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美에도 언론개혁 바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美에도 언론개혁 바람

"아프간전쟁 실상, 미국인만 몰랐다"

9.11 이후 미국 언론이 수행했던 여론몰이는 부시 정부가 수행한 ‘테러와의 전쟁’의 일등 공신이었다. 미국 국민들은 전쟁에 관한 모든 정보를 부시 정부의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주류 언론에서 얻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부시 정부의 직무수행 만족도 조사에서 미국인들의 80%가 아프간 전쟁에 찬사를 보냈다는 결과는 이렇게 따지고 보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정부와 언론의 긴밀한 공조관계가 빚어낸 ‘알 권리’ 차단은 미국 국민들의 여론을 ‘집단적 무지’로 인도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드러난 미국 언론의 편향적 보도는 한편으로 미국 내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선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미국의 언론학자 로버트 맥체스니는 최근 시사주간지 더 네이션을 통해 미국의 언론개혁을 요구하고 나섰으며 세계 진보적 매체들도 미국 언론의 자국 중심주의적 편향성에 비판을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왜곡, 은폐된 전쟁보도**

맥체스니는 CNN 월터 아이삭슨 사장이 전쟁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가공된 뉴스를 내보내도록 국내 뉴스 네트워크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정보 제한은 아프간 전쟁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시각들을 미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통로를 차단한 것이다.

CNN은 또 국내용 기사는 전쟁에 대한 대중적 열광을 가라앉히지 않도록 포장해서 내보내면서도 국제용 기사는 미국을 가장 비판적인 논조로 보도한 일도 있다.

한편 지난 3개월 동안 미 국방부는 아프간의 민간인 희생자라는 전쟁의 중요한 한 측면을 베일 속에 감춰뒀다. 미국 국민들은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인한 희생자에 대한 정보에 접근할 기회조차 철저하게 차단당한 셈이다.

대부분의 미 언론은 민간인 희생에 대한 공식적 집계를 축소 보도하거나 아예 보도 자체를 금했다. 심하게 폭격을 당한 지역 상황에 대한 언급도 거의 없었으며 정부는 민간인 희생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를 하지 말도록 요구했다.

미국 뉴햄프셔 대학의 마크 헤롤드 교수는 세계 주요 언론사 보도를 바탕으로 직접 집계한 아프가니스탄의 민간인 희생자 수치를 공개하고 미국 언론의 ‘침묵’을 비판한 바 있다.

그는 미국을 포함해 영국, 파키스탄, 인도의 주요 신문과 BBC 등에서 보도한 내용을 취합, 아프간 민간인 희생자가 3천7백67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하루 62명의 무고한 목숨이 희생당한 것이다. 이 결과는 미국 언론의 발표와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 수치이다.

미국 언론은 그의 분석 결과마저 보도하는 데 인색했다. 전세계 유력 언론들이 헤롤드 교수의 분석을 소개하는 동안 유독 미국 언론만이 그 내용을 무시했다. 인터넷 사이트나 ‘민주주의는 지금’과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만이 그의 기사를 다루었을 뿐이다.

미국인들이 정보에서 차단돼 있는 동안 유럽인, 아시아인 등 세계 모든 사람들은 미국의 폭격으로 인한 다양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 국민들의 정보 접근권이 최소한이나마 보장된 나라에서는 ‘자유를 위한 전쟁’이 야기한 민간인들의 희생, 남편과 아내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 전쟁고아들에 대한 영상을 볼 수 있었다.

***‘불꽃놀이’식 전쟁 보도**

미 산호세 주립대학의 로베르토 곤잘레스 교수는 미국 언론이 전쟁의 심층적인 측면에 대한 분석이나 미국의 이해와 상치되는 기사를 다루지 않은 이유는 미국 언론산업의 구조적 문제와 가장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몇 년간 일어난 거대 언론 기업들 사이의 인수합병이 언론사간 뉴스의 차별성을 없앴다는 분석이다.

경제적 영향력과 대중에 대한 문화적 장악력을 함께 지닌 거대 초국적 미디어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AOL 타임워너, 디즈니, 제너럴 일렉트릭, 뉴스코포레이션, 비아컴, 비벤디, 소니, 베텔스만, AT&T, 리버티 미디어 등, 국민들을 오락에 파묻혀 지내도록 하는 이 엄청난 미디어 카르텔은 국민 여론의 향방을 좌지우지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전쟁에 관한 모든 소식을 이들 독점적 카르텔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들 언론들은 전쟁을 뉴스라기보다는 흥밋거리처럼 다루었다.

