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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의 '할 말, 안할 말'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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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의 '할 말, 안할 말' <11>

정중한 예의와 짖궂은 농담 사이 - 화가 임옥상

왜, 나도 대중문화 범주 아닌가, 하하하…빛나는 안광하며 잘 생긴 쪽으로 튀어나온 광대뼈, 그리고 예술화한 모종의 근육질이 인디안, 멀건 백인보다 훨씬 매력적인 인디안 혈통(?)을 거의 주장하는 듯한 안면에 `정중한 예의`와 `짖궂은 농담` 사이 절묘한 중간에 자리잡은 웃음을 슬쩍 흘리면서 임옥상(oklim.ganaart.com)은 그렇게 `할 말, 안 할 말`의 먹이가 되어주겠노라 자청했었다. 물론 진담이었을 리야 없다. 그는 자기 일로 인터뷰하는 것보다는 `힘있는` 정치가와 `돈많은` 기업가들을 `좋은 일`에 끌어들이는데 더 열심이다(그래서 `정중한 예의`다).

우리끼리 오물딱조물딱 해서 뭐하냐. 일을 하려면 대중적인 성과가 있어야지. 예술가랍시고 혼자 고결한 척 하면 시민공원이며 공공조형물, 도시 미관 그런 거 죄다 개판되는데 누가 책임질거야. 우리도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구…. 무슨무슨 PD연합 사람들을 무작정 찾아가는 길에 여의도 광장을 가로 지르면서 그렇게 말하던 그는 사명감에 넘쳐 있었다. 하긴 그는 사명감이 예술성을 잠시 피해가거나 훼손하기는커녕 오히려 한층 더 높은 질적 수준으로 폭발시키는, 전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특히 희귀한 사례다.

아니 거의, 미술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바꿀 정도다. 그를 만나기 전 내게 미술은, 행사장을 장식한 대형걸개 그림의 `단순노동’에 압도되었거나 질렸거나 신물이 났던 상태라 더욱, 2차원(회화)이든 3차원(조각) 이든 4차원(설치미술)이든, 어쨌거나 차원 속으로 차원을 심화시키는, 즉 장르적 한계를, 벗어나는 게 아니라 한계 `속으로` 극복하는, 그래서 매력적인 예술장르였다.

그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임옥상 미술과의 관계는 그 확인과 함께, 미술이야 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제일 먼저 앞장 서는, 서야 하는, 가장 광범하고 포괄적이며 근본적인, 그래서 예술적인 장르라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즉, 그의 미술은 `극좌 경향`에 대한 반동으로 우경화했던 나의 미술관을 치유해주었다.

그와 나는 나이 차이가 4년이나 되지만(그와 나 세대에서 이 차이는 거의 신성불가침의 차이다. 정치-경제-문화 등 분야, 합법-비합법 등 방식, 그리고 출세 여부를 막론하고, 학연-지연과 무관하게, 운동권에서 72학번은 68학번이 거의 `인식과 시야의 끝`이다.) `언제 어느 때든, 설령 우연히 만나더라도 피차 하루종일 책임져 주는(술 마셔 주는)` 관계다.

그렇지만, 그런 그가, 미술 앞에 `아직도 민중 혹은 민족` 자를 붙혀야만 화가 대접을 받는 사람들은 물론 붙이지 않아도 대접은 받겠지만 상관없이 끝까지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대체로 `심기불편할`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그런가, 그의 망년회는 갈수록 젊어져 간다.

재작년에는 미술판 동료들과 문화계 정재계(라고 하지만 고위직이나 거부라는 것과는 좀 멀다. 모두 기획 관련자들이었다) 인사들이 주였는데 작년에는 (가보지는 못했지만) 장사익-정태춘 등을 불러 노래 값 대신 그림을 한 점 씩 주고 딴따라판을 벌이더니 올해는 유알아트(www. urart. org, `당신도 예술가`. 시민들이 직접 미술 행위에 참여하는 행사. 22회까지 진행되었다) 자원봉사자 위주로 망년회를 꾸렸는데 여자들이 압도적 다수고 평균 연령이 20에 가깝다. 분명 신세대인 그들과 `대선배`이자 `미술대가`인 그 사이에 놀랍게도, 왁자질껄한 집단적 수작의 농담 차원에서 조차, `감각의 격의`가 없다. 그렇다. 그는 그런 식으로 또한 8-90년대를 관통했다(그래서 `짖궂은 농담`이다).

