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은 자민련의 정치생명이 결정되는 날이다.
한나라당이 8.8 재보선에서 13곳 중 9곳에서 이기면, 한마디로 말해 자민련의 존재가치는 '용도폐기' 상태가 된다. 한나라당이 9석을 따내 국회의원 숫자를 1백37석으로 늘려 전체 2백72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면, 2000년 4월 총선에서의 참패뒤 원내교섭단체조차 꾸리지 못하는 처지로 전락했으면서도 절묘하게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며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쥐락펴락했던 '자민련 시대'도 종언을 고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김종필 총재의 지난 40여년간의 파란만장했던 정치생명도 사실상 끝나는 게 아니냐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8일이 '3김 시대'의 완전한 종언을 고하는 역사적 날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한다. 자민련 입장에서 보면, 꿈속에서라도 생각하기도 싫은 상황전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운명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자민련의 정치생명**
자민련은 이번 8.8 재보선에 단 한명의 후보도 내지 못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에 선거가 치러지는 13곳 중에서 수도권 지역만 서울 3곳, 경기 3곳, 인천 1곳 등 도합 7곳이나 된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자민련은 당락 여부를 떠나 이들 지역에 후보를 냈을 게 확실하다. 공당다운 최소한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였다. 또한 공천을 받겠다는 후보들도 몰려들었다. 무소속보다는 자민련 공천이라도 받아야 낫다는 출마자들의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의 대참패 여파다. 6.13선거에서 자민련은 민주노동당에도 뒤진 제 4당으로 전락했다. 그 파장은 컸다. 8.8 재보선에서의 자민련 공천을 얻고자 하는 출마희망자가 전멸하다시피 한 것이다. 극소수 희망자가 있기는 했으나 워낙 지명도가 낮아 차라리 공천을 포기했다는 게 자민련측 전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거 하루 전날인 7일에도 자민련은 썰렁하다. 한나라당, 민주당 수뇌부가 거센 폭우에도 불구하고 비를 맞으며 연일 선거밭을 누비고 있는 것과 너무나도 대조적인 풍경이다.
김종필 총재의 행보도 보기에 안쓰러울 지경이다. 김총재는 지난 6일 6박7일간의 일본 방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그의 방일기간중 정가 일각에선 'JP가 국내에 있기에 안쓰러워 일본을 찾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기도 했다.
김 총재는 7일 마포 당사에 출근했지만 당직자회의 등을 소집하지 않은 채 실무당직자들로부터 밀린 당무만 보고받는 데 그쳤다. 김 총재는 당직자들로부터 민주당 신당 논의 등 최근의 정국에 대해 보고받았으나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말 그대로 정치권의 최대행사인 선거에서 철저히 '소외'된 모습이다.
***8.8선거의 최대패자는 자민련?**
선장인 김종필 총재가 이런 모습을 보이니, 선원격인 자민련 의원들도 갈팡질팡하기란 마찬가지다.
자민련 의원들은 재보선 직후 민주당에서 신당논의가 공론화되면서 정계개편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당과 자신의 향후 거취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다.
자민련은 8.8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9석 이상 승리하는 일이 결코 없기를 내심 절실하게 기원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독자적으로 과반수를 차지하는 일이 없어야만 그나마 자민련의 존재가치 및 자민련의 내부결속 명분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 대책을 세우는 이들이 적잖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게 되면 자민련의 운신폭은 사실상 제로(0)가 된다"며 "이렇게 될 경우 설령 민주당에서 일고 있는 신당 움직임에 합류하더라도 자민련은 거의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돼 의원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각자 흩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미 상당수 의원들은 이같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각자가 자신의 거취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DJ정권 출범 당시 공동여당으로서 장관직을 나눠갖던 꿈같던 세월은 어디 가고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허망할 뿐"이라며 자민련의 처연한 처지를 개탄했다.
8.8 재보선은 그 결과에 따라 정치권에 일대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지각변동은 승자와 패자를 낳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번 8.8.재보선의 최대 패자는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은 자민련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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