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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의 '할 말, 안할 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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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의 '할 말, 안할 말' <5>

신화와 향수(香水) 사이, 몸-탤런트 서갑숙

서갑숙.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거의 온 국민이 알던 방송경력 십수년의 중견 탤런트. 그리고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는 ‘충격적인’(내 말이 아니고 ‘매스컴’ 혹은 광고에서 제멋대로 붙인 형용사다) 성체험 고백서를 발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50권을 넘게 낸 나보다 더 많은 부수를 팔아 치운 여자.

나는 ‘사회적 물의’를 물론 좋아하고(아직도 이 세상이 도통 맘에 안 드니까), 포르노도 좋아하고(포르노를 보는 버릇이야 그 옛날 ‘도바리’ 시절 때 여관을 전전하다가 생긴 것이지만 그것 아니라도, 적나라赤裸裸가 그 자체로 눈물겨운 시대라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더군다나 ‘부수’(나는 ‘공연단체’에서 일했던 10년전의 경험 때문에 아직도 악몽을 꾼다. 출연진보다 관객 수가 적은 최악의 공연 사태를 맞는 꿈. 등장인물이 많은 연행예술에서 그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 나는, 그것에 덧붙여, 내가 펴낸 책 권수 보다 총판매부수가 더 적은 꿈도 꾼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야 싫을 것이 없지만, 그리고 경우는 정반대라도 ‘여자와 성체험’을 논한 일(그 옛날 민주화통일운동연합, 약칭 ‘민통련’에서 권양 성고문 사태를 맞아 지금은 한다하는 여-야당 최고위원 부총재 국회의원의 ‘부인’들만 모아놓고 한 ‘운동과 성문제’ 좌담 사회를 맡은 적이 있다. ‘운동권 남자들’이 모두 쑥스러워했던 참에, 나는 그래도 시인 출신이니까, 모종의 요령이 있을 것이라는 명분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명분은 좌담이 끝난 후 ‘핑계’였다는 게 드러났다. 나는 곧 ‘전생과협’, 즉 남편이나 애인이 수배중이거나 투옥되어 생과부 신세가 된 이들이 심심찮기 위해 만나는 반半합법 단체 <전국생과부협회>의 청일점 명예 대장 노릇을 했는데, 그건 순전히, 내가 너무 못 생겨서,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스캔들 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도 있지만 그 모든 것들과의 인터뷰(는 사실 아니다. 나는 겉으로 묻고 대답하는 통상적인 인터뷰가 아니라 ‘할 말 안 할 말’이라는 제목의 ‘진지한’ 연작 ‘만남 소설’을 쓰고 있는 셈이다. 이제 의도를 밝히고 들켰으니, 잘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상관없지만. 나는 두 달이 안 되는 동안 D일보에서 일간-주간-월간, 다시 일간을 순회하면서 연재를 청탁 받고 평균 2회가 되기 전에 ‘짤린’ 경력을, 다소 자랑스러워하는 편이다. 그 신문사에 계간지가 있었다면 홈런에 1루타, 2루타, 그리고 3루타 그런 식으로 손을 꼽았을지도. 아니 그런, 무슨 ‘스포츠’ 얘기가 아니고 언론개혁 ‘운동’에는 그렇게 ‘상처받고 상처를 문학화하는’ 방식이 더 유리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는 뭐랄까, (지금 문장이 그렇듯) 여러 가지로 사람을 복잡하게 만드는 판에 인사동, 차는 없지만 사람이 많아서, 그리고 깨엿 강정에 수만가닥, 꿀과자를 현장제작으로다가 파는 ‘전통 먹거리’ 장사치들 때문에 차도보다 더 복잡한, 아사리판 길을 걸어 한다하는 정치-문화계 인사들의 단골 술집, 실내가 80년대 초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목조에 ‘나달나달한 바로크’풍인 <평화만들기>에 도착하니 오후 5시라 예상대로 손님은 없고 허허탈탈하지만 현재 단골은 물론 예상 단골의 인적사항 및 취향까지 두루 꿰고 있으며 누구를 막론하고 주사(酒邪)에는 용서가 없는 여주인 혜림씨(나는 그녀에게 ‘X년’이라고 욕을 했다가 3년 동안 사람 취급을 못 받았다) 가 ‘준비된’, 능숙하고 저 먼저 편안한 표정으로 반기고(그녀와 서갑숙은 ‘물의’ 이후 더 친해진, 그리고 너무 친해진 사이다), 매니저 관계자인 듯 두 여성이 어색하게 일어나고 서갑숙이 ‘안녕하세요.’하는데, 정말 가을물을 머금고 성숙해진 듯, 자연이 인간으로 영롱하다.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정장을 했는데, 찍고 나서 편한 걸로 갈아 입을께요. 어디서?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 말이 ‘색 스럽게’(?)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확실히 그녀는, (내게도) 한 고비를 넘겼다. ‘물의와 센세이션’이 뜻하는 모종의 파란만장을 그녀는 분명 겪었다. 그녀를 만난 게 2년 만이다. 중간에 한번 스치기는 했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2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처음 만난 것은 약 7년 전. 그녀가 이혼하기 전이다. 처음 만났을 때를 그녀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때는, 대낮이었는데, 그녀는 전남편과 폭탄주로 대취해 있었다. 나를 불러낸 당사자(방송작가 박진숙씨)는 내가 오자마자 그녀도 폭탄주에 취해 자리를 떴고 머쓱해서 나도 허겁지겁 ‘진도’를 맞추려는데 그녀가 대뜸 내게 ‘누구세요.’ 했는데, 어투가 ‘너, 뭐하는 놈이야?’, 그런 식이었다.

