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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의 '할 말, 안할 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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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정환의 '할 말, 안할 말' <2>

이쁘게 늙는 프로 박진숙

뭐, 홀가분하지. 무거운 짐을 들고 있다 놓은 거 같으니까. 마지막 방송 원고까지 넘겼고. ….예상한 일이지만 박진숙 (나는 그 분을 `누나`라고 부르지만 여기서는 존칭을 생략하자)은 담담했다. 며칠 전(인터뷰 계획이 아직 안 잡혔을 때, 그러니까 순수했을 때다) 전화 때도 그랬다. 6개월 예정으로 시작했던 SBS 방송드라마 ‘아버지와 아들’을 4개월 만에 종영하게 되었다기에 `줄였네. 잘 됐네.` 그렇게 위로 겸해서 부러 눙치고 들어갔더니 `아니. 짤린 거지.` 하고 내처 웃길래 `역시 연륜이 붙었군. 잘 되는 일이건, 잘 안되는 일이건.` 그랬던 터였다. 아니, 연륜보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프로다.

`일상`이야말로 방송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일 터. 그녀는 직업을 위해 자주 만나는 동네 아줌마들이 여럿 되는데, 이제는 구분이 안 갈 정도다. 동네 아줌마들 사귀기 위해 방송드라마를 쓰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술자리에서는 흔쾌하게, 재미나게 먹고 빨리 취하고 노래방 가서 `색 쓰고`(그녀 표현이다.), 아무튼 노는 데 도가 튼 여자 같지만 그건 돈 많고, 끼 있는 남녀 탤런트들 많고, 높은 사람 많고, 청탁 많고 가십(Gossip) 많고, 심지어 탤런트 학부형(?) 까지 많은 방송사 풍토에 휩쓸려들지 않고 동시에 너무 유난 떨지도 않는, `간단하고 화끈하고 건전하게` 끝내는 그녀만의 작가 처세 혹은 창작 요령이다. 깐깐한 소설가 김원우는 특히 그녀의 돈 씀씀이에 혀를 내두른다. 보통이 아니지. 내야 할 때는 꼭 내고. 그렇지 않을 때는 결코 안 내고. 술값 더 나왔다 싶으면 꼭 따지고. 누가 억대 고료 작가라 하겠나. 웬만큼 견실한 가정주부도 그렇게는 못 할 걸. …그는 삐까 으리번쩍한 술대접을 고액소득 작가에게 `제대로 한 번` 얻어먹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쉽지만, 그 아쉬움도 소중한 듯 자기가 먼저 아낀다. 못지않게 깐깐한 그의 형 김원일은 술자리 동무로 그녀가 제일 만만하다. 한 때 여성 편력이 유명했던 소설가 송기원은 고교 백일장 동년배 박진숙을 이렇게 평했다. 제대로, 이쁘게 늙었더라. 여자가 그런 맛이 있어야지. …제대로 곰삭은 맛(중략). 어쨌거나, 인터뷰를 하는 내내, 더군다나 자기 작품 짤린 얘기를 하는 중에도, 그녀는 주인 오기 전에 빨리 먹으라고 독촉이다. 술집 주인 오기 전에 야매로 많이 갔다 놨는데, 들키면 곤란하다는 것. 이크 정말 주인이 오는 구나. 꿀꺽, 꿀꺽. 벌컥….이거 아무래도 오늘은 내가 완전히 필름 끊기겠네. 잠을 전혀 못 잔데다, 나는 어지간히 화가 난 상태였다. 전날 보았던 KBS 드마라 사극 '왕건'. 시청률이 40%를 넘는다는데, 사상 최고라는데, 그 드라마는 그야 말로 막가파 이상이고 세계무역본부 테러를 방불케 했다. 