앙코르 와트에를 다녀왔다. 세계 여러 곳, 내가 보고 싶은 곳은 대체로 다 둘러보았지만 이번이 가장 좋았다. 어마어마한 규모도 그렇고 특히 서양과는 전혀 다른 동양적 콘셉트가 이렇게 유효적절하게 있다는 것에 놀랐다….

자신의 오랜 미술 반려이자 새로운 생활 반려 예정자 김희경(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내가 보기에, 가장 매력적인 `남의 반려` 중 하나다.)과 함께 공동으로 `연출-제작`한 소규모 애니메이션 <목 긴 청개구리>를 상영한 후 다소 긴 `앙코르 와트` 안내필름을 돌리면서 그는 그렇게 말했다.

<목 긴 청개구리>야 그림이 환경`운동` 미학을 따르면서도 자연주의에 빠지지 않고 적절한 만큼 도시-신세대 감각을 구현해서 좋았고, 음악은 다소 아메리카 인디안이나 잉카(Inca) 지향적이지만 그런대로 `사운드` 역할이 절묘했으므로, 무엇보다 4분 미만의 작품이라 그런대로 어울렸지만, 신세대와의 망년회 자리에서 왠 앙코르 와트 `교육`에 `동양적` 콘셉트 주장?

소위 운동을 하다가 침체기를 거치면서 `동양적` 구호를 내세운 경우 그 결말이 좋게 되는 것을 나는 별로 보지 못했다. 대체로 운동과 결별, 탈(脫)시간적인 순수예술로 낙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옥상에게는, 신세대, 망년회, 동양적, 콘셉트, 주장,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어울린다. 그 모든 것이 `정중한 예의`와 `짖궂은 농담` 사이에서 절묘한 위치를 점하면서 `임옥상적인 총체성`을 이루는 까닭이다. 아니 또 있다.

캄보디아 여행을 동행했던 사람 말에 의하면 그는 베트남 전쟁 기념관을 들렀다가 전쟁의 참상, 정확히 말하면 미군이 저지른 만행에 치를 떨며, `이럴 수가. 이럴 수가` 하면서 울었다고 한다.

작년 매향리 기념물 작업에 대해 물었을 때도 그랬다. 그는 `작업`에 대해서는 `아, 쇠를 만지는 게 좋더라구. 흙도 좋지만. 쇠는 정말 달라. 여러가지로 다양하고, 생각도 많이 불러 일으키고,` 그렇게 예술가답게 매질(媒質)에 대해 찬탄하더니 `의의`에 대해 묻자 갑자기 표정이 격해지더니, `아, 정말. 매향리를 가봤는데요. 저는 치가 떨렸습니다.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렇게 비분강개의 연설조라 나로서는 다소 어긋나기도, 어색하기도 또 촌스러워 보이기도 했었다.

그 연설조는 나의 거듭된 은연중 쫑크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공원에서 거행된 반(反)아셈 집회 중 하이라이트로서 기념조형물 <자유의 신 in korea> 입상(立像) 행사 때도 재연되었다. 치가 떨렸습니다.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조형물은, 달랐다. 매향리 사격장에서 수거한 거대한 포탄 껍질 파편과 체인 등 고철더미로 쌓아올린 <자유의 신…>은 제국주의의 만행을 고발하는 차원을 훨씬 너머, 녹슨 고철이 발하는 전쟁 자체의 참혹한 헐벗음의 미학 자체를 유구한 희망과 전망력(展亡力)의 형상으로 전화시켜내고 있었던 것.

그때부터 나는 그의 말에 반대도 우려도 하지 않는다. 그때 그는 머리로 혹은 가슴으로는 반제 민중-민족주의자였겠으나 총체적으로는 미술 본연의 색깔과 형상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세상 전체의 우선적인, 외형적인, 그러나 그렇게, (내용을 압도하는) 형식적인 변혁을 꿈꾸는 화가이자 변혁운동가, 아니 화가=변혁운동가였던 것이다.

