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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 보슈, 부시!"

김정환 시인, 조지 부시의 독백을 따라가다

경호는 완벽하고 테러 위협도 별로 없을 테지만. 미국 대통령 부시는 대한민국을 방문하면서 기분이 영 찜찜한 게 아니었다. 몇 번을 되새겨 봐도 자기 말이 맞았다. 9. 11테러를 당한 이래 대통령 경호는 `열화와 같은 국민의 성원`을 받으며 날로 강화되어 왔다. 그전에도 세계 최고 수준이었는데 어떻게 더 강화하지? 그게 실로 난해한 실존의 문제요 진보의 사명 아니었던가. 내가 봐도 미국인들은 참 순박한 백성이란 말야. 개인의 권리니 프라이버시 침해니 할 때는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 같다가도 국제적으로 슬픈 일에 눈물 잘 흘리고, 감동 잘하고, 모금 잘 하드만, 휴머니즘이드만 웬걸, 뉴욕 무역센터 빌딩 무너지니까 장난 아니데. 삽시간에 성조기 파도가 물결치는 거 봐. 보라구. 언론도 이구동성이야. 미국 시민 한 명 목숨 값이 아프가니스탄 사람 천명이든 만명이든 도대체 끝간 데가 없잖아. 한국에 테러 위협이 희박한 것도 그랬다. 분단-분쟁지구라지만 남한이 어디 팔레스타인인가. 팔레스타인이 물불 안 가리는, 에이즈도 불사하는 창녀라면 남한은 정절을 지키는 첩이지. 뭐, 애첩까지는 아니지만, 안심하고 쉴 수 있는 소파(sofa)는 되지. 그래, 소파 협정. 어쨌든 한국인들은 미국을 은인이라며 미국인 목숨 값을 자국민보다 수십 배는 쳐주고, 여야가 당쟁으로 지새워도 `친미`투쟁으로 날을 새지 `반미`투쟁으로 날을 새는 법은 없으니까. 아니, 친미/반미로 여야가 나뉘는 법도 없으니까 그런데 왜, 찜찜하지?

우선, 테러가 아니라 `안전`이 문제였다. 어느날 갑자기 시내 한복판에서 도시가스가 폭발하고, 백화점이 무너져 내리고, 아니 짓기도 전에 크레인에서 철근덩어리가 도심 한복판에 떨어져 아비규환이 되고(도심 한복판 위에 철근 덩어리가 왜, 있었지?), 하여간 헐리우드 영화가 폭력적이니 뭐니 하지만 일상 자체가 헐리우드 영화 같은 나라, 명절 마다 대형사고가 터지는 나라. 아니 사고의 빈도나 규모 혹은 전근대성이 문제가 아니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불감증이었다. 어떻게 그런 걸 일상적으로 아니 일상으로 견디지? 걱정은 점점 구체적으로 되어갔다. 대형트럭이 고속도로에 흘린 자갈들이 다시 대형트럭 바퀴에 밟혀 튕겨 나온 것에 이마가 깨지면, 어떻게 하지? 테러보다 더 쪽팔리는 일 아닌가! 그건 살생을 금하는 네팔에서 광견병 걸린 개한테 물리는 것보다 더 쪽팔리고(왜냐면 한국의 대형트럭은 네팔의 광견과 달리, 종교-정치적인 명분과 무관하다) 동시에 가능성이 더 높다. 달걀을 맞으면 목숨은 건지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끔찍하다. 차라리 테러로 비장한 최후를 맞는 게 낫지. 어, 그렇게 되나? 내가 왜 이리 소심해졌지, 아프가니스탄 때문인가? 그것도 관련이 있겠지. 세계 대장 노릇 한번 하려다가 이건 좆도 없는 놈이 완전 배 째라고 나오니까, 난감하데. 그것보다, 테러 때 혼비백산한 게 아직 영향이 있을 거야. 테러 배후란 게 좀 찜찜하기도 하고. 극비문서를 통해 알게 된 미국 정치사의 이면은, 어렴풋이 짐작한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과거의 소련을 위시한 구(舊)공산권 세력 뿐 아니라 소위 우방 강대국에 대한 교묘한 공작들, 그리고 제3세계에 대한 다소 노골적이고 무자비한 간섭 및 침략은 이해할 만 했다. 아니, 과거의 일이지만 당연히 앞으로의 일일 것이기도 하기에, 스스로 주인공이 된 착각의 쾌감마저 왔다. 하지만 국내 문제는? 어, 으슬으슬 춥군. 생각도 하기 싫었다. 주인공은 주인공이되 언제든지 비수를 맞을 수 있는 주인공이었다. 대통령의 임기는 물론, 평생보다도 더 오랜 동안, 대통령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 온 막부들의 존재를 그는 뚜렷하게 알게 되었다.