그랬나? 전 잘 생각이 안 나요. 하지만 곧 자조로 바뀌었지. ‘당신이 날 안단 말야?’ 나는 ‘서갑숙’이라는 이름을 안다고 했다. 여자 탤런트 이름이 서갑숙이라니, 요즘 방송문화에 이건 보통 뱃장이 아니다. 분명 처음부터 ‘얼굴값’이 아니라 연기로 승부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그 말에 그녀는 대충이나마 고개를 끄덕였지만 곧 고꾸라져 500cc 호프잔에 머리를 박았다. 나도 이름을 갈아 보려고는 했어. 좀 근사한 걸로. 미희나, 성까지 갈고 서련 같은 거하지만 잘 안되더라고요. 내 이름에 낯이 익어서? 그게 그 얘기지. ‘얼굴값’들은 사실 얼굴이 두꺼운 거거든. 낯섦을 무마시키고 자신을 내맡기고 휘둘려버리는 거지연기나 방송을 하면서 최초로 겪는 거북한 경험은 자기 목소리를 자신의 귀가 아니라 객관적인 귀로 듣는 것이다. 가장 낯익었던 그 억양이 가장 가까운 데서 가장 낯설어진다. 대부분은 그 낯섦을 우아함으로 꾸미는데 그 부자연스러움은 북한방송 아나운서의 그것과 정반대고 동전의 양면이다.

난, 아직도 내 목소리가 낯설어. 억양도 낯설고요. 그러나, 그러므로, 그녀는 진정한 연기자다. 낯익음과 낯섦의 간극으로 타자의 인생을 표현하고 타자와 자신의 변증법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쌓아가는 게 연기의 기초인 까닭이다. 난 타고난 연기자는 아니에요. 그냥 역할을 잘 이해하는 연기자지?

애들은, 국민학생 하나 중학생 하난데, 어머니의 ‘행각’을 이해해주었다고 한다. 그때는 전 남편한테 있었고 지금은 나와 함께 있는데, 그는 재혼했거든요, 물어보니까, 신경 쓸 거 없다고 그래요. 고마웠지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다른 친구 애들이 뭐라고 놀리지 않더냐니까, ‘요새 애들 그런 거 관심 없어, 엄마. 그런 걸로 놀리면 오히려 왕따 당한다구.’ 그러는 거예요.

하긴, 내 생각에, 우리나라 청소년에 대해 어른들이, 특히나 식자 어른들이 저지른 과오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청소년의 의식 수준, 특히나 성의식 수준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것이다. 어른들의 청소년 성범죄는 눈에 보이고 산발적이며, 처벌하면 되고,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유치원 때 이미 ‘누구누구는 멘스한데요’ 하며 담벼락에다 낙서를 하고 중학교 때 성에 눈 뜨며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 내 나이 기준으로 정확히 ‘대학생’처럼 의식- 성의식이 ‘발전’하는 아이들에게 죽어라 ‘전래동화 전집’만 사주고 읽으라면서 요새 애들은 너무 책을 안 본다고 한탄과 걱정을 일삼는 식자층의 성범죄는 눈에 보이지 않고 총체적이며, 처벌 법규조차 없다. 그리고 정치권은 포르노그라피를 닮았고, 방송-언론은 영미-일본판 ‘황색’으로 지면과 화면을 물들이느라 여념이 없는 판이다. 영화속도를 ‘따라잡는’ 실력에서 나는 아들이 중학생 때 참패를 당했다. 그리고, 활자가 세상을 알며 지식을 쌓아가는 가장 유용한 매체였던 시대는 갔다.