밥 위에 날치알과 김 부스러기를 꽤 풍성하게 덮은 `알밥`, 그리고 그것에 걸맞춤하게 따끈하고 시원한 석화(굴)국 때문에 이 날 나는 망년회 참가 사상 최초로 술보다 밥을 먼저, 그것도 잔뜩 먹었고, 그래서 술을 별로 못 먹었고, 그러다 보니 기운이 빠져서 일찍 철수할까, 뭐 그런 기분이었는데, 임옥상이 자원봉사대원들 모두에게 마련한 선물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것은, 스푼에 각자의 이름과 각자에 어울리는 도안과 메시지를 드릴로 새긴 스테인레스제 스푼, 즉 숟가락이었다. 그게, 왜?

어허, 치사하게 크기 갖고 따지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 저 친구는 좀 겁난다. 세련된 척 감정을 적절히 절제하는 도시사람과 달리 촌사람이라 감정을 그냥 드러내거든. 말하자면 촌년이라…. 선물을 `시상`하는 그와 호명을 당하고 받아가는 `자봉` 세대 사이에 회가 거듭될수록 그야말로 유쾌하고 자연스럽고 진지해지는 중에, `맞아. 옛날에 지하 형이 난을 나눠줄 때도 “왜 내 꺼는 난 이파리 수가 남보다 적냐”고 자못 정색하며 섭섭해 했던, 소탈한 위풍이 무쌍했던 광주 소설가(이쯤하고 이름은 안 밝힐란다)가 있었지`, 그런 얘기를 그에게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그는 또 `허. 그랬었나. 그랬겠네.` 그렇게 대답을 얼버무리는데, 속으로 딴 웃음을 잔잔하게 흘리면서도 나는 오른쪽 진열된 `포크와 나이프와 스푼` 시리즈 중 사람보다 더 큰 크기의, 물고기 형상을 곰곰이 쳐다 보았다.

그래 맞아. 팔릴 거야…. 60명이 넘는 화가들이 얼마 전 광화문 갤러리에서 <제13회 조국의 산하전>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가진 적이 있다. 서울 민미협에서 40초반을 주축으로 위아래 `운동권`을 거의 총망라한 그 전시회에서 임옥상은 완전 `노털 유명인사` 격이었다. 나이프, 스푼과 포크 갖고 물고기를 `용접`하는 걸 누가 못해…. 그런, 후배들의 볼멘소리가 예상대로 들렸다.

나는 화가들한테 미술평론할 처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있기도 뭐해서 `그래도 팔릴 걸.` 뭐 그렇게 얼버무렸는데, 때마침 곁에 있던 좌장격 미술평론가 김윤수가 바로 그 밑에서 자기 얼굴을 디밀어 보고 `흐음. 스테인레스가 거울 같아서 사람 얼굴이 편편(片片)이 비치는 게 재밌구만.` , 또 그렇게 좋게좋게 나가려다 그 대목에서 단호해진다. 그래 맞아, 팔릴 거야…. 그래. 그건 그렇고, 도대체 왜 나는 `스푼`에 정신이 번쩍 들어 저 물고기 형상을 바라보고 있는 거지?

나는 음악에서 크로스오버를 싫어한다. 구분이 명확해야 결합도 명확한 까닭이다. 그리고 미술에서 나는 팝아트popart를 싫어한다. 대중 혹은 대중화를 빙자하지만 (예술 내용이건 대중 내용이건 간에) 그 명성을 매스컴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까닭이다. 대중화라는 정치-문화적 명제가 팝아트에서 역사상 최악으로 왜곡되고, 대중과 예술 명망가 사이가 정말 그로테스크하게, 초현실적으로, 즉 메꾸고자 하는 의지 자체를 어처구니없게 만들 정도로 벌어진다.