아니 비수정도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유태인 재력가들과 군산복합체. FBI(연방수사국), CIA(중앙정보국), NSC(국가안보회의)의 `大兄`(big brother)들을 둘러싼 신화는 사실 그것들을 가리는 연막 혹은 성동격서(聲東擊西) 작전에 지나지 않았다. 요는, 그들은 분명 대통령도 모르는 일을 정부기관의 이름으로 추진하며 거꾸로 대통령을 그 일에 맞추어 간다는 거였다. 그는 분명히 그들의 도움을 받아 당선됐다. 클린턴 시절 반독점금지법 위반 재판 건에서 궁지에 몰렸던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사를 기사회생시켜준 것에서 보듯 대통령은 그 도움에 적극적으로 보답하기도 했다. 아니, 그들의 이해를 돕는 게 그의 정치적 이해와 어울리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후원은 언제나 가공할 폭탄의 등짐이 될 수 있었다. 옛날보다 더욱 심하게, 그리고 그건 `재래식` 무기가 아니다! 아버지 부시 때는 등짐이되, 최소한 등에 `붙은` 짐은 아니었다. 공산주의라는 적이, 정치의 공간을 어느정도 가능케 했다. 무차별 약육강식의 경제는, 제3세계에서 말고는 보이지 않았고 미소 혹은G-7, 심지어 약소국과의 안보-경제협력 동맹 회담조차, `정치의` 정상회담 테이블은 점잖고 우아했다. 그것이 거꾸로 국내 문제에서 `정치`의, 그 수장인 대통령의 입지를, 그렇게 `안전`을 보장해주었다. 클린턴은 딴따라 기질이 있었으니 다소 여유도 있었겠고, 여자 재미도 톡톡히 봤으니 헬렐레도 했겠지만, 어쨌거나 점잖은 세일즈맨이었다.

그러나 9. 11 테러 이후는, 다르다! 수천년 이어온 가난의 아프가니스탄 요새 동굴과 21세기의 최첨단 무기가 격돌하고, 천년전 서방문명 대 이슬람문명의 종교전쟁이 재현되는, 역사-진보 자체가 무색해지는 와중에 그는 대통령인 채로 경제(침략)의 인격 그 자체로 되어버렸다. 정치도 경제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경제가 된 정치, 정치가 된 경제만 보인다. 그렇게 추악한 경제인들, 음모가들은 여전히 얼굴이 없고 그의 얼굴만 있는데, 어느날 정치의 입지가 없어져 버렸다. 등에 붙은 등짐이 이제 뗄 수 없게 되고 갈수록 몸의 일부로 되어갔다. 아차, 이렇게 되나? 9. 11 동시다발 테러 당시 혼비백산 안가(安家)를 수소문하면서 그는, 그렇게 경악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스스로 등짐이 되는 게, 가공할 폭탄이 되는 게, 아주 편하고, 해보니 낯익기도 했다. 편한 것은 그가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낯익은 것은, 현실이 헐리우드 영화를 오히려 흉내 내는 판에, 헐리우드 문화가 현실을 지도하는 판에, 애당초 가상현실에 익숙한 미국대통령이 그렇게 될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바로 그렇게, 스스로 가공할 폭탄이 되기 직전, 그는, 그도, 테러리스트를 원격 조정하는 `국내의`, 모종의 거대한 음모를 감지한 것인지 모른다. 물론 테러는 아랍 테러리스트들이 자기의 의지와 모사로, 위대한 종교적 사명감 혹은 필사적인 자구책으로, 심지어 순전히 복수심으로 결행한 것이겠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그들을 그렇게 하게 만든 자본-제국주의의 흡인력과, 계획이 사전에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부러 방관했다면, 그것 또한 음모 아니겠는가. 