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미국에서 들불처럼 번졌던 베트남전 반대운동은 오늘의 미국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가. 반전운동에 헌신했던 당시의 젊은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미국의 일방적인 이라크 공격에 대해 고뇌 끝에 찬성표를 던졌던 일부가 있었다. '리버럴(liberal)'이라 불리던 이들이 내세웠던 명분은 후세인이 부시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다른 한 무리는, 저 유명한 '네오콘(neo-cons)'들이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네오콘들의 사상적 연원이 정치사상가 레오 스트라우스라고 분석했다. 그들의 사상적 궤적을 추적하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일이겠지만 어찌됐건 부시 미 행정부 초강경 대외정책의 주역, 신보수주의자들도 알고보면 베트남전 반대시위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사람들이었다.
<사진: 러미스>
그러나 '선의로 포장된 길'을 따라 '지옥으로 간' 이들이 전부는 아니다. 치열한 고민으로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키고 과감한 행동으로 평화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도 있다. 많다.
그들의 대표격인 반전평화운동가 더글러스 러미스(Douglas Lummis)가 한국을 방문했다. 제비뽑기가 가장 민주적인 선거 방식이라고 주장하고, 근대 국민국가의 폐해를 폭로하며, '대항발전(counterdevelopment)'이란 개념으로 근대 이후를 그리는 근본주의적 민주주의자 러미스. 그토록 반대해왔던 이라크 전쟁이 끝난 지금, 그가 느끼는 소회는 어떤 것일까.
***"미 제국이 비교적 낫다고? 사스로 죽는 게 암으로 죽는 것보다 좋나?"**
더글러스 러미스는 서슴지 않고 미국을 '제국'이라고 불렀다. 미국 언론은 물론 행정부 관리들도 미국을 제국이라고 부르는 최근의 상황을 소개하며 그는 "그것은 일종의 '붐'이다. 이는 전혀 새로운 상황이다"고 말했다.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가진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가 과거 로마제국 시대나 대영제국 시대보다 낫다는 주장도 있다는 말에 러미스는 허탈해했다. "사스로 죽는 게 암으로 죽는 것보다 좋다고 할 수 있나?"고 반문했다. 미국법도, 쿠바법도, 국제법도 적용되지 않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관타나모 수용소 포로들의 현실을 상세히 소개하는 것으로 그는 대답을 대신했다.
러미스는 자신을 '평화주의적 현실주의자'로 규정했다. 그가 말한 '현실'은 역사가 가르쳐주는 현실이었고 '폭력으로부터의 보호'를 명분으로 자국민들을 수없이 죽여왔던 근대 국민국가의 현실이었다. 그는 평화와 대항발전으로 그같은 현실을 타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9일 대구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주최한 포럼 "미국과 세계 평화" 발표를 위해 방한한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는 미국 출신의 정치사상가로 일본에서 오랫동안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도 오키나와에 머물며 반전평화운동을 벌이고 있다. 환경운동 격월간지 <녹색평론> 기고를 통해 한국에 알려졌으며 그의 저서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녹색평론사)가 번역, 출간된 바 있다.
다음은 더글러스 러미스와의 이날 인터뷰 전문이다. 전쟁과 미국, 근대국가의 앞날에 대한 그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과의 아이러니한 만남**
- 한국은 몇 번째 방문인가.
= 세번째다. 첫 번째는 오키나와에서 미 해병대에 복무하던 1960년, 훈련 때문에 왔었다. 두 번째는 26년 전쯤, 김지하 시인 석방 촉구 지지모임의 일원으로 재판을 보러 왔었다. 재판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법정에 들어서면서 그는 방청석 쪽으로 고개를 돌려 친구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 친구들중 한 사람이 내가 왔다고 그에게 소리를 쳤다. 김지하 시인도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아주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 그후 김지하 시인을 본 적이 있는가.
= 없다. 꼭 한번 보고 싶다.
<사진: 인터뷰 장면>
- 반전운동과 미군철수 운동에 헌신적인 당신이 과거 해병대에 근무했다는 것이 흥미롭고 아이러니하다.
