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사회연구소(이사장 김금수)는 21일 충정로 연구소에서‘노무현 정권의 성격과 노동운동의 과제’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노동계가 노무현 새 정부를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하는가를 둘러싼 토론회였다.
이날 토론회는 김수진 교수(이화여대, 정치외교학)가 ‘16대 대통령 선거와 노무현 정부’라는 제목으로 노무현 정권의 성격에 대해 발표를 하고, 박준식 교수(한림대, 사회학)가 ‘노무현 정권과 노동운동의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노동계의 노무현 정권에 대한 대응 전략을 발표한 뒤, 질의 응답하는 순으로 진행됐다.
***16대 대선에서 드러난 민노당의 명암**
김수진 교수는 우선 노동운동의 관점에서 본 16대 대선의 특징에 대해 ▲3김정치 청산과 정치개혁 ▲탈냉전의 정치효과 ▲민주노동당의 제도권 진입기반 마련으로 요약했다.
김 교수는 “이번 대선의 최대 관건은 ‘3김식 정치’의 종식 여부였는데, 선거 결과 3김 시대 종식과 정치개혁에 대한 범국민적 열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제는 정치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은 더 이상 정치사회에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극복돼야 할 3김 정치의 부정적 유산으로 지역주의, 사당정치, 권력남용, 부정부패를 들며 “지역주의, 사당정치의 발호야말로 정치적 노동운동과 이에 대한 지지세력 확산을 효과적으로 억제해온 최대의 걸림돌이었다”며 “지난 대선을 통해 이 걸림돌이 제거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 교수는 “분단, 한국전쟁이라는 한국적 특수성이 견고하게 떠받쳐 왔던 보수독점적 정치지형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지역주의, 사당정치의 퇴조와 함께 정당들 간의 이념, 정책, 노선 간의 차별성 강화의 계기가 마련됐으며 지금은 이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켜 줄 수 있는 제도개혁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했다.
민주노동당이 이번 대선에서 얻은 결과에 대해서는 밝은 측면과 어두운 측면으로 나눠 분석했다.
우선, 밝은 측면으로 민노당이 대선 후보 TV 토론 참여해, 선거 자체의 승패를 떠나서 민노당의 정책노선을 효과적으로 선전할 수 있었던 기회를 얻어 진보세력이 정치적 대표체로서 공인을 받아 제도정치세력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정치적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을 꼽았다.
하지만 아직 민노당에게는 넘어야 벽이 많이 존재한다고 김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우선“광주, 부산, 대구, 전북 등에서 민노당이 평균이하의 득표를 했다”며 “여전히 지역주의적 투표 경향은 민노당 세 확산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또 “민노당 3년 동안 확보한 당원수 3만5천인데 반해 노사모는 지난 봄 노풍으로 인해 7~8개월 만에 8만5천으로 불어났다”며 “민노당이 대중정당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념적 지향과 함께 정서적 유인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노당이 8.1% 득표의 약진을 보여준 것은 광역단체 비례대표제 효과였다”며 “민노당이 제도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2004년 총선에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을 통한 원내 진출이 시급한 과제”라고 했다.
***"盧, 노조와의 협의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것 같다"**
김 교수는 노무현 후보의 경제정책에 대해 “신자유주의적 요소가 다분히 포함된 독일 기민당의 ‘사회적 시장경제’의 노선에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의 ‘제3의길’을 합쳐 놓은 식의 정책을 펼 것이다”며 “이는 케인즈주의적 사회민주주의 노선과 구분되는 노선이다”고 했다. 김 교수는 그 근거로 분배를 강조하면서도 성장에 기반에 둔 분배를 의미하는 노 당선자의‘연평균 7% 경제성장목표 공약’을 들었다.
그는 또 향후 예상되는 노동정책과 관련, 노 당선자가 TV토론에서 “비정규직 양산을 억제하기 위해서 지금보다 해고는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한 것 등으로 볼 때 노 당선자는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김 교수는 “노 당선자의 노사정책 핵심관점은 개입적인 노사관”이라며 “노 당선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사회적 파트너쉽 형태로 노력하겠다는 생각으로 노사정위원회 형태로 개입할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그는 “노 당선자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조직의 협력을 이끌어 내야 하는데, 현재 노동조직과의 협의를 아무 근거도 없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힐난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노 당선자가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얘기를 꺼낸 것이 큰 변수가 될 수 있다”며 “비례대표제가 실현되면 어떠한 정당도 단독으로 의회를 장악할 수 없으므로, 민노당의 성장 여부에 따라 독일 녹색당처럼 연립정부의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노동운동 기득권화 반성후 사회운동화해야"**
이어 ‘노무현 정권과 노동운동의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발표에 나선 박준식 교수는 “노동운동이 사회진보와 발전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야 한다”고 김 교수와는 다소 다른 주장을 했다.
박 교수는 "노동운동이 민주화운동과 강한 연결 고리를 맺고 함께 성장해 우리 사회에 제도화 하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연결 고리가 느슨해지고, 노동조합이 다수 노동계급과 민중이 아닌 소수 노동자들의 ‘이익단체’로 변질되는 체제화 현상을 찾을 수 있다”고 노조의 귀족화를 비판했다.
