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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빨간 날 67일, 하지만 그들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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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빨간 날 67일, 하지만 그들은 슬프다

[장석준 칼럼] '빨간 날 운동'을 벌이자

두 달 뒤면 이재영 전 진보신당(현 노동당) 정책위원회 의장의 1주기다. 한국 진보 정당 운동의 기둥과도 같았던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도 벌써 1년이 가까워 온다.

추모사업회는 1주기를 맞아 이재영 전 의장의 유고들을 모아 두 권의 책으로 펴내려고 한창 준비 중이다. 한 권은 칼럼 모음이고, 다른 한 권은 진보 정당 운동에 대한 글들을 모은 책이다. 이 작업에 참여해 유고들을 읽어내려 가면서 그가 남긴 구상과 고민들이 새삼 신선하게 혹은 아프게 다가왔다. 그 중에서도 그가 마지막 인터뷰에 남긴 말이 특히 사무쳤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근본적으로 한국의 진보 정치 운동, 사회 운동 세력, 속칭 운동권이 민중 세력인가에 대한 반성과 노력이 있어야 해요. 내가 보기에 민중이 아냐. 노동조합은 중상층이고, 당은 인텔리고, 그들의 소득과 사회적 관계망, 의식은 이미 민중에서 벗어나 있어요. 민중을 그들이 잊고 있고요.

한 달에 100만 원 받는 식당아줌마나 캐시어, 빨간 펜 선생님, 비정규직. 비정규직도 여러 가지지? 노가다 판의 잡부라거나 외국인 노동자거나 이런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전노협 때 당시 조합원보다 수도 많고, 대한민국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더 크고, 더 열악하고 소외되고 배제되어 있어요. 그들에게 한국의 운동권은 접근하지 않아요.

민중 세력에 접근하는 계기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현 진보 정당은 급진적 중산층 정당이죠. 아니면 과격한 민족주의 정당이거나. 그건 민중 정당이 아니에요."


따라서 이재영에게 진보 정당 운동이 가야 할 길은 명확했다. 그것은 "민중과 결합해 민중 정당을 만드는" 것이었다. 선명하면서도 어려운 길이다. 민주노동당도 이런 질의 민중 정당은 못됐다. 노동조합에 의지했을 뿐이었다. 진보신당에서 '비정규직 정당'이 되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지만 비정규직 노동조합 투쟁에 함께 하는 정도였지 '비정규직'으로 통칭되는 폭넓고 다양한 민중들에 접근하지는 못했다. 지금 '진보 정당'을 표방하는 정당들이 여럿이지만, 모두가 다 아직 이재영이 말하는 "중산층 정당, 인텔리 정당"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 것일까? 사실 민주노동당 시절에도 이런 고민에서 나온 제안이나 시도는 없지 않았다. 원내 진출 직후에는 '빈곤과의 전쟁'에 나서자는 제안이 있었다. 17대 국회 끝 무렵에는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인 계층에게 보험료를 지원하자는 '사회 연대 전략' 구상이 논의되기도 했다.

모두 다 진보 정당이 자신의 지지 기반인 조직 노동의 힘을 최대한 활용해서 저소득층의 복지를 강화하자는 전략이었다. 그래서 조직 노동과 그 바깥의 여러 민중 계층들 사이의 동맹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진보 정당의 지지 기반을 넓히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중 어느 것도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아무튼 결과는 그랬다.

오늘날 진보 정당들은 민주노동당 시절만큼도 조직 노동에 영향을 미칠 힘이 없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시절에 나왔던 방안들을 다시 꺼내 활용해볼 도리도 없다. 사정은 훨씬 더 안 좋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중단할 수는 없다. 과거에 비해 지극히 소박한 수준에서라도 이재영이 말한 "운동권 정당"과 "민중 정당"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시도들을 계속해야 한다. 며칠 전(15일) 노동당이 국회 앞 기자 회견으로 시작을 알린 '빨간 날 유급 휴일화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 청원 서명 운동'(이하 '빨간 날 운동')도 그런 시도의 하나다.