임옥상의 `포크, 나이프 그리고 스푼` 연작들은 어떤가. 그것들로 만든 물고기 형상. 먹어 치운 도구를 `소재 혹은 매질`로 하여 먹어 치운 바로 그 대상을 형상화한다는 것. 이것은 `소재` 차원에서 벌써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한 역전을 내포한다. 주체와 대상의 역전, 내용과 형식의 역전, 먹는 것과 먹힌 것의 역전, 먹는 문화의 예술화, 즉 예술의 회-초밥화가 아니라(이 시리즈의 진행보조 격인 방송작가 강경미는 `횟집에 진열하면 좋겠다`며 깔깔깔 웃어댔고, 임옥상은 `그래도 좋겠지.`라고 대답했다.) 회-초밥의 예술화, 혹은 그 둘 사이의 절묘한 균형 혹은 역전. `매질` 차원에서 복잡성은 더 복잡해진다. (이런 동어반복을 불가피하게 만들 정도로 미묘하게.) 지느러미를 이루는 나이프, 비늘을 이루는, 숟가락의 먹는 부분, 그리고 고생대 동물을 연상시키는 포크 이빨….

이쯤 되면 우리는 미술의 색깔과 형상으로 세계를 `우선` 변혁하려는 예술가의 예술-변혁정신의 치열한 내화가 마침내 대중문화, 거의 대중생활문화의 영역을 의미심장하게, 근본적으로 파먹어 들어가는 광경을 목도하는 것과 같다. 자 이 점이 당대의 화가 임옥상을 여기 `대중문화의 장`에 소개하게끔 만드는 대목인 바, 어떻게 여기까지 이르렀는가.

그가 직접 작성한 `해외용` 포트폴리오 <Lim Ok Sang’s Recent Work `Fork, Knife & Spoon>(임옥상의 최근 작품들 `포크, 나이프 & 스푼`) 용으로 나는 <15만년의 팔루스phallus>라는 국문글 외에 <Earth, Stainless, and Phallus of 150, 000 Years>(땅, 스테인레스, 그리고 15만년의 팔루스)라는 영문글도 썼는데 그 중 이런 대목이 있다.

그의 `땅` 시대(`보리밭` 연작)는 여러 겹 갈등의 시대였다. 자연과 문명의, 고향과 전쟁기억의, 불안과 충동의, 사실주의와 모더니즘의, 열망과 경악의, `원(原) 색-형태`와 `형태 우선적인 색`의 갈등. 그리고 그 갈등들은 (화해가 아니라) 죽음-웃음을 폭넓게 감당하는 오페라 부파의 미학으로 완숙해졌다.(그것이 팔루스 연작이다)…(중략)…그의 `포크와 스푼` 스테인레스 작품들은 인간 문명에 대한 `빛나는-토하는` 비판이며 `그리고 또한` 예술=먹는 행위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더 나아가, 망년회장에서 `빛나는-토하는`의 차원까지 일상의 멀쩡함의 깊이로 극복되면서 밥=숟갈이 예술의 선물로 되고 식량=물고기가 예술의 예찬으로 되는, 그것에 참석자들이 모두, 멀쩡한 채로 환호하는, 아니 멀쩡함에 환호하는 진정한 대중문화의 장을 보았던 것이다.

나이프, 스푼, 포크 `만으로` 만든 물고기 형상 그 자체에 얼마나 취했던지, 고철더미와 빛나는 스테인레스를 섞은 작품(이를테면 `물과 불의 노래`)이 다소 불순해보이고 숟가락으로 만든 거대한 숟가락은 다소 무지막지 둔해 보이고 황소에 빛나는 날개를 달아준 `엘자Elsa`는 다소 설명적이랄까 부황하게 느껴지고, 포크와 스푼을 화분에 심은 꽃병(`포크와 스푼 1`)은 아이디어에 머문 듯(왜냐면 먹음=예술의 철학이 부재하다) 보이기도 해서 그에게 `그 꽃병 작업도 계속 할거유?` 하고 물었더니 `물론이지. 고철도 더 해야겠고. 어유, 이 작업 한참 갈 것 같아.` 그런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벌써 그의 의욕에 압도당한다. 하긴, `너무`라는 말은 벌써 비관과 걱정을 품고 있지만, 그는, 아니 그가 너무 의욕적이라서 실패했던 적은 없으니까. 사실 그 정도가 아니다.

