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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동계 맏형’ 권노갑 침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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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동교동계 맏형’ 권노갑 침몰하는가

'판도라의 상자' 열릴까 정가 초긴장

진승현 게이트를 수사중인 서울지검 특수 1부는 3일 오전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 대해 금감원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으로부터 진씨 돈 5천만원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이날 오후 2시 권씨에 대해 영장실질 심사를 벌일 예정이며 오후 늦게 영장 발부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세칭 '동교동계의 맏형', '정권 2인자'로 통하며 김대중 대통령과 40년 정치역정을 함께 걸어온 권 전 고문은 정치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이미 지난 91년 수서 사건과 97년 한보철강 사건에 연루돼 사법처리된 바 있는 그는 현정부 출범 이후에도 각종 게이트가 터질 때마다 배후로 지목돼 왔다. 그러나 정치자금과 관련한 각종 사건에 연루 의혹이 대두될 때마다 그는 "일생을 살면서 부정한 돈을 받지 않았으며 정치자금을 받더라도 조건이 붙은 돈은 받거나 개인적으로 축재하지 않았다"며 "나는 정거장일 뿐"이라고 반박해 왔다.

진승현 게이트 연루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지금도 그는 "진승현 일당이 저지른 허위날조"라며 강력 부인하고 있어 사법처리 여부가 불투명하다. 하지만 그의 검찰 조사는 여러 모로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그에 대한 조사를 계기로 여야를 막론한 정치인들의 무더기 조사가 예고돼 구시대의 정치자금 조성과 관리방식 전체가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가 입을 열 경우 그동안 동교동계의 자금 조달 전모가 밝혀지면서 메가톤급 파장이 일어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권 고문 구속은 이밖에 노무현-한화갑 체제의 등장과 더불어 '동교동계의 쇠락'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는 정치적 해석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야당은 권력형 비리를 개인 비리로 몰고가려는 음모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40년 'DJ 그림자'**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 후배이자 목포상고 후배인 그는 63년 김대중 의원의 비서관을 시작으로 71년 신민당 대통령후보 민정담당 보좌역, 87년 평민당 총재 비서실장, 96년 국민회의 총재 비서실장 등을 역임하며 김 대통령 그림자의 길을 걸어왔다. 13, 14, 15대 국회에 입성했으나 그의 40년 가까운 정치인생은 주로 조직이나 자금 관련 일을 도맡아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항상 DJ의 곁을 지켜온 인물로서 그는 범동교동 인맥, 나아가 DJ를 지지하는 각계각층의 호남인맥을 총괄하는 위치를 굳혀왔다. 당내에서도 그는 각종 선거에서의 공천과 인사 등에 깊숙이 개입해 왔기 때문에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고 정치자금과 관련한 잡음과 의혹도 무성했다.

그의 측근들은 그가 김 대통령의 뜻을 가장 잘 알고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또한 동교동계의 좌장 격인 그의 힘을 빌어야 당 안팎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도 과장이 아니었다.

그러던 그가 97년 대통령 선거 때는 한보사건으로 구속돼 있어 직접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 현 정부 출범 후에는 그를 견제하려는 동교동 신파 및 신진소장 그룹이 등장하면서 영향력이 한풀 꺾이는 듯했다. 98년 8.15 특사로 풀려난 지 일주일만에 일본 등으로 장기외유를 떠나 이후 김 대통령과의 틈새가 벌어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무성했다.

그러나 99년 11월 민주당 상임고문이 되면서 그는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재개했고 2000년 4.13 총선 때는 정치자금 조달 및 공천 등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역시 권노갑"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는 낙천자들을 정부산하단체에 배려하는 역할까지 맡았을 정도였다.

2000년 12월, 당시 정동영 최고위원의 '권노갑 사퇴 발언'에서 시작된 여론의 압력으로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그는 3개월 만에 정치재개를 선언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또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 이인제 후보 진영에 자파계보 의원들을 파견하는등 '킹 메이커'를 자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되면서 그의 위상은 급락, 지금 40년 정치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민주당내 최대 계파의 지위를 누려왔던 동교동계 구파도 4.27 전당대회에서의 퇴조에 이어 그의 구속영장 청구를 계기로 몰락이 가시화됐다.

***권노갑=정치자금 정거장?**

정가에서는 그가 동교동계를 이끌며 김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오랫동안 실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그의 자금 동원과 관리력에서 찾는다.

