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전국화물운송노조 산하 화물연대 조합원 1만여명이 30일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시작으로 정부의 화물운송 정책의 개정을 촉구하며 1박 2일의 상경투쟁에 들어갔다.
<사진1>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
부산, 울산, 포항, 목포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들은 “정부의 경유가 인상 정책과 전근대적인 화물운송 체계로 인해 생존권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정부는 관계법령 정비를 통한 적극적 대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했다.
화물연대는 ▲경유가 특별소비세 인하 ▲도로비 인하 ▲지입제 철폐 ▲다단계 알선 근절 등을 요구하며 최근 정부와 협상중이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화물연대의 요구사항 중 눈에 띄는 것은 ‘경유가 특별소비세 인하’로, 최근 정부의 경유가 인상 정책으로 인해 1년 새 경유가가 두 배로 뛰어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경유차량 억제를 위해 특소세 부가 등을 통해 경유가를 휘발유가의 75% 수준까지 올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화물연대는 “현재 화물 운송비 인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경유가 인상으로 인해 화물운수업계가 고사위기에 처해있다”며 “국내 물류의 94%를 차지하고 있는 도로 물류비중의 중요성을 감안해, 도로 화물 운송을 사회간접자본으로 인식하고, 화물차에 대한 경유가 특별소비세를 면제하거나 인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2>집회
이렇게 화물연대 소속 화물차 운전자들이 직접 물류 운송비용 인하를 요구하고 나선데는 화물운송업계의 체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화물차 운전자의 97%가 지입차주**
일반적으로 화물차 운전자들은 세 가지로 분류된다. 화물운송업체에 직접 소속이 돼 정규직으로 임금을 받으면서 화물차를 운전하는 형태와, 회사 소속으로 있다가 구조조정에 의해 퇴직금 대신 차량을 불하 받고 회사가 정해주는 물량을 운반하는 위수탁 형태, 자신의 차량을 보유하고 사업권을 소유한 사업자에게 면허권을 빌리는 지입차주 형태가 있다. 화물연대에 의하면 이 중 97%가 자신이 차를 소유하고 있는 위수탁 및 지입차주의 형태라고 한다.
5톤 미만의 화물차 소유주들은 개별 운송사업을 할 수 있지만, 5톤 이상 화물차의 지입차주들은 차량을 소유하고도 화물운송사업을 하기 위한 사업권을 갖지 못한다. 현행법상 화물운송 사업권을 갖기 위해서는 5톤 이상의 화물차가 5대 이상이어야 하고, 자본금도 최저 1억원 이상 갖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개별 화물차 소유주는 사업권을 갖고 있는 사업자에게 면허권을 사서 일정의 지입비(1대당 약15만원)를 내고 화물운송을 할 수 있다.
이 ‘지입제’로 인해 화물차를 소유한 운전자들에게 불만이 발생한다. 화물차 운전자들은 법령상 사업권이 없다는 이유로 ‘지입비’라는 불필요한 지출을 감수해야 한다.
***3년 지난 화물차는 소유권도 주장할 수 없어**
게다가 지난해 개정된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는 ‘화물자동차의 교통사고 예방 및 화물의 안전수송을 위해 신규등록, 증가 또는 대, 폐차시 충당되는 화물자동타의 차령을 3년의 범위 내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안에 의하면 3년 이상의 중고차를 소유한 지입차주는 차량 이전 등록을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한 사업자에 묶여 차량 소유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사업자가 부도라도 나면 차량을 고스란히 빼앗기게 된다.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법령이 생기게 된 데 대해 화물연대 이금희 경인지역본부 사무국장은 “외제 화물차가 국산 화물차에 비해 연료가 적게 들고 잔고장이 적은 등 10년은 거뜬히 탈 수 있어 화물차 운전자들이 선호함에 따라, 국내 화물차 생산업체들이 화물차 교체 주기를 단축시키기 위해 로비를 펼친 것 같다”라고 주장했다.