예. 저는 화간데요. 나이프나 포크 뭐 그런 걸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귀사에서 재료 지원을 좀 받을려고요. 네. 네네…. 임옥상이 `업무용` 전화를 받을 때나 걸 때 `네. 네. ` 소리는 여자가 맵시를 앙도리질 치듯 끊음이 확연한데 그것은 의욕의 결의가 `정중하게` 단호하다는 뜻이다. 어디 전화 건거야?…. 내가 그에게 농담을 기대하며 묻는다. 엉. 린나인데(회사명이 정확지는 않다)…. 주방기구 다루는 데라서 냄비니 프라이팬 그런 거는 얼마든지 줄 수 있는데, 포크 나이프 그런 거는 없다네…. 그럼 냄비나 프라이팬 쪽으로 나가야겠네, 뭐…. 농담에 불을 지를 심산으로 그렇게 말했는데, 아뿔사, 그만 그의 의욕에 불을 지르고 말았다. 그래? 못할 것도 없지 뭐. 하여간에, 이 작업 좀 더 하고 나서…. 그는 한참 갈 기세다. 좋긴 좋은데… 대중문화의 예술화란 광활하고 다양할수록 좋은 거 아닌가….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더 깊은 속으로는 뜨끔하다. 아니 겁이 덜컥 난다. 그의 작업 방식 때문이다.

어찌나 발품이 넓은지 내가 그를 따라다니는 것을 포기한 지는 오래다. 어, 말야. 이번 주 토요일 날 시간 있나. 뭐 세미나를 할 게 있는데. 양평 콘도로 와…. 그런 소리를 듣고 긴가민가하다가 일이 장충동에서 끝난데다 맘씨 착한 의사 시인 서홍관에게 택시비를 뜯어 밤늦게 찾아간 양평 콘도에서는 `갯벌살리기 운동` 발기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 계획 하나만 하더라도 족히 일주일에 한번은 지방나들이를 해야 할 판이었던 것. 그는,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그런 일을 열 대가지 벌이고, 툭하면 해외여행도 다니고 그런다.

그래서 일찌감치 그의 발품에 정말 밟히지 않도록 주의에 주의를 기울였던 것인데, 그렇다면, 정말 우연히 만나서 `끝까지 책임지는` 방식으로만 그를 만나느냐,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 더 무서운 것은 그의 전화다. 이를테면 앞서 말한 반(反)아셈 집회 때 그는 이런 전화를 했다. 야, 내일, 집회 때 그 조형물 세우는 식을 하는데 말야. 그냥 하기에는 밋밋해. 니가 시 한편 써주라….

참내, 옛날에는 사람들이 사전 예고도 없이 분신을 하니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추도시를 써주었지만 이건, 누구한테 빵꾸 맞고 내게 땜통을 하라는거지?…. 뭐 그런 생각도 대충 접고 나는 급히 시를 써주었었다. 그런데, 또 전화가 온다. `고맙다. `는 전환줄 알았더니 왠걸, `야. 너 영문과 나왔지. 그거 번역도 좀 해다오.`다.

<목 긴 청개구리> 때는 (물론 나중에 그가 정신을 수습하고 좀더 알맞은 음악을 찾았지만) `오늘 당장 음악이 필요하니 음반점으로 가서 골라 달라.`했고, 그 다음 부탁은 더 희한했다. 포트폴리오에 들어갈 글을 써다오. 그걸 영어로 번역해다오. 영문글이 국문글과 좀 달라졌으니(사실 그렇다. 한글은 한글 내용을 유도하고 그것을 번역한단들 영문은 영문 내용을 유도한다. 그러므로 창작자에게 번역까지 시킨 것이 애당초 잘못이다.) 그걸 다시 번역해다오…. 청탁은 (다행히도) 며칠 전에 한 것 같은데 내 기분에는 그 세 가지 부탁이 한나절 정도에 연속적으로 강제된 것 같다. 그러니, 내가 그의 전화에 어찌 겁먹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겁나는 만큼 반갑기도 하다. 형식에서나 내용에서나 정중한 예의와 짖궂은 농담 사이 절묘한 속을 파고드는 그의 작업 내용을 내가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그는 나를 딱 한번 겁낸 적이 있다. 아무 생각없이 서울대학교 박물관 전시회 초대 시간을 `점심 때`로 잡았기 때문이다. 아이쿠, 아무리 그래도. 여긴 술집도 없고, 야 아무리 그래도 지금부터 어떻게 술을 퍼마시냐. 우리 영화구경이라도 하면 안될까?…. 바람이 무척 쌀쌀해서 잠시 1975년 이전 당시 황량했던 분위기를 연출하는 포장도로 위에서 그는 그렇게 오들오들 떨었었다.

