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긴급진단> 10대들 새바람, '야오이'와 '팬픽' <下>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긴급진단> 10대들 새바람, '야오이'와 '팬픽' <下>

성급한 도덕적 판단은 금물

야오이와 팬픽. 다소 낯설고 이해하기 힘든 이 문화현상에 대해 취재하면서 조언을 구할 전문가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소수의 대학원생을 제외하고는 ‘전문가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문제에 대해 저는 잘 모릅니다.”

청소년 교육·문화 연구자들이나 일선 교사들이 처음에 보인 반응은 똑 같았다.

프레시안이 여중·고생 8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62%가 야오이와 팬픽을 접해 보았다. 그만큼 보편화된 문화현상임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은 학생들이 동성애를 소재로 한 만화나 소설을 읽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렴풋이만 알고 있을 뿐 자세한 내막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일선 교사와 부모들은 어쩌면 이들의 문화를 가장 모르고 있을 수 있다. 학생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현상을 교사들이 이해하지 못하니까 교사와 학생들 간 인식의 차이는 벌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지 점점 더 학생들은 학교를 지겨워한다.”(서울 풍문여고 김혜련 교사)

“야오이를 보는 학생들은 공부 잘하는 소위 범생이도, 막 나가는 날라리도 아닌 중간 정도의 아이들이다. 채팅하다 보면 내일이 시험이라며 채팅을 그만 두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인터넷 야오이 사이트 회원 유모양)

이처럼 학교를 완전히 벗어난 것도, 학교에 완전히 포섭된 것도 아닌 여학생들의 문화인 야오이와 팬픽은‘어른’들 모르게 확산돼 왔다.

***도덕적 판단보다 현실 이해가 우선**

그렇다면 ‘어른’들의 감시망을 벗어나서 여학생들 사이에 침투한 팬픽과 야오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우선 야오이와 팬픽을 둘러싸고 여학생들 사이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현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문제다. 우리 사회는 야오이와 팬픽 등 청소년 문화에 대해 늘 도덕적 판단이 앞선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위해 판단을 내리는지 의문이다. 그전에 청소년들의 문화에 대해 알려 하지도 않으면서 왜 그렇게 조급하게 판단을 내리려고 하는지 질문해야 한다.”

연세대 사회학과 조한혜정 교수의 지적이다. 조한 교수의 말처럼 표면적으로 드러난 동성애에 눈살을 찌푸리며 ‘무조건 이를 막아야한다’고 보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이러한 접근으로는 ‘어른들 말은 모두 간섭’이라고 생각하는 청소년들과 더욱 멀어지게 할 뿐이다. 또 어른들이 생각할 수 있는 ‘19세 미만 입장불가. 구독불가’ 등 사회적 규제를 10대들은 유유히 빠져 나간다. ‘이들이 왜 야오이와 팬픽에 몰두하는가’를 질문해야 할 필요성은 바로 이러한 현실에 있다.

***야오이와 팬픽은 변형된 로맨스**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사실 중 하나는 여학생들은 대부분 팬픽을 통해 야오이를 접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팬픽과 야오이는 분명히 다르지만 하나의 연결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바로 동성애라는 소재와 연애 소설이라는 동일한 장르. 팬픽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신박나리(25. 연세대 문화학과 석사과정)씨는 “팬픽과 야오이는 10대에서 20대 초반의 여성들이 즐기는 로맨스 문화”라고 말한다.

따라서 야오이와 팬픽에서 그려지는 사랑은 로맨스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지고지순한 낭만적 사랑이다. 팬픽 매니아인 김모(중3)양은 “팬픽은 대부분 오빠들이 현실과 동떨어져 오직 사랑 하나를 가지고 연애하는 얘기”라고 표현했다.

야오이 사이트에서 만난 유모(학생)양은 “야오이 소설에서 보면 남자라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남자라도 당신이라서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유양에 따르면 야오이는 “동성애자들을 그린다기보다는 애정예찬론자들의 이야기”이다. 유양은 “야오이를 보는 아이들 대부분은 '내 아들이 동성애를 한다면 뜯어 말리겠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평론가 서동진(연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씨는 “야오이와 팬픽이 보편화되었다고 해서 10대들이 동성애를 선호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말한다.

