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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의 '할 말, 안할 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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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정환의 '할 말, 안할 말' <3>

`고양이를 부탁`하는 남자 오기민

벌써 5년이 넘었나. 한창 잘 나가는 배우이면서도 한국영화의 중흥을 위해 자신은 정작 배우 일을 때려치우고 영화감독을 해볼까 아니면 영화 '행정 혹은 운동' 쪽으로 나설까 아니 아예 정치를 해볼까 꽤나 정신 사납게 고민을 해대던 문성근이 촌철살인 격으로 내 웃음의 숨통을 죄었던 적이 있다. 꽤나 진지한, 시쳇말로 '한 진지' 혹은 '웬 진지' 하던 모 영화감독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한국 영화의 현실을 개탄하고 술이 약해 먼저 자리를 뜬 직후였다.

후. 쟤는 아직도 영화가 예술인 줄 알어, X쌔. 나 참…. 그 말은 너무도 적절하게 영화계 내부의 문제를 응축하는 거라서 지독하게 웃겼지만, 동시에 그 자조가 낭떠러지처럼 급전직하라서, 나오던 웃음 또한 그냥 목구멍에 절벽으로 각인되고 말았던 것이다.

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양적으로 정말 눈부신 한국영화 중흥기를 맞고 있다. 영화관객의 숫자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대박'(big hit)의 양적 수준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임권택 감독영화 ‘서편제’가 방화사상 최초로 1백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시끌벅적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요즘 '대박'은 5백만 명을 우습게 넘나든다.

최고 기록은 6백만 명을 넘어 7백만 명에 육박했고 그 숫자 또한 후발주자들이 우습게 보는 형편이다. 여기에 비디오 대여 문화, 그리고 케이블 영화-TV 시청문화 인구를 합치면 영화의 '대박'은 가히 초등학생 이하 아이큐 소지자와 치매노인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을 포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덧붙여 그 기세등등했던 할리우드 영화가 도무지 '겨우 100만'을 넘기는데 헉헉대다가 대개는 실패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과연, 영화행정가로 활동이 두드러지게 된 문성근이 텔레비전 프로에 나와 자상하게 중흥의 원인을 설명한다. 요약 정리하자면 쿼터 제도(수입영화에 비례하여 한국영화 제작 및 극장 상영을 일정 퍼센트 의무화하는 제도)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젊은 작가들이 활기를 불어넣으면서 경쟁력이 생겼다. 그리고 솔직히, 할리우드 영화들이 요즘 재미가 없다…뭐 지극히 타당한 설명이다.

그런 한국 영화에 대해 잔소리를 하자니 맨 먼저 그 5년 전 얘기가 생각나는 것이다. 감개무량해서? 아니다. 흐른 세월보다 훨씬 더 격세지감으로, 이제는 내 자식들이 나보고 그럴 것 같기 때문이다. 저 꼰데는 아직도 영화가 무슨 예술인지 알아, 나 참…. 설마 그 착한 놈들이 'X쌔'까지 갖다 붙이지는 않겠지만.

대학 2학년과 고등학교 3학년인 내 두 아이 뿐 아니라 요즘 젊은 것들은 착하다. 그리고 사심(私心 혹은 邪心, 이를테면 역사의 얼룩 같은)이 없다. 그 신세대들에게 영화는 가장 일상적인 취미다. '착함' '사심 없음' '일상적 취미'가 합하면 영화의 장래는 정말 밝다.

그런데, 우울한 소리? 영화에서 예술은, 생존의 필수조건인데 그게 사라져 버린 까닭이다. 일상적으로? 그래, 일상적으로. 언론에서 그 정도 호평해주면 적어도 20만~30만 명은 예상했는데….우연히 신문에서 ‘고양이를 부탁해’(감독 정재은)의 흥행 부진과 관련된 토막기사를 무심코 읽다가(왜냐면 '예술'영화 흥행부진이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므로, 게다가 내 전문영역인 문학은 문제가 더 심각하므로) '제작자 오기민'이란 이름을 듣고 나는 깜짝 놀라면서 걱정과 동시에 가슴이 진하게 뭉클했다.