여권 내에서는 "권 전 고문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는 말이 공공연할 정도다. 각종 선거 때마다 공천권에 깊숙이 개입했던 것은 물론 후보들에 대한 자금 지원도 그의 손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최측근인 김태랑 전 의원이 펴낸 자서전 '우리는 산을 옮기려 했다'에는 "추미애 의원이 최고위원 출마의사를 표명했을 때도 권 전 고문은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며 "사실상 16대 총선(2000년 4.13총선)을 진두지휘했다"고 기술돼 있다.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호주머니 사정이 쪼들리던 야당시절에도 권 전 고문만은 우리와 사정이 달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다른 의원은 "권 고문은 호방하고 손이 큰 스타일이었다"고 말한다. 민원을 하면 그 자리에서 직접 관련부처에 전화를 걸어 해결해주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사례비는 그후에 전하는 것을 받는 통큰 스타일이지, 먼저 돈을 요구하는 일은 없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이처럼 40년 정치인생을 통해 나름대로 구축한 자금조달 라인을 토대로 오랜 기간 조직의 막강한 실세로 군림하던 그가 정치자금과 관련해 의혹을 사기 시작한 것은 97년 한보사건부터다. 그는 97년 3월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으로부터 국감조사 무마용으로 뇌물(2억5천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같은 해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5년, 추징금 2억5천만원을 선고받고 98년 8.15 특사 때 복권됐다.

그는 이 일로 정치일선에서는 한발 후퇴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권 인사들에 대한 정치자금 물밑 지원은 중단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김근태 의원의 고해성사를 계기로 그의 정치자금을 둘러싼 의혹은 다시 한번 불거졌다. 2000년 8.30 전당대회 때 김근태, 정동영 의원에게 각각 2천만원을 지원해 준 사실을 그 스스로 인정했고 4.13 총선에 앞서 공천 실무작업을 주도했던 몇몇 소장파 의원들에게 사무실 운영경비를 지원해준 부분도 확인됐다.

그러나 김근태 의원 발언이 문제되자 그는 "집사람이 운영하는 음식점 두 곳(돈가스, 비빔밥집)에서 나온 돈과 곗돈으로 모은 현금, 오래전부터 친지들이 도와준 십시일반이 포함돼 있다"고 무마하고 "그 외의 어떤 의원이나 정치인에게도 돈을 준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누가 보기에도 궁색한 변명이었으나 그는 일관되게 이 주장을 밀고 나갔다. 그는 아울러 "나는 정거장"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내가 입을 열면 모두가 피곤해지니, 더이상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였다.

***'판도라의 상자' 열리는가**

이렇듯 정치자금 의혹이 불거졌을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고비를 넘겨 건재를 과시했던 그가 정·관계를 긴장으로 몰아넣고 있는 진승현 게이트의 핵심으로 지목받으며 한보사건 이후 5년만에 다시 법망에 걸려들 위기를 맞고 있다.

정가에서는 검찰 수사의 타깃이 동교동 실세에 맞춰져 있고, 진승현 게이트의 종착점은 동교동계의 맏형인 그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더욱이 검찰 수사가 자금출처 문제로까지 확대될 경우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질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관측된다.

그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계기로 정치자금의 조성과 관리 방식과 관련한 3김 정치시대의 오랜 관행이 깨질 것인지도 정가의 주목을 끄는 부분이다.

동교동계의 한 관계자는 "권고문은 자신의 말마따나 김대통령의 지난 40년 정치일정과 운명을 같이 하며 자금 마련, 조직 관리 등 궂은 일을 도맡다시피 해온 측근중 측근"이라며 "그에 대한 정치자금 수사는 곧 김대통령의 정치자금 문제와도 무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총선때 들어가는 돈은 어마어마한 액수"라며 "특히 민주당이 여당이 돼 치른 지난 4.13총선때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돈이 소요됐다"고 밝혔다. 그는 "따라서 권 고문은 자의든 타의든 정치자금을 모으는 악역을 맡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며, 이 과정에 모은 돈이 10이라면 그 가운데 8이나 9는 당을 위해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컨대 권 고문이 입을 열 경우 향후 정국에 미칠 파장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얘기다.

권고문은 현재 상당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토사구팽이 아니냐는 반응인 셈이다. 권 고문과 그의 측근들이 검찰 소환을 전후해 김은성 국정원 전차장, 김홍걸, 최규선 등의 이름을 거명한 것도 이같은 반발에 따른 경고성 메시지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과연 권고문의 입이 열릴 것인가, 정치권이 긴장 속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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