ⓒMBC

"빨간 날"이란 달력에 빨간 글자로 표시된 날들을 말한다. 즉, 공휴일이다. 우리는 공휴일을 모두가 노는 날로 알고 있다. 학교 다니면서 그렇게 경험해서 그런 줄 안다. 학교는 공휴일이면 쉬기 때문이다. 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공공 기관들도 공휴일에는 쉰다. 법이 정한 '공휴일'의 뜻이 그렇다. 법률 용어로서 '공휴일'이란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라 관공서가 쉬는 날이다.

그럼 관공서 말고 다른 곳은? 대기업은 쉰다. 법률상 의무적으로 휴일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기업에서는 대개 단체 협상이나 취업 규칙을 통해 공휴일을 유급 휴일로 정해놓고 있다. 물론 공휴일인데도 나와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유급 휴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휴일 근무에 따른 수당을 받는다.

문제는 관공서도 아니고 대기업도 아닌 일자리다. 기업 규모로는 중소기업이고 취업 형태로는 대개 비정규직이다. '민중'의 다수는 사실 이쪽에 속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공휴일은 노는 날'이라는 상식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공휴일에는 쉬라는 법률도 없을뿐더러 단체 협약도 없다. 사용자가 나와서 일하라면 꼼짝없이 일을 해야 한다. 운이 좋아 쉬더라도 '유급' 휴일이 아니라 '무급' 휴일이다. 어떤 사용자들은 공휴일을 개별 노동자의 연차 사용으로 대체해서 노동자들이 연차 사용의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보통 다른 데도 다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곤 한다.

이게 우리 현실이다. '빨간 날'이라고 다 정말 '빨간 날'이 아니고, 공휴일에 쉬는 데도 등급이 있다. 빨간 날 운동은 이런 상황부터 바로잡자는 것이다. 법률로 공휴일을 모든 노동자의 유급 휴일로 만들자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제55조의 휴일 조항에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서 지정한 공휴일을 유급 휴일로 한다"는 내용을 신설하면 된다. 노동당은 이 법 개정 청원을 위해 10만 명의 서명을 받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

사실 노동 시간 단축이 노동 운동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논의는 이미 많이 있었다. 진보 정당 운동에서도 이런 주장은 오래 전부터 활발히 전개돼왔다. 하지만 이것을 생활 현장에서 대중에게 어떻게 이야기할지에 대해서는 방향을 잘 찾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나 법정 노동 시간 단축 같은 수단으로는 혜택을 보기 힘든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다가가기는 더 쉽지 않았다.

최근 정부가 대체 휴일제 도입을 검토한다고 한다. 설이나 명절, 어린이날이 다른 공휴일과 겹치게 되면 평일 중 하루를 더 쉬게 한다는 내용이다. 이것 자체는 노동 시간 단축의 한 방안으로서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이것도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차별이 더 벌어지는 일일 뿐이다. 공휴일이 유급 휴일인 대기업 노동자들은 휴일이 늘어나 노동 시간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겠지만 공휴일이 유급 휴일이 아닌 노동자들에게는 그게 다 남의 이야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미 300인 이상 사업장과 5~9인 사업장 사이의 휴일 격차는 20여 일이나 되는데, 이게 되레 늘어나게 될 것이다. 대체 휴일제 도입을 논하기 전에 우선 공휴일을 법정 유급 휴일로 만드는 일부터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빨간 날 운동은 이렇게 보다 낮은 곳에 선 이들의 시각에서 노동 시간 단축을 말하고 실현하려는 첫 걸음이다. 조직 노동의 의제에만 집중하다가 놓쳐왔던 더 많은 이들의 눈높이에서 권리를 이야기하고 쟁취하려는 노력이다. 이 운동에 힘이 붙어 노동 운동 전체가 함께 하게 된다면, 노동당은 작으나마 제 몫을 한 셈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진보 정당 운동의 제 길 찾기는 다른 게 아니라 이런 훈련을 거듭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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