물론 흥행 부진에 감동했을 리야 없겠다. (그와 나는 오랜, 피차 곰살 맞지는 않지만, '치열한' 선후배 관계다.) 뭐였지? 나는 그 옛날 단체(노동자문화운동연합, 이하 노문연)를 같이 하다가 단체가 흐지브지된 후 10년 동안 그가 무엇을 추구했는가를 대번에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영화 일을 한다는 것도 직책이 줄곧 프로듀서라는 것도 알았다. 잊을 만 하면 우연찮게 술자리 만남이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는 공전의 대박 ‘여고괴담’(감독 박기형)은 물론 그 후속편 ‘여고괴담-두 번째 이야기’까지 히트시킨 '흥행 PD'다.

하지만 그 모든 '알음'을 전혀 하찮게 만들어버리는 어떤, 사회주의 멸망 이후 한국의 좌파 10년의 거대한 고투가 그와 나를 한 몸으로 감싸는 듯한 기분에 나는 사로 잡혔다. 그것은 나 자신의 구체적인 고투가 아니라 나를 압도하는, 뭐라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구체보다 더 구체적인 추상의' 고투였다. 어떤 역사의, 운명 같은 거라고나 할까. 나는 그에게 위로 전화를 했는데, 그러고 보니 10년 만이었다. 그가 내게 간간히 전화를 하기는 했지만, 어쩐지 나는 (아니면 나만) 그에게 깍쟁이였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전혀 기죽지 않았다. 괜찮아요. 거 뭐, 어쩌겠어요. 영화계에서 늘 있는 일이고. 다음 작품 준비가 더 중요하고요….'고양이 살리기' 도와주시겠다는 분 많고요. 형도 전화를 주셨으니. 고마워요….같은 노문연 후배 문승현(작곡가. 경희대학교 교수. 오기민이 제작한 ‘여고괴담’ 음악을 맡았었다) 에게 물으니 '12억쯤 손해'를 봤을 거란다. 영화진흥공사에서 3억5천만 원 지원받았고 광고비 포함 전체 17억이 들었다. 이건 뭐 돈 단위가 문학하고는 엄청 다르니 엄두가 안 나지만, 어쨌거나 만나서 얘기를 자세히 들어 봐야겠네….

그러나, 다음 날 만나서도 그는 여전히 느긋하다. 15년 전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말투가 빠릿빠릿 신속-과감하고 간간히 풍선처럼 헛웃음이 터진다. 아니, 농담까지 덧붙인다. 사실 영화란 게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제작에 드는 인력만 해도 엄청난데 관객이 기껏 2만~3만 명 들면 과소비죠….

건물 전체를 찻집으로 바꾼 경인미술관 정원에 치렁한 나뭇가지며 한옥이며 커다란 장독이며 햇살 창창하고 가을 정취가 무르익으니 나는 원래 목적을 잊고 그 농담에 맞장구친다. 그러니 말야. 그런 영화는 총액 지원을 하고 강제로 보게 만들던지, 아니면 법으로 못 만들게 하던지…맞아요, 맞아, 푸푸푸….그러나 어찌 웃을 일이겠는가. 그는 ‘고양이를 부탁해’를 이렇게 자평한다. '내 입으로 잘된 영화라고 하기는 쑥스럽고.' 그렇게 운을 떼고 나서.

우선 소재가 참신하고 과감했어요. 요란스럽지는 않더라도. 이제껏 영화가 여상(女商) 애들 눈 길 한번 준 적이 없거든요. 섹스-폭력이거나 잘 나가는 애들 얘기뿐이었잖아요. 그리고 인천이라는 공간을 살렸어요. 인천에서 80%를 찍었는데 그냥 장소를 거기로 한 게 아니라 인천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감안한 거죠…. '로칼리티'를 살렸군….그렇죠. 인천이 참 희한한 동네잖아요. 서울보다 넓고(지금 인천은 강화에다 영종도까지 포괄, 개화기 인천의 백배 이상의 면적이 되었다) 화교며 중국 연안 동포들이 많이 살구….