= 58년부터 61년까지 미 해병대에 자원, 근무했다. 대학을 마치고 해병대에 가면 정부로부터 대학 등록금과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 때문이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나는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 그러나 당시의 내 생각은 정부와의 계약을 깰 만큼 충분히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복무 약속을 지켰다.
군대를 마치고 미국에 잠깐 갔다가 그해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일본어를 공부했다. 당시는 일본 역사상 반체제 운동이 가장 격렬했던 시기였는데, 일본 학생들과 수업을 듣고 평화헌법 9조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내가 공부하던 일본 대학의 학생 문화는 내 생각을 바꾸는 결정적인 요소였다.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63년 UC 버클리로 돌아갔다. 당시는 미국이 베트남전에 개입하면서 학생들 사이에서 반전운동이 활발했던 상황이었다. 나는 거기에 깊숙이 개입했고, 60년대 버클리에서 시작된 '신교육(new education)'을 경험했다.
***'충격과 공포' 작전은 전형적인 테러 전술**
- 이라크 전쟁 얘기를 해보자. 오늘 발표 주제가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다. 이번 전쟁을 어떻게 보고 있나.
= '충격과 공포'는 미국의 작전명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그 작전을 쓰지 않았다. 작전대로라면 91년 1차 걸프전때 40일간 발사한 양의 미사일을 개전 24시간만에 다 써야 했다. 둘째날, 셋째날도 그만큼의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이라크 정부과 군사령부를 완전히 파괴했어야 했다. 그러나 미국은 그만큼의 미사일을 사용치 않았다. 개전 초기에 사용한 미사일은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대신 그들은 지상군을 투입했다. '충격과 공포'대로 했다면 지상군을 보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공군력에 의지한다는 작전이 먹히지 않았다.
부시 미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을 대테러전쟁이라고 이름 붙였다. '충격과 공포' 작전의 문제는 그 자체가 테러 전술이라는 것이다. 테러리즘은 민간인들에 대한 무차별적 살해를 의미한다.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구분하지 않아 어느 누구도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지 못한다. '충격과 공포'작전은 테러리즘의 속성과 똑같다.
테러라는 용어에 대해 말하겠다. 유럽어에서 테러는 정치적인 용어로, 프랑스 혁명때 나온 말이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시작되면서 나온 이 말은 '정부에 의한' 억압 정책을 뜻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혁명정부는 법치주의를 따르지 않았다. 무고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됐다. 법을 지키면 구속되지 않아야 하는데 아무도 자신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자신이 무엇을 했건 무차별적으로 구금되고 살해됐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도시를 폭격하는 것을 '테러 폭파'라고 불렀다. 독일 왕립 공항에 대한 폭파를 명령한 처칠 수상도 그 작전을 '테러 폭파'라고 불렀다. 테러는 도시 전체를 파괴하는 정규군 전술의 하나였다. 과거에 나온 옥스퍼드 사전에서도 테러의 첫 번째 뜻은 '정부에 의한 폭력'이었다.
그러나 지난 10~20년 전부터 미국은 반체제, 비정부 단체가 행하는 폭력만을 테러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 테러의 개념에서 정규군에 의한 폭력을 제외한 것이다. 이것은 속임수였다. 미 정규군의 작전에서 테러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무차별 학살이라는-를 떨쳐내기 위한 것이었다. 자신들도 테러를 하면서 반체제 단체의 폭력만을 테러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번에 사용한 미국의 작전은 (미국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테러라는 말에 가장 걸맞다. 간단히 말하자면 모든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인다는 것이다. 미국이 진정으로 테러를 막고자 했다면 집속탄이나 MOAB 같은 전략무기를 대테러 전쟁에 사용해서는 안됐다. 노암 촘스키는 미국이 진정으로 테러를 없애고자 했다면 그같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했는데 아주 적절한 지적이다.
<사진: 미국 무기>
'포위' '공격' '폭격' 같은 군 작전은 정규군이 하건 비정규군이 하건 개념상의 변화가 없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은 적들이 하는 행동만을 테러라고 말한다. 비전투원에 대한 무차별적 사살이 자행되면 어느 누구도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공포에 쌓이게 된다. 테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다지 많은 사람을 죽일 필요도 없다. 이것은 심리적인 전술이다.
