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잉글랜드 군대에게 잡혔던 윌리엄 월레스는 잉글랜드 군인에게 자비를 애원하는 대신 끝까지‘자유’를 요구하다가 결국 잔인하게 목숨을 잃게 된다. 멜 깁슨이 월레스 역을 한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줄거리다.
영국의 평화운동가이자 프리랜서인 조 윌딩은 미국의 정치전문 잡지 카운터 펀치에서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포스터를 바라보며 윌리엄 월레스를 꿈꾸는 이라크의 소년 야세르와 무스타파 등을 통해 전쟁을 앞둔 이라크 사람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다음은 조 윌딩이 바그다드 공습 첫날의 모습을 스케치한 내용이다.
***바그다드의 빈민촌 '사담시티'의 실상**
유엔과 미국의 이라크 경제 제재조치 이후 ‘사담 시티’에 살던 사람들은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이들이 주로 떠난 곳은 바그다드보다 훨씬 빈민들이 살고 있는 이라크 중·남부 지역이다. 이곳에는 얼마나 많은 이라크 빈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지 알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바그다드의 서민촌 ‘사담 시티’가 인구밀도가 매우 높은 곳이라는 사실을 반영이라도 하듯 야세르의 집에는 14명이 모여살고 있다. 전쟁에 대비해 다섯 달간 버틸 수 있는 식량을 비축해 놓은 야세르의 가족, 친지들은 그저 서로를 의지해 가며 전쟁위협을 잊으려 하고 있었다.
야세르의 집 앞에는 우물이 있고 닭 8마리가 서로 섞여있는 닭장도 있다. 야세르의 집에는 방어용으로 러시아제 소총 '칼라슈니코프'가 있다. 나는 그들에게 미군이나 이라크군 또는 도둑들과 맞설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어깨만 으쓱했다. 누구든지 그들을 위협할 수 있다는 듯.
야세르는 바그다드 대학 물리학과에 다니는 사촌 무스타파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두 소년이 쓰는 방에는 두 장의 포스터가 벽에 붙어있다. 소년들이 좋아하는 영국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포스터와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포스터가 그것들이다.
무스타파는 <브레이브 하트> 포스터에 대해 “이 영화는 ‘자유’에 대해 말해주는 영화입니다”라고 짤막하게 설명했다.
야세르와 무스타파는 학교가 이미 폐쇄됐지만 향학렬을 불태우고 있으며 야세르의 누나인 자이나브는 영어번역을 공부하며 헛간 같은 집에서 남편과 함께 지내고 있다.
야세르와 같이 학교를 가지 못하는 토라야는 영화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안소니 홉킨스와 소설가 샤롯 브론테를 좋아하는 17세의 문학소녀이다. 영국에서 공부했던 아버지 덕택으로 토라야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하지만 그녀는 지난 걸프전 때 계속된 공습으로 인해 심한 충격을 받았다. 당시 5세였던 토라야는 공습때마다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에 울음을 터뜨려 어머니와 함께 유리창이 없는 방에 피해있어야 했다.
이라크의 건물은 걸프전 이후 최악의 상태인데 토라야의 아버지는 이에 대해 “걸프전 때 폭격 이후 이라크의 모든 건물이 손상을 입었지만 대부분의 이라크 사람들은 12년이 넘게 계속되는 경제 제재조치 때문에 건물을 보수할 수 있는 돈이 없다”고 설명했다.
파루흐의 학교는 열려 있지만 선생님들과 잿빛 머리칼이 스카프 너머로 보이는 아름다운 청소부 레일라만이 있다. 파루흐의 급우들은 서로 끌어안고 축구 응원가를 부른며 AC 밀란이 최고라고 외친다. 나는 그들에게 영국의 브라이튼이나 호브 앨비언 팀이 AC 밀란보다 유명하지도 않고 가난하지만 훨씬 낫다고 확신시켜 줬다. 이후 나는 길거리의 모래둔덕에 일부러 걸려 넘어지면서 그들에게 웃음거리를 주었다.
파루흐는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아니면 영원히 만나지 못할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레바논 출신의 사진작가와 차를 마시면서 우리는 우리들이 양복 차림의 일반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와 줄리아는 그의 재산인 라이카와 니콘 카메라의 우수성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고 피곤에 지친 일행은 또다른 버스에서 내려 UN 빌딩으로 향하는 ‘반전시위’의 행렬을 문을 통해 보러 갔다.나는 ‘반전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부시 등의 초상화를 찢어버리는 때가 오기를 바랬지만 미국과 영국이 20년 이상 이라크 국민들을 피폐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바그다드 폭격 첫날**
내 생각에 폭격이 시작된 때는 새벽 5시 30분인 것같다. 내가 작은 천둥소리가 듣고 발코니로 나갔을 때 진동을 느낄 수 있었고 동이 틀 때까지 크루즈 미사일이 서서히 움직이는 불빛을 볼 수 있었다.
강가에 사는 개들이 폭격의 굉음을 피하기 위해 차 한대 없는 길 가운데로 뛰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미국의 공격이 시작됐음을 알게 되었고 기자들이 이라크의 상황을 물어 보기 위해 하루 종일 울리는 전화 벨 소리 때문에 미국의 무차별 공습이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길거리는 여전히 텅 비어 있었고 모든 건물은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전쟁은 이미 시작됐지만 아직 이라크는 깨어나지 않았다. 부시가 이라크에 대한 첫 공습을 ‘절호의 기회를 노린 폭격’이라고 말했다. 아직 이것은 엄청난 파괴력의 ‘충격과 공포’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란 뜻이다.
오늘 아침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의 매니저는 제복을 입은 군인 두 명에 의해 체포됐는데 그는 미친 듯이 소리를 치며 자동차로 끌려갔다. 매니저가 체포된 이유는 몇몇 부주의한 기자들이 호텔의 지붕에서 폭격장면을 촬영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그들은 모두 팔레스타인 호텔 건너편의 길에서 대기하고 있었어야 했다.
제복을 입은 군인들은 우리에게 호텔 매니저를 데려가는 곳이 어디인지 말을 해주지 않았고 우리는 호텔 매니저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우리는 그를 다시 보기 힘들 것으로 봤지만 한 시간만에 호위를 받으며 호텔로 다시 들어왔다.
호텔 건물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밖에 나간 사람들은 무기력하게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전쟁같기도 하고 아닌 것같기도 하다. 우리가 밖으로 나가거나 뭔가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는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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