대사며 복장, 그리고 역사적 사실의 검증을 전혀 안 하고, 무시한다는 얘기는 벌써 오래 되었다. 그런 `고급한` 문제를 따질 계제가 아니다. 왕건이 위험에 빠지니, 고려 쪽의 각 왕후 각 신하 각 장군 들이 돌아가며 한 장면씩 맡고 대사를 외친다. `뭐라구, 폐하께서 위험에 처하셨다구?` `아니 폐하께서 위험에 처하셨던 말이냐?` `마마, 폐하께서 위험에 처하셨다 하옵니다.` 50분 남짓 진행되는 드라마가 그 지랄만 하다가 `다음 시간, 왕건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로 끝나니, 이 나라의 내로라는 극작가, 한다하는 연기자, 자랑스런 시청자들이 모두 사람 모두 하기 싫은 섹스를 몇 시간 씩 해야 하는 것처럼 무참하고 스스로 야비하고 비열해지는, 실존적인 비애마저 느끼게 되는 거다. 심심하다는 게 이토록 큰 죄였던가, 탄식하면서. 히에로니무스의 `환락의 지옥도`와 다를 바가 없다. 말할 것도 없이 문화정치권의 치매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그런 채로 무슨 한류(韓流) 바람이며, 코리아 열풍이란 말인가. 문화적 테러는 테러가 아닌가. 어쨌거나, 그런 판에 조기종영을 맞은, `진지한 방송작가` 박진숙을 만나야 할 판이니, 화가 나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나를 달래는 투로 얘기한다. 물론 약간의 기분 상함은 있지. 하지만 나이 먹은 게 도움이 되나봐. 세상살이가 그렇더라고. 조직 속에서 혼자서 되는 것도 아니고, 또 결과를 미리 알았으니까. 너그럽게 받아들이게 되더라. 각 개인이 맡은 자리에서는 최선을 다했는데, 전체로 잘 안되는 것은 할 수 없잖냐 말야. 미운 사람 없어. …아주 도가 트셨군요….김상도가 또 한마디 거들었고, `도`란 말이 너무 근엄했는지, 그녀가 모처럼 푸념을 달았다. 말 안되는 얘기는 쉽지. 하지만 말 되는 이야기를 하려면 진득하니 나가야 하고 그걸 사람들이 기다려 줘야 하는데. 일부러 좀 느리게 가보았는데…. 그랬다지만, 내가 보기에 '아버지와 아들'은 첫 부분부터 싱싱하고 팔딱팔딱 뛰었었다. 딱히 팔뚝만한 양식장 물고기 때문만이 아니라. 화면 진행과 이야기 속도, 그리고 갈등이 전개되는 속도가, 느긋하면서도, 심화되는 것이. 그녀가 말을 잇는다. 시청률이 없었던 것도 아냐. 꽤 나왔지. 하지만 방송사가 조바심을 내니까. 하긴, 낼 만도 하지. 광고 그런 게 다 걸려 있거든. 그런데 나는 시청률을 올리고 싶은 조바심이 전혀 일지를 않더라고. 그래서 신명이 안 나고 맥이 빠져서 좀 힘들었어. 안 되는 거 빨리 접는 게 좋은 거지. 그래도 마무리는 최선을 다했고, 방송사 사람들도 그걸 고마워하더라고.… 그녀는 어떻게 이런 경지(?)까지 왔을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지만 박진숙을 만나러 가는 길은 늘 유쾌한 순례와 같다. `유쾌`는 서로 워낙 잘 통하는데다(그녀 표현이다) 대체로 `놀자풍`일 것이 미리 예견되는 바이기 때문이고, `순례`라는 것은 그녀를 만난 세월(10년)과 회수(1주일에 한 번)와 길이 겹치면서 그 위로, 만남 사이사이 내가 챙겨들었던 방송드라마 작가로서의 경험, 그 화려한 채로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피말리는 집필경험(이것도 그녀 표현이다. 시청률이 있거나 없거나 관계없이, 방송드라마 집필은, 억대의 고료에 양적으로 걸맞게, 육체적 노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아니, 내 경험도 있다.