각설하고, 내가 펴낸 산문집에 <전망은 그릴 수 없는 아름다운 그림>이라는 게 있는데(이건 광고가 아니다), 그것은 사실 임옥상과의 대담을 위해 미리 정해둔 제목이었다. 그게 약 3년 전. 나의 처지와 능력은 아직 그 제목과 같은데, 임옥상은 얼마나 더 멀리 간 것일까? 그 생각을 하면 내가 슬프고 미술이 벅차다.

ps. 딱히 이 글 핑계로 그를 만난 날은 망년회 다음 날, 즉 크리스마스 이브, 만난 곳은 세검정 북한산 풍광 및 부자동네 경관을 바야흐로 서유럽 예술도시의 그것으로 변화시켜가고 있는(고급스럽고 전아典雅할 뿐 압구정동과 달리 돈-압도적이거나 요란-부박하지 않은, 역시 공공건축물은 대규모 투자와 미술적 식견이 결합할 밖에 없다, 고 나는 생각한다) 가나미술관 아래의 자매격 건물 3층 레스토랑 모테Motte였다. 실내는 꽤나 우아하고 예약이 필요했지만 붐비거나 좁은 느낌이 없었다. 크리스마스 때 그렇게 근사한데를 간 것은 처음이다.

이날 임옥상과 김희경을 초대한 것은 교보문고 사장 부부. 60년대 초 학번이라는 사장은 꽤나 털털하면서도 사업식견이 고급스럽고 높아보였다. 같은 또래의 사장 부인은 정말 형식과 내용이 일치되는(10회 분 참조), 나이 든 만큼 일치의 정도가 더욱 너그럽게 무르익은, 겸손하고 자상한 프랑스 귀부인 풍이었다.

꽤 비싼 음식에 꽤 비싼 포도주를 곁들이며 대화가 E-마트니 신세계니, 프라이스클럽이니 한국에서는 `마진 빼고 물건만 대량판매하는` 방식보다 `백화점식` 방식이 더 잘 통한다는 대목에 이르러 김윤수의 예언이 현실로 드러났다.

`물고기 형상`이 다섯 배 크기로 확대되어 부산 테스코(영국에 본사가 있는 슈퍼마켓 체인이란다.) 앞마당에 전시한다는 것. 그럼 그렇지…나와 사진기자 전홍기혜, 그리고 배석자 강경미는 그쯤만 해도 대접이 너무 난데없다 싶은데, 임옥상 작업실로 장소를 옮겨 김희경이 주재하는 포도주 시음 행사를 치르자니 신기한데다 황공하기까지 하다.

거기서 다시 인사동행. 몸이 너무 불편해서 서울나들이가 드믄 시인 조용미 일행과 합석을 했는데, 기억이 별로 없다. 결국 오늘도 이렇게 끝나는가. 모처럼 귀한 데 있어보고 귀한 음식 맛보고 귀한 대접 받았는데…. 대학1년생 때 조교누나가 모처럼 사준 탕수육을 먹고 배가 음식호사에 놀랐는지 다 토해내고는 참으로 아까웠던, 추억이 나를 때렸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분명 있다. 그 모든 것이, 임옥상의 `정중한 예의`와 `짖궂은 농담` 사이 절묘한 대중문화 예술 속에 있었다. 교보문고 사장부부도 그와 김희경도 사라진지 한참 되었지만. 그 한참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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