방송사들은 오사마 빈 라덴 색출, 전쟁에 사용된 무기 등에 관련된 기사만을 반복해서 방송했고 그 영상은 전쟁을 마치 비디오게임처럼 묘사했다. 그러한 왜곡된 정보의 원인이 국방부의 압력 때문인지, 분개한 광고주의 영향력 때문인지, 아니면 언론인 스스로의 책임 때문인지는 분간하기 힘들지만 그 효과는 동일했다.

거대 언론기업들이 내보내는 화려한 영상들은 전쟁으로 빚어지는 복잡미묘한 사건들을 헐리우드 서부영화를 연상시키는 듯한 ‘선과 악’ 식의 구도로 단순화하는 최상의 효과를 거두었다.

9.11 테러에 대한 심층적 기사를 다룬 언론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즈 11/12월호에서 존스 홉킨스 대학의 포드 아자미 교수는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은 미국의 걸프전이 가져온 부정적 결과라면서 미국이 중동에서 그 제국을 확장하면 할수록 이슬람 세계의 보복 테러는 또다시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 잡지는 미국의 엘리트계층만이 보는 매체이며 이와 같은 전문적 기사들은 거대 언론기업이 독점한 대중매체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또 포린 어페어즈의 이 기사 역시 미국 정책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라기보다는 중동지역에 대한 전략적 문제에 집중했다. 따라서 전문적 무게가 실린 보도 역시 미국의 헤게모니 확장이라는 분명한 목표와 궤를 같이했다.

***거대 언론기업이 언론정책 좌지우지**

9.11 사태 이후의 미국 언론의 이 같은 보도 행태가 한편으로는 미국 언론에 반성의 움직임을 일깨우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그동안 침체에 빠져있던 언론개혁의 근본적 과제들이 속속 수면위로 떠올랐다.

맥체스니는 미국 언론의 타락이 민주주의의 타락을 불러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미 언론정책의 부패가 언론개혁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시민단체에 따르면 미국의 50대 거대 언론사와 그 계열사들은 1996년부터 2000년 중반 사이에 1억1천1백30만 달러를 의회와 행정부에 대한 로비 자금으로 사용했다.

또 1993년부터 2000년 중반 사이에 미디어 기업들은 7천5백만 달러의 선거 기부금을 연방 정부 후보자들 및 민주당과 공화당에 낸 것으로 밝혀졌다. 당연히 언론규제 담당 관리나 정치인들은 미디어 기업의 주머니 안에서 놀아날 수밖에 없었고 초국적 뉴스매체는 언론정책에 대한 논쟁을 거의 보도한 적이 없다.

그 무렵 미 방통신위원회(FCC)는 한 기업이 TV 방송국과 신문사를 교차 소유하거나 TV 방송국과 케이블 TV의 동시 소유를 제한하던 미디어 합병 규제 장치를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대규모 인수합병의 물결을 촉진시켰다. 여기에 미디어 기업의 엄청난 로비가 전면 압박을 가했음은 물론이다.

***갈 길 먼 미국 언론개혁**

미국에서 언론개혁 운동이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었던 바탕은 9.11 이전에도 이미 존재했다. 1980년대 중반, 중앙 아메리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개입과 관련해 미국 언론이 행한 왜곡 보도에 대해 수많은 미국인들은 미디어가 ‘조작된 합의’를 이끌어낸다는 점에 의문을 가졌다. 이 때부터 미디어 운동은 작지만 의미있는 진보적 논제로 자리를 잡았다.

그 결과 FAIR, 퍼블릭 어큐러시, 미디어채널, 미디어 얼라이언스 등 중요한 단체들이 지난 20여년동안 등장했다. 독점적 언론에 대한 감시자 역할과 동시에 이 단체들은 미국에서의 어떠한 민주주의 개혁도 반드시 언론 개혁을 포함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언론개혁은 보다 중요한 민주주의 투쟁이 승리할 경우에나 고려하는 “종속변수”처럼 미루어 질 수 없다는 인식이 자라났다. 사람들은 언론개혁을 통한 진보의 길을 먼저 개척하지 않으면 그보다 중요한 투쟁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번 아프간 전쟁에 대한 미국 주류 언론의 보도는 구조적인 언론 개혁의 필요성과 소규모 대안 언론 영역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또 인터넷은 몇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외국의 언론에 대한 접근에 있어 매우 가치 있는 수단으로 증명됐다.

소규모 출판물, 라디오 방송, 웹사이트 등의 견제가 없었다면 미국의 전쟁 열병의 흐름은 아무런 저지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에 존재하는 독립미디어 영역은 불행히도 재정과 조직력이 불충분하다. 이들 미디어를 지지하기 위한 엄청난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