 분석을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나한테 ‘경제적 타당성 계산’ 업무를 주지 않고 ‘오염복원비용 계산’ 업무를 주더라구요. 내가 새만금사업 반대하는 사람으로 찍혀 있으니까 처음부터 이런 일을 맡긴 거에요. 그렇다면 오염복원비용을 어떻게 계산하느냐. 박승우(서울대 농대)․김정욱(서울대 환경대학원)․홍욱희(세민환경연구소) 이 세 사람이 수질연구 해서 이 사업을 하면 어떻게 얼마나 오염되겠다는 데이터를 나에게 줘요. 그러면 나는 그걸 가지고 계산하는 거에요.”

“그 때 상황이 어땠는 줄 알아요? 박승우 교수가 계산한 것을 나에게 줘요. 그러면 나는 열심히 계산해요. 그런데 김정욱 교수가 ‘그거 틀렸다’ 하고 자기가 계산한 것을 줘요. 그러면 나는 또 열심히 계산해요. 그런데 또 홍욱희 소장이 ‘그거 틀렸다’ 하고 자기가 계산한 것을 줘요. 나라고 별 수 있나. 또 열심히 계산해요.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어.”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타당성 분석 한 거 보니까, 이건 완전 엉터리였어요. 너무나 엉터리라는 건 경제학 사람들은 지금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나는 계속 시비를 걸었죠. 그랬더니 나한테 시비만 걸지 말고 대안을 제시하라는 거야. 그게 2000년 1월이에요. 하지만 조사단 운영은 4월에 끝나잖아요. 그래서 3달 만에 보고서를 제출했어요. 사실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어떻게 3달 만에 보고서를 만들어요.”

“하지만 다행히도 이미 새만금사업 강행을 위해 노력한 한갑수 농림부장관이 1988년 한국산업경제연구원 원장으로 있었을 때 이 한국산업경제연구원이 새만금사업 경제성을 평가한 보고서가 있었어요. 그 보고서는 ‘농업용으로 경제성 없다, 반공업용으로 경제성이 있다’고 결론지었어요. 반공업용은 말이 안되요. 물 썩으니까. 그래서 농림부는 논으로 만든다고 계속 주장하는데 이미 경제성 없다고 나왔잖아요. 또 그 보고서 읽어보니까 참 잘 되어 있었어요. 나는 그 보고서에다가 보완만 한 거에요. 그랬기 때문에 3달 안에 가능했던 거에요.”

“이걸 가지고 그 사람들은 부실한 보고서니, 연구를 게을리 했다느니 이런 소리를 하고 있어요. 나를 처음부터 경제적 타당성 분야에 넣었으면 좋은 보고서 나왔다구요.”

이제 환경단체와 종교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은 새만금사업 반대투쟁 밖에 없었다. 이들은 2000년 9월부터 2001년 6월까지 격렬하게 운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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