그녀를 만나기 몇 년 전, 그러니까 6.10 대항쟁 이후 방송사 노조들이 창간된 지 얼마 후 텔레비전 방송국 PD들과 `좋은 프로그램 만들기` 정례모임을 만들었던 적이 있다. 문화운동을 하던 나로서야 고마운 기회였지만 그 모임은 사실 내가 필요한 입장이었다. 노조원의 상당수를 이루는 쇼 프로그램 PD들이 예민한 정치적 현안 때마다 부표를 던지기 때문에 노조의 정치적 활동에 상당한 장애로 작용할 때였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그들을 의식화할, `예술도 알고 의식화도 아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몇 번 회의에 참가하다가 나는 불쑥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방송언론 운동을, 어디까지 생각하는 거유? 사회주의적인 수준까지 가자는 건가? 가면 좋지만…. 그땐 현실 사회주의가 멸망하기 전이었다. 그렇지만, 노조 열성파 피디들은 대답이 분명하고 또렷했다. 아니, 그건 아니고, 방송언론운동은 자유민주주의 수준이지. 그 이상은 힘들껄….나는 `힘들 껄`을 `불필요할 껄`로 곧장 알아 듣고 이렇게 말했다. 그럼, 그 사람들, 쇼 피디들 말야, 섣부르게 의식화시킬게 아니라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도와줘야지. …글쎄. 그런데 그건 현상태로는 불가능한 일이라서… 이쯤 해서 내 우격다짐 습관이 도지기 시작한다. 왜, 쇼를 지금 상태로 가더라도, 얼굴이 아니라 가창력 있는 가수 위주로 가게하고, 방송극을 마찬가지로 얼굴 반반한 애들 아니라, 연기력 위주로 끌고 가고….에이,그 게 돼나. 시청률 독촉이 워낙 심해서…

이런 니미럴. 결국 그 얘긴가. 시청률까지야 내가 어떻게 아냐? 나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럼, 시청률 독촉하는 풍토를 노조에서 규탄하고, 그렇게 점차 점차 접점을 만들어 가면….글쎄….그쯤 해서 대화를 끝내야 했지만 그러자니 만나 온 것이 아까워서 나는 목청을 높였다. 봐, 그 사람들한테 정부 규탄하자, 사장 몰아내자, 뭐 그런 식으로, 이슈 파이팅으로만 몰아가니까, 그 사람들이 속으로 `좆도 모르는 것들이. 니들이 쇼를 알아?'` 그렇게 나오는 거야. 그 사람들 프로그램에 바람직한 대안을 만들어 주라구….답변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 쇼 피디, 방송드라마 피디는 한 명도 없었다. 교양물 담당, 외화 담당이 한 명씩 있을 뿐 나머지는 `노조 전문`이었다. 내가 마지막 안간힘을 썼다. 봐, 그게 당장 안되면, 외화라도 비판적 현실주의 명화 위주로 골라 오고, 그러려면 공부를 해야겠지. 교양물도, 영국 BBC 방송 교양물 좋잖아, 그런 류로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그건 가능하잖아? 그리고, 이를테면, 그래. 연기자로 날렸다가 지금 한 물 간 사람들 만 모아서, 한 물 간 연기자들의 애환 그 자체를 방송극으로 풀어나갈 수도 있잖아. 그건 할 수 있고, 명분도 있고, 해야 될 일이기도 하잖아? 그게 시절 좋을 때 5공 비리 어쩌구 하다가 시절 나쁘면 정부에 들러붙는 그런 정치지향보다 훨 낫잖아? 그리고 그래야, 시청자들 호응도 좋을 거구. 파업한다구 방송 안 해버리면 노조만 욕먹잖아? 그렇지만 좋은 프로그램이 강제로 중단되면, 정부나 회사가 욕먹지….그 뒤로 그 노조팀과 나의 대화는 영영 끊겼다. 나는 방송을 몰랐고 그들은 예술의 유연성을 애써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그런 연유로 나는 장안에 화제였던 박진숙 극본/장수봉 연출의 방송드라마 ‘아들과 딸’을 남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괄목상대하게 되었다. 어렴풋이, 피디들과 썰푸느니 좋은 작가를 대망하거나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나는 한 마디로, 이 작품에서 방송드라마의 현실주의 예술의 가능성을 보았던 것이다. 최수종과 김희애, 그리고 채시라를 `얼굴` 이 아닌 진정한 대(大) 연기자로 만드는 촘촘한 장면 구성 및 사실적인 대사, 거기에 70년대 쪽으로 `한 톤` 낮추면서 진지함의 무게를 더한 화면, 갈수록 문제의식을 심화시켜가는 연출기법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인기, 즉 시청률을 천정부지로 높여 가고 있던 그 장면이 내게는 모종의, 희망의 씨앗처럼 보였다. 작품이 좋을수록, 좋아질수록 시청률이 높아져 가는 어떤 이상적인 상태의 예감이 전율처럼 왔었다. 그 보다 더 열광이 요란했던 ‘모래시계’가 내 기질에 더 맞았을 거라고? 아니, 아니다. 숱한 운동권 출신들한테 그랬고 또 그럴 만 했고 ‘모래시계’야 방송사를 넘어 사회사 속으로까지 편입된 작품이지만, 그래서 더욱, 그리고 예의 그 `방송노조`와 경험 때문에 내게 ‘모래시계’는 좀 착잡했다. 뒤늦게 `윗선에서 용인한` 5공 비리 폭로와 외국 명화 명장면을 결합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내 경험으로 보자면 방송은, `생방송의 신화` 때문에, 신문 보다 더 자율성이 없다. 비판도 상부 지시가 있어야 행해진다.

