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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행복주택, MB 4대강 사업 전철 밟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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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행복주택, MB 4대강 사업 전철 밟나

[기고] '철로 위' 고집해선 안 돼… 도심 유휴 시설 활용해야

당초 이달 말로 예상됐던 행복주택 시범지구 7곳(서울 오류·가좌·공릉·목동·잠실·송파(탄천)와 안산 고잔)에 대한 지구 지정이 다음 달로 연기됐다. 지역 주민의 거센 반발로 설명회와 공청회는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앞서 지난 4월 행복주택이 불러올 '낙인 효과'와 차별 문제를 지적했던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한 방안을 담은 새 글을 보냈다. <편집자>

정책을 입안해 실행하려다 현실과 정책에 괴리가 있단 사실을 발견한다면 이전에 계획한 정책 내용을 충분히 변경할 수 있다. 같은 정책 목표를 구현하면서 실행 전략만 변경할 수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거센 국민 반발에 직면해 정책 내용을 일부 수정한다면, 이는 때에 따라서는 용기 있는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불통' 때문에 생긴 정책 폐해를 우리는 4대강 사업에서 충분히 경험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반대했고 국민 상당수가 의구심을 품었던 사업이었지만, 이명박 정권은 이를 고집스레 추진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형편없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감사원장조차 4대강 사업이 문제가 있었던 사업임을 인정했다. '불통' 대통령이 '영혼 없는' 공무원들과 합작하여 만들어낸 4대강 사업이 주는 교훈은 명백하다.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국민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국민을 설득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선례가 없는 정책이라면, 작은 단위부터 시행해 성공 여부를 찬찬히 살펴본 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의 주거 복지를 향상하기 위한 박근혜 정부의 행복주택 정책은, 피상적 구호에 그친 4대강 사업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좋은 정책이다. 하지만, 행복주택 추진 과정을 바라보며, 4대강 사업을 추진했던 '영혼 없는' 공무원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필자만의 기우인가? 7개의 행복지구 예정 지역 중, 6개 지역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그런데도 4대강 주무 부처였던 국토교통부는 대통령의 공약을 실현할 기세다.

▲ 행복주택 시범지구 후보지로 선정된 서울 오류동역·가좌역·공릉동 경춘선 폐선부지·안산 고잔역 등 철도 부지 4곳과 서울 목동·잠실·송파 탄천 등 유수지 3곳 등 총 7곳. 총 48만9000㎡다. ⓒ연합뉴스

과연, 님비(NIMBY)인가?

일각에서는 행복주택 예정지 주민들이 이 정책을 반대하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비난한다. 사회 전체에는 이롭지만, 자신들에게는 불리하니 반대한다는 비난이다. 하지만 이들의 반발이 정말 '님비(NIMBY)' 현상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관련 기사 보기 : 박근혜 '행복주택'이 가져올 불행…섞는 게 답이다)

사람들은 나름의 합리적 기준을 바탕으로 행동한다. 특히 자신이 소유한 자산 가치에 대한 것이라면, 그들은 다른 누구보다 고민하면서 그 가치를 최소한 유지하거나 상승시키려 할 것이다.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할 때에는 최악의 경우와 최상의 경우를 모두 고려하여 행동을 결정한다. 행복주택 예정지 인근 주민들이 만약 다음과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고려하여 반대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나?

중앙 정부가 소유한 임대 아파트는 다음과 같은 구조로 개발되어 운영된다. 거대한 임대 아파트 단지를 개발하는 비용은 대개 중앙 정부가 부담한다. 엄청난 토지 비용과 건설 비용을 중앙 정부가 부담하는 것은 칭찬할 일이다. 하지만, 임대 아파트 단지 유지 및 관리에 필요한 많은 비용마저 중앙 정부가 부담하는 것은 사실 지나치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으로 관리 비용은 임대 아파트 입주민들이 부담하게 되고, 이 부담 비용은 임대 아파트 주민들이 지불하는 임대료에서 나온다. 간략히 정리하면, 개발 비용은 정부가, 관리 비용은 임대 아파트 입주민(저소득 취약 계층)이 부담하는 구조다.