***"미국은 명실상부한 '제국'"**
- 역사상 어떤 강대국국보다 더 강한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미국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다.
나를 비롯해 베트남전 반대운동을 했던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소위 '제국주의'를 반대했다. 그러나 정부 관리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제국주의적이라고 하지 않았다. 미국의 정책을 지지했던 언론계와 학계도 마찬가지로 제국주의를 운위하지 않았다. 그들은 "미국은 주권국가의 하나일 뿐이지만 리더십이 있고, 모든 나라들의 주권과 국제법, 유엔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 취임 이후 그런 경향이 없어졌다. 부시 행정부를 지지하는 학자와 언론인들까지도 '미 제국'이란 말을 쓰기 시작했다. 미 제국과 제국주의 일반에 대한 것은 언론 기사와 책에서 일종의 붐이 되고 있다. 극우 보수주의자들도, 일부 자유주의자들도 모두 "미국이 제국으로 가고 있고, 이미 제국이 됐으며, 따라서 세계 제국으로서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대단히 새로운 현상이다. 미국이 스페인과 전쟁을 벌여 필리핀과 쿠바, 푸에르토리코를 차지하려던 1세기 전에도 제국주의와 제국이란 말이 있긴 했다. 그러나 그건 아주 짧은 기간동안의 유행에 불과했고, 전세계적으로 힘을 뻗힌 제국은 아니었다. 대영제국과 프랑스제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부 지지자들까지도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라틴어 용어를 쓰고 있다. 그것은 로마 제국주의를 뜻하는 '팍스 로마나'에서 온 말이다. 이는 한 나라가 여러 나라에 군대를 주둔시켜 평화를 유지한다는 하나의 모델이었다. 그 말은 하나의 상황언어로 그것이 지금 미국에 쓰이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다.
- 어떤 점에서 '제국'이라고 할 수 있나.
지난 2년간 미국 정부는 스스로에게 세 가지 새로운 권한을 부여했다. 첫 번째는 '선제공격' 권한이다. 선제공격은 '침략(aggression)'이다. 유엔헌장 권한 밖에 있는 무법적인 것이다. 2차 대전 종전후 열린 뉘른베르크 전범재판과 도교 전범재판에서는 '전쟁상태가 아닌 곳에 전쟁을 일으킨 것'을 범죄로 규정, 전범들을 사형시켰다. 선제공격은 그것과 다를 바 없다. 미국의 태도는 '우리는 전쟁을 일으킬 권한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진배없다. 부시 대통령은 자주 그 권한을 말해왔고, 두 번의 전쟁(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그 권한을 행사했다.
미국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두 번째 권한은 '정권 교체(regime change)' 권한이다. 미국이 세계 모든 나라의 정부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두 번 실행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한국과 가까운 나라(북한을 의미)도 그 리스트에 있다. 누군가가 럼즈펠드 국방장관에게 "이라크에 자유선거가 실시돼 이란과 유사한 이슬람 근본주의 정부가 들어설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그런 일은 없을 거다"고 말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제한하겠다는 뜻이다.
세 번째 권한은 미군과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을 외국에 보내 미국에 한번도 오지 않았던 사람을 체포해 미국 영토 내의 감옥에 가둘 수 있는 권한이다.
이 세가지 권한은 어느 나라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유엔에도 없다. 미국에만 있다. 이건 완전히 새로운 상황이다. 미국의 목표는 국제법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관타나모의 비극은 '미 제국'의 현주소**
- 제국이란 것은 어느 나라가 중심이냐만 다를 뿐 역사에서는 거의 늘 있어왔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갖고 있는 미 제국이 프랑스나 로마가 이끌었던 제국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 잘은 몰라도 영국 제국주의는 아마 징기스칸의 원 제국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 제국주의가 영국 제국주의나 프랑스 제국주의보다 낫다는 것은 사스로 죽는 것이 암으로 죽는 것보다 났다고 하는 것과 같다.(웃음)
몇가지 측면에서 미 제국주의가 영국 제국주의와 프랑스 제국주의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영국과 프랑스가 저질렀던 제노사이드(대량학살)를 미국은 이라크에서 하지 않았다. 미국은 '겨우' 3천명의 민간인을 죽였을 뿐이다.(웃음) 3천명을 죽였다고 '과거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는가.
