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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대세론’ 무너지고 있나

자민련ㆍ보수세력 등돌리고 TK 부동층 늘어

대선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회창 대세론'이 흔들리고 있는 조짐이 보여 한나라당에 초비상이 걸렸다.

우선 믿었던 자민련이 7일 돌연 한나라당과의 공조설을 적극 부인하는 논평을 발표하면서 등을 돌렸다. 사실상 이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던 이인제 자민련 총재대행도 9일 '여중생 추모집회 참가' 등 이 후보의 '반미 행보'를 비난하고 나섰다.

대표적인 보수우익 논객인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이사 겸 편집장도 지난주 세 차례나 이 후보의 '반미 행보'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을 발표하는 등 보수세력 내 균열조짐도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또한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후보 '텃밭'이라 할 수 있는 대구·경북 지역의 부동층이 20%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진영내 결집력의 뚜렷한 이완이다.

이런 '비상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한나라당은 8일 긴급의원총회를 열었으나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이 후보는 8일 ▲당선시 전재산 국민에 헌납 ▲새 정부 참여인사의 의원직 사퇴 ▲권력형 비리에 대한 특검제 도입 등 '7대 정치개혁안'을 내놓았지만 갑작스런 '개혁 카드'에 대해 정치권뿐 아니라 유권자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자민련 "공조 부인", 이인제 "반미 이용 말아야"**

자민련 유운영 대변인은 지난 7일 돌연 양당간 '대선공조'를 부인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유 대변인은 논평에서 "한나라당이 수차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 당을 대선에 악용하기 위해 우리 당과의 공조니, 연합이니, 공동유세니 하는 음해성 유언비어를 날조하는 행태를 계속할 경우 3백만 당원의 이름으로 반드시 응징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유 대변인은 "이념적으로 정체불명의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도 안 되지만 이유야 어떻든 두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도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분명한 입장"이라며 "한나라당이 우리 당의 최후통첩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이후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한나라당 측에 있음을 분명히 해둔다"고 덧붙였다.

이인제 총재권한대행도 9일 마포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여야 대선주자들이 반미정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 급급해 하고 있어 이들이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자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 대행은 "눈앞의 표만 의식하는 대선후보들은 이성을 찾아야 하며 가식적인 애도를 표명하거나 뒤늦게 추도시위에 참여한다고 해서 무슨 해결책이 나온단 말이냐"며 이·노 후보를 모두 비난했지만 사실상 이는 이 후보를 겨냥한 발언이다.

지난 3일 자민련에 입당하면서 사실상 이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고, 지난 6일에는 97년 대통령선거 당시 이탈 행위에 대해 사과까지 했던 이 총재대행이 이 후보의 '반미 행보'를 명분으로 한 발 빼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가 7일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 '협력' 의사를 밝혀 자민련이 이번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정 대표는 이날 울산 보궐선거 지원유세 도중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의 선거공조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자민련 김종필 총재도 도와줄 것으로 믿는다"며 "곧 만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자민련이 한나라당과의 공조 대신에 정 대표와의 '물밑 협상'을 통해 당의 활로를 모색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충청권에서 이인제 총재대행보다 정 대표의 영향력이 더 클 것이라는 사실이 감지되고 동시에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과 이념적 노선을 달리하는 노 후보를 직접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중립을 유지함으로써 '이회창 대세론'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쪽으로 정치적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조갑제, 이 후보 '반미 행보' 맹비난**

이 후보는 지난 7일 오후 시내 모 호텔에서 토머스 허바드 주한 미 대사를 만나 "이번 사태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미국측에 있다"면서 "부시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SOFA 개정에 즉각 착수하는 것만이 한미 동맹관계가 위험에 처하는 것을 막는 길"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어 광화문 미 대사관 부근 소공원에서 단식 농성중인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추도미사에 참석했다. 또 8일 오후 미군장갑차에 의해 숨진 고 심미선·신효순 양의 유족을 찾아 위로하고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위한 적극 노력을 약속했다.