당연히, 최원식(문학평론가. 창비 주간. 인하대 교수)이 '고양이 살리기'에 적극 나섰다. 통금이 서슬 푸르던 시절 나는 그와 일주일에 한두 번 인천의 통금 없는 외항선원 지대까지 원정을 가서 밤새 술을 마시고는 했는데, 최원식은 인천의 지형과 역사를 '족보학'으로 두루 꿰는 실력을 과시하고는 했다. 여긴 일제 때 누가 살던 곳인데 말야….그의 족보-지형학은 예리하고, 적확하다. 3.1운동 선언했던 그 태화관인가 그게 명월관 부속건물인데, 소유주가 이완용이었단 말야….뭐 그랬던가. 서울에 대해 그 정도니 인천에 대한 애향심까지 합하면 지식의 방대함과 세세함이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어쨌거나 그런 그가 '고양이 살리기'에 직접 나섰다니까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영화가, 그 영화의 일상성이 사뭇 고전적인 품격을 지니게 되는 느낌이다. 그의 주선으로 만난 인천 정무부시장은 '인천 재개봉'을 약속했단다. 일단, 도와주는 김에 돈을 뭉턱 주고 인천 시민들에게 무료 관람을 권장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기는 하지만.

조한혜정(여성운동가. 연세대학교 교수)도 여성계의 적극 참여를 유도하겠다고 했고 무엇보다, 조영남(가수), 이 '조영남' 대목에서 그가 다시 풍선웃음을 터트린다. 푸풋. 그 사람 정말 못 말려요. 스포츠 조선엔가 썼는데 그냥 '무조건 보라'고 무대포고 폭력적이더라고요. 발도 워낙 넓은지 여기저기 언론을 들쑤셔 갖고, 푸훗….

정말 고마운 얘기다. 일설에는‘조폭 마누라’에 돈을 대서 대박, '돈다발로 얻어맞는 것 같다'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서세원과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그가 흥분했다지만 농담일 게다. 지금 한국영화의 '사태'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남 욕할 정신도 시간도 없는 사태다. 그리고 서세원은 프로다. 그의 복장과 머리 스타일은 나이를 무시하고 신세대풍인데 그게 그렇게 세태-잡담 코미디에 적확할 수가 없다. 물론 동년배들이 보자면 한심하겠지만, 그의 관객들은 동년배가 아니다.

그는 일찌감치 '전국 노래자랑' 사회를 맡으며 급기야 전통적인 환갑잔치문화까지 '쪽팔기 놀자판'으로 만들어 버린 송해는 물론, 나이에 걸맞게 적당히 구수해진 이홍렬과도 다르다. 발랑 까진 신세대를 감당하는 그 또래 유일한 코미디언인 것. 어쨌거나, '언론' 얘기가 나오니 프레시안의 김상도가 안 끼어들 리 없다. 어디어디서 연락 왔던가요?…. 뭐, 역시 한겨레가 제일 적극적이고 조영남씨 덕에 조선, 중앙에서도 연락이 왔어요. 푸훗….

김상도에게는 이번 건과 연관하여 아주 뿌듯한, 감동적인 추억이 있다. ‘서편제’가 원래는 흥행부진으로 일단 상영이 중단되었는데 그가 근무하던 ‘중앙일보’에서 한 면을 몽땅 할애하여 대서특필한 결과, 재개봉과 폭발적인 호응이 기적처럼 이어졌다는 것. 그땐 정말….평소 '독일병정' 같던 김상도가 모처럼 감상에 젖는다.

어이쿠. 그렇게 까지는 안 바라더라도. 허허…오기민은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고양이…’가 ‘서편제’보다 최소한 그 간의 세월만큼은 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특히, '거리에서 캐스팅'되어, 외모에 기대지 않고 오히려 다소 어긋난 그 외모를 비(非)제도적이고 유니크한 연기력의 일부로 전화시키면서 가장 개성 있는 배우의 입지를 다져가는 배두나의 깡다구와 노력은 언제 보아도 눈물겹다.

오기민은 92년부터 영화판(‘파업’ 이후 장산곶매)에 뛰어들었지만 흐지부지했다. '운동'과 연관된 모든 것이 흐지브지할 때였다. 상업영화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94년. 그러나 '프로듀서' '기획실장'이라는 이름을 유지하며 영화사를 몇 개 거쳤지만 작품을 만들 기회는 좀체 오지 않았다. 프로듀서로서 첫 작품은 ‘이방인’이다.

