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추진하는 신당 창당이 초읽기에 돌입하면서 자민련이 공중분해 위기에 처했다.
신당행이냐 한나라당행이냐를 두고 소속 의원들 사이에서는 눈치보기가 극성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8.8 재보선을 거치며 존립 의미를 사실상 상실한 자민련의 비참한 말로다.
신당 추진세력이나 한나라당으로서는 '버릴 수는 없으나 끌어안자니 부담인 골치덩어리'라고 하면 김종필 총재와 자민련에게 너무 가혹한가?
애석하게도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는 듯 보인다.
우선 자민련 배제냐 합당이냐를 둘러싼 민주당 내의 갑론을박이 그렇다. 자민련 끌어안기를 주장하는 민주당 일각의 주장을 살펴봐도 외면적인 '세(勢) 과시' 이상의 의미를 기대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백기'를 들고 개별 투항하지 않는 이상 한나라당도 정당으로서의 자민련에 호의를 베풀 리 만무하다. 이미 한나라당은 국회 과반의석을 확보했고, 노무현 정몽준 등 대선 경쟁자들이 낡은 정치와의 차별화를 선언한 마당에 구시대 정치의 표본인 자민련을 끌어들일 만큼 절박하지 않다.
이같은 정치권의 지각변동 양상은 절묘한 정치적 곡예로 40년 정치인생을 걸어온 김종필 총재마저도 정치권 계륵(鷄肋)으로 내모는 인상이다. 그의 40년 정치역정 중 가장 위험한 상황이 바로 지금이라는 분석이 잇따른다.
풍운아 JP. 그리고 닭갈비를 뜻하는 한자어 계륵(鷄肋). 이 두 단어를 붙여 써야 할 때가 온 듯하다.
***대통령 빼고는 안 해본 것 없다**
풍운아(風雲兒)로 불리던 JP. 그의 정치 이력은 대략만 훑어도 화려하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의 주역, 초대 중앙정보부장 ▲1963년 공화당 창당준비위원장, 6대 국회의원(초선) ▲1971년 공화당 부총재, 최연소(45세) 국무총리 ▲1979년 공화당 총재 ▲1987년 신민주공화당 총재, 대통령선거 출마 ▲1990년 3당합당으로 민자당 창당, 최고위원 ▲1995년 자유민주연합 창당, 총재 ▲1998년 국무총리 ▲현(現) 자민련 총재
그의 파란만장한 정치인생을 한줄로 꿰기란 불가능하지만 현역 국회의원 중 최다선인 9선 의원, 2번의 국무총리, 3번의 당 총재 등의 이력은 당ㆍ정 모든 방면에서 가히 기록적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2번의 외유, 신군부로부터 부정축재자로 낙인찍혀 7년여간 정치활동을 금지당했던 시절도 있었으나 그때마다 그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야말로 '잡초'같은 생명력으로 '대통령 빼고는 안 해본 것 없다'는 말이 그에게는 과장이 아니다.
DJ, YS와 더불어 수십년간 우리 정치사를 3등분할해 온 주인공임은 '3김 정치'라는 말이 여전히 정치권에 회자되는 것으로도 증명된다.
***권력과의 공생 테크닉, 처세술이 생명력의 비밀**
그러나 그의 화려한 이력 뒤에는 줄곧 권력의 양지에서 2인자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해 왔다는 비판이 공존한다. 40년이 넘도록 정치발전에 기여한 업적이 무엇이냐는 다소 직접적인 비판이 대종이다.
쿠데타 정부와 유신정권, 5ㆍ6공 군사정권,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까지 권력 주변에서 공생해 온 정치테크닉과 처세술이 그의 생명력의 비밀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 제3당으로서의 틈새전략, 충청권의 지역감정 등을 적절히 배합, 정치적 동력으로 활용한 그의 정치술도 비판의 대상이다.
정치적 선택의 시기에서도 그는 모험을 삼갔다. 구체적인 예로 3공 때 '3선개헌 찬성', 6공때의 '3당 합당', 현정부 출범 당시 'DJP 연합' 등 중요한 기로에서 그는 '직진' 보다는 'U턴'을 택했다.