나는 ‘아들과 딸’의 열풍이 다소 수그러들고 시청자들이 다 잊어 먹어갈 즈음(그녀 표현이다. 문자는 남는데 방송은 흘러. 내가 아무리 예전에 잘 나갔어도 사람들이 금새 잊거든. 지금 잘 안 나가는 것도 곧 잊어. 사람은 흐르지 않으니까. 사람을 잃지 말아야지. 난 그게 다행이야. 인복이 있거든. 주변에 참 좋은 사람들이 많아. 그것 자체가 좋아. 남들한테는 없는 자산이지. 내가 좀 어려운 처지에 놓이면 그 사람들한테서 평소에 안 보이던 것들을 보게 돼. 그게 진국이지….그녀는 지금 그렇게 행복해 하고 있다!) 그녀를 만났다. 내가 운영을 맡게 된 한국문학학교 TV드라마 교사로서 였다. 나는 사실 처음에는 방송드라마 반이 탐탁지 않았었다. 일껏 `분위기 진지한` 정통문학학교를 만들겠다는 포부에 제 혼자 취해있던 나로서는 `겉 멋든 여자애들 시디닥거리는` 방송작가반이 탐탁할 리 없었다. 게다가, `공부` 보다는 `피디 섭외`가 더 중요하다고 귀동냥을 했던 마당이었다. 그런데, 그런 저런 얘기를 술자리에서 흘리는데, 소설가 김주영이 불쑥 한 마디 던진다. 어이, 김정환이. 거, 박진숙이 진짜 작가데이….그 말은 나를 크게 꾸짖었다. 김주영 보다는 무대포가 사뭇 덜한 편인 김원일이 `야, 그 아이. 진짜데이. 글 잘 쓴다 아이가. `그렇게 거들었는데 그게 또 가르침이 되었다. 박진숙은 김원일 소설 ‘마당 깊은 집’으로 방송작가 데뷔를 했으니 신빙성이 가기도 했다. 왜냐면. 어지간해서는 원작자가 각색자를 칭찬하기 힘들다.

허나 무엇보다, 내 시건방진 생각과 무관하게, 언감생심 박진숙 아니겠는가. 박진숙은 전화로 내 제의를 듣자마자 일축했고 나는 그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박진숙이 말한다. 어이구 말도 마. 그때 김원일-김원우 두 형제가 나를 앉혀 놓고, 으름장을 놓는 거야. 까불지 말고 하라 이거지. 그 형제들 좀 무섭냐. 꼼짝마라 지 뭐. 하여간에, 난 글을 가르친다는 게 싫었어. 내키는 것도 아닌데 정기적으로 나가는 것도 싫고….그랬지만, 한국문학학교에서 그녀의 활약은 눈부신 바 있었다. 초기의 다소 황량했던 시절에 박진숙은 학생들을 몰고 다니면서 뒤풀이 뿐 아니라 학교 분위기 전체를 주도 했다. 나는 그것이 `소설`에 대한 그녀의 치열한 애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중고등학교 시절 재능이 비범한 문학소녀였고 문예장학생으로 경희대학교에 입학, 황순원 문학의 향기를 흠뻑 들이마시며 살았다. 금방 데뷔할 줄 알았지. 하지만 잘 안되더라고. 고등학교 때 재기만 갖고는. 인생의 신난이 담겨야 했으니까. 뭐 운도 없었고. 데뷔하기 까지 십년 동안 암흑기를 보냈다… 데뷔한 지 얼마 안되어 희대의 연출가 장수봉을 만나 방송계에 뛰어들었고 찬란한 전성기(그녀 표현이다. 딱히 시청률이 높아서가 아니라 뭔가 죽이 맞았거든. 뭘 해도 잘 되고,신이 나고 그랬지…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를 맞았다. 문학이 내 운명인 줄 알았는데. 하긴 어렸을 때 활동사진을 좋아하기는 했지. 애국가까지 다 봤거든….