주인공 안성기만 우리나라 사람일 뿐 나머지는 배우도 스텝도 모두 폴란드 사람이고 촬영지도 폴란드였던 작품이죠. 많이 배웠어요. 시스템이 아주 합리적이고….듣도 보도 못한 작품이라서 감독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나비’를 만든 문승욱이란다. 맙소사. ‘고양이…’ 보다 호평을 받았고 더군다나 주인공 역을 맡은 김호정이 세계적 권위의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청동표범상)을 수상했음에도, ‘고양이…’보다 관객 수명이 짧은(첫날 주말 관객 5천명) 영화 ‘나비’의. 훗. 그 친구는 원래 흥행하고는 담 쌓았죠. 내면을 파고드니까….

오기민은 남 얘기 하듯 말했지만 나는 그가 최근 사태의 '원흉'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또 한번, 그의 거대한 '고투'에 휘말려 드는, 사회주의 멸망 이후 실로 오랜만의 '고투의 감동'을 나눠받았다. 그가 엄연한 지하단체운동(이진경 하던 거요. 87년부터 했었죠….그는 그렇게 확인해 주었다) 출신이지만 그가 '낡은' 사회주의를 향해 여전히 고투하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겠다.

하지만 영화가 무슨 예술인 줄 아나, 그렇게 일축하는 풍토, 아무리 욕을 해도 욕을 하는 놈이나 먹는 놈이나 도무지 거들떠 말하거나 거들떠 듣지를 않고(의사소통 자체의 파괴) 다만 선택의 질(質)-책임을 회피하고 광고의 양(量)-무책임 속으로 잠입하며 '전도된 익명성의 쾌락 혹은 자학'(삶의 질의 파괴, 이것은 인터넷의 익명성 사도-매조키즘에 맞닿는다)을 거들떠 볼 뿐인 풍토, 어떤 신문기자 표현대로 '예술성에 별표를 더 주면 오히려 손님이 들지 않는' 풍토(자기 계발 의지의 파괴), '대중성' 도 대중성 나름이지 '대박' 뒤에 원인 분석하는 자들은 많아도 '대박'을 예견하고 계획하는 대중성 전문가는 하나도 없는 판에(문화적 '제도'의 파괴) 그냥 어쩌다 대박이 터지면 허겁지겁 빠른 시간 내에 떼 돈 처들여서 그 비슷한 걸 만들어내느라(영화의 파괴) '작품성'은 전혀 안중에 없을 밖에 없는 풍토, 그런 풍토를 전혀 개의치 않고 시간을 '웃기게' 때우는 풍토(극장과 관객의 파괴), 그런 현상을 지적하면 할수록 관객은 더욱 늘어나니 오히려 '혹평이라도' 심지어 '혹평을‘ 유도하는 풍토(언론의 파괴, 이 모든 것이 파괴되면 영화는 살아남을까?), 줄여 말하자면 온갖 '무의미 지향'의 풍토, 그런 풍토에 맞서는 것이 자본주의-대중성 속으로 심화-확대된,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사회주의적 고투라고 밖에 달리 어떻게 명명하겠는가?

어쨌거나, '여고괴담'은 그를 '흥행 PD'로 인식시켜주었을 뿐 돈을 안겨주지는 않았고, ‘고양이…’는 그가 영화사 마술피리를 설립하고 사장으로 취임, 돈 책임을 상당부분 져야하는 첫 작품이고, 흥행에 실패했다. 그런 그에게 '제도의 문제'를 묻자, 놀랍게도, 그런 그가 '주체의 문제'로 답한다.

감독들이 문제죠. 너무 사적인 영역에만 매몰되어 있어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소재가 있다 해도 그걸 다룰 감독이 과연 있을지…. 이것은, 내가 '대중성'의 문제로 화두를 던졌건만 그가 '예술'의 화두로 답한 것과 같다. 그때 그는 시께나 쓴다는 나보다 더 예술적이다. 왜냐면 대중과의 접촉 면적이 넓은 영화에서는 그 대중성을 예술성의 자양분으로 삼을 밖에 없다. 그리고 그 '밖에 없'는 한계를 (영화)장르의 장점으로 역전시킬 때 '영화적'인 언어, '영화적'인 예술이 탄생하는데, 그것은 춤이 ‘춤적인’ 예술을, 음악이 ‘음악적인’ 예술을, 문학이 ‘문학적인’ 예술을 탄생시키는 것과 같다. '영화적' '춤적' '문학적'이 각각 다를 뿐이다. 그 대목이 없으면, 오기민의 표현대로 '그런 변별점'이 없으면 영화는 대중성에서 방송드라마를 따를 수 없다.