아니 그렇게 믿었던 시대가 갔고, 정말 그랬던 시대는 없었다. 말로는 ‘몸의 시대’, 몸으로 세상을 느끼고 알아가는 시대라고 하면서도, 식자들은 말(혹은 활자) 뿐이다. 장장 25년 동안 중학생들을 가르치는 우리 마나님은, ‘청소년 가출 및 혼음’기사를 보며 그러셨다. 속을 들여다 보면 애들이 참 장하다는 생각이 들어. 제대로 된 성모랄은 커녕 성교육도 없고 세태는 물밀 듯 밀어 닥치고 그런 와중을 겪으면서도 쟤들 나중에다 번듯한 어른 노릇 하거든. 우리 때 보다 더 장하지. 여성장관도 좋고 여성장관도 좋고 여성문제 여성장관도 좋지만 평생 남성한테 잘 보여서 장관되는 경우라면야 차라리 요즘 성의식 삼빡한, 여고생은 좀 심하다 치고 여대생 한테 ‘성추행 문제’를 담당시키는 게 훨 낫지 않겠나. 그게 훨씬 자연스럽고(왜냐면 포르노보다 더 야한 것이 낡은 성범죄 관계 한문 법조문이잖아?). 나는 그렇게 되받았었다.

사랑의 근황? 뭐 요즘은 불특정 다수랄까? 그녀가 그렇게 말했는데, 역시 그녀는 한 단계를 넘어섰다. 다소 공격적인 그 ‘불특정 다수’의 어감이, 나 같은 ‘보수파’한테도 전혀 난잡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나도 ‘전투적’이라서, 대뜸 ‘24시간짜리’에 대해 물었다. 24시간? 아, 9시간. 참 나도 방송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지만 매스컴이 다 그렇더라고요. 과장이 심해. 사랑 얘기를 뺀 건 그렇다치고. 내가 9시간 섹스를 했다 그랬지 24시간 했다 그랬나. ‘탤런트 서갑숙 동성애 경험 있다’ 그런 기사 제목도 그렇구.

하긴 그렇다. 책이든 뭐든, 발표한 이상 자기 것이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그 의미와는 전혀 다르게, 몇 천부를 넘어서면 정말 책과는 상관없는 화제들이 판매를 주도한다. 나도 그 본말전도 혹은 ‘이야기와 무관한 화제’현상에 물들어있었음을 들킨 셈이라 화끈한데 어쨌거나, 그럼 그 ‘9시간짜리는 어떻게 됐어?’하고 물으니, ‘노 코멘트.’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있나?’ 그것도 노 코멘트.

나는 다만 평생 아름다운 암컷이 되기를 바랄 뿐이에요. ‘불특정 다수’라는 것도 꼭 섹스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친구에 가까운 관계죠. 어쨌거나 인간은 외로운 거니까. 그 책 나오고 나서 남자들이 접근을 안 해요. 내가 또 책에 쓸까봐?

‘예술의 궁극은 성을 극복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물으니 그녀는 정색을 하면서 ‘아니 성을 왜 극복해요?’ 그런다. 암컷이 암컷의 정체성을 수컷이 수컷의 정체성을 찾는 건데. 나는 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거죠. 아직도 찾고 있고. 배우는, 물론 열심히 하겠지만, 배우 생활을 때려 쳤던 것도 아니고 그냥 좀, 책 나오고 어수선해서 물러나 있던 것이지만,

아까 말했듯이 난 좋은 배우는 아니라고 봐요, 역할을 잘 이해하는 배우지.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 찾기’와 ‘배우일’을 연관시키기 싫어한다. 그러나 나는 계속 그녀를 배우로‘만’ 보려고 하고 그녀의 말을 배우의 말로‘만’ 들으려 하고 그녀의 고통과 기쁨을 배우의 그것으로‘만’ 느끼려 한다. 그 어긋남이 다소 긴장되지만, 나는 재밌다.