박진숙은 특히나 경희대 문학후배들을 끔찍하게 챙기지만 내가 아는 소설가들은 모두 그녀를 방송작가 중 가장 신뢰한다. 그녀도 소설가들, 아니 순수 문학하는 사람들 모두를 진심으로 존중한다. `소설이나 한번` 하고 권하면 질색을 하고 또 파르르 화도 낸다. 소설이나? 소설이 취미거리냐? 방송은 취미거리냐? 뭐 하나 제대로 하려면 몰두해도 될까 말까 한 판에…. 그러나, 그녀의 정말 대단한 점은, 소설을 쓰지는 않지만(메모는 가끔 해둔다고 했다.), 소설 쓰던 마음을 방송드라마 쓰면서도 결코 버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마음 때문에 대본 쓰는 것이 더 힘들고, 또 그 마음이 시청률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지도 모른다는 점을 알 텐데도. 그 점에서 만큼은 그녀가, 프로가 아닌가? 천만에. 사실은 그 괴로운 모순이 작가생명을 연장시킬 뿐 아니라 `나이만큼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그 모순이야말로 `대중적인` 방송드라마와 `고급한` 소설이 만나는 현실주의적인 접점이다. 내용이 없다면 시청률 40%를 넘은 들, 그 만큼의 추문 말고 무엇이 남겠는가. 동시에, 널리 알려지지 못한다면, 뭐하러 (소설이 아니라) 제약도 많은(그녀 표현이다. 소설을 누가 짜르겠어. 골방에서 하는 향기 나는 작업이지. 그런데 방송은 가차 없이 자르거든. 여럿이 하는, 상업에 가까운 거니까….그녀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방송드라마를 쓰겠는가. `일찍이 레닌은 자본주의에서 그 모순을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설파했다. 그 레닌이 세웠던 현실 사회주의는 질 낮은 공공예술만 남기고 멸망했다. 그리고 `승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순의 해결은 더욱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단 들, 설령 불가능해 보인단들, 필요한 일을 불필요한 일로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소설 쓰는 마음의 괴로움이 그토록 값진 것이다.

한국문학학교 강의를 시작한 후 시작한 방송 드라마 ‘동기간’에서 박진숙은 최초로 `시청률에서 실패`했고 최초로 도중하차했다. 그때 그녀는 정말 소설가처럼 절망했다. 장수봉 피디는 느긋했지만 그 윗전의 책임피디에게 시달리며 날로 술을 퍼마시고 흔들리고 거리를 헤매고 하염없이 울다가 급기야 도중하차를 선택하고는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졌기에…`하며 한탄까지 하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잠시 `괜한 사람 문학판에 끌어 들여서 망친 것 아닌가. 역시 문학과 방송은 다른가.` 그런 죄책감에 시달렸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건방질 뿐 아니라, 잘못된 죄책감이었다. 박진숙은 , 내가 보기에, 그 아픔을 정도(正道)의 방송작가 정신으로 추슬러 냈고, 잘 나가던 때보다 더 (소설적이 아니라) 방송작가적으로 성숙했다. 물론 시련은 있을 것이다. 작품 한 번 성공하면 `하느님` 대접을 했다가도 한번 실패하면 사장은 물론 탤런트들도 작품 하잘 까봐 근처엘 안 온다는 방송계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것을 관통해 나갈 준비(그녀 표현에 의하면, 순발력, 지구력, 살아온 폭)를 갖춘, 거의 유일한 작가다. 아픔 때문에, 아니 아픔을 겪는 `나이의 방식`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아들과 딸’ 본 사람들은 그게 우리집안 얘긴 줄 알더라구. 아냐. 우리 아버진 딸 차별 전혀 안 하셨어. 내기 이만큼 된 것도 아버지 덕이 커….몇 년 전인가, 한 여름 날 낮술에 취할까 하다가 `게나 먹으러 가자` 해서 게집 잡고 게를 뜯으며 `잘 발라 먹지 못한다고 아버지한테 야단맞던 생각난다`며 히히 웃다가 그런 말을 하다가 그녀 눈에 눈물 글썽 하던 기억이 삼삼하다. 어머니 사랑은 어떤가. 나는 방송 하면서 제일 좋은 게, 어머니 용돈 좀 넉넉히 드릴 수 있다는 거, 그리고 한글 겨우 깨우친 노인넨데 책은 안 보시지만 내가 방송드라마를 쓰면 노인정에 꼭 나가셔서 `내 딸 쓴 거 봤냐`고 물어 보는 거야…. 어떤가, 그녀의 부모 사랑에도, `프로` 방송작가 기질이 배어있지 않은가.