매주 '친구' 관객보다 많은 숫자가 토요일과 일요일 드라마 '왕건'을 본다. 그리고 그런 변별점이 없으면 영화는 또 재미에서 컴퓨터-인터넷 게임을 따를 수 없다. 당연하죠. 할리우드에서 게임을 얼개로 영화를 만드는 건 당연한 경로예요…. 오기민이 그렇게 말했고 나는 다소 난데없이, 이렇게 말했다. 할리우드 영화가 시들해진 게 아니라 '영화의 사양산업화'에 대비하느라 암중모색하는 것 아닐까? 옛날 TV 등장 때 받았던 쇼크의 경험을 되새기며 '그 후'를 준비하는 것 아닐까?….

사실 극장영화는 관객에게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이 독재적이고 그만큼 구식이다. 재미와 단순한 화제 동참을 위해 그 깜깜한 데서 2시간을 의자에 처박혀 눈을 돌리지도 못하고 감상해야 하는 불편을 '영화적 변별점' 없이 어디까지 대중에게 감수시킬 수 있을 것인가. 영화는 '공룡의 운명'을 스스로 뒤집어쓰고 있는 중 아닌가.

아니, 이 얘기도 성급하다. 나는 '친구' 이후 잇따르는 '조폭 시리즈' 영화를 '대중적'이라고 부를 생각이 전혀 없다. 관객이 설령 천만을 넘더라도 그렇다. 그것은 냄비 끓는 '유행 혹은 요행'으로 급조되었거나 천민자본주의적 문화현상(소수가 되기 싫은 공포)으로 강제된 숫자지 건전하고 일반적인 의미의, 심지어 평균적인 의미의 '대중적'인 숫자가 아닌 까닭이다.

나는 10년 전 (대중 혹은 베스트셀러) 소설 독자가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다시 수년에 걸쳐 썰물처럼 물러난 것을 기억한다. 그 후 소설 독자는 더 줄었고, 더 근본적으로 소설의 대중성의 수준이 한없이 낮아졌다. 소설의 영속을 바란다면, 아니 대중소설을 위해서라도, 늘어난 독자의 10분의 1만이라도 진지한 소설의 고정 독자로 묶어두려는 노력을 출판사와 작가들이 했다면, 그런 상황이 초래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 전에, 소설의 황금기라고 평가되는 70년대의 한다하는 소설가들은 수준 높은 고정 독자 수천 명 정도로도 마냥 행복했었다.

돈 단위 독자-관객 숫자 단위가 엄청 다르지만 지금 영화도 그런 정황에 있는 것 아닐까? 나는 '예술'영화를 살려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영화 '일반'을 살리기 위해서 그래야 한다는 얘기다. 돈? 돈 좋지. 정신없이 좋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돈(만) 벌려면 왜 굳이 영화를 하는가? 재벌을 하지. 훨씬 더 쉽게(?) 돈을 벌텐데….더군다나 현재 영화는 훨씬 더 유리한 입장에 있다. 10년 전 '소설 독자 대폭발'의 주역은 오피스 걸이거나 다소 나이든, 그래서 인생관이 오만하고 자신이 받은 잘못된 교양교육을 인생의 지혜로 착각하는, 그렇게 낡은 세대가 주역이었다. 지금 영화 관객의 대부분은, 앞서 말했듯, 사심 없는 청소년과 신세대들이다.