쿠바 관타나모 미군기지에 있는 포로수용소를 보자. 거기에는 6백여명의 포로가 갇혀있다. 미국은 그들에게 전쟁포로의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불법 전투요원'이라 불리고 제네바협약에 의한 전쟁포로로서의 권한도 없다. 2001년 말경 부시 대통령은 대통령령(presidential order)으로 테러 용의자들에 대해 군사재판을 하라고 명령했다. 그런 권한은 미국 헌법에도 없는 것이었다.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내린 권한이다'는 것이 법적 권한의 전부였다. 부시는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듯한 권한을 행사한 것이다. 그 대통령령은 테러리스트 용의자들에게 일반 형사범 용의자들에게 주어지는 어떤 권한도 주지 못하게 했다.
<사진: 관타나모 수용소>
그들에게는 왜 체포를 당하는가, 죄가 무엇인가에 대해 들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권한도 없다. 죄를 부인할 어떤 증거도 내세울 수 없다. 목격자가 있어도 소용없다. 변호사 접견기회도 없다. 군사재판에서는 항소권도 없고 다수결로 죄를 확정할 뿐이다. 그런데 군사재판 조차도 열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관타나모 기지를 취재한 기자에 따르면 거기에는 군사재판이 열릴 만한 건물도 없다. 포로들을 재판할 생각조차 없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권리 이전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미국의 한 인권변호사가 이같은 상황을 문제삼자 미 법원은 "거기는 쿠바라서 미국의 법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고 말했다. 물론 쿠바법도 관타나모에는 미치지 못한다. 전쟁포로에 관한 국제법도 이미 부정된 곳이니 결국 초법적 공간인 것이다. 이건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도 볼 수 없는 초유의 일이다.
미 제국주의가 영국과 프랑스의 그것보다 더 '낫다(gentle)'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당신이 누구냐에 따라 달려있을 것이다. 그들이 당신을 테러용의자라고 말하면 당신은 전혀 다른 범주의 존재로 변한다. 아무런 권한도 없는 존재 말이다. 관타나모에 붙잡혀온 많은 사람들은 사실 파키스탄군이나 아프간 북부동맹에 의해 500달러(우리돈 약 60만원)의 돈으로 팔려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미군이 붙잡은 것도 아니다. 실제 많은 경우 미군은 그들이 무슨 일로 잡혔는지도 모른다.
***'유토피아적 평화주의' 거부 "나는 평화주의적 현실주의자"**
- 당신이 쓴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보면 근대국가가 민간인들에게 어떻게 폭력을 자행했는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국가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 국민국가(nation state)는 하나의 환상이다. 국가는 폭력 사용의 정당성을 독점적으로 갖고 있다. 폭력 사용의 정당성을 국가라는 조직에 부여함으로써 우리는 그 외의 폭력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군인을 더 늘이는 것은 위험으로부터 더 안전해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20세기에는 그같은 '실험'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20세기는 어느 시기보다 많은 사람들이 폭력에 의해 죽었고, '킬러'는 국민국가였다. 국민국가는 외국인보다 내국인들을 더 많이 죽였다. 이것은 국가와 국가간의 전쟁이 아니라 일종의 국가와 국민간의 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진짜로 무서운 것이고 그런 나라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 결국 당신은 아나키스트인가.
= 글쎄. 나의 생각을 아나키스트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으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느날 갑자기 국민국가가 없어진다고는 상상할 수 없다. 그건 비현실적이다. 국가 폭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주장도 비현실적이다. 나는 일본의 평화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책을 썼는데 평화주의(pacifism)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일종의 낭만적, 이상주의적, 유토피아적 도덕주의다. 다른 하나는 현실주의적 차원에서의 평화주의다. 현실주의자들은 정부가 군사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나는 그 두 가지 다 틀렸고 비교할 수도 없다고 본다. 물론 중요한 것은 현실주의적이 되는 것이다. 진정한 현실주의는 현실을 제대로 보는 것이다. 현실은 바로 역사에서 나온다. 국가는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힘을 사용한다는 것이 역사의 기록이다. 지난 한세기 동안 국가가 죽인 것은 바로 자국민들이었다.
