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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정치, '토호의 난(亂)' 막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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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정치, '토호의 난(亂)' 막으려면…

[시민정치시평]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불편한 진실과 대안

2014년 지방선거를 맞이해 여야가 합의해 기초선거 정당공천제를 폐지할 모양이다. 한마디로 불편하다. 혹자는 선거와 정당을 전공하는 학자니까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반대하는 게 아니냐고 몰아붙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는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낸 운전자를 놔두고 차량에 딱지를 뗀 꼴로 보인다.

몇 가지 불편한 진실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첫째, 지방정치 영역에서 정당공천이 정치부패를 증가시켰다는 것이다. 지방 정치인들의 현역의원 줄 서기가 도를 넘어섰고, 이 과정에서 검은 돈거래가 정치를 오염시켰다는 지적이다. 사실인 듯 보인다. 그런데 과연 정당공천제를 걷어내면 정치가 깨끗해질까? 2006년 기초선거에 정당공천제가 도입되기 이전의 소위 '내천'을 둘러싼 폐해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 게임이 밀실에서 전개될 경우 부패가 더 증가할 가능성이 농후한 법이다. 물론 지방 정치인들의 줄서기는 뼈아픈 일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공천개혁과 정당의 분권화 외에는 처방전이 없어 보인다.

둘째,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의 대리전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지방의제가 중앙의제에 의해 묻혀버려 본연의 지방정치가 실종됐다는 지적이다. 일견 타당한 얘기지만 주의를 요한다. 2010년 지방선거의 주요 쟁점이었던 무상급식과 4대강 사업 이슈는 전국의제였던 동시에 지방의제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지방의제의 실종을 말할 때 전국적인 의제로부터 구별되는 순수한 지방의제가 제시돼야 한다. 정당의 개입이 지방의제를 실종시킨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방의제를 발굴하고 이를 통해 유권자들을 유혹하는 정당체계를 꾸려나가야 한다.

셋째, 지역주의 정당구조로 인해 지방정부를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타당하다. 현재의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독점구조는 영남과 호남을 구태정치로 물들일 뿐만 아니라 개혁적인 신진 정치인들과 사회적 소수자들의 정치적 진입에 결정적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기초선거에서 정당을 없애면 이 문제가 해결되는지 되묻고 싶다. 많은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기초선거에서의 정당공천제 폐지가 지역의 시민활동가들의 진입을 확대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가능한 얘기다. 그러나 2010년을 기준으로 전국 기초단체장 수는 228명, 기초의회 의원정수는 무려 2880여 명이나 된다. 이를 시민운동가들이 다 채울 리는 무망하다. 오히려 소수의 진입에 그칠 가능성이 짙다. 그렇다면 나머지 자리는? 소수의 깨끗하고 개혁적인 시민운동가들의 정치권 진입을 위해 다수의 토호(土豪)들이 지배하는 의회를 묵인할 것인가?

▲지난 7월 2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폐지 대선공약 이행촉구 시민행동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정당공천제 폐지에 높은 찬성률을 보이는 여론 또한 불편하다.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운전자에게 사고에 대한 원상복구의 책임을 묻지 않는 형국이다. 지역독점 구조 아래 각종 해악을 저질러왔던 정당들에게 그저 비껴서있으라 주문하고 있다. 그런데 정당은 시민들의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천이라는 복면을 쓰고 다시 등장할 것이다. 구태정치는 암암리에 반복될 것이다. 결국 정당을 없애는 것으로 정치를 회복하자는 시도는 무위(無爲)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제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스스로를 탓할 것인가?

아무리 지리적으로 협소하고 주민의 삶에 직접적으로 연결될지라도 공공재를 권위적으로 분배하는 이상 지방자치는 정치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성남시만 해도 1년 총예산이 2조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성남시 정부는 시장 1명, 시의회의원 34명으로 구성된다. 총 35개의 생각을 지닌 35명의 무소속 정치인으로 제대로 된 공공재의 분배가 가능할까? 의회만을 생각해보자. 매번 정책(조례)을 결정할 때 34명의 무소속 의원이 과반 연합을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까? 이념과 정책을 공유하는 동료 의원들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불확실성 투성이다. 대의제 민주주의 아래 이러한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것이 바로 정당이다. 잘못됐으면 바로 세울 일이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현행 정당법을 개정해 지방정당을 허용해 지방선거에서 경쟁하도록 하는 일이다. 현재 정당법상 정당설립 기준으로는 다섯 개 이상 시도단위에서 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을 갖추어야 한다. 중앙당은 꼭 서울에 있어야 한다. 이를 완화하자. 정당설립 기준을 한 개 이상 시도단위에서 500명의 당원 규모로 완화하고 중앙당 규정을 없애버리자. 지방의제로 무장한 시민참여형 지방정당들이 탄생할 것이다. 과거 옥천당의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시민참여형 지방정당은 기본적으로 상향식 공천을 젖줄로 삼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줄서기와 내천의 폐해로부터 자유롭다. 많은 신진 정치인들과 개혁적 시민활동가들,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들의 등용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방의제로 무장하고 전국 각지의 기초선거에서 지역의 거대 독점정당과 경쟁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지역주의에도 균열이 생길 터이다. 즉 지방정당을 통해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지방의제를 중심으로 제대로 된 지방정치를 가꾸도록 해보자는 것이다.

둘째, 기존 거대정당에게 유리한 선거제도를 개혁해 거대정당의 독점구조를 깨뜨릴 필요가 있다. 기초의회 선거제도를 현재의 약발 없는 중선거구제에서 대선거구와 비례대표제가 결합된 제도로 바꿔보면 어떨까 한다. 이러한 개혁은 선거결과의 비례성뿐만 아니라 신진세력 및 사회적 소수자들의 정치적 진입을 확대시킬 것이다. 여성의 경우 각 정당의 비례명부에 50%를 공천하도록 의무화하도록 하면 된다. 더불어 현재의 기호제를 추첨제로 개혁해 '1번'과 '㉮번'의 유리함을 깨뜨려야 한다. 다시 말해, 실질적인 다수제 아래 안락한 정치적 삶을 누려온 거대 정당의 독점적 구조를 '보다 많은 다수'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적 환경으로 전환시키는 개혁을 기초지방선거에서부터 실험해보자는 것이다.

요컨대 지방정치의 문제점을 정당을 바로 세움에 의해 해결하자는 것이다. 다만 필자는 기존의 지역독점적인 거대정당으로부터 희망을 찾을 게 아니라, 바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하는 지방정당으로부터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거대정당들로 하여금 기득권을 내려놓게 해야 한다. 시민들의 거센 압력이 필요하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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