'제도'에 대해서도 오기민은 유창하다. 영화판이란 게 다소 허술하다. 누구나 맘대로 들락거리고 나만 해도 경험이 없는데도 일하는데 지장이 없고. 그게 좋은 점도 있고 그렇게 세대교체가 돼서 영화판에 활력을 불어넣은 셈이니까. 하지만 불안한 점도 있다. 만만하게 보지 못할 어떤 꽉 짜여진 전문성의 뼈대 같은 것이 들어서야 하는데….나는 '기로'라고 답했다. 문제는 젊은 역량의 '방향'이 미래를 향해 있지 않다는 것.

골드러시에요, 완전히. 영화사가 천개랍니다….그는 그렇게 받았다. 김상도가 이란 영화 참 좋죠, ‘내 친구 집은 어디인가’니 ‘올리브 나무 사이로’니, 그렇게 물으니 그는 물론 좋죠, 근데 좀 꿀꿀해요. 그렇게 답했다. 나는 수준이야 월등 위겠지만 이란 영화의 처지랄까 위치는 우리나라 50~60년대쯤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그만큼 의미 있는 여가선용의 장 아니겠냐고 말을 보탰다.

우리 영화는 그 장을 잃어 버렸죠…. 그가 또 보태면서 '난 영국영화가 좋아요. 대중성도 있으면서 감각의 깊이를 파고드는 데가 있거든요' 라고 신을 낸다. 그건, 그게 오래된 문화의 위력이고 진정한 고정관객의 위력이지. 좋은 영화를 만들면 꼭 보는 사람이 항상 일정정도는 있다는 거. 그게 위력이지. 셰익스피어 연극문화에서 탄탄한 기초를 쌓은….나는 그렇게 '위로'를 보탰다.

그렇죠. 우리나라는 영화평론이 잘못된 데가 많아요. 국산영화를 키우자는 의도도 좋지만 마구 칭찬만 해대니까, 아무도 믿지를 않아요. 3,4년 전 만 해도 평론가가 좋은 영화라고 하면 7만~8만 명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요샌 아무도 안 믿어요…. ‘귀신이 온다‘ 그 영화, 이틀 만에 떨어졌어요. 돈도 많이 들이고 정말 어렵게 찍은 영환데 ….

그가 그렇게 받았는데, 내 말이 별 위로를 발하지 못했다는 뜻이겠다. 아니 그는 한 술 더 뜬다. ‘고양이…’가 분명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면은 긍정적이잖아요. 앞으로 이런 작품 어떻게 할 건지. 개인에게 맡겨둘 건지….과연 그는 여전히 운동가다.

다음 작품은 전경린 소설 ‘내 생애 하루뿐인 특별한 날’(정확한지 모르겠다. 오기민은,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을 한 사람도 못봤다'고 했다)이 원작이란다. 주변인물이 다채로워서 재미있을 것 같아요. 감독은 변영주가 맡았고….어, 그 친구도 같이 단체하던 친군데. 정말 잘 되어야지…. 이문구(소설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작품성도 갖추고 연애소설 역량도 갖춘 희귀한 사례가 전경린이다….이 말이 그의 다음 영화에서 적중하기를 바란다.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그와 나는 다시 만났다. 아니 그의 15년과 나의 15년이 만났다. 나는 그가 '예술적' 보다 '대중적'에 더 강조점을 두는 것이 안심되고 기뻤다. 그는 정말, 모든 걸 제 능력 탓으로 돌리면서 아직 패기를 읽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는 더 '영화적 예술성'의 자세 같아서 배운 게 많았다. 어허, 이런, 이런, 이런!(이것은 혹시, ‘왕건’ 중 견훤 왕의 말버릇?)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고 말았구나….경인 미술관 뜨락을 감도는 페퍼민트향이 그렇게 풍요로울 수 없었다. 나는 술인 줄 알고 시킨 것이었지만. 그런데 ‘고양이…’는 어디 갔지? 끝.

*오기민은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 92년 장산곶매에서 영화 활동을 시작했다. 93년 푸른 영상 프로듀서, 94년 충무로 삼호필름 기획실장, 95년 영화사 LIM 기획실장으로 전전하다 96년 영화 ‘이방인’을 처음으로 프로듀싱했다. 99년에는 ‘여고괴담’ ,2000년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로 잇따라 잭팟을 터뜨렸다. 그리고 2001년 영화사 마술피리 설립 후 만든 첫 작품 ‘고양이를 부탁해요’는 위에서 읽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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