만약 호경기로 취약 계층의 주머니 사정이 좋다면, 그들은 임대료를 제때 낼 것이다. 그리고 물가가 상승한 만큼 임대료가 조금씩 상승하더라도 그들의 임금도 마찬가지로 올라간다면, 충분히 임대료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불경기일 때 발생한다. 극심한 불경기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고 가정하자. 저소득층의 임금이 불경기 속에 인플레이션만큼 상승한다면 이전과 동일한 실질소득을 유지할 수 있다. 이 경우 인플레이션만큼 오른 임대료를 지불하는 데 무리가 없다. 그러나 2008년 세계적 경제 위기에서 목도한 현실은 저소득층의 임금은 인플레이션만큼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대료를 올려야 하는 현실이 닥쳤음에도 주민들의 소득이 오르지 않는다면, 정부는 임대료를 올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이때 정부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 불경기에 세금이 덜 걷혀 재원도 없는 형편에 임대료 부족분을 담당할 수 없으니, 임대료를 올려야 할까. 아니면 표를 의식해서 정부가 부족분을 담당해야 할까. 정부의 선택은 어쩌면, 주민들 임대료를 올리지 않는 대신, 아파트 관리에 들어갈 돈을 깎는 것일지 모른다. 즉, 관리 서비스의 질을 과거보다 낮추는 결정을 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 운영을 중지한다든지 지역 커뮤니티 시설을 폐쇄하는 결정이다.

하지만, 이렇게 관리 서비스의 수준이 낮아지게 된다면, 임대 아파트 주민 중 소득이 그나마 괜찮은 주민은 서서히 그 단지를 떠나게 될 것이고, 임대 아파트 단지의 공실률(건물에서 비어 있는 집이나 사무실이 차지하는 비율)은 증가할 것이며, 남아 있는 더 못사는 계층은 더 많은 관리비 부담에 괴로워할 것이다. 결국 임대 아파트 단지는 처참하게 폐허가 되어 우범 지대가 되고, 궁극엔 게토(ghetto)로 남을 수 있다.

이는 상상 속에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1960~1970년대 미국 대도시 임대 아파트에서 실제로 발생한 일이다. 규모는 다르나, 며칠 전 파산을 신청한 미국 디트로이트시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물론 미국과 같은 극단적인 경우가 행복 단지 정책에서도 그대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행복 단지 예정지 인근 주민들이 이런 우려를 하고 있다면, 자신들의 주거지 근처가 '게토'화할 가능성이 있기에 해당 정책을 반대한다면, 이를 단순히 '님비 현상'으로 매도해서는 곤란하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행복주택 정책이 5년 후에도 이어질 거란 보장이 없다. 당장 이명박 정권의 보금자리주택 정책만 해도, 박근혜 정권 출범과 함께 5년 만에 막을 내렸다. 두 정권은 같은 정당에서 탄생했는데도 말이다.

만약 5년 후, 새 정부가 들어서 행복주택 관리와 운영을 나 몰라라 한다면, 그 피해는 행복주택 거주민뿐 아니라 주택 인근 주민들에게도 돌아간다. '영혼 없는' 공무원들이 새 대통령 정책에 반기를 든 경우를 근래에 본 적이 없다.

정책이 5년마다 바뀌는데, 5년 이후의 미래상이 현재의 조감도에서 변함없이 좋다고 어떻게 지역 주민을 설득할 수 있을까. 지역 주민이 이런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해 행복주택 사업에 반발하고 있다면, 이를 단순히 '님비'로 치부할 수 있는 걸까.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환영의 대상이 되는 곳에서 시작하라

행복주택 수혜 대상자에는 신혼부부와 대학생 등과 같이 미래에는 잠재 소득이 있으나 현재는 그렇지 않은 취약 계층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미래에 충분히 중산층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층임에도, 행복주택 예정지 인근 주민들에게 환영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행복 단지의 불투명한 미래로 말미암아 이들의 잠재력이 도외시된 채, 정책 계획 단계부터 이미 차별 대상으로 전락했다.