어쨌거나, 그녀는 지금, 배우로 보자면, <나도 때론 포르노?>가 출간되고 화제선풍을 일으키고 검찰에서 조사 후 문제가 있으면 사법처리하겠다는 발표가 나오고 그렇게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갈 무렵 ‘굿모닝’ 류의 아침 TV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입장을 의연하게 밝혔던, 그러나 너무 결연해서 다소 불편해 보였던 그때보다 표정이 훨씬 더 자연스럽고 연기가 무르익었다.

물론, 그녀가 내 앞에서 어떤 표정을 연기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나는 모든 배우들에게 ‘서갑숙식’ 성체험을 예술의 이름으로 알게 모르게 권하고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도덕군자들에게는 한없이 문란해 보이는 연예인들의 성의식, 종종 서갑숙식 보다 훨씬 더 과격한 성의식과 성행각이 사실은, 예술로써 성을 극복하려는 무의식적 소망의, 와중의 결과가 아닐까, 그 대상이 체질상 혹은 성격상 ‘불특정 다수’든 ‘only you’(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일은 사실 얼마나 고통스럽고 우스꽝스러운가. 그러나 한 여자를 통해 쌓여가는 사랑의 ‘생애’는 그 고통을 의미의 계단으로 쌓아 올린다. 그리고 의미란, 고통이나 기쁨과 무관한, 어떤 운명 같은 것이다)든, 어쨌거나, 연예도 ‘예’고 그러므로 원하고 노력한다면 ‘예술’로 가는 도정이라면 인간의 존재적 한계의 최후 한계인 성(gender)을 극복하는 예술의 과제(왜냐면, 이를테면 진정한 소설가는 남성도 여성도 아니다. 그는 남자가 등장할 때 남자고 여자가 등장할 때 여자다. 그리고 훌륭한 소설 ‘작품’은 그렇게 성을 극복한 아름다움의 세계다)와, 물론 위의 청소년 성범죄 얘기 못지않게 한국적으로, 즉 NL(반反제국주의 반봉건 민족해방혁명)과 PD(반독점자본주의 민중민주주의 혁명)과제가 난마처럼 뒤얽힌, 그러므로 프리섹스와 혁명이 혼동되는 형국으로,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말하고 있는 거다.

물론, 사랑은 성을 극복한다. 그리고, 그러나, 성이 없는 사랑은 종교와 철학의 진리는 몰라도, 예술에 가닿을 수는 없다. 그리고 ‘예술’에 가닿은 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성의 사랑을 극복할 수 있다. 그게 진정한 ‘몸의 예술’론이다. 그래, 그녀는, 그녀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나와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닐까?

얘기가 너무 진지해졌나? 혜림 씨가 분명치도 않은 자신의 연애담으로 분위기를 풀고 김상도가 또 어영부영 끼어들 틈을 찾고 그 사이 ‘고릴라 만화가’ 주완수도 끼어 술자리가 아연 흥청망청해지는데 서갑숙이 그런다. 요즘 저의 화두는 신화와 향수예요. 거의 미친 듯이 빠져들고 있죠. 신화는 앞으로 계속 공부할 거고? 향수에 대해서는 내가 잘 모르지만(나는 얼굴에 뭘 발라본 적이 한번도 없다. 비누냄새도 요란한 건 싫어서 어떤 때는 빨래비누를 쓰곤 한다. 하긴, 빨래비누도 냄새가 있군. 그건, 그것도 정액 냄샌가?)

나보다 더 잘 모를 것 같은 김상도가 ‘향수요?’, 반색을 하며 상체를 들이밀고 그렇게 그녀가 하는 말을 들으니 정말 고수 같다. 모아 놓은 진귀한 향수병들이 수백개 되고 향수 때문에 외국 여행을 안 다녀본 데가 없다는 것. 김상도도, ‘선방’은 한다 싶을 정도로 유식했다. 아니 나는 모르는 용어들이 둘 사이에 거의 난무했는데, 한참을 그러다가 그녀 자신의 ‘향수애용론’이 좀 특이하다.