<사진3>화물차
***화물운송업계의 구조적인 병폐, 단단계 알선**
화물연대는 국내의 전반적인 화물수급과 운송배정체계도 전근대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명 ‘다단계 알선’에 의해 실제로 화물차 소유 운전자에게 돌아오는 몫이 줄어들고, 불필요한 유통 알선비용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산에서 50톤 화물차를 운전한다는 최모(48)씨에 의하면 “A그룹에서 퇴직한 중역간부가 창고 하나, 전화기 한대 가지고 물류 회사를 하나 차려 A그룹 물동량을 다 장악하고, 아래 자회사 몇 개 차려 배분을 하고, 그 자회사들이 다시 화물운수업체에 배분을 하는 등, 화물이 화물차 운전자에게 내려오는 동안 3~4단계를 거치는 것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이럴 경우 운송비의 30%정도는 중간업자들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그러나 최씨는 “이런 구조는 수십년간 굳어져 온 것이어서 뿌리 뽑을 수 없다”고 푸념했다.
***목숨 걸고 달리는 야간운행**
화물차 운전자들의 노동조건과 수입도 매우 열악한 것으로 보여진다. 위의 최씨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한 차’ 나르면 4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벌써 기름값만 17만원 정도가 나가고, 도로통행료 3만원, 식대, 감가상각비, 보험료, 차량 유지비 등을 따지면 남는 것은 10만원도 채 안된다고 했다. 때로는 서울에서 물량을 못 받을 경우 빈차로 올 수 없기 때문에 주야장창 차 안에서 자면서 기다릴 때도 있다고 했다.
야간 운전도 문제인 것으로 드러났다. 주로 대형 화물차들의 교통사고는 졸음운전으로 인해 일어나는데,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가 심야 50%할인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 그 시간에 운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푸대접을 받기 일쑤고 간이 정차장도 없어져 ‘목숨 걸고’ 달려야 한다고 했다.
부경대 윤영삼 교수(경영학)가 지난 3월 화물차 운전자를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화물차 운전자의 1일 평균 수면 시간이 5.1시간 밖에 안되며 그나마 차량에서 자는 비율이 48.2%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교수는 졸음 운전의 근본 원인을 ‘누적된 피로’라고 결정내렸다.
<사진4>화물차
***화물차 운전자, 수입은 -1백24만원**
또한 윤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화물차 운전자의 월평균 수입은 4백18만8천원인데 비해, 월평균 지출은 5백42만6천원인 것으로 조사돼, 월평균 1백23만8천원의 빚을 지고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경유값으로 총 지출의 49%인 것으로 조사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화물차 운전자들이 화물연대를 구성하고 집단행동에 나섰다. 원래 노동법상 이들은 ‘개인사업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노조를 구성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화물연대’를 구성해 노동자임을 자처하고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차량의 소유권도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고 사업권도 없는 마당에 개인사업자의 권리를 가질 수 없다면 노동자의 권리라도 가져야겠다는 것이다.
***4달 동안 노조원 6천여명에서 2만여명으로 증가**
열악한 노동환경은 이들을 급속히 모이게 하고 있다. 지난 12월까지 6천여명이었던 노조원이 현재 2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화물연대 정호희 사무처장은 “요즘도 매일 1백여명씩 화물차 운전자들이 조합에 가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 사무처장은 가끔 고속도로에서 벌이는 준법 저속운행 투쟁은 ‘이벤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정 사무처장은 “국내 물류의 94%가 도로에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화물차 운전자들이 파업에 나설 때는 국내 물류가 완전히 마비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최근 레미콘 기사 등의 특수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에 관해 논쟁이 일고 있다. 지난 해 대법원은 레미콘 기사와 같은 지입차 운전자는 노동자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레미콘 기사들은 차량만 소유하고 있을 뿐, 회사에 소속이 돼 강도 높은 노동을 하는 상황에서 산재보험, 고용보험, 단결권을 보장 받을 수 있는 노동자성의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화물차 운전자들도 특수고용직으로서의 노동자 지위 인정에 관한 문제가 레미콘 기사들과 똑같은 상황이 아니냐는 질문에, 정 사무처장은 “화물차 운전자들은 지금 경유값 인하를 걸고 생존이 걸린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특수고용직 노동자성 인정 문제는 추후에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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