현정부 출범 후에만 봐도 그렇다.
1999년 그의 오랜 지론이자 DJP 공조의 매개였던 내각제 개헌 약속과 관련 '한나라당의 반대로 불가능하다'는 DJ의 주장을 그는 수용했다.
민주당과의 첫번째 불화로 독자 대응했던 2000년 4.13 총선이 원내교섭단체도 만들지 못한 참패로 끝난 후에는 곧바로 공조를 복원시키는 정치력을 발휘해 고사 위기의 자민련을 구출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현정부와 완전히 결별한 순간부터 자민련과 그의 독자적 행보에 정치적 무게를 둔 관측은 사라졌다.
***鷄肋 신세로 전락한 풍운아 JP**
그의 추락한 위상은 6.13 지방선거 결과 그의 아성이었던 충청권에서 확인됐고, 그 결과 자민련 의원들의 동요는 가속화됐다. 8.8 재보선에서는 단 한명의 후보도 내지 못한 끝에 자민련은 '캐스팅보트'로서의 존재가치마저 상실했다.
뿐만 아니라 2002년 대선정국 중에 그와 자민련이 특별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시각도 사실상 전무하다. 올해 대선과 함께 그의 정치인생도 사실상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관측만 드높다.
대선과 관련해 그가 정가의 주목을 받는 경우는 오로지 '누구와 다시 손을 잡을 것인가'에 국한된 실정이다. 게다가 적극적으로 손 잡으려는 사람도 사실상 없다.
재보선 전까지는 민주당 이인제 의원, 한국미래연합 박근혜 대표 등과의 '충청권 연대론', '보수 연합론'을 무수히 흘렸고 개헌을 매개로 한 연대설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정가에 나돈 무수한 연대설 중에 자민련 중심의 세력규합은 단 한차례도 존재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논의가 진전된 대목도 없었다.
현재 민주당이 추진하는 신당 창당을 위한 영입 고려대상 중에도 자민련과 김 총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현저히 낮다. 당 발전위를 중심으로 지도부와 중진이 나서 정몽준, 박근혜, 이한동 의원 등 기성 정치권 인사들 외에도 전ㆍ현직 대학총장을 비롯한 학계ㆍ문화계ㆍ종교계ㆍ시민단체 인사들에 대한 영입작업에도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으나 김 총재 영입에는 그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다. 대신 비판만 무성하다.
우선 노무현 후보와 당내 개혁세력들은 자민련과 김 총재의 '구시대 정치' 이미지가 야기할 역효과를 심각하게 우려, 적극 반대를 천명했다.
자민련 등 군소정당과의 당대당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는 민주당 비주류 일각의 주장에도 신당의 '외연확대'라는 목적 외에 자민련과 김 총재에 대한 지분배려 논의는 전무한 실정이다. 더구나 김 총재 영입의 전제조건으로 "김 총재가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방침을 못박고 있어 '투항'을 전제로 한 연대에 무게가 실려 있다.
그야말로 계륵(鷄肋) 신세가 아니고 무엇인가.
***아무 말이 없는 JP**
자민련측은 자당에 대한 민주당의 계파간 입씨름에 '우리 당은 가만히 있는데 민주당 일각에서 왜 우리 당 이야기를 하느냐. 대단히 불쾌하다'고 일축했으나 내부적으로는 자민련의 몰락에 대한 비탄의 목소리가 높다.
그래서인지 비아냥 섞인 미묘한 독설로 유명한 김 총재도 요즘 말이 없다.
자민련 의원들의 동요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지 오래고 신당 추진세력과의 지분협상을 위한 변변한 카드도 없다. 그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든 정치적 재기보다는 일시적인 연명에 불과할 것이라는 관측만 무성하다.
40여년간 갖은 굴곡을 헤치며 정치인생을 엮어온 그에게 2002년 대선정국은 '아름다운 퇴장'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분위기다.
"서산을 붉게 물들이겠다"던 JP.
그가 어떤 불꽃으로 서산을 물들일까? 아니 과연 다시 불꽃을 피울 수는 있을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