으음. 필름이 곧 끊기려 하는 군….정리해 보자. 방송 드라마라는 게 쉬워야 하고 재미있고 또 시청률을 감안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것은, 현실주의적으로 고려해야할 현실이다. 사실, 저질이던 고질이던(내가 ‘왕건’에 대해 열 받은 것은 저질이 아니라 외질(外質) 이라서였다) 많은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능력이다. 양이 거대하면 실력만이 엄정한 잣대일 뿐 운도 통할 리 없다. 이런 사실 또한 현실주의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동시에, 방송작가 누구나 `뼈대 있는' 본격 문학 수업을 바탕에 깔고 있어야만 오래 버틸 뿐 아니라, 좋은 `방송작가`로 발전할 수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것저것 `어려운' 문학 장르 해보려다가 너무 힘들어서 `하다 못한` 심정으로 방송 작가의 길을 선택한다면 큰 일 날 일 뿐 아니라, 큰 일 낼 일이기도 하다.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누군가가 정말로 좋은 방송극본을 쓰고 또 누군가가 그것을 방송으로 실현한다면, 그건 어떤 문학 장르보다 질적으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왜냐면 양에서 질이 나온다) 대중 속으로 파고들면서 스스로 문학성을 상승시키고 그 상승으로써 대중 자체를 상승시키는, 그 변증법이야말로 가장 어려울 뿐 아니라 문학-예술 최후의 과제인 까닭이다. 이 모든 말들 사이에 모순이 있는가? 없다. 그 최후의 과제에 가장 탁월하게 적응, 최고의 작품성과 대중 효과를 성취한 사례가 있다. 극작가 셰익스피어. 영국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신격화했던 셰익스피어. 사실 그는 오늘 날로 치면 피디와 방송드라마 작가를 겸한 사람이었다. 오늘날 방송 드라마 환경은 셰익스피어 당대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화려하고 가혹하다. 그런데, 왜 셰익스피어가, 나올 수 없다는 거지? 우리의 문화수준이 5백년전의 영국보다, 못하다? 피디와 방송작가를 제외한 고위급 방송관계자들, 탤런트들, 그리고 자랑스런 선진조국의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나까지, 그것을 우리는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얘긴가?

늙은 거야 할 수 없고. …솔직히 말해서 이쁜 여자가 한 둘이야?…뭘 먹어야 살이 안 찔까?…김밥에 단무지 진짜 들어가야 해…거짓말. 애인을 어떻게 한 달에 두 번 보냐….정신이 가물가물해지는데 저쪽도 취했나? 그런 와중에, 보조진행자로 왔다가 주눅들었는지 아무 말 없던 소설가 김미미가 영판 딴 질문을 던진다. 고양이 좋아하세요? … 싫어해. 영물 같아서. 무섭지… 그런데, 그 질문이 묘하게도 마무리에 걸맞다. 그것은, 암암리에, 현실이 너무 무섭다는 얘기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그 후로는 정말 필름이 끊어졌다. 이런 이런 내 나이에 벌써. 신경질 나는데 술이나 팍, 끊어버릴라! 끝.

▶ 박진숙(朴眞淑)
김천중 교사로 지내다 1981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서 '지다위'가 당선, 문단에 데뷔했다.
방송작가로 활동하면서 '산머너 저쪽', '아들과 딸', '마당깊은 집'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많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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