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은 9일 우리나라 지도자들에게 “인간을 인간답게 대해 달라”고 주문했다. 김 추기경은 이날 연세대가 리더십 전문교육기관으로 세운 리더십센터(소장 정진위) 개소식 기념 특강에서 “우리나라 지도자들, 특히 정치지도자들이 기본적으로 인간이 얼마나 존엄한지를 깨닫고 사랑한다면 우리나라가 지금과는 많이 다른 나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수환 추기경의 특강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저는 리더십에 관한 전문적 지식은 없는 사람이지만 보통 사람들, 노동자, 농민, 서민들이 높은 사람들에게 바라는 지도자상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말하겠습니다. 한결같이 보통 사람들이 지도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우리도 인간이다, 우리를 인간으로 대해 달라’는 바램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난하다고 멸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군사정권시절 저는 동일방적 여성근로자들이 파업으로 쫓겨난 후 성당에서 단식농성을 할 때,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분들이 근본적으로 말하는 것은 인간다운 인간으로써 대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유명한 전태일군이 요구한 것도 우리를 단순한 노동자로 보지 말고 인간으로 대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우리 성직자에게 요구하는 것도 예수님과 같은 사람이 되어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로 우리를 사랑해달라는 것입이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그렇게 보기 때문에 성직자, 사제들은 예수님같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시하는 지도자상은 ‘나는 착한 목자이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라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뿐 아니라 당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참된 지도자는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당신과 가까운 곳에 앉고 싶어 다투는 제자들에게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총장님께서는 봉사적 지도자를 말씀하셨는데, 봉사적 지도자 상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도자는 누구보다 겸손하고 남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본받을 수 있고 본받아야 할 지도자입니다. 미국의 앙케이트에 따르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는 예수님이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신 것은 인간 입니다. 그중에서도 가난한자, 약한 자들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인이라고 여겨지는 사람까지도 각별히 아끼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온 것이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인간을 위해 오셨고 인간을 위해 살았고 인간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공자에게서도 이런 인간학은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공자의 최고의 인간상은 군자입니다. 군자는 언제나 인(仁)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이는 하늘이 주신 대덕(大德)이며 사람을 살리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왕이 가져야할 첫 번째 정신은 애민정신이라 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도자가 이러한 덕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는 지도자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왜 인간을 소중하게 여기셨습니까? 인간이 무엇이기 때문에?
인간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철학적으로도 거듭되는 질문이었지만 어쩌면 아직도 이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다’라고 정의했으나 이것이 인간의 정신적, 영적 정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고 정의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우주를 생각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인간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에 대한 물음은 철학, 인간학, 심리학, 생물학, 의학,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되고 있지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 이 시기에도 인간에 대한 물음은 정확하게 파악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물질로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물체로서의 인간, 육체에 대한 인간으로써의 탐구는 완전히 이루어졌습니까? 게놈 등 해부학적으로 탐구가 이루어졌으나 이 조차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해부의 메스가 닿지 않은 곳이 없지만 인체에 대한 연구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더우기 인간은 단순한 물체, 생명, 동물이 아니라 정신적 존재입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인간에 대한 신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경외심을 느끼고 인간 존엄성을 말하게 됐습니다. 잘났건 못났건, 불구자이건, 인간인 한, 국가권력도 침범할 수 없는 그런 불가침의 기본 권리와 존엄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UN이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하면서 인간 존엄과 인간 평등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세계 문명국 모두는 그 헌법에 인간 존엄과 인간 평등을 명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헌법10조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추구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과 평등은 인간을 말할 때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헌법에서 빠진다면 헌법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왜 인간이 평등하고 존엄한지를 학문적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우주과학이 발달한 오늘날도 그 존엄성, 평등을 학문적으로는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이 존엄하고 평등하다고 합니까?
어느 헌법학자는 그것은 천부적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그것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란 말입니다. 존엄성과 평등은 사실상 하느님과의 연관 하에서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존엄성은 믿음의 문제이며, 참으로 인간을 깊이 알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인정하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만 인간이 왜 평등하고 존엄한지를 말 할 수 있습니다.
이상한 것은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에 대한 분석을 과학적으로, 진화론적으로만 해왔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생명에 대한 기원을 ‘우연히’라고 하는데 이는 참으로 비과학적인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세기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과학과 종교라는 에세이에서 분명히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했습니다.
진화론을, 저는 적어도 하느님, 창조주의 손길을 인정을 할 때에 일리가 있다고 인정을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만물을 창조한 정점에서 인간을 당신의 모습에 따라서 창조하셨고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셨습니다. 나아가 인간을 당신과 함께 영원히 살도록 하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당신의 외아들 그리스도를 보내 속죄의 제물로 삼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의 죄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기까지 했다.
하느님이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기에 우리 인간은 존엄한 것입니다. 당신의 모습으로 창조하시고, 인간을 당신과 영원히 살도록 안배하시고, 이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 놓으셨기에 인간은 존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절대적인 하느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났건 못났건 우리가 인간인 한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나’, 각자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 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존엄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이 왜 때때로 고통을 주시냐는 질문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 박완서씨는 자식을 여의고 ‘하느님을 죽이고 싶은 마음, 살의를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일이 지난 후 ‘만일 나에게 포악을 부릴 그분조차 안계셨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자문했다고 합니다.
왜 하느님이 고통을 주시냐는 질문에 대해서 나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다만, 고통을 통해서 하느님은 인간을 당신께로 이끄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통을 통해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깊어집니다. 모든 좋은 일은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 이루집니다.
결국 저는 지도자가 이런 고통과 시련을 진실하게 겪음으로써 참된 지도자로 육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인간만이 이 광대한 우주에서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인간의 목표는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과 함께 사는 영원을 위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영원에 대한 향수가 있습니다. 인간이 영원을 향한다는 점이 전제가 돼야 인간의 존엄성의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종교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사회적으로도 인간은 존엄해야 하고 평등해하고 인간은 영원해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가장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를 알고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지도자들, 각계의 모든 지도자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이 이런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기본적으로 인간이 얼마나 존엄한지를 깨닫고 사랑한다면 우리나라는 지금과 많이 다른 나라가 될 것입니다.
지도자는 가난하고 늙고 병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새천년, 미래의 지도자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존중할 줄 알고, 사랑할 줄 알고 섬길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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