“10대 여성들 사이에서도 연애가 일반화되면서 여성들은 현실에서의 사랑이 결코 자신들이 가진 이상적인 모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다. 오히려 현실적이며 세속적인 사랑과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지,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고 보기 힘들다.”

야오이 소설을 직접 쓰기도 한다는 유양은 '왜 동성애를 소재로 하느냐'는 질문에 “인형놀이에서 자신의 인형을 예쁘게 꾸며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지, 자신이 그 인형처럼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낭만적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지 동성애와는 상관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야오이와 팬픽을 통해 자신이 가진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을 표현하고 소비하는가? 우선 학생이라는 위치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신박나리씨는 “억압적인 교육환경 속에서 10대 여성들이 여가 시간을 활용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대중문화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입시위주의 학교교육에서 소외된 학생들은 공부 이외에 무엇인가 몰두할 대상이 필요하며 ‘스타’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여학생들은 이 스타를 매개로 “지긋지긋한 학교에서 벗어나” 또래문화를 형성한다.

또 낭만적 사랑을 소재로 한 로맨스 소설에 빠지는 것은 이들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로맨스 소설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10대만이 아니라 20대, 더 나아가 30, 40대의 여성들도 좋아한다. 미국 페미니스트 래드웨이(Radway)는 여성들이 로맨스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쾌락과 관심을 대리 경험한다고 설명한다.

로맨스 소설은 주로 여성들이 쓰고 여성들이 보기 때문에 이들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이것이 여성들을 끌어들이는 힘이다. 팬픽과 야오이도 마찬가지다. 주로 10대 여성들이 열광하는 팬픽과 야오이에는 이들의 욕망과 환타지가 스며들어 있다. 야오이와 팬픽에 등장하는 터프하면서 냉정한 ‘냉미남’과 부드럽고 섬세한 ‘꽃미남’은 이들이 선호하는 대조적인 남성상이다.

***“강간 등이 낭만화되는 것은 위험”**

따라서 야오이와 팬픽이 '어른'들이 생각하듯 위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비교적 관용적인 태도를 취한다. 만화가 원수연씨는 “기존의 성교육이 성에 대한 개념을 특정한 방식으로 주입시켜왔던 것 아니냐”고 반문하고 “최근 홍석천, 하리수 등이 부각되면서 아이들이 호기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김혜련 풍문여고 교사도 “여학교, 남학교로 구분돼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동성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현상은 전에도 있었다”고 말한다.

또 청소년 문화가 전무한 우리 상황에서 소설이나 만화를 스스로 창작하고 이를 매개로 자신들만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는 것도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야오이와 팬픽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야오이와 팬픽에서 묘사되고 있는 성관계가 왜곡되어 있다는 점. 신혜임(이대 여성학과 석사과정)씨는 “야오이와 팬픽에는 강간 등 가학적인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고 말했다. '냉미남'이 '꽃미남'을 강간하는 장면이 마치 낭만적인 사랑인 것처럼 묘사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신박나리씨도 “이러한 폭력적인 성을 여성들이 감정이입 없이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양은 “내재된 성욕이 그런 식으로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야오이는 그저 환타지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현재 학교, 가정 등에서 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10대들에 의해 창작된 야오이와 팬픽의 왜곡된 성관계는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습득한 성지식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또 10대들은 야오이와 팬픽을 동성애와는 다른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임태윤 동성애자 인권연대 대표의 지적처럼 야오이와 팬픽이 동성애자들의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혜련 교사는 “아이들이 단순히 동성애를 하나의 호기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성적 소수자에 대한 진정한 이해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까지 야오이와 팬픽에 대한 공개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순히 '동성애'라는 소재의 '선정성' 때문에 이 문제를 침소봉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새로운 문화현상 속에는 입시위주의 학교 교육 등 청소년을 둘러싼 교육환경의 문제, 상업화된 대중문화와 팬덤 현상, 10대들도 성적 욕망을 가진 성적 주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의 억압적인 태도, 이로 인해 학교에서의 성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또래집단을 통해 습득한 10대들의 왜곡된 성지식의 문제 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 속에서 무엇을 인정하고 무엇을 바로잡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10대들의 목소리에서 찾아야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