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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손아귀에 든 '한국정치 아킬레스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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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국 손아귀에 든 '한국정치 아킬레스건'

대선정국 뇌관, 이석희ㆍ최성규ㆍ안정남 모두 미국 수중에

민주당 외곽단체의 한 연구원이 작성한 '이회창 불가론' 문건이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이 문건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중 하나가 '세풍 재점화'를 위한 이석희 전 국세청차장 활용 건이다. 이 전 차장은 현재 미국에서 검거돼 사법당국의 심사를 받는 중이다.

'문건'에는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을 귀국시켜 세풍의 진실을 밝히면 이 총재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이 총재 평소 지론대로 '법대로'를 적용한다면 이는 이 총재 구속사안이 될 수 있음"이라고 이석희 카드의 파괴력을 기술해 놓았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이씨를 귀국시킬 것인지는 언급이 없다. 단지 "9월 한국으로의 인도설도 나오고 있음"이라고만 적고 있을 뿐이다.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이석희 전 차장의 조기귀국은 더없이 바람직스러운 일이나 과연 연말 대통령선거 전에 귀국할지 여부는 자신할 수 없다는 뉘앙스다.

***"현재 미국은 이석희 카드를 가지고 이회창 후보를 컨트롤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그런데 여기서 정작 주목해야 할 문건의 대목은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현재 미국은 이석희 카드를 가지고 이회창 후보를 컨트롤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한 마디로 말해, 이회창 후보의 아킬레스건을 미국이 쥐고 있다는 얘기다. 이 구절은 더 나아가 미국정부가 이석희 카드를 갖고서 이회창 후보를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의미로까지 해석가능하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더없이 심각한 상황이다.

차기 대통령후보의 아킬레스건을 미국이 쥐고서 흔든다는 것은 또다른 차원에서의 '한국정치의 대미 종속'을 의미하는 중차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회창 아킬레스건', 이석희**

1998년 8월 동아건설의 재산 해외도피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이석희 당시 국세청 차장 등이 업체들로부터 대선자금 1백66억7천만원을 모금해 한나라당에 전달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른바 '세풍' 사건으로 회자된 이 사건은 자금 규모에서 알 수 있듯이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동생 이회성씨, 배재욱 전 청와대 사정비서관, 임채주 전 국세청장, 주정중 전 국세청 국장, 김태원 전 한나라당 재정국장 등의 구속으로 이어지며 '이회창의 아킬레스건'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정작 주범격인 이석희씨가 미국으로 도피한 뒤에 수사가 시작됨에 따라 구속자 대부분이 99년에 보석으로 석방되는 등 세풍 수사는 힘을 잃어갔다. 결국 검찰은 이석희씨를 기소 중지하고 미국에 인도 요청하는 것으로 수사를 사실상 마무리했다.

3년 8개월여 간의 미국 도피생활을 해 온 이씨가 올해 2월 미 연방수사국 요원들에게 체포돼 미시간주 연방법원 재판정에 서면서 '세풍 재점화'의 분위기는 다시 고조됐다. 공판이 끝나는 대로 미국 국무부는 9월 5일까지 이씨를 한국으로 인도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대선 전에 이씨가 송환된다면 이회창 후보는 지난 97년에 터진 '아들 병역비리 의혹'을 능가하는 악재를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반면 체포, 구금 상태인 피의자가 제기할 수 있는 인신보호 영장제도를 이용해 재판이 지연된다면 송환이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이 모든 판단은 미국의 결정에 달렸다.

***현정부 최대 뇌관, 최성규**

그러면 미국에게 명줄을 잡힌 쪽은 과연 이회창 후보측뿐일까.

현 집권층의 경우도 보기에 따라선 마찬가지 난감한 처지에 빠져있다.

최규선 게이트의 비밀을 간직한 최성규 총경, 각종 권력형 청탁 의혹을 사고 있는 안정남 전 국세청장 등이 지금 모두 미국에 도피중이기 때문이다. 이들이야말로 보기에 따라선 미국에 넘어간 현 정부의 명줄이라 할 수 있다.