이거 한번 맡아봐요, 하면서 손을 내밀길레 맡아 보고, 별로 잘 모르겠는데요, 하니까 그녀는 날보고 중성이거나 남성형이란다. 흔히 남자들이 애용할 만한 향수, 그러니까 ‘암컷의 본능’을 유혹하는 향수라는 것. 난 이게 좋아요. 남자가 늘 내 곁에 있는 것 같으니까. 나는, 역시 보수적이라, ‘남성 혹은 중성’이라는 말에 안도하면서, 그녀의 향수 취향 또한 성을 극복하려는 무의식적인 몸짓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녀와 김상도가 주장하고 그녀가 대충 고개를 끄덕인 최고의 향수는 로터스 향수였다. 로터스는 연꽃. 그것 봐라, 그 향기는 남성도 여성도 없는, 그렇다고 중성은 아닌, 정말 남성과 여성을 불교-종교적으로 극복한 오묘 경지의 향기화 아니겠느냐나는 그렇게 쾌재를, 부른 것까지는 좋았는데, 거기 덧붙여 ‘요새 장미 추출액이 인기던데요?’ 하고 아는 척을 하려다가 핀잔만 들었다. 그건 십상 가짜거나 대충 만든 걸 거에요. 향수 한 방울 만드는데 장미가 수백 수천 송이 드는데, 그렇게 만들 수가 있겠어요?

그녀는 또, 별 맥락 없이, ‘허스키한 고음’이 너무 좋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한편으로 명기(名器)인 여자의 몸이 오르가즘으로 토해내는 소리(이 때 말고 ‘허스키한 고음’은 그 자체로 드물다) 와 함께, ‘명기’가 ‘음악’으로 자연히 또 당연히 이어지면서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opera buffa, 코메디 오페라)의 테너성(聲)을 떠올렸다. 부파 테너성은 청아한 고음에서 우스꽝스럽게 균열되면서 ‘죽음의 웃음’을 받아들인다. 이것은 이탈리아에만 있는 ‘성을 극복한’ 음악예술의 경지다. 독일의 경우, 독일 부파의 최고봉에 도달한 모차르트조차, 바리톤은 탁하고 우스꽝스럽되, 테너성은 단아하고 서정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엑기스가 바로 서정일 터. 이것이 깊어질 뿐 스스로 극복되지 못하는 것. 명기와 악기와 균열의 테너성. 그녀의 ‘허스키한 고음’은, 다시, 그 ‘와중’에 있다. 향수가 있어 더욱.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완전체에 달하고 싶다는 건데. 외로움을 채울 존재가 필요한 상태에서 외로움 자체를 극복하는 것으로 나간다는 뜻이라면? 그녀가 그렇게 ‘양보’를 했고, 나는 ‘외로움’에 운을 맞추며 그날 아침에 본 ‘동물의 왕국’류 프로그램의 곰 이야기를 했다. 곰이 자라서 에미로부터 독립을 하는 과정을 추적한 다큐멘터리인데, 홀로 선 곰의 모습을 본 순간, 그 거대한 야성의 절대고독 앞에서 인간들의 존재가 너무 잡다하고 여리고, 그래서 한데 몰켜 다니느라 졸렬한 잔대가리만 늘어난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 아니 그래서 더욱 내가 인간이라는 점이 이유 없이 짠했다고. 그녀는, 그녀도 인간 존재에 대한 자괴와 연민을 수긍하는 듯 했지만 그러면서도 (짐승이 아닌) 인간의 절대고독을 언뜻 뿜어내는 것이었는데, 그때 나는 내가 짠했던 이유를, 곰적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신화는? 서갑숙이 초면의 주완수랑 친해가는 와중(?)인지, 혹은 모종의 실습을 하는지 피차 화통한 얘기가 오락가락하다가 자존심이 상하다가 급기야 ‘누가 먼저 옆구리 찔렀니’ 문제로 한바탕할 태세인지라(또, 또, TV 사극 말투 나온다. 쯧, 쯧.) 신화 얘기는 들을 틈이 없었다. 아니 그녀는, 무의식적으로나마, 내가 대신 해주기를 바랐을지 모르겠다. 그녀에게, 아니 우리나라 (여)배우들에게 딱 어울리는 (라틴)신화가하나 있다. 피그말리온(Pygmalion). 그는 키프로스의 왕이었는데, 궁중여인네들의 육체적 변덕(성 취향이거나 불륜)에 신물이 나서 자기가 직접 상아 조각으로 여인상을 파고는 매일 밤 끼고 잤다. 그리고, 그러다가, 그 조각상과 사랑에 빠졌다. 입을 맞추면 조각상이 응답을 하는 듯하니, 그는 조각상에 옷을 입히고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고 선물도 사주고 제 혼자 말도 걸고 그러면서 사랑이 더 간절해 졌다. 비너스(Venus) 여신 축제날이 오자 그는 여신께 기도를 올린다. 그녀를 저의 아내로 맞게 해 주십시오. 여신이 그의 청을 들어 조각상에 숨을 불어 넣으니 그녀가 갈라테아(Galatea)다.

