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 부정부패가 극심해지면서 김대중 대통령은 ‘반부패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공직자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불퇴전의 의지를 표명했다.
각종 게이트와 신승남 검찰총장의 사퇴 등으로 공직자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 여론이 들끓고 있는 만큼 고강도 처방만이 민심을 수습할 수 있다는 정부의 판단으로 보인다.
정부의 공직자 부패 처방책이 연초부터 강력하게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들과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눈가림’과 ‘졸속’으로 끝날 여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이다.
***김 대통령, 공직자 부패척결의 의지 천명**
김 대통령은 반부패 관계장관회의에서 “앞으로 1년이 중요한데 공무원들이 내부자료를 유출하거나 줄대기를 하는 등 국정의 안정적 운영을 해치는 데 대해서는 철저히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또 정부의 벤처기업 지원정책을 악용하는 사기행위나 불공정행위를 막기 위한 대책을 지적, 벤처특감의 불가피성을 지적했다.
이용호, 윤태식, 진승현 게이트 이외에도 일부 벤처기업들이 본업인 기술개발 보다는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로비에 치중하는 등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종남 감사원장은 ‘진정한 벤처’와 ‘사이비 벤처’를 철저히 구별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 및 절차를 개선하는 한편 ‘주식 주고 받기’ 등 금융 및 증권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비리 혐의가 있는 벤처기업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하겠다고 보고했다.
아울러 김 대통령은 1급 이상 고위 공직자의 주식거래 내역을 철저하게 심사, 직무상 비밀을 이용한 재물 취득자에 대해서는 검찰조사를 의뢰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이 같은 김 대통령의 부정부패 척결 의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부처들은 ‘반부패 종합대책’을 내고 향후 공직자들에 대한 사정 작업을 시사했다.
***공직자 비리척결 관련 ‘반부패 종합대책’ 핵심 내용**
행정자치부는 ▲ 공직자 행동강령 제정 운영 ▲ 공직자 재산등록 엄정 심사 및 위반자 처벌 강화 ▲ 행정업무의 투명성 확보 ▲ 공직기강특별감찰반 상시 운영 및 복무태세 집중감찰 실시 등을 골자로 한 공직자 비리 척결 안을 제출했다.
감사원은 ▲ 정부 역점사업에 편승한 벤처비리 특별감사 ▲ 인·허가, 공사, 세무 등 고질적 비리분야 지속 점검 및 감사활동 전개 ▲ 취약기관 업무 및 문제 공직자를 체계적으로 분석 관리하는 전산시스템 구축 ▲ 지연, 학연에 의한 공직자 줄서기, 공직기밀 누설, 선심성 예산집행 사전차단 등을 개선안으로 제출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 벤처기업 코스닥 등록 시 자본잠식, 부채비율 등 재무요건 엄격 심사 ▲ 부실기업 코스닥 조기퇴출 ▲ 금융기관 임직원의 벤처투자 제한을 위한 내부통제기준 및 윤리강령 제정 등을 제시했다.
이 외에도 25일 출범을 앞둔 부패방지위원회는 현행 공직자윤리법상 4급 이상 공직자를 재산등록 대상자로 하고 1급 이상 고위공직자의 재산 내역을 관보에 공개토록 돼 있는 현행 규정을 강화, 공직사회의 엄격한 청렴기준을 요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정부는 특별수사검찰청의 조속한 설치를 위해 이달 안에 검찰청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검찰에 대한 인사쇄신에 나서기로 방침을 정했다.
정부는 이 같은 반부패 대책이 일과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법무, 행자부 장관, 국무조정실장, 금감위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민정수석이 참여하는 ‘반부패 관계장관회의’를 매월 1차례 개최하고 국무조정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실무위원회와 총리실에 정부합동점검단을 두기로 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졸속’ 논란**
그러나 정부가 표명한 공직사회 비리 척결 의지가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시민사회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곱지 않은 시각이 지배적이다.
기존 정책조차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은 ‘게이트 정국’으로 도마에 오른 현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악화된 여론을 타개하기 위한 눈속임이라는 지적이다.