정가에서는 대선정국과 맞물려 미국이 이같은 '유용한 카드'를 가지고 행사할 영향력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2002년 선거정국을 통째로 뒤흔든 '최규선 게이트'의 핵심인물 최성규 총경은 현정권 최대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최 총경은 최규선씨의 각종 비리에서 해결사 노릇을 해 온 인물로 알려졌다. 최 총경은 최규선 소환을 며칠 앞둔 지난 4월 청와대 민정비서 등과 접촉한 뒤 미국으로 도피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출국과정부터 한국과 미국 정부의 조직적 공모 의혹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최 총경은 무난히 미국에'입성'했으며, 이후 미국에서 그의 행적은 오리무중이다.

당시 언론에는 미 정부가 최 총경을 정치적 '볼모'로 확보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등장하기도 했다. 나아가 미국 수사당국은 이미 최 총경의 신변을 확보하고 있으며, 결정적 순간에 한국 정부와의 협상 카드로 활용할 것이라는 음모론적 관측도 대두됐었다. 최규선씨와 김홍걸씨에 대한 수사는 마무리됐지만, 최 총경 도피로 밝혀지지 않은 의혹은 여전히 엄청난 폭발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권력비리자들의 도피천국?**

대통령 차남 홍업씨의 세무관련 청탁으로 '제2의 세풍'을 예고한 안정남 전 국세청장도 미국 도피중이다.

안 전 청장은 이용호 게이트 관련 KEP전자의 수십억원대의 회계조작 무마, 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동생 승환씨의 감세청탁, 김홍업씨의 친구 김성환씨의 청탁을 받아 미스터피자의 추징금 삭감지시 등 각종 권력형 청탁 개입은 물론, 대치동에서 시가 50억원 상당의 투기와 증여세 탈루 의혹 등 개인 비리 의혹까지 안고 있는 인물이다.

안 전 청장은 각종 비리 의혹이 불거진 지난해 7월 병원에 입원하는 등의 소동을 빚다가 11월 비밀리에 출국했다. 일본과 캐나다를 거쳐 현재는 미국 워싱턴 DC 근교 메릴랜드주에 있는 아들 집에 기거하며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안 전 청장의 도피 행각에도 조직적인 지원세력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암 투병중인 그가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은 채 장기간 해외도피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 전 청장의 개인 비리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정부에 범죄인 인도요청을 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소환요청에 늑장을 부리는 것도 의심을 자초하고 있는 대목이다.

결국 최성규 총경과 안정남 전 국세청장 등 현 정부 권력 비리의 최대 '뇌관' 역시 미국의 손에 넘어간 셈이다.

***미국 손아귀에 든 한국 정치의 아킬레스건**

최근 한 언론 보도(신동아 2002년 7월호)에 따르면 지난 5월 미 CIA 한국지부장은 청구동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자택을 찾아 이회창, 노무현 대통령 후보에 대한 미국측 평가를 전달한 뒤 이석희씨의 조기 귀국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관계자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미국은 이석희 건을 미끼로 한나라당과 거래하려 들 것"이라며 "현재 미국이 여러 경로를 통해 이회창을 확실하게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발언을 흘리는 것은 이회창 후보를 압박함으로써 당선 후를 보장받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선정국이 본격화되면 미국이 현재 확보중인 '볼모'들을 어떻게 취사선택할 것인지는 선거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앞으로 미국의 행보와 관련, 예의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대선 때문이 아니더라도 현 정부와 각 정치세력의 예민한 부분을 미국정부가 확보하고 있다는 자체가 유쾌하지 않다. 한미 양국의 시각이 다르거나 이해관계가 민감한 사안에 대해 미국이 이같은 카드를 들이밀 경우 외교적 저자세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부패 권력자들에게 미국은 도피의 천국일지 몰라도 정치적 아킬레스건을 볼모로 미국이 작용하는 힘의 논리를 일반 국민들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차세대 전투기 강매, 양주 여중생 압사 사건 등에서 대미 관계의 '줏대'를 가지라는 국민들의 주문은 그래서 드높다.

도피행각을 벌이는 인사들의 행태가 추악하고 정치적 폭발력이 아무리 크더라도 우리 정치의 운영과정에서 터지는 것이 백번 낫다.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미국에 도피중인 정치사범을 적극 검거함으로써 미국에 스스로 건네준 각 정치집단의 명줄을 되찾아오라는 요구는 아무래도 무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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