오히려 한 수 더 높은. 6. 25전쟁도 그렇지. 김일성이 남침한 게 `사실`이고 그러는 바람에 장마철에 군장차림에다 우비까지 쓰고 대포 메고 탱크 끌고 이전투구의 산악전을 치르느라 지지부진한 전쟁에 미군이 고생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때도 남침을 유발하는 공백의 흡인력이 있었고, 남침을 사전에 알고서도 부러 방관했다면 그것을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음모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라. 어쨌거나, 얘기가 복잡해지니 역시 내 성격에 안 맞는군. 그런데, 6. 25라. 이 나라 정말 깝깝하고 답답하네. 이렇게 일부러 찾아봐도 화끈한데 하나도 없는 나라는 지구상에 남한뿐일 거야. 물론 김 대통령 민주화운동 업적도 기려야겠지만... 아프가니스탄은 화끈했다. 북한도 화끈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남한은 뭐 하나 들쑤시면 와글와글 끓기는 하는데, 잠깐 뿐이고 그런 일이 잦다보니 끓는 것이 일상보다 더 지겨워진 듯 했다. 여야가 매일 치고받는데 치고받는 게 지겹고, 매일 충격 특종이 1면에 뜨는데 충격과 특종이 지겹고, 매일 부정부패가 폭로되는데 부정부패 보다 폭로가 더 지겹고, 러시아워가 지겨워 아예 새벽 6시에 출발한 출근길이 더 지겹고, 교통체증에 싸가지 없는 법규 위반에 살의(殺意)가 울끈불끈 치솟는데 살의가 지겹고, `민주화운동`이란 말이 지겹고 `기념식`이란 말이 지겹고, 누군 그게 역동성이 있어 좋다고 했지만, 역동성이 습관적이고 도대체 참신하지 않다면, 혁명은 지치고 지친 후에 `그래. 너 다 가져가라. ` 그런 식으로 결과될 수밖에 없다는, 예감과 전망이 지겹고, 그런 지겨움의 경지를 부시가 알고 있을 리는 물론 없었다. 무엇보다 그가 원하는 건 혁명이 아니라 전쟁인 까닭이다. 하지만, 그래 이 나라는 `혁명`이란 말이 제일 빈발하면서 제일 상투적인 나라군. 미국은 건국 전쟁 때 말고는 `혁명`이란 말을 쓴 적이 없다. 소련도, 망했지만, 1905년과 1917년 두 번 밖에 안 썼다. 그런데, 남한은, 4. 19에 5. 16에, 아니 이건 쿠데타고, 3월, 4월, 5월, 6월, 8월, 제대로 되는 일도 없이 희생자만 늘고 무슨, 달마다 혁명이 있는지. 무슨 단체들이 또 그렇게 많은지. 하긴 그것도 약소민족의 개발도상 현상이지만. 그래도 아프리카나 아일랜드 봐. 얼마나 화끈해. 와장창 붙어야지... 부시는 갑자기 무하마드 알리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 '알리'가 보고 싶어졌다. 알리가 누군가. 6-70년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복서다. 부시는 결코 흑인을 좋아하지 않지만, 다채로운 총천연색 TV 시대를 잠시, 분명한 날 것 승부와 환호와 갈채의 흑백 TV 단순성으로 뒤바꾸어놓은 복서들의 `검은 권투`가 그립다. 더 나아가, 자신의 조국 미국이, 그 혁명적 단순성 혹은 혁명성의 단순함이, 자랑스러워지면서 부시는 자신이 혹시 혁명가의 후예가 아닐까하는, 착각을 마음 놓고 즐긴다.

