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었다. 그토록 환경을 중시한다는 시장이 어떻게 멀쩡한 산을, 그것도 지역주민들 대다수가 반대하는 데 일방적으로 파괴할 수 있나."(최현진.32. 창전동)
오랜만에 친지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야할 설날 아침을 '성미산 개발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성미산 대책위) 회원 20여명은 산속에서 보냈다.
서울시와 서울시상수도사업본부가 지난달 29일 오전 9시,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성미산 정상 9천여평을 메우고 있던 수목 1천여그루를 기습적으로 2시간 반에 베어냈기 때문이다.
***서울시, 설 연휴 직전 성미산 수목 기습적으로 벌목**
성미산에 서울시는 상수도 배수지를, 성미산 3만여평 중 2만평을 소유하고 있는 한양대학교 재단인 한양학원은 아파트 4백20세대를 건설할 계획이다. "배수지 공사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에 설 연휴를 하루 앞둔 데다 영하 14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날씨로 지역주민과 등산객이 없는 틈을 타서 기습적으로 벌목을 강행했다"는 게 성미산 대책위의 주장이다.
성미산 대책위는 "사전 주민협의 없이 벌어진 기습 공사에 대해 항의하고 이후 벌어질 추가 토목공사를 저지하기 위해" 지난달 30일부터 이미 벌목이 진행된 산 정상에 텐트 3개를 치고 항의 농성을 벌여왔다. 이어 회원 20여명이 설날 차례를 산에서 지내게 된 것이다.
김종호 성미산 대책위 위원장(35)은 "하루 1천여명 이상의 주민이 이용하던 마포의 유일한 생태산림이 서울시의 일방적 행정 결정에 의해 사려지려 하고 있다"면서 "서울시에서 공사 계획을 철회할 때까지 천막 농성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4일 이명박 서울시장을 방문, 배수지 공사 전면 중단 및 성미산 아파트 개발 계획 백지화를 요구할 계획이다. 또 오는 8일 오후 5시에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성미산에서 주민촛불행사를 벌일 예정이다.
***"성미산 개발되면 한강 생태계 파괴"**
성미산 대책위는 50만 가까운 인구에 자연 녹지라면 노고산 꼭대기와 성미산, 그리고 상암동 일부만이 있는 등 서울에서 녹지가 가장 적은 지역인 마포구에서 자연 녹지를 파괴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성미산은 지난 93년 공원조성계획이 수립된 후 매일 1천여명 이상의 주민들이 이용하는 도심에선 보기 드문 '귀중한 생태 공원'이다.
성미산은 특히 한강 주변에서 먹이를 구하는 붉은 배새매 등 맹조류에게 서식지를 제공하는 한강에 인접한 유일한 숲이다. 따라서 이 산이 파괴된다면 맹조류의 서식지가 없어지며 그나마도 존재하는 한강의 생태계를 흔들어 놓게 될 것이라고 성미산 대책위는 생태학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성미산에는 현재 천연기념물인 소쩍새와 붉은 배새매 2종, 서울시 보호종인 꾀꼬리, 박새, 오색딱다구리 3종, 철새 3종, 텃새 6종 등과 식물로는 목본식물 33종, 초본식물 60종이 서식하고 있다.
성미산 대책위는 또 청계천 복원 등 천문학적 공사비용을 들여 서울을 친환경적 도시로 바꿔 나가겠다는 서울시 정책과도 전면 배치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지난 2001년 7월 성미산 개발 계획이 알려진 이래로 지역주민 다수가 이를 반대해 왔다. 21개 지역 주민모임이 자발적으로 '성미산을 지키는 주민연대'를 구성해 2년 가까이 반대 투쟁을 벌여왔으며, 2001년 10월경에는 두달만에 2만여명의 반대서명을 받기도 했다. 또 지난해 10월 마포구청에서 열린 '주민찬반토론회'에 참석한 대다수의 주민들이 반대 입장을 밝혔으며, 서울시 상수도 사업본부가 개최하려던 '주민설명회'가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구청장도 성미산 보존 공약으로 내세웠건만..."**
특히 지난 6.13 지방선거에는 박홍섭 마포구청장(당시 한나라당 후보)을 포함, 시의원, 구의원 등 거의 모든 후보자들이 성미산 보존을 공약으로 내세웠었다. 그러나 성미산 보존은 그야말로 '공약(空約)'에 그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김종호 대책위 위원장은 "지방선거 후 박 구청장을 두 차례나 면담했지만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선거때 공약했던 내용을 유야무야하려는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박주천 의원(마포을), 마포구 시.구의회 의원 모두 마찬가지다. 대책위는 '성미산 생태공원 제안서'를 서울시에 제출하고 이명박 서울시장과 면담도 추진했지만 시장 역시 면담을 회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상수도본부는 지난해 11월 배수지 공사업체 선정, 2월중 배수지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한양학원은 성미산 남쪽 8천여평 부지에 12-15층 높이의 4백20세대 규모의 아파트 건설을 계획, 마포구청에 '지구단위계획안'을 제출해 놓은 상태다. 마포구청 측은 이와관련 "관계규정에 따라 그 타당성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대책위 회원인 이성재(33. 망원동)씨는 "한양학원 등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는 쪽은 배수지 공사가 시작되면 바로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면서 "아파트 건설로 수백억원대의 시세차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이 구청에 로비를 벌이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미산을 제2의 와우산으로 만들 수 없다"**
최현진씨는 "성미산을 제2의 와우산으로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최씨는 "홍익대 부근에 있는 와우산은 배수지 공사와 연이은 아파트 개발로 완전히 망가졌다"면서 "성미산에 배수지 공사가 강행된다면 산이 파괴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주장했다.
성미산 대책위는 대안으로 우선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산을 깎아서 만드는 대신 평지에 가압방식으로 배수지를 만드는 등 환경피해가 적은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아파트 개발 계획에 대해서는 "마포구청은 한양학원 측의 아파트 개발 계획에 대해 원래의 도시 계획 결정 취지에 맞게 추진하고, 한양학원은 교육재단에 걸맞게 사사로운 개발이익을 위해 환경을 훼손하는 아파트 개발계획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구청장, 시.구의원, 국회의원 등이 지금처럼 성미산 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는다면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경고했다. 김종호 위원장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치인들이 점점 더 살아남기 힘든 정치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는 것을 정치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