유토피아주의, 이상주의, 낭만주의는 그런 국가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그건 '현실적으로' 위험하고 불안정한 생각이다. 지금부터 국가가 우리를 보호할 것이며 아무도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낭만적 유토피아주의일 뿐이다. 이것은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한 완전한 비현실이다. 나는 일종의 '평화주의적 현실주의자(pacifist realist)' '반전 현실주의자(anti-war realist)'가 되려 한다. '마키아벨리적 평화주의'라고나 할까.(웃음)
<사진: 러미스 2>
이 문제에 관해 일본에서 강연을 할때, 나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일본이 가장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것은 역사적으로 언제였나? 답은 1932년에서 45년까지다. 둘째, 폭력으로 가장 많은 일본인들이 죽은 것은 언제였나? 이 답도 역시 1932년부터 45년까지다. 그래프를 그려보면 확실하다. 한 나라의 군사력이 커지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에게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신문을 펴면 가장 많이 발견되는 '전쟁'은 기실 정부와 그 나라 국민들간의 전쟁이다. 한 나라에 대규모 군대가 만들어졌을 때, 적이 될 수 있는 것은 그나라 국민들뿐이다. 멕시코, 필리핀,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의 유일한 적은 자국민들이었다.
한 나라의 군사력이 증가할때 발생하는 또하나의 위험은 다른 나라를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국은 자국민을 그렇게 많이 죽이지는 않은 희귀한 나라다. 그러나 그건 미국내에서만 해당되는 말이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한반도에서, 중동에서 수만명의 자국인들을 전투병으로 보내 죽게했다. 일본도 1932년부터 45년까지 수많은 자국민들을 전쟁으로 죽였다. 군사력을 키우는 것은 이처럼 안팎으로 위험한 것이다.
***새로운 개념의 발전은 가능한가**
- 당신이 제기한 '대항발전(conuterdevelopment)'라는 개념을 설명해 달라.
= 세계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는 데에는 수백년이 걸렸다. 그런 과정을 소위 '발전(development)'이라고 불렀다. 발전은 국가의 발전도 있고 산업, 관료제 등의 발전도 있다. 대항발전은 모든 문제를 일거에 풀 수 있는 마술같은 전략을 뜻하지는 않는다. 몇 달이나 몇 년만에 전혀 다른 종류의 세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은 역시 아주 점진적인 과정이 될 것이다. 대항발전은 그렇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내가 만든 개념은 그동안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가능성에 기초해 만든 것이다. 전혀 다른 원리에 따라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생겨났다. NGO에서 활동하는 많은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연대를 맺으며 국민국가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단지 돈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모여서 일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시도하고 있는 '공정 무역 조직(fair trade organization)'이란 것이 훌륭한 예가 될 것이다. 그 조직은 산업 세계에 비해서는 대단히 미약하지만 산업 세계와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움직인다. 그들이 가격을 치르는 방식은 특이하다. 그들은 필리핀의 한 오지 섬에서 바나나와 설탕 같은 것을 사오는데, 일종의 플랜테이션을 조직하고 그곳에 주민들을 모아 바나나와 설탕을 경작케 한다. 가격은 최저 가격으로 매겨지지 않고 그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수 있을 만큼 협상에 의해 책정된다. 그러면서 필리핀 주민들의 생활은 점점더 나아진다. 학교를 만들고, 병원을 만든다. 그것이 '공정 무역'이다. 생산자들이 더 낳은 생활을 영유하도록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중세 유럽에서의 가격 책정도 그런 식이었다. 당시 가격은 정의(justice)와 연관된 개념이었다. 최대한 낮은 가격으로 물건을 사려는 경제원리가 적용된 것은 근대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공정무역 조직은 대단히 미약하지만 전혀 새로운 경제 세계를 만들고 있다. 그런 예는 수없이 많고 이것이 대항발전이다. 이미 그런 시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다.
-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줘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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