그래 그래서, 소심한 게 아니라, 찜찜한 걸꺼야. 그래서 테러 전쟁을 2차 세계대전 쯤으로, 배포를 키워본 건데, 웬 말들이 많아, 씨팔. 나처럼 솔직한 놈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씨팔. 폭탄처럼 솔직한 게 어디 있나. 9. 11 이후로 점잖은 정치는 끝났다니까. 좆나게 때리면 신나게 맞는다, 라는 대한민국 육군 신병수칙 1조를 그가 자세히 알 리는 없다. 왜 때리는 놈(고참)이 `좆나`고 맞는 놈(신참)이 `신나`는지. 그게 무슨 신앙의 경지가 아니라 하도 때리다 보면 때리는 일이 중노동이고 하도 맞다 보면 맞는 일이 속 시원한, 맞는 자의, 맞기만 하는 자의, 거창하게 말하면 같은 약소민족이라도 내전의 아프리카와 결사항전의 아일랜드와 전혀 다른, 수난의 대한민국 백성의 사실주의적 경지라는 점을 그가 느낄 리는 더더군다나 없다. 하지만 부시의 `나와 보라 그래, 씨팔. `의, 흡사 억울한 말투는, 언뜻 그 대목을 떠올리는 듯 하여 어리둥절하다. 허나, 하긴, 폭탄이 된 자에게 주체/객체, 시간/공간 개념이 있겠는가. 그래. 소심한 게 아니라.

제일 깝깝한 것은 도라산이라는 역이었다. 물론 명분과 실리 모두 좋았다. 북한에 대화를 제의하고 식량 지원을 약속하면서 오히려 겁을 줄 수 있고(식량은 폭탄보다 더 효과적인 무기다), 남한에 햇볕정책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무기를 팔아먹을 수 있고, 게다가 지구상 마지막 남은 분단-냉전 지구 최단(最端) 철도역에서 베를린 장벽을 상기시키며 세계평화를 천명하면,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노벨평화상 받기는 쑥스럽게 됐지만, 세계평화사에 적어도 사진 한 장은 남지 않겠는가. 듣자니 한국에는 존댓말과 반말이 엄격히 구분된다던데, 그것도 다행이야. 내가 함부로 말을 해도 의당 존댓말로 고쳐 쓸 것이고, 예의를 갖추는 척 하면 감동할 것이고 문제가 된 `악의 축`이란 말을 피해가면 크게 감읍할 것 아닌가. 외교적 언사는 체질에 안 맞지만, 그리고 모든 것이 9. 11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처럼 자명한 때에 낙후한 것이지만, 한국인들은 워낙 명분과 언사 따지기 좋아하니 외교적 수사의 수고의 값어치가, 무척 높지 않겠는가. 재래식 무기도 그래. 사실, 재래식 무기면 뭐가 문제냐. 여차하면 깔아뭉개면 되는 건데. 혹시, 핵이라도 보유하고 있을까봐, 그게 문제지. 그런데, 내가 `재래식 무기 후방 배치` 운운하니 그게 전제 조건이냐 아니냐 말이 많더군. 그게 무슨 전제 조건이나, 되겠나. 말이 많은 게 문제지. 그래. 그것도 없던 일로 해주지 뭐. 그런데, 이, 무겁게 짓누르는 깝깝함은, 뭐지?

그는 어느새, 도라산역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 도착해서 치른 모든 일정이 그렇게 예정대로, 무사히, 순식간에, 지나간 듯 한 반면, 그리고 실제로 예정된 확대회담도 없애고 `둘이서 화끈하게` 치른 반면, 딱 한 정거장만 가면 된다는 도라산역 가는 길은, 마치 지금 한국에 마악 도착한 것처럼, 그리고 모든 일이 순조롭지 않고 지루할 것 같은 예감처럼, 길고 멀었다. 야전군 사령관 폼 잡느라 일부러 택한 지프차는 괜히 더 덜컹대는데도, 갈 길은 유유히, 아니 고난의 역사처럼 지지부진하게 흐르는 임진강보다 더 아득해보였다. 부시는 은근히 화가 났다. 그래, 니들이 이 한 정거장 가는데 장장 50년 걸렸다 이거지. 그게 미국 탓이다, 내 탓이다 이거지. 쓰발. 그게 왜 우리 탓이냐. 니들 민족 못난 생각은 안 하고. 불구대천의 원수로 지내라고, 우리가 언제 그랬냐.