좋은 목표를 가진 정책이 구현도 되지 않은 단계에서 주민 반발을 불러오고 일부 계층을 차별하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면, 이 정책이, 특히 대상지 선택이 제대로 된 것인지부터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 공약은 행복주택을 철로 위에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약집에 그렇게 적혔다는 이유로 철로 위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생각을 약간 바꾸어, 철로 위가 아닌 다른 곳을 고려할 수 있다. 현재는 취약 계층이지만 미래는 중산층이 될 사람들이 당장 환영받을 수 있을 곳으로 대상지를 고르고, 그곳에 살 사람들이 지역을 이끄는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외국의 수많은 도시 재생(도심지 활성화) 개발 계획의 목표는 '어떻게 하면 쇠퇴한 도심을 활성화하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미국 거대 도시인 뉴욕 맨해튼이 좋은 예다. 1970년대 맨해튼은 당시 이 도시를 배경으로 한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영화 <택시 드라이버>(1976년 작)를 떠올리면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곳곳의 주택 유리창은 깨져 있었고, '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같이 높은 범죄율과 실업률로 도시는 황량했다. 이대로 더는 도시가 성장하지 못할 거라는 절망감이 도시 전체를 지배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시 소재 프루이트 아이고 임대 아파트 단지의 깨진 유리창. ⓒ김경민

당시 이런 암울한 모습의 도심을 활성화하기 위해 많은 대책이 제시되었다. 그중 하나는 대학생 기숙사처럼 젊은 계층이 살 수 있는 공간을 쇠퇴한 도심지에 만드는 것이었다. 젊은 대학생들은 늦은 시간까지 거리를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거리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효과가 나타나면서 24시간 살아 있는 도시(24-hour city)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은 부유층 수준의 소비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스타벅스와 같은 팬시(fancy)한 공간을 선호한다. 이런 대학생들의 소비 습관을 충족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상점이 출연하게 되었다.

매우 위험하고 쇠퇴한 지역에 위치한 기숙사는 기숙사 자체가 게토화되어 그 주변 지역과 단절된 것이 아니라, 바로 인접 주변 지역의 거리에 학생들이 돌아다니면서 지역에 새로운 상점들을 불러들였고 종국에는 지역 활성화에 기여했다. 범죄의 온상지인 미국 시카고에서도 나타난 효과다. 대학생들이라는 주거 취약 계층이 지역의 환영을 받으면서 등장하여 지역 활성화를 이룬 것이다. 취약 계층이 차별 대상이 아니라 환영 대상이었으며, 그들의 주거 복지를 일정 부분 해결했을 뿐 아니라 지역 활성화라는 부가적인 가치를 창출한 것이다.

서울 도심에 위치한 유휴 시설을 활용한다면?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의 역점 프로젝트들은 사업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기에 멈춰 선 것들이 많다. 특히 세운상가와 그 주변 지역 재개발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이 계획은 주변 지역을 초고층으로 개발한 후 개발 이익으로 세운상가를 공원으로 만들고자 했던 거대한 재개발 계획이었으나, 사업성 검토가 부실해 전면 중단된 상태다. 특히 세운상가 주변 지역은 재개발로 묶이면서 더욱 쇠퇴했고, 그렇기에 지역 활성화는 더욱 절실하다. 게다가 세운상가 건물 크기는 워낙 압도적이라 건물의 좌측과 우측 지역은 단절돼 있다. 그래서 더욱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세운상가 입주 업체들의 동의와 충분한 보상이 주어진다는 전제 아래, 세운상가를 행복주택 단지로 리모델링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세운상가와 인근 아파트는 애초에 주거 단지로 건설되었고, 비록 현재의 모습이 압도적이고 낡았으나 건축적 완성도는 매우 높다. 약간의 리모델링으로 일정 수준의 주거 단지와 문화 예술 기능을 저층부에 입점시킨다면, 세운상가는 주거와 문화 예술 복합 단지로 거듭날 뿐 아니라,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리고 세운상가가 단절을 일으키는 곳이 아닌, 주변 지역과 소통하는 장소로서 기능할지도 모른다.

비단 세운상가만이 아니다. 도심에 존재하는 정부 소유의 유휴 시설을 적극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해, 미래의 중산층이 환영을 받으면서 살게 하고 그들을 지역 활성화를 이끄는 주체로 성장시켜야 한다. 철로 위 행복주택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취약 계층이 환영받는 곳으로 대상지를 바꾸어 행복주택 단지를 건설할 가능성을 살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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