박 교수는 “노조의 조직률이 10% 안팎에 머물고 있다”며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조직화 되지 않아 이들의 사회적 이익을 대변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노조운동과 국민 대중 사이의 ‘심리·사회적 거리감’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87년 이후 치열하게 전개된 노동운동은 작업장 중심의 ‘조합적 정체성’을 구성했지만, 이 정체성은 소수의 대기업 작업장에 국한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며 “노동운동이 사회적 권리를 확장시키지 못한 것을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함께 명확한 비전과 전략적 마인드를 지니지 않았던 노동운동 진영 자체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박 교수는 “노동운동이 물질적, 제도적 이익과 지위를 어느 정도 희생하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사회 및 정치의 영역에서 확장시키기 위한 ‘사회적 시민권’ 운동을 도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같은 운동을 도모하기 위해선 “노동운동이 장기적 관점을 통한 초월적 합리성을 갖고 자체 전략 수립과 조직 혁신을 해 나가야 한다”며 “초월적 합리성의 구체적 형태는 산업별 노동조합의 확고한 제도화와 노동운동의 통일”이라고 강조했다.
***"21세기 한국사회의 사회적 주체로 거듭나야"**
박 교수는 “노무현 정권이 노동계의 요구를 얼마나 받아들일지 미지수지만, 노동운동 진영이 정부의 정책 결정 부분에 최대한 참여해야 한다”며 “통로는 어느 때보다 크게 열려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사회적 대타협’을 강조하며 “노사정의 사회적 타협은 노동시장이나 노사관계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서 정치제도, 경제체제, 사회구조 등 우리 사회 번체의 미래구성 방식을 염두에 둬야한다”며 “타협 속에는 ‘고용 유연성’, ‘산별노조’, ‘선거제도’, ‘노동시장제도’, ‘재벌개혁’과 같은 사회 구성 핵심요소들이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또 “과거의 노동운동이 약자들의 운동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지키고 만들어 가는 과정 즉 계급적 정체성의 형성 과정이었다고 한다면, 21세기의 노동운동은 우리 사회의 핵심영역을 책임지는 사회적 주체로 그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사정 참여 적극성 놓고 이견**
당면한 현안인 노사정위원회 문제와 관련해선 참석자간에 다소 이견을 보였다.
김수진 교수는 “김대중 정부가 노사정 위원회 출범시킬 당시에도 노사정 위원회가 담당해야 할 역할 등을 미뤄볼 때, 대체로 노사정 위원회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린 바 있다”며 “5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노 후보 쪽은 노사정위원회를 강화하겠다는데 그러기 위해선 우선 왜 노사정위원회가 왜 실패했나부터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노사정 합의사항이 관철되지 않은 것은 정부쪽의 의지가 제대로 실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노사정 의결 수준을 높이고 합의사항 이행을 위해서는 필요에 따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같이 협의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노사정위가 강화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며 “합의사항 이행을 위해 민노총의 핵심적 연맹대표를 참여시키는 등 노사정위 참여인원 구성을 확대해야한다”고 말했다.
박준식 교수는 이와 관련, “노사정위에서의 타협 방식은 작은 이슈보다 대타협을 끌어내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쟁점사안에 대한 개별타협보다 포괄적 타협을 통해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얻을 것은 확실하게 얻어서 사회의 틀 자체를 과감하게 바꿀 수 있는 대타협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또 “노 당선자측은 노사정위를 통해 노동시장을 안정시켜 해외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를 가라앉히겠다는 의도를 갖고서 노사정위에 거는 기대가 큰 것 같다”며 “노 당선자측이 사측의 참여를 최대한 강제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노사정위에 적극 참여해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내야 한다”고 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한 노조 간부는 이와 관련,“5년 전 노사정위의 출범후 결국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의 칼바람을 맞고 비정규직만 부지기수로 늘게 됐다”며 “노사정위의 체제의 근본적 개혁 없이는 노 당선자가 어떠한 참여도 이끌 수 없을 것이다”고 부정적 전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민노당, 정당명부제 도입에 사활 걸어야**
민노당의 적극적 제도 정치권 진입 필요성에 대해선 이견이 없었다.
김수진 교수는 “정치개혁이 한국 사회의 권력구조 재편에 끼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며 “노동운동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민노당의 원내 진출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했다.
박준식 교수는 “민노당이 현재와 같은 정치 상황에서 의석을 얻기 위해서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도입이 필수인데, 이 문제는 선거법상 올 4월까지 매듭지어야 하는 시급한 사안인 만큼 노동계의 양보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얻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회 마지막 발언에 나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금수 이사장은 “브라질 노동당의 룰라 대통령이 전투기 구입자금 7억달러를 빈곤퇴치 자금으로 전환한 것을 보면 정치권력의 획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며 “노 당선자에 대한 근거 없는 기대를 접고 노동운동이 자기 혁신과 냉철한 정세판단을 통해 범사회적인 진보운동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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