하지만 50년과 `단 한 정거장`의 장구한 시간과 짧은 공간의, 2중의 착시공(錯時空)은 `배포 큰` 부시를, 점점 더 옭죄었다. 이런 옹졸한. 50년 동안 한 정거장 밖에 못간 놈들. 50년 동안 대치하면서 한쪽은 수령님 밖에 모르고, 굶주린 것도 모르고, 한쪽은 돈 밖에 모르게 된 놈들. 4. 19? 그게 별거냐, 어쨌든 실패했잖아?그걸 몇십년 동안 훈장처럼 자랑하다 스스로 낡아버린 놈들. 5. 16? 그게 잘못됐냐? 지금도 너희들 국민 대다수가 박정희를 최고로 존경하잖아? 썩어빠진 놈들. 박근혜가 해보겠다고, 김대중이 박정희 기념관 지어준다잖아, 분노에 길길이 날뛰다가도 며칠 안 되면 다 까먹는 새대가리들. 3. 8선이 막혔다고 사고의 시야조차 한반도 남쪽에 가두었다가 좀 먹고 살게 되었다고 동남아 등지 다니면서 지저분한 매춘-회춘 관광이나 해대면서 우리가 니들한테 한 것 뺨치게 가난한 나라 사람들 업신여기는 놈들. 천민자본주의로 정통 자본주의 망신 주는 놈들. 일본 식민지 살았다고 미워할 줄 만 알지, 배울 생각은 전혀 안하는 외골수들. 배우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기겠냐. 또 잡아 먹히게 돼 있는 걸. 역사의 바보 천치들. 5월 항쟁이 대수냐. 그때 살인마들 정권 잡고 대통령 대대로 해 처먹고 지금도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데 해마다 기념식이 대수냐? 민중들을 상놈이라며 끼워주지 않던, 아버님 제사상 모셔야 한다고 출정 대열에서 빠져나간 양반들의, 의병운동이 대수냐? 3.1 운동이 대수냐? 점잖은 어른들은 독립성명서 읽고 일경한테 와서 잡아가라 전화로 자수하고 오죽 사람이 없었으면 어린 처녀가 나섰겠냐? 부시는 방언을 하듯 중얼대다가, 급기야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내가 이런 사실을 어떻게 다 알지?아니다. 그렇게 물어볼 겨를도 없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왜, 아니 누가, 하고 있는 거지? 그는 그렇게 경악할 뿐이었다. 그럼, 누구지? 그의 독백을 따라다닌 내가, 비로소 궁금하다. 3. 8선은 분단을 고착시켰지만 휴전선은 휴전을 고착시켰다. 휴전이란 어정쩡한 평화. 그런데 평화가 고착되지 않고 어정쩡함이 고착되었다. 그리고 어정쩡함은, 생각보다 뿌리가 깊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실상 사형보다 더 괴로운 지지부진함을 견뎌냈다는 것뿐이다. 죽은 자들의 죽음으로 우리는 삶의 어정쩡함을 견뎠다. 다시, 우리가 자랑할 것은 실상 폭탄 보다 폭발적인 상황을, 끊임없이 삶의 형벌로 완화시켜왔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뿐`이라니, 그것은 정말 얼마나 위대한 `뿐`인가! 한마디로, 한국현대사는, 김구에서 전태일에 이르기까지, 3월에서 미래의 8월 광복에 이르기까지, 카프카와 조이스 이래 가장 난해한 현대문학이다. 미국은, 부시는, 부조리한 존재의 블랙 코메디를 야기시키는 `잔학의 신`인가? 아니다. 과학기술문명은 발전했으되 사상은 복잡해졌으되, 물질은 풍요로워졌으되, 평화에 대한 인류의 염원은 높아졌으되, 부시는 정치의 경제화로서 너무도 자명한 폭탄이다. 자폭과 파괴 사이 폭탄. 한반도는, 특히 휴전선 남방 도라산역, 50년 동안 갈 수 있었던 `단 한 정거장`은, 그 폭탄을, 자폭 혹은 파괴본능을 치유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모종의, (전쟁 운운이 아니라!)평화의 블랙홀이다. (전쟁을 상시 내포한, 특히 9. 11테러 이후 부시 자본주의의 입장에서 평화는, 설령 도달하고 싶어도 도달할 수 없는, 블랙홀이다)우린, 정부는, 언론은 그, 직분에 전력을 다했는가?

