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방송정책**
2001년 1월에 제정된 현행 방송법 제27조(위원회의 직무)를 보면 “위원회는 다음 각호의 사항을 심의 의결한다. 다만 위원회는 다음 제1호의 사항을 심의 의결할 경우 방송영상정책과 관련된 사항은 문화관광부 장관과 합의하여야 하고...”라고 돼 있다. 또 방송법 시행령 제20조(방송 기본 계획의 합의 등)엔 “방송위원회는 법 제 27조 단서 및 동조 제1호의 규정에 의하여 방송의 기본계획에 관한 사항을 심의 의결함에 있어서 방송영상정책과 관련된 다음 각호의 사항에 대하여는 문화관공부장관과 합의하여야 한다”고 되어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몇 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3년전 방송의 독립이라는 명분아래 방송정책권이 정부로부터 방송위원회에 형식상 이관되었다고 하지만 위의 조항 때문에 사사건건 방송위원회는 정부와 합의하는 데 신경을 써왔다.
그런데 문화관광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방송통신위원회의 설립을 추진하되 방송위원회가 갖고있는 방송정책권을 환원하고 방송위원회를 프로그램 내용에 대한 규제 권한만 갖도록 하겠다는 방안을 보고했다.
그리고 김성재 문화관광부장관은 지난 12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방송위원회의 방송정책권을 환수해야 한다고 방송통제에 대한 정부의 ‘잠복된 의지’를 드러낸 발언을 하여 주목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방송계는 방송정책의 환원 발상 자체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정부가 명목상으로 방송위원회에 방송정책권을 위임한 것처럼 했으나 방송위원 선임과 방송계 고위층 인사에 여전히 입김이 작용하였고, ‘합의’라는 고리 때문에 방송위원회는 문화관광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지난 3년간의 행적이었다. 실제로 지난 2000년 8월 당시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은 방송위원회를 제치고 방송의 선정성과 폭력성에 대하여 장관직을 걸고 전쟁을 선언하는 월권행위를 했었다.
방송정책권의 정부환원 문제에 대하여 방송위원회는 “정책수립 기능과 규제집행 기능의 분리는 정책의 효율적 집행을 어렵게 하여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심각한 권리 침해를 가져올 수 있다. 오히려 방송 총괄기구를 구성하여 정책기관 일원화와 부처간 협력을 통한 국가정책의 효율적 집행원칙을 확립해야할 시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도 “방송위원회의 출범은 정부의 방송장악 의지를 없애기 위하여 방송현업인 등이 10년 넘게 방송독립을 위하여 투쟁하여 따낸 산물”이라며 “그렇지 않아도 문광부과 정통부 등 방송관련부처들의 이기주의로 방송현안이 정책적으로 난관을 겪고 있는데 방송정책권을 정부로 환원하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도 방송위원회는 법률상으로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제역할은 못하고 있다. 대통령과 여야의 나눠먹기식으로 선출된 방송위원들이 소신있는 행정을 펴지못하는 것이 근본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마당에 방송정책권한까지 다시 정부로 이관된다면 방송위원회뿐 아니라 방송사들의 중립성도 크게 훼손되고 ‘권력 눈치보기’가 확대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당면과제는 우선 방송위원회를 바로세우고 급변하는 방송환경에 대처할 방송통신 통합기본법을 추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책기능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해 주고, 방송위원 선임방법도 전문가가 포함되도록 개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방송통신을 통합하는 논의도 규제는 완화하고 자율성을 강화하는 선진국형 모델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방송 통신의 융합시대를 맞아 정부 차원의 밑그림을 그려야할 시기에 방송정책권 다툼이 벌어지니 황당하기만 하다. 문화관광부의 이번 주장에 대하여 방송위원회 관계자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무시한 “부처 이기주의의 산물”이라고 평하고 있다.
현행 방송법은 방송에 대한 정치권력의 영향력을 철저히 배제하고 진정한 방송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로서 제정된 것이며, 그 결과 합의체 행정기관인 방송위원회가 직무상으로는 정부조직법에 의한 정부부처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명실상부한 국가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분명히 부여받고 있으며, 방송법의 제정취지에 입각하여 방송정책에 관한 총괄적인 주무기관으로 탄생하였으며, 국민의 정부 하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은 물론 문화관광부도 참여한바 있는 방송개혁위원회의 논의 및 통합방송법 제정과정을 거치면서 이미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쳤다는 것을 정부당국자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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