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확실히 특별하고 예외적인 나라다. 역사상 존재했던 어떤 제국보다 더 순수한, 즉 개념에 가장 충실한 제국이다. 부시 대통령의 선제공격 전략은 '지구적 제국'의 선포였다"
지난 9일, 대구 영남대 인문관 강당에서 열린 포럼 "미국과 세계평화"에서 발표자로 나온 염무웅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영남대 독문과 교수)은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염무웅 이사장은 "한반도 문제를 요즘처럼 걱정해본 적이 없다"는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의 최근 발언을 언급, 이는 "방미를 앞둔 노무현 대통령을 협박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그의 발언에는 그냥 들어넘길 수 없는 우리의 생존문제가 있다. 굴복에 의한 생존이 아니라 항구적인 평화체제 속에서 독립적인 삶의 길을 찾는 것은 우리에게 차단되었나"고 개탄했다.
***"아메리카 제국의 민주주의와 자유는 안녕한가"**
영남대 인문과학연구소(소장 이승렬 영문과 교수)가 주최하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교수가 진행한 이날 포럼 발표자들은 미국은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제국'이 됐다고 입을 모으면서 미래의 평화를 위한 대안을 자신들의 다채로운 경력에 따라 제시했다.
<사진: 발표자 전체>
소설 <아메리카> <히로시마> <옥쇄(玉碎)> 등으로 유명한 일본인 작가 오다 마코토씨는 2차 대전 후 일본의 경험을 언급, 미국이 이식했던 민주주의와 자유는 평화주의와 결합함으로써 비로소 일본의 것이 됐다며 미국이 전후 이라크에 일방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충고했다.
지난 81년 광주 민중항쟁 1주년을 맞아 '한국 민주화 지원 긴급 세계대회'를 일본에서 주최하기도 했던 마코토씨는 '제국'이 된 미국의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미국의 현 상황을 "매카시즘의 부활 시대"로 규정하고 "먀카시즘식 독재를 했던 구소련이 힘으로 밀어붙였던 동유럽 사회주의의 말로가 어떻게 됐는지 생각해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새로 만든 세 가지 권한"**
미국 출신 정치사상가이자 반전평화운동가로 유명한 더글러스 러미스 전 일본 쓰다대 교수는 9.11 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가 선제공격, 정권교체, 외국인들의 불법 구금 등 전에 없던 세 가지 권한을 스스로에게 부여했다며 "이는 미 제국주의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는 발표문에서 미국의 대테러 전쟁을 '악의 무리를 없애기 위한 성전'으로 묘사하는 부시 행정부의 태도를 언급, "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게 된다는 성전에서는 죽이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라며 "전쟁의 관행이나 법, 또는 국제법 조항을 준수해야 할 이유조차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아랍 세계와 미국이 자신들의 전쟁을 모두 성전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전쟁이 끝날 수 있겠나"고 되물었다.
<사진: 마코토, 러미스 붙여서>
노무현 대통령의 대미정책을 평가하고 조언해 달라는 질문에 러미스는 "부시 행정부에는 한반도 정책 자체가 없다"고 잘라 말하며 "실제 전쟁 가능성도 농후하기 때문에 한반도 문제가 미국의 손에 넘어가면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동아시아의 재앙을 막기 위해 한국이 미국에 'NO'라고 말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며 "그것은 사실 미국의 이해관계에도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한반도 문제는 구체적인 대안과 설득 논리 있어야"**
전쟁과 평화, 여성에 관해 발표한 정현백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평화 교육 특히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교육에 있어 갈등해소와 관용을 가르치는 것이 시급히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사진: 염무웅, 정현백 붙여서>
정현백 교수는 '통일을 위한 평화가 아닌 평화를 위한 통일'이라는 평소 지론을 강조하며 평화운동을 고리로 현실성있는 정치화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촛불시위 과정에서 불거졌던 '앙마 사건'을 언급하며 "젊은 세대가 너무 문화코드만으로 움직여 휘발성이 강하다. 대학 캠퍼스의 탈정치와는 무서운 일이다"며 "과거 학생운동의 비현실적 정치화가 준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평화운동"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어 한반도의 불안을 낳고 있는 북핵문제와 미국의 강경 대책에 대해 정부와 시민사회가 미국을 설득할 구체적인 대안과 논리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눈에 보이는 전쟁은 끝났지만 여전히 불안 요소가 상존하고 있는 중동, 어느날 갑자기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가능성이 짙은 한반도, 그리고 유례없는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미국. 국제사회와 한국의 시민사회가 헤쳐 나가야 할 과제를 확인케 해주는 토론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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