이같은 이 후보의 '반미행보'는 보수진영내에서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라는 극한적 우려와 반발을 낳고 있다. 이인제 총재대행이 이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명분으로 이를 거론했을 뿐아니라 보수우익 내에서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보수우익 논객인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 및 편집장은 지난 주 2일, 3일, 6일 세 차례에 걸쳐 자신의 홈페이지(www.chogabje.com)에 이회창 후보를 맹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조 사장은 "한국의 우파 세력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였던 이회창 후보의 최근 선거운동 행태가 일대 혼란에 빠지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며 "그는 두 여중생 사망사건에 부시 대통령이 사과를 했음에도 또 다시 사과를 요구하고 한미행정협정의 재개정도 요구함으로써 반미운동에 편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 사장은 "이회창 후보는 지금 반미운동의 확산을 저지하고 두 여중생의 사망이 한미동맹관계를 오히려 더욱 공고하게 하는 방향으로 승화되도록 노력해야 할 때인데, 반미운동에 우파 지도자가 동조함으로써 이 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는 그의 이상한 전략은 일종의 자해적 선거운동"이라고 지적했다.

조 사장은 또 "이회창 후보는 이번 선거에 정치적 생명뿐 아니라 물리적 생명까지 걸어야 할 입장"이라면서 "이번에도 또 지면 우파에서는 그가 이념적으로 우파를 배신하여 이길 수 있는 선거를 두 번이나 짐으로써 괴로운 10년을 안겨다 준 사람으로 규정하여 매장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을 "권력기생적, 기회주의적 우파"라고 규정하기까지 했다.

조 사장의 이같은 글은 비록 개인 의견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보수우익의 불편한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TK 지역 부동층 20%**

대선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영남과 충청을 중심으로 오히려 부동층이 늘어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한나라당을 당혹케 하는 부분이다.

특히 전통적으로 한나라당의 절대 우위 지역이었던 TK(대구·경북)지역의 부동층이 20%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 6~7일 한겨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부동층으로 여겨지는 전체 무응답층 비율이 15.7%로 공식선거 운동 시작 직전(11월 23일 조사)보다 오히려 두배 가량 늘었다.

지역별로는 강원 28.6%, 대구·경북 21.4%, 대전·충청 19%, 부산·경남 14.8%, 인천·경기 14.6%, 서울 14.2%, 광주·전라 10.8% 순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후보의 지지율이 높은 지역은 모두 부동층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영남·충청 지역의 부동층을 흡수하는 게 이 후보 지지율 상승의 관건이라고 보고, 8일 이 후보의 기자회견과 의원총회를 여는 등 긴급 대응에 나섰다.

이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집권하면 새 정부에 현역의원을 등용하지 않겠다"면서 "당선 즉시 각계 전문가와 양심세력으로 구성된 '정치개혁 국민위'를 구성하고 최선의 개헌방안이 도출되면 대통령 임기를 단축해서라도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집권 후 자신과 가족이 권력형비리에 연루되면 즉시 대통령직을 물러나겠다"며 "당선시 전 재산을 서민을 위해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밖에 ▲권력형 비리에 대한 특검제 도입 ▲한나라당의 '원내중심 정당'화 ▲일체의 정치보복 금지 ▲고위 공직자 재산의 백지신탁제도 시행 등 '정치개혁을 위한 7대 약속'을 밝혔다.

***마지막 남은 카드는 '지역감정'?**

이 후보 기자회견에 이어 한나라당은 이날 국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대선승리를 위한 결의'를 다졌다. 한나라당은 이날 오전 이 후보가 발표한 정치개혁 7대약속에 대한 실천 결의로 회의를 마쳤지만, 회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이 후보는 이 자리에서 "나는 모든 것을 버렸다"면서 "여러분도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열심히 뛰어달라. 막연한 대세론에 방심하지 말고 열심히 뛰어달라"고 말했다. '집권후 전 재산 국가 헌납' 등 공약이 나온 배경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발언이라 할 수 있다.

이어 서청원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선거 전략과 관련, 잘못된 부분을 귀 따갑게 들었다. 좋은 것은 이어가되, 그 동안의 문제점은 찾아내 전략을 수정하겠다"고 선거전략의 재검토를 시사했다.

국정원 도청설 의혹 제기 등 네거티브 전략에 앞장서왔던 김영일 사무총장은 "네거티브 전략은 확실한 내용과 근거 없이는 앞으로 하지 않겠다"며 "후보의 안정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겠다"고 말했다.

이회창 대세론이 흔들리고 있음을 자인한 발언들이다. 한나라당은 이런 불리한 판세를 반전하기 위한 특단의 카드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주중 부산에서 대규모 군중집회를 계획하는 등 세몰이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지역감정'을 최후의 수단으로 동원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미에서다.

과연 열흘 남은 대선에서 지역감정이 또다시 막판 변수로 떠오를지, 아니면 지역감정 조장세력에게 도리어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는 결과로 나타날 것인지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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