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녹슨 칼'을 든 검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녹슨 칼'을 든 검찰

3대 게이트 예외 없이 재수사

‘녹슨 칼을 든 검찰’
현직 검사시절 수사통으로 이름을 날렸던 한 변호사는 최근 일련의 게이트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보면서 이같이 비유했다. 전경환의 새마을운동본부 비리나 문귀동의 성고문사건 등 어려운 사건을 풀어헤쳤던 과거의 혁혁한 수사 비화는 역설적으로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전설처럼 들린다는 얘기다.

검찰의 수사 미진이 외압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수사능력의 부족 탓인가.
지난해 세상을 뒤흔들었던 3대 게이트는 예외 없이 검찰이 모두 재수사를 벌여야 했으며 특히 이용호 게이트는 특별감찰본부의 조사에 이어 특별검사에게 수사를 넘기는 치욕을 당했다. 검찰의 정치적 고려도 문제이지만 수사능력 부족이 의혹을 키우는 한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검찰은 2000년 5월 수배된 이용호씨를 긴급체포한 뒤 이틀간 조사했지만 가지급금으로 인출한 돈을 모두 입금했다는 이씨의 주장을 반박할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석방했다.
2001년 10월 검찰 특별감찰본부는 당시 수사검사들을 조사한 후 “당시 진정인 측이 낸 자료만으로도 충분히 수사에 성공할 수 있었다”며 “수사팀의 미숙함과 지휘부의 판단 잘못도 사건의 큰 원인”이라고 밝혔다. 검찰 스스로 수사력 미숙을 시인한 것. 당시 서울지검의 수사 검사는 검찰경력 9년이었다.

반면 이용호씨 측은 기민했다.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자 임양운 3차장검사와 가까운 윤모씨를 통해 수사 사실을 확인하고 이덕선 부장검사와 친분이 있는 유모 변호사를 선임했으며, 임휘윤 검사장의 상관이었던 김태정 변호사와 담당 검사의 대학 동창인 이모 변호사에게 각각 수임료 1억원씩을 주고 사건을 맡게 했다.

임휘윤, 임양운, 이덕선씨는 모두 사표를 냈고 담당검사는 수사 소홀을 이유로 경고를 받았다. 이용호씨는 석방된 뒤에도 계속 회사 돈을 횡령했다.

지난해 9월 대검중수부는 공적자금의 사용처에 대한 내사를 벌이다가 이용호씨의 비리를 포착, 이씨를 전격 구속함으로써 재수사에 들어갔다. 야당이 ‘조폭 게이트’의 주인공이라는 딱지를 붙인 여운환씨도 구속했다.
이씨는 99년5월-2000년 12월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를 통해 인수한 부실기업의 기업자금과 투자금 4백51억원을 빼내 주식투자와 개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를 받았다. 이씨는 또 2000년 10월 진도 앞바다 금괴발굴 소문를 이용해 1백54억원 상당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도 받았다.

대검중수부는 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동생 신승환씨에 대해 이용호씨의 로비스트로 활동한 내용을 조사하다가 불구속 처리한 채 지난해 12월 사건을 특별검사에게 넘겼다.

특검은 대검중수부의 수사에서 발견하지 못한 이기주 전 한통프리텔 사장의 혐의를 포착, 구속한데 이어 신 전 총장의 동생에 대해 검찰의 수사 결과를 뒤집고 새로운 혐의를 밝혀내 구속했다. 특검은 검찰이 잡지 못했던 용의자 모 신용금고 소유자 김영준씨를 15일 검거했다. 검찰은 재수사조차도 제대로 못한 것이다.

검찰은 진승현 게이트에서도 재수사를 벌였다. 지난해 11월 김은성 국정원2차장이 진승현게이트와 관련이 있다는 언론 보도 후에 본격적으로 수사에 들어갔으며 이 사건 중요 용의자인 전 MCI코리아 대표 김재환씨가 해외로 출국한 사실을 1개월이나 모르고 있었다.

검찰은 또 정현준 게이트와 관련 김형윤 전 국정원 경제단장에게 5천만원을 건넸다는 관련자들의 진술을 받고도 처리를 미루다가 언론에 보도된 뒤에야 본격 수사했다.

검찰은 이 같은 수사 미진이 외압에 의한 것이라는 정치권의 의혹을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 외압 여부와는 별도로 대형 사건마다 수사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상당 부분 검찰의 수사능력 부족 탓이라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사건 관련자의 신병확보를 위한 출국금지조차 제때 하지 못해 3대 게이트에서만 4명이 해외로 나가버려 수사가 답보 상태에 빠졌으며 일부 사건에서는 계좌추적도 제대로 하지 않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전경환의 새마을운동본부 비리 수사 때 비밀장부를 찾기 위해 담당 부장검사는 저녁 늦게 전씨를 자신 방에 데려다 놓고 둘이서 잡담을 하다가 잠든 척했다. 전씨는 성냥곽을 꺼내 담뱃불을 붙이는 척하면서 그 속에 끼어있던 메모지를 보았다. 부장검사는 재빨리 성냥곽을 빼앗아 메모지에 적혀있던 전화번호를 추적해 몰래 빼돌려놓았던 비밀장부를 찾아냈다.

성고문사건 당일 문귀동 형사는 야유회를 갔다고 주장했고 동료 경찰들도 한결같은 진술을 해 성고문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 인천지검 수사팀은 기지를 발휘, 평소 형사계에서 커피를 시켜먹던 다방을 압수수색해 사건 당일 문귀동 형사가 주문한 커피전표를 찾아내 문 형사의 진술이 허위임을 입증했다.
이 같은 비화는 이제는 전설이나 신화가 되어버렸는가.

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사퇴가 동생의 구속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이 연좌제일 수 있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못한 데에 따른 지휘책임이라면 검찰로서도 할 말이 없다.

검찰의 수사능력이 문제된다면 특별수사검찰청을 만들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특별검사제 상설화의 논리가 설득력을 얻게 되고 검찰은 ‘녹슨 칼’을 들고 있는 2류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