정부의 ‘반부패 관계장관회의’에서 제시된 종합대책에 대해 참여연대는 즉각 성명서를 발표하고 ‘안일한 현실인식에 바탕한 재탕삼탕의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성명서를 통해 정부가 내놓은 반부패 정책이 국민들의 개혁요구를 무마시키는 ‘일회성 구호’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김민영 투명사회국장은 “정부가 발표한 공직자 부패척결 정책은 과거에 이미 제기됐다가 실효를 거두지 못한 정책을 다시금 되풀이 하는 것”이라며 “문제는 말뿐인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충북대 윤태범교수(행정학과) 도 “정부안에는 새로운 내용도 없고 새로운 대안을 내놓을 수도 없다”며 “선거정국으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정부가 제시한 대책은 졸속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윤 교수는 “검찰총장 사퇴와 각종 비리 게이트 등으로 벼랑 끝에 몰린 정부가 어쩔 수 없이 떠밀려 내놓은 것일 뿐, 전체적으로 현 정부의 공직자 부패방지에 대한 실행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림대 김재한 교수(정외과)는 “역대 정권을 살펴보면 공직자 부패와 관련한 사정작업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며 “사정당국의 투명성과 실질적 집행력이 보장되지 않는 한 위원회 하나를 더 만든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고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보였다.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개선돼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천명한 ‘부패와의 전쟁’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 상태다. 아울러 비리 척결에 대한 정부의 인식전환과 제도적 개선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첫째, 전문가들은 공직자 부패 척결 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담당 기구의 투명성과 독립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칼자루를 쥔 사정당국이 투명하지 못하면 비리 척결이 공허한 구호로 끝날 수밖에 없다”며 “제도적으로는 권력의 압력으로부터 독립성을 보장하고 청렴한 인사의 등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맥락에서 윤 교수도 정부의 ‘반부패 관계장관회의’ 정례화에 대해 “부패 척결의 총괄 부처를 표방한 부패방지위원회는 정작 참석도 하지 못하고 총리가 위원장 역할을 하는 것은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할 여지를 열어둔 조치”라고 비판했다.
둘째, 정보의 공개와 비리 공직자에 대한 구체적인 처벌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현행법상으로는 의사결정권을 가진 고위직 공직자들의 경우 어떤 목적으로 어떤 의사결정을 했는지에 대한 규제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교묘한 담합으로 이루어지는 ‘정직한 부패(직위를 이용해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합법적 부패)’가 가장 큰 문제”라며 “의사결정 과정의 기록을 의무화 하고 이에 대한 공개의 원칙, 경우에 따라서는 처벌을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는 “졸속으로 제정된 공직자 윤리강령은 아무런 실효성도 없이 사문화 될 가능성이 많다”며 “공직자 비리와 관련한 처벌규정 및 공무와 연관된 이권 추구를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을 서둘러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윤 교수는 “공직자의 특화된 업무와 사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경우 업무처리 과정에서 해당 공직자를 배제시키는 선진국들의 제도도 수용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셋째, 전문가들은 정부의 ‘반부패 종합대책’에 포함된 불합리한 사항의 개선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참여연대 김 국장은 “부패방지위원회가 실질적 수사권을 가지고 상설적 특검제를 진두지휘하는 권한을 갖지 못하는 한 현재의 부방위가 부패척결에 실질적 기여를 하기는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현재 15명으로 구성된 공직자 윤리위원회가 6백60여명에 달하는 고위 공직자들의 주식투자거래 내역을 꼼꼼히 심사해 부당한 주식의 소유를 적발해 낼 수는 없다. 게다가 현행법은 1급 이상의 공직자들만이 주식거래 내역을 제출하도록 하고 있어 실제로 현장에서 일어나는 하위 공직자들의 비리에 대해서는 규제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벤처지원대책의 변화에 대해서는 일견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정부가 직접 나서서 수많은 벤처기업의 옥석을 가리겠다는 대책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정부는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고 이를 위해 금융감독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권력형 비리에 대해서 김 국장은 “무엇보다 상설적인 특별검사제도의 도입 등 검찰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이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공직자 부패방지 정책은 10년 이상의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정치적 목적이 개입되거나 일회성 정책으로 흐를 경우 실효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강경한 목소리에 비해 관계 전문가들로부터 ‘기대치 이하’라는 평가를 받은 정부의 공직자 부패척결 대책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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