이때 예술(조각상)은 성애와 아름다움 사이, 어디에 있는가? 비너스는 성애와 아름다움 사이, 어디에 있는가? 중간에 있다. 아니, 그 둘의 변증법‘으로서’, 그리고 ‘으로써’ 있다. 사랑의 몸 자체가 기쁨과 더불어 온갖 잔걱정을 초래하는 판도라 상자지만, 시간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의 매개다. 예술은 (피그말리온) 신화를 매개로 신화 너머에 있다. 서갑숙이 신화와 몸, 그리고 향수를 매개로 그 너머에 있는 예술에 가닿기를, 우리나라 모든 (여)배우들이 그러하기를. 순정을 통해서건, ‘불특정 다수’의 친구를 통해서건, 어쨌거나 기존의 유교적 성도덕을 예술적 성도덕으로 타파하기를.

ps. 한국적 청순미의 대명사였던 ‘예진아씨’ 황수정이 히로뽕 복용으로 구속되었다고 매스컴이 난리다. 히로뽕이 아니라 최음제인 줄 알고 먹었다. 그녀가 그렇게 진술했다고, 애인은 그 옆에 강모라는 사람이라고 더 난리다. 충격. 그녀가 출연한 광고 일제히 중단. 팬들 우롱. 언니 부대 큰 상처. 배신감. 이런 단어들이 큼지막하게 연예면을 출몰한다. ‘연예계 복귀 불가할 듯’의 예상기사도, ‘문제 연예인 방송 출연 금지해야’라는 훈시기사도 성업 중이다. 마약복용 연예인 처벌에 반대한다는 내 소견은 이미 여러 차례 밝혔다. ‘히로뽕-징역’이 아니라 ‘최음제-스캔들’쪽을 택한 황수정의 순간 선택에 나도 잠깐 충격 받았음을 고백한다.(아, 세상 따라 잡기가 이리 힘들구나.)

그러나 창녀역 소름끼치게 잘한 배종옥이 사실은 창녀가 아니라서, 불륜 섹스를 기똥차게 연기한 전도연이 사실은 아직 미혼이라서 우리가 ‘배신감’ 느낀 적이 있던가? 물론 없다. 바야흐로, 또 의외로, 사극을 통해 연기력을 목하 과시 중인 강수연과 이미연은 당연히 난정이와 명성왕후가 아니다. 여기에는 배신감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왜 ‘청순한’ 역의 황수정이 ‘청순하지 않아서’ 배신감을 느낀단 말인가? 아니, 나는 사태를 더 근본적으로 역전시키고 싶다. 히로뽕이나 최음제를 나는 사용하지 않지만, 그리고 권장할 생각도 없지만, 그건 내 사정이고, ‘최음제’와 ‘히로뽕’의 사랑이 도대체 청순과 무슨 관계인가. 이때 청순은, 혹시 성처녀-불감증을 뜻하는 말인가. 그리고 ‘언니부대’들의 사상-성의식이 그것 밖에 안 된단 말인가. 이것이야말로 (타락한)매스컴의 순결콤플렉스 혹은 성폭력 아닐까?

나는 황수정이 스크린에 복귀해서, ‘예진아씨 보다 더 청순한’ 역을 해내는 걸 보고 싶다. 아, 연예에서 예술로 가는 길도 가시밭길이겠거늘, 돈 있는 놈 찝적대고 권력 잡은 놈 윽박지르고, 펜 잡은 놈 찔러대고, 여성 수난의 남성 전쟁이 따로 없구나. 우리나라 (여자) 연예인들 불쌍하다 정말.

서갑숙은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재학시 MBC 탤런트 15기로 연기생활을 시작, 드라마 ‘남자의 계절’, ‘초록빛 모자’, ‘학교’, 영화 ‘봉자’ 등에 출연했다. 지난 99년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가 논란이 돼 한때 방송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현재 SBS 드라마 ‘이 부부가 사는 법’에 출연 중이며 ‘향기와 신화’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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