감읍했을 뿐,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짐짓 안심하는 체 하면서 사태 모면을 희망했을 뿐,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폭탄의 외교 언사를 서둘러 타전했을 뿐, 심지어 전 세계 언론의 취재경쟁에 자부심을 느꼈을 뿐(나라의 치부가 전 세계로 타전되는데, 그것 자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 취재경쟁 사태를 `전 세계적인 자랑거리`로 돌변시켜 호들갑-보도를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다. 난 가끔 우리나라 언론들이 그런 자부심을 만끽하기 위해 나라에 대형사고가 나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 의심할 때가 있다. )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그런 사태에 도움을 받았을까? 부시는 평화의 블랙홀을 50년 만에 벗어나 무사히 도라산역에 도착했다. 연설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반응도 성공적이었지만, 충격이 컸던지, 아니면 충격 때문에 오기가 났던지, 본색을 잠깐 비쳤다. 도끼 만행 사건을 일으킨 걸 보니 `악`이 맞구만. 미국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날 밤인가. 부시는 대한민국 텔레비전을 켰다. 대한민국 언론이 오늘 일을 어떻게 보도하는가는 중요하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미국(혹은 일본)을 닮았지만 또 모든 것이 미국(혹은 일본)만 못할 것이 뻔한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이 심심함을 달래는데 안성맞춤일 뿐. 그런데, 역시 화면이 후진가? 자기 얼굴이 이상했다. 그건 찝찝한 게 아니라 분명 소심한 얼굴이었다. 아니, 미국과 유럽에서는 물론 어느 약소국-분쟁지에서도 자신의 얼굴이 존 웨인(그는 존 웨인 숭배자다)을 닮았었는데, 이번에는 전혀 달랐다. 같은 서부영화 등장인물이기는 하되, 근사한 존 웨인이 아니라, 소심할수록 비열한 3류 총잡이 얼굴이었던 것이다. 어? 이 놈들이. 뒤통수를 쳐? 하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기자나 피디, 혹은 정치인 탓은 아니었다. 왜곡이 전혀 없었으니까. 그건, 부시 안에 들어간 50년-도라산역 한국 백성들의 마음이 화면에 비친 부시를 보는 모습이었다. 부시가 다시 발끈하는데, 내용이 험악하다. 미친 놈들, 배알 빠진 새끼들. 뭐, `악의 축이` 문제야? 좆까고 있네. 그 정돌 줄 아냐. 물론 무기도 팔아야지. 하지만 그 정도일 줄 아냐. 내가 나를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줄 아니? 폭탄이 폭탄 맘대로 하는 것 봤어? 미친 놈들 괜히 심기 건드리지마. 그러자 그 백성들 중 하나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이 보슈, 부시!. 응? 부쉬는 난데, `이 보슈`는, 뭐지? 쪽 팔리기는 하지만 궁금중을 누를 수가 없어 비서와 통역들에게 물어 봐도, 한국인 통역들은 귀가했고, 미국인 통역들은 `이 보슈`를 통역할 실력이 안 된다. 백성은 숫자가 늘어 `이 보슈, 부시!`를 돌아가며 읊어대고 부시는 아무래도 `보슈`가 `부시`와 인척 관계 같다. 혹시 비리에 연루된 거 아냐? 어이, 보슈가 누구야?. 그제서야 문화 담당 수석 비서관 얼굴이 환해진다. 아 보슈? 히에로니무스 보슈, 그 유명한 화가 잖아요. 뭐더라, 그래 <지상의 환락의 정원> 그린. 어 그랬나? 그랬군. 지상의 환락의, 뭐? 정원? 제목 괜찮네. 부시는 괜히 물어봤다고 생각했지만, 자기 생각의 진짜 뜻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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